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말, 이랜드 본사 앞에서 열린 목요문화제 때 읽어내려가려 했으나,
퇴근이 생각보다 늦어진 통에 그리 하진 못했고..

 

원래는 <프레시안>에서 정인열 코스콤 지부장의 글을 보고서
썼던 걸 좀 고쳤던 건데.. 뭐, 코스콤이든 이랜드든, 다른 그 어떤 현장이든
사실상 너나할 것 없는 상황이니 만큼 그렇게 큰 흠은 아니잖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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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도 그렇고, 케이티 엑스도 그렇고, 이랜드그룹(홈에버, 뉴코아)도 그렇고, 코스콤도 그렇고, 끝끝내 분신이란 안타까운 선택으로 노동자들을 내몬 한국전력과 서울우유도 그렇고...

이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공헌한답시고 기어이 노동자 대중의 존엄함을 짓이겨 이윤을 짜내고야 마는 꼬라지들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자본의 본능 내지 권능이란 게 종류 불문, 어쩜 이리도 게걸스러울까 싶은 요즘입니다.

이런 게걸스럼을 캄푸라치한다며 "사회공헌"이니 (기독교)윤리경영이니 ‘선진적인’ 제스쳐로 설레발을 치지만, 악취나는 몸뚱아리에 향수 뿌려봤자 그마저 더 심한 악취로 화할 뿐인데도요. 꽃을 든 괴물더러, 꽃을 다발로 들고 있단들, 누가 아름답다고 할까요? 그건 그저, 기괴할 뿐입니다.

근데 이게 아름답다는 감각을 뽐내는 고명한 부류/세력들이 분명, 만만치 않게 있어요.- -;; 단적으로 이상수(장관) 같은 작자는 작금의 상황을 두고, 양지가 있음 음지가 있기 마련이라질 않나.. 아주 가관이다 못해, 실로 기괴하죠.

뭣보다 요즘 비정규직을 둘러싼 상황 추이를 보노라면, "자본"이라는 건 확실히 이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개별기업들 하나하나라기보다는 이랜드-기륭-케이티엑스-코스콤-서울우유가 "권력의 성채"로 엮여 개별 노동자들을 힘겹고 피곤케 닥아치는 하나의 "사회관계"더라는 거죠.

그렇잖습니까? 정부-사법부-부자언론이 이들 기업과 무언의 "짝패"를 이뤄서는, 노동자들을 닥아쳐온 엿같은 노동조건(나아가 이런 조건을 강화화는 사회적 조건)이 바뀌어야 한다는, 실로 지당한 이의제기를 경찰의 몽둥이에 기대 "사회불안" 요소쯤으로만 취급하려 드는 걸 보잔 말이죠. 노동자-대중이 무슨, 국가경제발전용으로나 쓰이고 말 "말"이랍니까? 하다 못해 알까길 해도 말을 이렇게 놀리진 않습니다.

그러믄서, 정작 노동자-대중의 삶/영혼을 불안케 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지네들의 권력-네트워크에 대해 "소극적인" 규제라도 할라치면, 아주 그냥 쌍심지를 켭니다. 가소로운 일이지요.

이러니 노동자들이 집단적 대응을 할 수밖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존 대응 형식이 설사 아무리 후지다 해도, 그것만 갖고서 집단적 대응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는 이유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어떤 형식으로 저 된장세력과 맞서 싸우느냐일 테니까요. 이런 거 하지 말라는 건, 일테면 배에 칼이 들어와도 사는 게 본디 그런갑다 하고 지내란 소리나 마찬가진데, 이러구 지내라면 칼만 봐도 아랫도리 적실 것들이 꼭 이딴 헛소리들을 합니다.

하여간 요즘 나라 안팎 할 것 없이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자본”인즉슨 “끊임없는 (폭력적) 이윤의 축적을 정당화, 지지하는 사회관계 자체”라고 갈파했던 맑스 할아범의 통찰이 지금처럼 더 없이 유용하고도 소중한 때가 있을까 싶습니다.

문화제나 집회 끝나고서 하는 뒷풀이 자리 때 조합원분들을 뵙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곤 하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뒷풀이 자리 때 이미 한 이야기기도 합니다만, 조합원분들께 가장 소중한 "승리"의 열매란 어쩌면 직장복귀 내지 정규직화 자체보다도 "자본"의 패악질에 더는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다른 감각과 안목"이란 무기를 체득하는 일이 아닐까, 라고요. 여러 우여곡절과 육체적·심리적 고초로 마냥 주저앉고 싶다가도, 우리가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바로 그런 무기를 내장한 "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냔 거지요.

이러지 않음, 언제 또 어느 자리에 서 있든 자본 본연의 패악질과 행패는 끝간 줄 모르고 우리의 삶과 영혼을 후벼파먹고, 갉아먹으려들 테니까요. 바꿔 말하면, 그렇게 강해져야 우리가 돌아갈 일터는 예전과 달리 좀더 살맛나는 곳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길 테구요.

저번에 <프레시안>을 보니 코스콤의 정인열 지부장님께서 그러더군요. 태어나 한 번은 싸워야 한다고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아니 실은 누가 봐도, 앞서 말씀드린 자본과의 싸움은 단판이 아니라 장기전 형태를 띨 겁니다.

하지만 "싸움"이라 해도 그게 그저 고단한 과정일 것만 같진 않다는 생각인 게, 이윤욕에 잠식당한 우리들의 존엄한 삶과 영혼을 살찌워가는 일이, "다른 감각과 안목"을 널리 공유하면서 나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어찌 고단하기만 할까 싶어섭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지금까지완 아주 다르면서도 좀더 나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살림살이를 꿈꾸며, 그 꿈을 "꿈같은 현실"로 우리 눈앞에 구체화하는 과정이겠기에 더더욱 그렇잖나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내디신 발걸음이 비록 당장은 그 무게에 힘겨울지라도, 자본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부가)가치" 따위완 비교할 수 없는, 더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건 이 때문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설사 여러분을 떠났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다른 노동자 분들이 못내 서운하고 아프시더라도, 크게 괘념치 마시고, 외려 그런 그네들의 처지를 처연하게 봐줄 수 있는 배포까지 발휘하셨음 좋겠단 생각임다. 그 아픔 자체를 아예 지우기야 어렵더래도, 좀더 나은 삶의 거름으로 쓰일 수 있다면 그게 그저 나쁘기만 한 건 아니겠지요.

뭣보다 알량하니 글줄로나마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들을 성원, 지지하는 "벗과 이웃들"이 있는 한, 조합원 여러분을 위시하야 (비정규)노동자들 각자가 따로 또 같이 부르는 노래는 멀리멀리 날아가 “다르고 더 나은 삶”의 씨앗이 될 수 있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부디 기운들 내십시오. 이런 발언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노조원 여러분은 이미 “강자”라는 거, 잊지 마시구요.

다시 한 번, 조합원 여러분께 마음으로부터 성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투쟁.





마포구 주민

들사람 배.



추신:

엿같아서 못살겠다 해방세상 앞당기자! 돈지랄좀 작작해라 사람답게 살아보자!

비.정.규.직.철폐.투쟁, 연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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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22:29 2008/03/12 22:29

 

 

2007년 7월 18일, 정부에선 기어이 이랜드그룹과의 돈독한 파트너쉽을 과시하며 노조 측에다 너무나 뻔해 가당찮은 협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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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 정부에선 교섭이 결렬될 경우 조합원 여러분들이 벌여온 점거농성을 강제로 해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여 공권력 투입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게 내심 부담스럽긴 한지, “언제까지나 인내심을 갖고서 지켜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지요.

조합원 여러분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지속가능한 삥뜯기에 골몰해온 이랜드그룹의 게걸스런 돈벌이 행태에 대해서는 지금껏 끝없는 인내심과 아량을 발휘하더니만, 그저 제대로 먹고 살아보자고 너나할 것 없이 의기투합한 조합원 여러분들의 열망, 아니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누려 마땅한 삶에 대한 열망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하는군요.

어제가 괜히 18일은 아녔던 모양입니다. 조합원들의 정당한 파업권조차 차마 지켜보질 못해 이랜드측의 용역들과 발맞춰 농성장 봉쇄로 대응해온 주제에, 더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다니, 이게 과연 가당키나 한 소릴까요, 조합원 여러분? 쌍욕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18이란 말만으론 턱 없이 모자란 판이지요.

아무래도 이 “국민참여”정부에선, 인내심의 값어치도 알량한 지갑 두께와 권세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모양입니다. 이랜드그룹 측의 기만적이고 태만한 교섭에 뒷심을 실어주고 만 정부의 오늘 협박성명은, 정부 스스로 조합원 여러분들이 그간 보여온 열망과 인내심을 한껏 능멸하고 있음을 버젓이 드러내버린 셈이니 말입니다. 교섭의 실마리가 잡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이랜드자본의 후견인 노릇을 자처하며 자신의 무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공권력 투입부터 천명하고 마는 정부의 위압적 태도는 이를 단적으로 웅변합니다.

조합원 여러분들을 철창 안에 구속하겠다는 이 참여정부의 법집행 의지가, 기껏해야 조합원 여러분은 물론 노동자들의 “삶” 자체를 구속하겠노라는 폭력의 의지에 불과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좀 제대로 먹고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지를 옭아매겠다는 목표가 과연 달성가능하긴 한 일일까요? 애초 불가능한 것일 뿐더러, 설사 달성한들 그 목표 자체를 놓고 정부의 존재의미를 되물어야 할 도덕적 비난을 자초하는 일일 겝니다. 이 싸움이, 내세울 건 그저 완력뿐인 이랜드그룹의 용역투입이나 정부의 공권력 행사로 여러분들이 결국 매장에서 끌려나오더라도, 여러분이 애초부터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조금은 다른 얘기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거듭되는 폭격으로 삶의 터전이 초토화되기 일쑤인 남부 레바논 사람들은, 이러더군요. “이스라엘이 우릴 다섯 번 폭격하면, 우린 여섯 번 재건한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이기는 거”라고요. 같은 지역에 사는 어느 어부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배를 띄우고 그물을 치는 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자 함이다.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 그 자체론 인정하지 않는다. 그네들이 우리에게 어떤 배를 띄우고, 어떤 그물을 치느냐가 중요하다. 저들은 우리에게 파괴의 배를 띄우고, 슬픔의 그물을 쳤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지리적으로는 비록 멀고 먼 중동 지역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와 권세를 세트로, 그것도 폭력적으로 누리는 사람들한테 시달리기로는 조합원 여러분들이나 남부 레바논 사람들이나 별다를 게 없는 모양입니다. 레바논처럼 폭탄만 떨어뜨리지 않는다 뿐이지, 정부와 이랜드그룹 또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합원 여러분들의 소박한 삶을 초토화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법치”를 빙자해 여러분들의 삶을 짓이기려 들고 있으니까요.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가 남부 레바논 지역 사람들한테 그러하듯, 대한민국 정부는 오직 이랜드그룹 같은 돈독과 권세욕에 찌든 자들이 불편할 때만 그들의 벗을 자처하며 조합원 여러분들한테 파괴의 질서를 강요하고 슬픔의 그물을 치려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파괴와 그물로도 “강제 해산”시킬 수 없는 게 있잖냐는 생각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건 바로, 이 터무니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 어처구니마저 없는 자본의 전횡에 맞서, 각기 존엄한 삶을 지켜내려는 조합원 여러분들의 영혼이 이뤄내온 두터운 우애와 연대의 네트워트입니다. 이런 네트워크는 여러분들과 뜻을 함께하는, 저를 비롯한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자극하고 또 활력을 불어넣는 마르지 않는 샘이기도 하지만요.

그렇게, 주의 힘이 깃드는 한, 우리들을 이어주는 이 생동하는 영혼의 네트워크는 거대한 풍랑을 이뤄 이랜드그룹과 대한민국 정부가 저지르는 합법적인 테러와 폭력을 기어이 난파시키고 말 것입니다. 이런 주의 이름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조합원 여러분께 가이 없는 경의를 표하는 한편으로, 주께서 깃드신 가난하고 짐진 영혼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 끝나지 않고, 또 끝날 수 없는 투쟁에 함께하리라 다짐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조합원 여러분, 비록 힘겹고 괴로운 상황이 닥치시더라도 주눅들거나 위축되진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겪었던 고초만큼은 아닐지언정 조합원 여러분들이 지금껏 겪었고, 또 앞으로 겪게 될 상황에 짐짓 초연하시라는 당부는, 감히 말씀드릴 주제도 못되거니와, 차마 드리지 못하겠군요.

다만, 보잘 것 없는 힘이나마 주의 뜻이 함께하는 여러분 곁에서, 주의 미소를 함께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애롭고 생동하는 영혼의 네트워크로 현현하기 마련인 이런 주의 힘, 주의 뜻이야말로 그 어떤 물리력과 완력으로도 결코 찍어누를 수 없는 투쟁, 아니 삶의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자신을 믿는 한, 주 예수께선 우리의 연대 속에, 우리가 맞잡는 손짓 속에, 우리의 웃음과 분노, 슬픔, 그리고 기쁨의 몸짓 속에 늘 함께 깃들어 계실 테니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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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22:25 2008/03/12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