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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챞터는 길어서 두개로 나누어 올립니다.

   

예수의 서술 방법


나는 여기에서 「주기도문」의 전승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예수가 「기도」라는 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가를 해설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러한 곳에 예수의 발상의 하나의 특색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하고 소개했을 따름이다. 예수의 사상과 삶의 모습을 파악하려면 이와 같이 그가 살고 있는 장(場)에 뒤얽혀 있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서 그를 파악하는 이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역사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귀착된다. 예를 들면 추상적인 말이라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의 말을 포착하려고 하면 역사란 무엇이냐고 하는 물음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예수의 그와 같은 활동을 그리려고 할 때 이 물음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물음을 빼놓은 상태로 그린다면 존재의 극히 표층부분의 나열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표층을 나열하는데 만족할 수 있는 자는, 실제에 있어서 역사적 소재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에서 스며나온 의식을 무자각적으로 과거에 투영했을 뿐인 것이다. 예수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의 체제내적 의식을 나열할 뿐이며, 자기 자신의 의식은 어떤가 하면, 당초 역사를 묻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의식과 자기의 현재를 역사의 한 단계로서 파악할 수 있는 안목도 없다.

여기에 여태까지의 예수 연구의 애로가 있었다. 근대적인 문헌문학으로서는 성서학, 특히 복음서연구는 뛰어나게 정밀화 되어 있다. 사본도 많이 있고, 또 예수를 알기 위한 소재로서 세 가지의 복음서(마르코, 마태오, 루가)가 존재하니까, 비교연구도 여러 가지로 가능하다. (요한복음서는 간접적으로는 고려될 수 있겠지만 예수를 알기 위한 직접적인 자료로서는 곤란하다. 복음서라는 형식을 빌려서 저자가 자신의 상당히 특수한 종교사상을 전개한 책이기 때문이다.)거기에다 또 그것밖에 안 되는 좁은 영역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많은 신약학자가 모여 일문일구마다 여러 개의 연구논문이 있을 정도로 파헤쳤으니까 정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근대성서학이 성취해온 복음서 전승의 비판은 현재에 있어서는 대단히 정밀도가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에 한해서는 상당히 신용할 만하다.

대강 요약한다면 예수의 사후, 아니 생전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진 이야기는 구전전승으로서, 혹은 소문으로서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부분적으로 크게 개찬된 곳도 있고 전설적으로 창작된 부분도 많다. 그것이 예수의 사후 20년쯤 되어서 두 가지의 문서로 정리되었다. 하나는 마르코복음서인데,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저작이다. 또 하나는 현재는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마태오와 루가가 공통으로 이용한 자료인데, 논어(論語)와 같은 형식으로 예수의 말만을 나열해 간 어록(통상 Q자료라고 부르고 있다. Q는 독일어의 「자료」라는 단어의 첫 글자)으로,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한 작품이 아니며 당초 하나의 완결된 문서라기보다는 차차 정비되어간 것인데, 문서가 되고 나서도 잇따라 예수의 「말씀」(로기아)이 첨가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것은 원시 그리스도교단의 교단체제가 만들어낸 문자 그대로 자료집이다.

마르코와 Q가 나온 후 다시 3,40년 뒤, 즉 1세기 말경에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복음서를 썼다. 둘 다 마르코와 Q를 자료로 입수하여 이 두 가지를 종합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 두 가지 자료 이외에도 상당한 양의 전승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싶었던 것이 복음서를 쓰게 된 동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그 때까지 유일하게 정리된 예수에 관한 기록인 마르코복음서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주류에 대하여 명백하게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 놓고 있으므로, 그러한 복음서만으로는 정통적 교회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점이 많으니까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나름대로 좀 더 정통적인 권위를 가진 복음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데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중 루가쪽은 한 사람의 저자의 저술활동으로 된 것인데 바울로의 에피고넨(추종자, 아마 바울로 만년의 제자인 의사 루가)이 그 평범한 종교 의식(意識)의 관점에서 자료를 정리하여 이루어 놓은 작품이고, 마태오쪽은 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기보다는 저자 마태오(예수의 제자라고 되어 있는 마태오와는 다른 사람)가 속해있던 그리스어를 말할 수 있는 유대인의 교회(아마 시리아지방인 듯) 지식인 그리스도교도가 일종의 학파적 작업으로서 자기를 교회의 정전(正典)적인 복음서를 만들려고 한 노력을 최후의 한 사람이 정리 편찬한 것이다.

복음서라는 것이 이상과 같은 것이니, 그것을 자료로 하여 예수를 묘사하려고 할 경우에는 하기 싫어도 전승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생긴다. 우선 복음서의 최후의 저자 단계에서의 윤색(潤色)을 제거하고, 다음으로 오랜 구전전승의 단계에서 이루어진 많은 윤색을 제거한다. 이런 식으로 소급에 소급을 거듭해서 걸러내고 신빙성이 있는 전승을 남겨두는 것이다. 이 작업은 방금 기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에는 비교적 확실하게 해낼 수 있다. 객관적으로 꽤 확실하게 예수의 발언을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별방법에만 의존하고 있으면 객관성에 대한 맹신에 빠져 크게 실패한다. 대체로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란 하나의 한정된 방법론상의 문제인데, 객관적 정확성이라는 기준에만 의존하여 대상을 그리려고 하면 객관적이기는 커녕 극도로 왜소한 대상을 포착하는 것에 그치고 말게 된다. 여기서는 방법론의 문제를 상세하게 논하고 있을 여유는 없으나, 현대 신학자가 그리는 예수가 어느 것이나 극도로 추상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선별연구방법이 지닌 최대 결점의 하나는 결국 예수가 발언 한 자구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복음서의 전승 가운데는 상당히 정확한 것도 있으니까 일자일구(一字一句) 예수는 이와 같이 말했다라고 추정할 수는 있는 것도 있으며, 혹은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상당정도 확실성을 가지고 추정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위에서 말한 「아버지의 이름을……」이라는 기도의 대사는 그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발언이 어떠한 장면에서 행해졌는가, 또는 발언의 기록이 아닌 경우에는 예수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라는 문제에 이르게 되면 전승자나 편집자가 자기의 주관을 불어 놓아서 그린 상(像)이지 객관적인 예수상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확실히 그렇지만 「객관적」인 정확성에만 의존하게 되면, 말을 한 장면, 역사적 상황이 배제된 「예수의 말」만이 확실한 소재로서 남게 된다. 그 결과, 예수의 발언은 그 일체가 역사적 상황을 뺀 추상적인 가르침으로 환원되고 만다.

그렇다면 거기에서는 역사적 장면에서 추상화된 대사의 나열을 어떻게 하여 이론적으로 정리․통합하느냐, 거기에다 다시 추상에 추상을 거듭하여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을 어떻게 뽑아내느냐하는 작업이 된다. 이 경우 출발점의 소재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확실한 소재라고 할지라도 이미 추상화된 소재이다. 따라서 그것을 정리, 종합하는 이론은 신학자들 각자의 관념론적 전제에 불과하다. 가장 객관적인 예수상이라고 하는 것이 기만이 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현재 학자가 그리는 「예수」는 비교적 훌륭한 학자의 경우라도 어느 것이나 예수의 삶과 활동을 그리거나 예수의 사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역사적 인물의 사상을 그린다는 것은 곧 그 사상을 상황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 되니까), 예수의 「가르침」의 해설에, 특히 추상적이고 신학론적인 해설에 그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예-불트만, 야기 세이이찌(八木減一)》. 처음부터 예수를 영원불변의 진리의 권화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까, 그가 살고 간 역사적 상황속에서 예수를 파악한다는 의식은 털끝만치도 없다. 이른바 객관성으로는 역사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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