2006년 7월 초쯤,

주요 온/오프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됐다는 책들에 대한 서평 기사.

 

별 기대 없이 썼는데 웬걸,

딴지 시절에 쓴 기사 중에서는 반응이 젤 솔찬했더랬다. 

 

역시나, 뭘 하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새삼 일깨워줬달까. ㅋ;

 

 

***

 

 

뒷모습에 설레였다가도 앞모습에 그만 싸늘하니 진정되는 경험들, 한 두 번씩 있을 줄 안다.

 

허나 비단 헌팅계에서만 이런 경우가 있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혹시나와 역시나의 무한순환이 거듭되는 바닥 또 있으니...

 

그렇다. 그 바닥은 바로 독서계, 그 중에서도 처세-실용서 분야라 불리는 바닥이다.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서로 다른 제목을 붙여가며 어디까지 무한변주할 수 있는지 겨루기라도 하듯, 출판사마다 매혹적 장정으로 뭇시선을 끄는 이러한 책들은, 후두부 보고 설렌 가슴 안면 보고 놀랐던 경우보다 더 심한 심적 타격을 구매자에게 안기기 십상이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로 허비된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와중에 발생한 금전적 손실은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 신통치 않아졌다는 요즘 상황에 비추어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

 

더욱이 그 바람에 담배 한 모금과 소주 한 잔 등 소박한 즐거움의 여지마저 줄어버렸음을 감안하면, 이는 이중의 낭비로서 실로 묵과해선 아니 될 사회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지, 최근 처세-실용서 분야서 상위 랭크된 책들의 급소만 추려 독자제위들로 하여금 한 큐에 꿸 수 있게끔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름하여,

 

처세-실용분야 베스트 초간단 다이제스트리뷰 5종세트.

 

이로써 굳이 안 읽고도 읽은 거나 다름없는 효과를 누리면서도, 이렇게 확보한 시간과 돈은 보다 알차게 쓸 수 있게 됐으니 일거양득이 따로 없다.

 

본지에선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교보, 반디앤루니스, 영풍, 알라딘, 예스24)에 올라있는 인기도서 목록 중, 네 군데 이상 올라 있는 책 다섯 권을 추렸다.

 

그럼, 이들 각각에 대한 다이제스트리뷰 들어가도록 하자.

 

 


 

 

<마시멜로 이야기>

 

이 책에서 '마시멜로'란 인생의 성공을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유혹들을 상징하다가, 나중에는 성공이 가져온 성취에 따르는 '덤'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결국 이 책에서는 마시멜로 먹고 싶다고 바로바로 먹어치우다간 마시멜로 하나 더 먹을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계속된다.

 

이런고로, CEO인 조나단과 이 사람의 전용차 운전기사 찰리 사이에 오고간 대화로 구성된 이 책에서, 조나단은 "눈앞에 펼쳐진 작은 만족과 유혹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그 보상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는 자세",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성공'의 결실이 돌아온다는 신념"을 누차 강조한다.

 

자신이 이룬 성공은 "가장 유혹에 굴복하기 쉽고, 강렬한 매혹에 빠져들 수 있는 시절에,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꾹 참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에 찰리를 어엿비 여긴 조나단은 "인내의 미학"이 담겨 있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친철히 알려준다.

 

그랬더니 "눈앞의 욕구만을 충족시키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통절히 반성하며, 급기야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이겨낼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아요"라고 화답하기에 이르는 찰리.

 

뿐인가. 찰리는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라는 마시멜로의 정직한 교훈"을 되풀이하는 자신의 고용주한테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은 날이 "제 삶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하루"였다는 수줍은 고백도 덧붙인다. 여기에 탄력받은 조나단은 몹시 흡족해 하며 했던 얘기, 하고 또 하고...

 

하여간 찰리가 대학에 진학했다며 운전기사를 관두고 조나단과 작별을 고할 때까지, 어떻게든 참는 이에게 복이 있을 거라는, 대체 언제적부터 회자됐는지도 모를 메시지를, 마치 전에 없던 금언인 양 반복하고 있다.

 

이게 스스로도 캥기는지, 책쓴이는 이 책에서 다룰 내용이 "아주 특별하고 경이로운 성공의 비결"에 관한 것임을 강조한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획기적", "빛나는", "깜짝 놀라며"와 같은 표현들 또한 어찌나 수시로 등장하는지.

 

그래서일까.

 

메시지의 고리타분함을 새끈한 장정과 시원시원한 크기의 활자로 카바해보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그래도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어째서 '남다른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없는지는 제껴두고, 하여간 남다른 사람처럼 하기만 하면 남다르게 사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요지다.

 

여기서 말하는 남다름의 면면이란, 읽고 나서도 기억이 잘 안 날 만큼 훌륭한 내용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좋은 인상을 유지하려면 좋은 행동을 하기보다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거나

 

"한 번 나쁜 인상을 주었다면 몇 배의 좋은 행동을 보여"줘야 하고,

 

"유머감각을 가지면 인기도 좋고, 잘못을 해도 용서받기 쉬우며 위기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으며,

 

"빈틈을 숨기지 않으면 경계심을 풀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기꺼이 모른다고 말하면 솔직하고 당당하다는 인상을 주며 겸손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되라",

 

"옷차림은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 등등등등.

 

대인관계 유지에 하나 같이 중요한 지침들인 건 틀림없을지 모르나, "인간관계가 술술 풀리는 사람의 비결"이라고까지 할 만한 것인진 의문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달리 말해 지금껏 몰라서 못하는 건 하나도 없는 셈인데, 그래선지 “‘아는’ 것이 ‘힘’은 아니”란 말을 친절하게도 책 말미에 덧붙여 뒀다.

 

실제로 그러기가 왜 어려운지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99%가 부족한 까닭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이 책의 핵심논지인즉슨, 자기를 사랑하고 행복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장애들을 걷어내는 건 다 각자 하기 나름인지라, 남이나 환경 탓할 시간 있으면 눈치 볼 것 없이 이기적으로 제 갈 길 찾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거다.

 

헌데 이 길을 내는 데 방해가 되는 관습적 행동원칙들이 있으니, 이름하야 '오류지대'.

 

여기에 발을 안 들이려면 먼저 "자신의 선택에 너그러워"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내가 나 자신의 기준이 되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현재는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이들한테 세상에 대한 불평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아니 끼어들어선 안 된다. "불평은 자기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일 뿐이며, "아무리 징징거려도 긍정적인 자기변화는 이룰 수 없"으므로.

 

따라서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보편적인 자기파괴적 한탄"에 불과한 불공평함을 문제삼을 바엔 차라리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보라"는 게 이 책의 주문이다.

 

이 때 특히 유념할 것은 "행복을 택하고 불행을 택하는 건 정의의 부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옳은 선택은 없다. 다른 선택만 있을 뿐."

 

이 책에 따르면, "비가 오든 푹푹 찌든 투덜대는 법" 없이 "일상을 사랑"할 줄 아는 이들 치고 이 점 모르는 이들은 없단다. 요컨대, '행복한 이기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다 좋은데, 막상 이런 실천이 하나가 아닌 여럿 됐을 때 어떤 상황 초래될지에 대해선 말이 없다. 그런 건 '보이지 않는 행복의 손'이 다 알아서 교통정리 해줄테니, 각자는 이기적 행복이나 열심히 좆으란 식이다.

 

그럴 거면 적어도 이런 행복의 길이란 결국 아무나 못 누리는 특권이 되기 십상이더라는 얘기까지 과감히 덧붙였어야 했다.

 

더욱이 주어진 것을 무턱대고 따르는 건 바보짓이라면서 불공평함에 대한 문제제기도, 심지어 불평도 금물이라니.

 

큰 소리로 속삭이거나 손 안 쓰고 혼자 머리 감는 일도 "결심만 한다면" 충분히 실현가능하니, 딴 소리 하면 그건 다 니 탓이라는 얘기랑 뭐가 다른지 모를 일이다.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어느 전 워싱턴 특파원의 미국체류기.

 

책쓴이가 미국서 겪은 온갖 에피소드들과 이에 관한 단상들이 두서 없이 망라돼 있다. 이 책이 얼마나 두서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하나.

 

"왜 예일대학에서 대통령이 많이 나올까?"란 소제목이 달린 글이 있는데, 여기선 언젠가 예일대학에 들렀던 적이 있다는 걸 언급하며 최근 10여 년간 미국 대통령들이 왜 죄다 예일대학 출신이었는지를 짚는다.

 

그건 첫째, 예일 출신들이 "다양성과 막강한 네트워크, 창의성, 공익을 위하는 태도" 면에서 돋보였기 때문. 그런데 이런 게 딱히 예일 출신들만 그런 건 또 아니라며, 앞서 던진 질문을 제 발로 미궁에 빠뜨린다.

 

그리고선 생뚱맞게도 "'인재' 소리 듣기 어려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로 글을 맺는 책쓴이.

 

그냥 미국 체류 중에 예일대학 가본 적 있다는, 자랑 빼곤 알맹이 하나 없는 셈이다.

 

이처럼 없어도 마치 있는 듯, 또는 굳이 미국 아니 가보고도 충분히 할 만한 내용들 쥐어짜내려다 보니 이 책이 말하려는 요지에 대해선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 마냥 종잡기가 힘들다.

 

그러니 제목에 꽂혀 책을 집어든 사람들인 경우, 기대 배반 지수는 더더욱 높을 수밖에 없을 터.

 

책쓴이도 그걸 모르진 않는지, 서두와 후기에 짐짓 이런 얘길 한다. 우리는 어떤 그릇이며, 또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외려, 본 기자는 책쓴이에게 반문하고 싶다. 이 책, 실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는데 써야 하는 일이었던 거 아니냐고.

 

<페페로니 전략>

 

제목이 암시하듯, 회사에서 제대로 살아남아 치고 올라가려면 페페로니처럼 "매운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 내재한 공격성을 마냥 억제하기만 할 게 아니라 적절히 조절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 왜냐, 안 그러면 결국 팽당하는 건 당신이니까.

 

하여 이 책은 "단 한 번의 사악한 행동이면 정신과 의사가 필요없어진다"면서, "향후 성공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나타났을 때 이를 좀더 빨리 간파하고 제거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① 목표를 위해 힘있게 밀어붙여라,
② 가망없는 힘겨루기는 포기하라, 
③ 입장표명을 분명히 하라,            
④ 불평꾼, 패배자, 회의주의자를 멀리 하라,
⑤ 맷집을 길러라,                         
⑥ 방어용 화법을 익혀라,              
⑦ 나쁜 소문에 즉각 대응하라,       
⑧ 정기적으로 적을 분석하라.        

이 원칙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공공(=기업)의 이익과 결합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있는 만큼, "물불 가리지 않는 출세지향주의를 장려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거시적 이기주의"라 부를 만한 이 원칙들을 통해, "재미없던 직장생활에 활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게 책쓴이 주장이다.

 

직장의 모든 잠재적 적들과 티 안 내고 맞장 떠 이기는 법을 말하면서도, 끝끝내 성공적 직장생활에 없어선 안 될 화끈한 행동 전략을 얘기하는 거라고 거듭 밝히는 책쓴이의 맷집이야, 방어용 화법에 익숙해지라 했던 원칙에 충실한 결과라 치자.

 

그러면서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얘기를, 너 자신을 사랑하라 같은 말로 에두르지 않는 것 또한 화끈해서 좋다.

 

허나 이런다고 이 원칙들에 '하면 된다 했으니 안 되면 전부 다 니 탓'이란 떠넘기기 전략이 낑궈져 있다는 것마저 감출 순 없는 노릇이다.

 

페페로니로 직장생활이라는 음식에다 감칠맛을 내라지만, 음식이 언제 상할지 모르는 판국에 감칠맛을 낸다 한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지금까지, 요즘 잘 나간다는 처세-실용서 베스트 5에 대한 다이제스트리뷰였다.

각 리뷰로 드러난 처세의 메시지는 크게

 

첫째, 국민학교 도덕교과서에나 나왔었음직한 내용을 산뜻한 감각으로 포장, 매우 새삼스러운 듯 중언부언하거나(<마시멜로 이야기>)

 

둘째, 어찌 해야 현 상황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처방은 조목조목 제시되지만, 가령 이빨로 자물쇠가 안 끊기는 걸 의지와 결단력 부족 탓이라 전제하거나(<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페페로니 전략>)

 

셋째, 정리되지 않은 느낌과 인상을 보따리 풀듯 쏟아내기만 해놓고선, 무언가 할 얘기가 있었던 듯 페인트를 구사하다 결국 그게 무엇인지 도리어 묻는(<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이상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었으며, 각각의 메시지들을 종합한 결과는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바,

 

“오늘 잘 참으면 내일은 이빨로 자물쇠를 끊어낼 수 있을텐데, 내가 지금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대신 좀 알아맞춰 보라”

 

는 얘기 되겠다.

 

이상의 분석을 통하여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베스트셀러 치고 영양가 있는 게 없다는 통설, 이번 리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식당에 갔건만 주린 배를 채우긴커녕 밥도 혼자 못해 여기까지 왔느냐는 핀잔만 잔뜩 듣을 뿐이니 말이다.

 

더구나 다 같은 책이라고 무턱대고 읽었다간 헛배만 부를 뿐, 지적 영양실조에 빠지기만 할 공산 크다는 점 또한 이번 조사로 확연히 드러난 대목이라 하겠다. 이런 책 열 권을 읽느니, 친구들과 삽겹살 거하게 구워먹는 쪽이 훨씬 영양가와 격조를 겸비한 일일 터.

 

모쪼록 독자제위들은 이상의 내용을 숙지함으로써, 적어도 상기 서적들에 대한 예기치 않은 관심과 재정지출로 초래될 삶의 질 저하를 미연에 예방하길 재차 상기하기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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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2 06:32 2008/03/0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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