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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에 발행된 레드타임즈 3호에 실린 글입니다.
Q. 국가보안법은 유엔인권헌장에도 위배되는 법인만큼 ‘인권’의 차원으로 반대하는 게 옳은 거죠?
A. 물론 국가보안법은 유엔인권헌장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한 권리인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법이 맞습니다. 그래서 열우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개혁세력들도 한나라당과 논쟁을 할 때, 이제는 군부독재시절의 악습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본연에 맞는 새로운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시민단체들도 정치권에서 말하는 ‘인권’이란 개념으로 국가보안법의 완전폐지를 주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점은 ‘인권’이란 무기로 국가보안법의 개정 혹은 폐지를 주장할 때, 정치권의 개혁세력이나 시민단체의 주장이 결국은 대동소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그 동안 노동계급에게 ‘친북-좌익-용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직접 탄압을 가했다는 것은 은폐한 채 어디까지나 현재의 ‘자본주의체제’가 용인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악업이다/아니다’로 생각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권’이 아닌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련한 논란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인권’이라는 것도 먼 옛날부터 인간에게 있어 주어져 있던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이행되는, 즉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처럼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과정에서 새롭게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킴에도 불구하고 신분제폐지를 가지고 ‘전 인류의 보편적 해방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당시 이러한 흐름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진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지가 말하는 인권이란 그리고 평등이란 어디까지나 경제적 불평등을 전제로 한 정치적 자유만을 의미했기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 있어서 이러한 ‘인권’적인 측면으로 숨을 쉴 수 있는 자유, 즉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사실 이 과정도 노동계급이 그만큼 싸워서 쟁취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냥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자신을 착취의 올가미로 쥐고 있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폐기하기 위해서는 ‘인권’이란 측면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도 인정하는 ‘인권’이 아닌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A.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부르주아 정치권입니다. 여기에 시민단체에서도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주장하며 개입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앞서 계급적인 관점에서 국가보안법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정작 노동계급은 이 논란에 실질적으로 반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힘이 조직적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체 진보진영에서도 노동계급은 주도적인 역할을 아직은 하지 못하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이란 그다지 많지는 않아 보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가시화되고 있는 반대흐름은 분명 민주주의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자칫하면 형법으로 대체입법을 한다든지 일본의 예를 따라 파괴활동금지법을 도입한다든지 등의 불완전한 폐지로 멈출 수 있는 한계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고 실제로 이를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계급은 오직 노동계급뿐인데, 아직 조직적인 강한 힘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급이 싸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학생으로서 노동계급의 투쟁에 힘차게 연대하면서 그 속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토론할 수도 있으며, 학우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더욱더 만들어 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의미있는 실천을 우리 주위에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현재 우리가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2004년 10월에 발행된 레드타임즈 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성매매 특별법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성매매는《매춘의 역사》라는 책이 있을 만큼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그리하여 인류에게 있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도 역 근처만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월수입 몇백, 숙식제공’이라는 조그만 종이들과,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나와있는 업소 광고지들이 여성과 남성들에게 성을 팔고 또 사도록 유혹하고 있다.
전 국민의 70%가 법의 존재여부도 모른채, 지난 9월 23일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어 04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윤락', '매춘' 등과 같이 성매매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삼거나 성을 '파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용어 대신 '성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비해 분명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또한 성매매특별법에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피해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성을 거래하도록 알선하는 업주와 중간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도 들어있다.
그렇다면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그러기에는 이 법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르면 ‘성매매피해자’는 위계, 위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마약등에 중독된 자, 장애가 있는 자, 청소년, 그리고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로만 한정되어 있다. 애초 02년 발의되었던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선불금 등 채무의 이용에 의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는 누락되었고, 피해자임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동의의 문제가 구성요건으로 남아 있어 이른바 ‘자발적 성매매’를 한 여성들은 성매매피해자의 대상에 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발적 성매매...라는 말은 언제나 꼬리표처럼 성매매피해여성들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무엇이 그녀들을 ‘자발적이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성매매피해여성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가정형편, 빚 등)로 인해 성매매에 유입되고 있다. (물론 자신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성매매를 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성매매에 한 번 유입된 여성은 탈성매매를 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녀들을 옭아매고 있는 선불금은 월수 몇백으로 갚아지기는커녕, 말도 안되는 명목들(지각비 시간당 1만원, 결근비 20만원 이상, 몇백만원이 넘는 화장품과 옷값)의 강요를 통해 더욱 더 강하게그녀들의 발목을 잡아두는 족쇄가 된다. 설사 힘들게 탈성매매에 성공한 여성들이라 할 지라도 그녀들이 쉽게 그 족쇄를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났던 한 탈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업주들은 사회에서의 성매매여성에 대한 인식을 무기로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물론 실제 거대한 조직력과 폭력성으로 그녀들을 끊임없이 위협한다고 한다. 이러한 협박과 위협들은 탈성매매 이후 생계유지방도를 찾기 어려운 여성들을 다시 ‘자발적으로’ 재유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성산업과 결탁한 자본과 경찰은 그녀들의 탈성매매를 돕기는 커녕, 오히려 도망쳐나온 성매매여성들을 다시 업주의 손을 잡고 돌아가게 하는 행태까지도 서슴치 않고 있다. 얼마 전, 성매매피해여성들이 성매매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소송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노동자민중과 자본의 화해자, 중재자가 아니라 오로지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집행기구일 뿐이다. 국가와 공권력은 성매매피해여성이 아니라 성산업 자본의 손을 들어줄 뿐이다.
그렇다면 성매매의 진정한 해결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성매매특별법보다 진일보한 법을 만드는 것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매매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하는 이 사회, 비정규직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밀어내어 자신의 ‘성’까지도 팔도록 강요하는 이 사회, 국가란 탈을 쓴 총자본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지 몸집을 불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사회, 바로 자본주의 사회를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대안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자본가 세상을 뒤엎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함께 싸워나가야만 한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그리고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서 말이다.
성매매는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성을 자발적으로 팔고 싶어하는 소수의 여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남성들의 유전자 속에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성매매를 조장하고 여성억압을 유지시키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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