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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복음서 개개의 전승에서 그려진 장면은 전승자나 편집자의 주관이 그려낸 상(像)일뿐더러 대개의 경우(후술하는 바와 같이 마르코의 경우는 별도지만) 그들의 호교론적 의도에서 만들어 낸 상이니까, 그대로 신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발언이 역사적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행해졌을 리는 없는 일이니까, 개개의 장면이 정확하게 전해졌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삼는다면, 그러한 예수의 발언들이 역사적 상황속에서 이야기되었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다. 어떠한 장면에서 이야기 되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장면이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이야기된 것이라고 간주해 버린다면, 그것은 더욱 큰 잘못이 된다. 자그마한 장면들 즉 개개의 말이 누구를 상대로, 어느 도시에서, 또는 마을에서, 어떤 억양을 머금고 이야기한 것인가 등등은 대개의 경우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단 상당히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둘까-. 그러나 좀 큰 장면, 즉 전체의 역사적인 상황에 관해서는 우리가 또렷하게 알고 있다. 이른바 역사적 대상황은 물론이요, 좀 더 작은 상황도-예를 들면 앞서 거론한 「기도」에 관한 예수의 발언에 대해서 말한다면, 「기도」가 당시의 유대교사회에서 어떻게 올려지고, 어떠한 사회적 위치를 지니고 있었는가-하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다.

교회적인 설교속에서 이른바 주기도문이라는 데 대한 해설의 방식에 귀가 익은 사람이라면, 앞서 전개한 나의 설명에는 놀랄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컨대 카디쉬의 기도가, 아니 카디쉬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몇 배 몇 십배 복잡기괴한 기도의 체계가 시민들의 생활을 짓누르고 있었던 1세기 당시 팔레스티나의 종교적 상황등은 거의 모르거나 무시해 버리고, 「주기도문」을 보편타당한 기도의 모범으로 해설해 버린다. 그러나 1972년 5월 현재 오끼나와 해방, 복귀반대를 외치면 누구도 이것이 역사적 조건을 모두 빼버린 오끼나와와 일본의 관계에 관한 발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일본 자민당 정부의 「오끼나와 반환」과 현재 오끼나와 지사인 야라(屋良)정권을 중심으로한 「오끼나와 복귀」의 흐름에 대한 자각적인 비판과 반격인 것으로 인식된다-1세기경 팔레스티나의 유대인이 그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예수는 카디쉬를 의식적으로 바꾸어 말하며 전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문에 예수는 항상 경건하고 완고한 유대교도의 분격을 산 것이지, 보편타당한 기도의 모범만을 말한 정도라면 살해되기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의 말이 나오게 된 개개의 장면을 엄밀하게 환원해서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그 말이 나오게 된 전체적인 상황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알 수가 있다면 개개의 장면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꼬는 것이었는가, 분노를 폭발시킨 것인가, 분노를 참고한 것인가 등등을, 상상한 정도까지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을 향해서 튀어 나왔을 때는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행동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의 말을 행동의 한 단면으로서 포착하는 사람은 한 걸음 나아가 예수의 활동 전체도 그 역사적 상황에 대결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가 왜 살해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권력에 의해 체포되어 살해된 반역자였던 것이다. 권력자들 측에서 말한다면 아무래도 붙잡아서 죽여버리지 않으면 안 될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 삶과 활동은 부드럽게 설교하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 관한 개개의 전승을 역사의 장에 되돌리면서 파악해 가야한다. 고기를 물에 되돌리는 것과 같이, 그것은 역사적 상상력의 문제이다. 그리고 명백하게 말해두지만, 역사적 상상력은 결코 역사가가 멋대로 주관을 도입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역시 주관,객관이란 축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과제, 곧 역사적 진실에 어떻게 육박 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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