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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는 사나이-역설적 반항아의 삶과 죽음

 

                                                                                  田川建三

                                                                                 김명식 옮김



제 1장 역설적 반항아의 삶과 죽음


역사의 선구자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선구자가 아니다. 역사의 선구자다.

역사 가운데는 항상 몇 사람의 선구자가 존재한다. 예수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마 가장 철저한 선구자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선구자는 그 시대의, 또한 그 다음 시대의 역사에 의해 말살되어져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구자는 그 시대를 거부한다.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각적으로, 직감적으로 앞서서 파악한다는 것은 당연히 역사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현상에 대한 준엄한 거부정신이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또는 그에 이어지는 역사는 역사의 선구자를 우선 말살하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역사위에서 말살된 선구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단지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를 뿐이지 그 숫자는 상당수에 이를 것이다. 말살되었으니까 역사의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역사의 기록에 살아남은 자가 위대한 것은 아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역사의 본질을 짊어졌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용케 말살되어지지 않고 추억으로나마 남아있는 자들도 있다. 선구자로서의 그의 성격이 아주 강렬했다거나 우연이 그자의 기억을 후세에 남기게끔 작용한 경우에 그렇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역사가 선구자의 추억을 완전히 말살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거꾸로 역사가 그 선구자를 자기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교조(敎祖)로 삼았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경우이다. 예수는 살해된 사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 명쾌하게 살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역의 정신을 시대의 지배자는 죽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역사는 예수를 말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섭해서 진수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단 성공했다. 체제에 대한 반역자가 암살되거나 억압에 의한 빈곤 속에서 죽어간 뒤에, 체제는 그 인물을 위인이라고 칭송함으로써 자신의 질서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 마르크스가 사회과학 교과서에 실렸을 때 이미 그 마르크스는 본래의 마르크스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예수도 죽은 뒤에 교조가 된 것이다. 「말살」과 「포섭」은 본래 같은 뜻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말살을 계속하는 포섭일 뿐이지 결코 선구자 예수의 선구성을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수는 여전히 성취되지 않고, 선구자로서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


예수의 출생


예수라는 사나이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나자렛사람 예수」라고 모두가 불렀으니까 갈릴리지방의 마을 나자렛 출신인 것만은 분명한듯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예수가 나자렛에서 나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날 예수가 결심을 하고 나자렛마을을 나와 그와 같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떻게해서 나왔는지, 그것을 확연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수라는 사나이는 그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식이리라. 아니 그것보다도 예수 자신으로 봐도,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해나가는 가운데, 그와 같은 활동을 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당신은 어떤 동기로 이와 같은 활동을 하실 결심을 한 겁니까하고 묻는다고 해도 예수는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가 한 그만한 활동이 한 두 가지 결심이나 동기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사나이의 삶의 귀결이며, 출발이며,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에 관해서 얘기를 할 때는 어느 부분에서부터건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같은 것이지만, 어느 한 대목을 얘기한다고 할 때 그 대목을 얘기하면서 예수의 삶 전체를 말해가는 방법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해 둔다면, 이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예수의 탄생에 관해 복음서에서 전해지는 얘기들은 어느 것이나 그가 죽은 뒤 반세기 가까이 지나고 나서 만들어진 전설이다. 즉, 예수를 그리스도교로 포섭해 들인 후대의 교회, 그것도 신약성서 중에서도 비교적 뒤의 시대에 속하는 교회의 소산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 나름대로 흥미롭다. 예수가 탄생했을 때에, 동방에서 3인의 박사가 와서 예배했다고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은 권력숭배의 냄새가 풍긴다. 갈릴리의 시골뜨기를 왕자(王者)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꾸며낸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흔히 서양의 명화 등에 마구간에서 짚이 널려 있는 가운데 마리아에 안겨 있는 예수를 3인의 박사가 예배하고 있는 그림이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예수의 탄생을 왕자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꾸며낸 마태오복음서의 정신으로서는 마구간에서 난 성자(聖者)라는 발상은 나올 수 없다. 마구간에서 났다는 얘기는 마태오복음서와는 전연 다른 계보에 속한다. 이것은 루가복음서에서만 나온다. 서양 명화는 말하자면 각각 다른 두 사람의 작가가 창조한 두 개의 이질(異質)의 상(像)을 하나로 아울러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 루가복음서가 그리는 예수상은 확실히 시적으로 아름답다. 밤에,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면서 노숙을 하고 있는 곳에, 천사가 나타나서 구주의 탄생을 알린다. 이때,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대합창을 우주에 울리게 한다.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세상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을 해방 시켜줄 구제자가 이 밤 어딘가에서 탄생해주었으면 하고 희구한다. 그는 어른이어서는 안 된다. 갓난아기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해방은 미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꿈은 미래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때에 하늘의 군대의 대합창이 울려 퍼진다면, 그것도 잠에 취해 있는 세상의 지겨운 자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만 살짝 들리는 대합창이라면, 우리는 그 꿈의 계시에 행복을 느끼고, 평생토록 고개 한 번 변변히 쳐들어보지 못한 밑바닥의 생활에서라도 꾸준히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힘이 다해 죽을 때까지.-예수 탄생의 이야기는 그와 같은 희구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러나 예수는 「구주(救主)」는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어른 예수가 온갖 풍파 속에서 갖은 고난을 다 겪으면서 반역의 목소리를 외치고 지나가고, 그 사실이 폭력에 의해 단절된 지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영원히 미래인 아기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이다. 꿈은 시적(詩的)으로 얘기되어져야지 반역(反逆)으로 장식되어져서는 안 된다.-마구간 이야기도 루가복음서가 전하는 창작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과 겸허를 로마제국 지배하의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상징인 것이다. 그러니까 왕궁에서 나기보다는 마구간에서 태야나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평화의 왕 그리스도는 누구에게나 봉사하는 하인입니다. 그리스도교도 제군은 얌전하게 법과 질서에 순종합시다…….” 이러한 설교만큼 권력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예수는 반역자였던 것이다. 반역자 예수가 국가권력에 의해서 학살된 지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순종의 아기예수가 마구간에서 탄생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났다고 하는 것도, 예루살렘 근교의 베들레헴에서 났다는 것도, 같은 시기의 전설이다. 서기 50년대에, 즉, 예수의 사후 20년쯤 지나서 기록을 하고 있는 마르코나 바울로는 아직 이런 이야기를 몰랐다. 두 가지 다 서기 80년 무렵에 만들어진 전설인 것이다. 신성(神聖)의 이념이 처녀에 결부되는 이것은 사회사상의 문제일 것이다. 예수는 보통의 양친에게서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의 아들에 불과하다. 베들레헴에서 탄생되었다는 전승(傳承)도 역시 왕자의 이념이 낳은 산물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 다윗은 천년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왕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육체가 죽어 없어진지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되었다. 이처럼 예수탄생 이야기는 그리스도교가 그를 포섭하고 난 다음에 만들어진 전설일 뿐이다.

사실 나자렛 출신이라고 하니까 갈릴리의 나자렛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대체로 예수라는 이름은 흔해빠진 이름 중의 하나로 기원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歷史家)요세푸스의 저서중에는 20여명의 각각 다른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히브리어(語) 의 여호수와가 와음(訛音)되어 예수가 된 것인데, 아무데서나 흔히 있는 이름이기 때문에 출신지를 붙여서 구별하고 있었다. 나자렛의 예수라는 사나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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