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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5/27
    우리 선배는
    씨앗(산길)
  2. 2010/05/26
    텃밭 가꾸기
    씨앗(산길)
  3. 2010/05/26
    작은 혁명밖엔...
    씨앗(산길)
  4. 2010/05/26
    부처,보살,
    씨앗(산길)
  5. 2010/05/26
    시와 님
    씨앗(산길)
  6. 2010/05/25
    기다리며 생각하는 시간
    씨앗(산길)
  7. 2010/05/23
    전도연
    씨앗(산길)
  8. 2010/05/23
    권정생의 유언장
    씨앗(산길)
  9. 2010/05/22
    콩알(1)
    씨앗(산길)
  10. 2010/05/22
    벌써 13년째
    씨앗(산길)

우리 선배는

나보고 후배들 위해서 네가 버는 돈을 잘 쓰는 게 네가 할 수 있는 보시다

라고 했는데

난 지금 월급이 갈수록 줄어든다.

뭐 더 줄어도 괜찮을수도 있다. 적금을 안 든다면...

반강압적으로 들어간 내 월급의 반토막 적금이 내 인생 현재를 즐길 수 없게 하니...

어떻게 싸워서 빼앗을 것인지...^^

 

핸드폰으로 인터넷 접속하는 습관을 고쳤다.

한동안 발신금지로 해 놔서 안 썼더니 이젠 손이 안 간다

 

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허전함을 풀어낼 다른 방법들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핸드폰을 없애려다가 그냥 두고 최대한으로 요금을 절약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게 더 큰 의지력을 필요로 할테니..

그리고 덜 이기적일테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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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

심은 만큼 보여주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만큼의 결실을 보여주지 않는

정직한 노동

 

컴퓨터 앞에 있는 일에 지치고 환멸이 날 때마다 사무실 앞 텃밭으로 나가 흙을 만진다

 

상추와 열무 아욱 모종을 집에서 가져다 심었는데 잘 날런지...

역시 제자리에 있는 놈들 뽑아다심어놓으니 비실비실...

 봉선화와 쑥갓 씨앗을 땅에 뿌리고

콩과 한련화는 모종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강낭콩과 팥은 불려서 농장 가지고 가서 심을 것이다.

 

으하하...

2006년부터 시작된 나의 텃밭 놀이는

갈수록 진화한다.

비록, 항상 성과는 처참하리만큼 별것없어서 사람들이 무시하고, 놀려지만(무시한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인진 모르겠으나 내 보기에, 나의 아주 작은 노력도 그들에겐 실패로밖에 기억되지 않았더군)

 

잘 가꾸지 못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

 

어제는 집에 가서 마당의 잡풀들을 정리했다.

그래도 냉이랑 갓 민들레는 남겨두었다

호박과 수세미도 심었다.

 

상추와 호박과 수세미와 열무와 쑥갓과 아욱과 작두콩과

- 작두콩 씨앗은 민승주 님 후원, 상추씨는 뒷집 할머니 살포

 

알아서 어디선가 자라던 신선초와 작약,배나무,봉선화

원래 있던 냉이와 갓과 민들레

풍성하다...

가장 놀라운 건 작약이다. 어느새 꽃을 피웠더군

그러게 다들 고생하고 있다. 살아내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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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혁명밖엔...

그동안 이뤄놓은 남북관계가 거의 무로 돌아가고 있는 시점

개성공단도 폐쇄한다고 하니 할 말 없음 ㅠ.ㅠ.

높은 새끼들의 머리 속은 어떤 계략을 꾸미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을 것 같아

 

그저 내가 사는 곳에서 일상의 작은 혁명과 도발을 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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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보살,

지금 내 옆에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부처이고 보살이다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걸을 수 있게 해주고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주고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 해주는 사람들.

 

부모님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

쌀농사를 지은 사람

상추 씨앗을 주신 뒷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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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님

NEWS > 인터뷰 2010.03.31

인디10│① 시와 “좀 전형적이면 어떤가”

 


여신과 악동의 세계로 왜곡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홍대 앞’은 뮤지션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관악구의 붕가붕가 레코드가 장기하라는 스타를 배출하고, 인천의 루비살롱이 단기간에 유망주들을 쏟아내면서 지역 편중화가 해소되는 듯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디 뮤지션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은 역시 ‘홍대 앞’이다. 2010년, 봄. 홍대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뮤지션들을 <10 아시아>가 소개한다. 그 첫 번째 순서는 이달 초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한 시와. 기타를 들고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데려다 놓아도 어울릴 만큼 트렌드와 먼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녀를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받을 수 있는 뮤지션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직접 만난 시와는 음악보다 유쾌한 성격과 음악만큼이나 아름다운 대답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앨범 제작 전반을 직접 책임졌다고 들었다. 예약 판매로 자금을 보충했고, 배송도 직접 한다고 하던데.
시와
: 이전에 발표했던 EP 역시 사비로 제작한 것이었고, 다른 직업이 있어서 다행히 그때의 수익을 저축할 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레이블에서 먼저 제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배송은 순전히 배송비를 아끼려고 홍대 인근의 몇 분께 직접 전달해 드린 건데 알아보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홈페이지에 ‘2NE1이 배송 이벤트 하는 것보다 반가웠다’는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웃음)

“이번 앨범에는 프로듀서 오지은의 긍정적인 힘이 많이 작용”



음악만 하기에도 생각할 일들이 많을 텐데 살림살이 전반을 이끌어 나가려면 힘든 일이 많을 것 같다.
시와
: 사정을 터놓고 알렸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에서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도움도 주신다. 그래서 정작 힘든 것은 내 마음이다. 최근에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출연했는데, 노래 첫 대목에서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방송이라 다시 할 수도 없고 간신히 노래를 마쳤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오히려 첫 부분을 더 잘 불렀더라.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하는데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이 되어서 나에게 장애물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시와
: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좀 더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섣불리 도전을 못했다. 그런데 클럽 빵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 음악 치료를 배우고 있었던 터라 기타 연주와 작곡하는 법을 간단하게나마 익혔을 때였다. 남의 기타를 빌려서 자작곡을 불렀는데 내 목소리가 마이크로 들어가고 앰프를 통해 나오는 그 경험이 너무나 강렬하게 좋더라. 그 기분만으로도 만족했을 텐데 오디션을 두 번 더 보고 공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2월의 일이다.

다소 즉흥적으로 시작된 음악 활동인데, 첫 공연을 할 때 창작곡은 얼마나 있었나?
시와
: 6곡을 불렀는데 그중에 5곡이 자작곡이었다. 그중에 살아남은 곡이 EP에 실렸던 ‘길상사에서’고.

아니, 그렇게 의미 있는 곡인데 왜 정규 앨범에는 실리지 않았나? ‘길상사에서’로 시와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시와
: 앨범에서는 새로운 곡을 더 들려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때 녹음했던 모습 자체로 마음에 드는 곡이라서 다시 작업하지 않았다. 대신 EP에 있던 ‘랄랄라’는 정규 앨범에 다시 실었다. 당시에 녹음하면서 보너스 트랙처럼 만들었던 곡이라 성기게 작업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정성 들여서 다시 녹음했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내 노래 중에서 ‘랄랄라’만큼 대중적인 곡이 없다고 워낙 추천을 해서. (웃음)

바로 그 프로듀서가 뮤지션 오지은이다. 얼핏 성향이 굉장히 다를 것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인데, 그래서인지 앨범의 분위기도 예상과 다른 지점들이 있다.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의 정서가 많은 부분 확신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와
: 아무래도 프로듀서의 긍정적인 힘이 많이 작용했다. 예전에는 짧은 호흡의 EP나 컴필레이션 앨범 안에서 한 곡을 녹음하는 것이라서 듣는 사람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마음속의 느낌에 집중해서 부르는 편이었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만들 때는 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은이 조언한 부분이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를 전체적으로 가져가기보다는 효과적으로 배치하자는 건데, 나는 프로듀서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내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고민을 많이 해 주었고, 늘 강요하기보다는 선택지를 주는 방식이었으니까.

“나는 노래를 어떻게 들어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이전의 애절한 창법을 좋아하던 팬들의 반응은 달랐을 것 같다.
시와
: 밋밋해졌다는 평가도 있었고,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팬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여러 리뷰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니 판단이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리뷰들이 하나같이 ‘전형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로 요약되는 것은 읽는 입장에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웃음)
시와
: 내가 직접 쓴 보도 자료에 ‘전형적인’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웃음) 프로듀서인 지은과 앨범을 준비할 때 우리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많은 리뷰들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에 대해서 기존의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를 꼭 짚어내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점이 없이 기타 하나 들고,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나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기가 죽는 거다. 그런 고민에 대해서 지은이 ‘그게 뭐 어때’라고 이야기하면서 조니 미첼의 < Both Sides Now >를 들려주더라. 형식이 전형적인 건 문제가 아니라고. 물론 의도한 만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방식의 노력으로 출발한 음반이다.

그렇다면 자주 듣는 음악도 주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반들인가?
시와
: 오히려 자주 듣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좋은 음악이 많지만 계속 듣기에는 소리가 꽉 차 있는 게 많아서 다른 일을 하면서 듣기가 벅차더라. 그래서 라디오를 켜 놓더라도 클래식 채널로 돌리게 된다. 요즘은 아르보페르트의 <알리나>를 주로 듣는데, 온음표로 이어지는 음악이다.

앨범 제목인 ‘소요’는 천천히 목적 없이 걷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를 고른 이유는 방향성 때문인가, 속도감 때문인가.
시와
: 물론 천천히 가는 걸음에 어울리는 음악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노래를 어떻게 들어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듣는 사람이 어떤 감정이나 어떤 추억을 갖고 감상하게 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마음껏 즐겨달라는 의미로 제목을 붙였다. 처음에는 앨범의 제목이 없었는데, 마포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소요’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태풍태양>에서 천정명이 연기했던 인물의 이름이 ‘소요’였다. 느린 산책.
시와
: 아! 좋아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더욱 좋다. 천정명 씨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웃음)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건, 분명 삶에 도움이 되는 일”


앨범의 느낌을 걸음걸이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고, 곡을 만들 때 장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장면을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을 하나?
시와
: 노영심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길상사가 3곡이나 선물해 줬고, 독일 여행을 갔을 때도 2곡을 만들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특수교육을 전공하면서 음악치료를 공부했는데, 그때 선생님께 음악치료를 받기도 했었다.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거니까. 당시에 주어진 과제가 생각을 끊어내고 느끼기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색깔, 크기 같은 판단의 단어, 이성의 단어들을 버리고 그냥 바라보는 일을 해야 하는 거더라. 길상사에 갔을 때도 그 과정을 연습했다. 돌계단에서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무를 느끼려고 애를 쓰다 보니 바람이 불고, 풍경 소리가 들리고, 가지가 흔들리는데, 그 순간 확 알겠더라. 그리고 악기도 없었지만 수첩에 떠오르는 가사와 음표를 미솔솔 미파미레도시 써서 노래를 완성했다.

이름인 ‘시와’도 단골이었던 바의 이름이라고 들었다.
시와
: 그렇다. 그 바의 주인이 이집트의 시와 사막에 다녀와서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이집트 가고 싶을 뿐이고! (웃음) EBS <세계테마여행>을 즐겨보는데 다른 뮤지션이 시와 사막에 간 적이 있더라. 덩치 큰 바오밥 나무에 순록 뿔 같은 가지들이 솟아 있는데 노을이 지는 풍경이 그렇게 이국적이고 예쁠 수가 없더라. 나도 보내주시면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웃음)

공감각적인 분위기가 정점에 달한 곡이 <빵 컴필레이션>에도 실렸던 ‘화양연화’다. 자전거, 해를 노래하지만 분위기가 선명하게 전달된다.
시와
: 앨범을 만들면서 첫날 녹음한 게 ‘화양연화’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결국 마지막 날 다시 녹음을 했다. 한번 발표했던 곡이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다르게 들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장 힘든 곡을 처음에 작업한 건 잘한 일이었다. 그 후로 프로듀서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지.

이전의 ‘화양연화’가 상황에 직면한 느낌이라면, 앨범에 실린 ‘화양연화’는 지난 일을 반추하는 느낌이다.
시와
: 와!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기쁘다. 감사하다.

인터뷰 내내 느끼지만, 왜 이렇게 감사한 일이 많은가. (웃음)
시와
: 나에게 기대치가 낮아서 그렇다. (웃음) 어쩌면 특수교육을 직업으로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면 작은 기쁨이 전부다. 연필을 못 잡던 아이가 연필을 쥐고, 자리에 앉게 되고, 양말에 발을 끼우고, 그런 게 정말 기쁘고 칭찬할 일들이다.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너무 먼 일이고. 그런 경험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건, 분명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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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생각하는 시간

네가 너를 들여다보고 있을 그 시간

나도 나를 들여다보고

너를 생각하고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으로도 즐거울 것 같아

너가 말했던 것처럼

 

다행이다^^

이렇게 지렁이처럼 느리게,

결과는 관계없이, 어떤 관계가 되어도 관계없이 지금에 충실하게...

 

상대에 집중하고 나에게 집중하고, 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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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한겨레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0. “아니 대가리가 왜 이렇게 작아.” 몇 년 전 배우 이나영을 우연히 조우하곤 건넨 첫 마디다. 그렇다. 이런 망발이 있나. 허나 곤조도 야지도 아니다. 나, 그런 거 없다. 그거부터 보이는 데 어떡해. 대형유인원의 두개골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소형인데. 그렇다고 두상 협소해 공기저항 작겠군. 이럴 순 없잖아. 담고 있진 못하는 성정이고. 하여 하릴없이 그렇게 뱉어져 버렸다. 건방도, 반감도 아니다. 그저 판타지가 없을 뿐.

 
» 김어준이 만난 여자
 
 

말난 김에 연예인 바라보는 내 감각 일반 좀 털어놓자. 참고하시라고. 예를 들자면, 한예슬. 난 그녀가 웃기다. 가소롭거나 같잖단 게 아니라, 코믹하다. 자기가 너무 예뻐 스스로 못 견뎌 하는 표정들 목도하면 박장대소하고 만다. 다 큰 어른이 자기가 너무 대견해. 그거 참 웃기잖아. 또 예를 들면 비. 한때 그리 기특했던 청년이 제 성공에 겨워 어느 순간 느끼해져 버린 걸 발견하고 나면 주섬주섬 애처롭다. 그 지성의 성장지체가. 뭐 하여간 대충 그렇다. 게다가 난 그들 빨아주는 거, 못한다. 기스 방지용 뺑끼칠 해주고 그 대가로 면접권 확보하는 상부상조, 그거 못 한다고. 구강흡인력, 것다 못 쓰겠다고. 남세스러워서. 하여 이 짓 얼마나 할 수 있을 지 초장부터 우려된다. 하지만 사기 칠 순 없잖아.

 

난 또 영화라는 상품에 우리 사회가 무슨 공공의 부채 따위 지고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다른 장르보다 더 각별한 예우가 마땅하단 생각도 않는 종자다. 영화 싫다는 게 아니다. 영화 참 좋다. 다만 영화라고 유독 위대할 건 없다 여길 뿐. 실은 영화 안목도 별반 없다. 임권택이 왜 거장인지도 모르고 박쥐가 왜 상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리 길게 주절거리는 건 뭐 대단한 자랑이라서가 아니라 향후 진행할 인터뷰들이 필연적으로 가질 한계부터 자백해두려는 게다. 그래서 용서해달란 게 아니라 이 정도밖에 안 되니 볼 테면 보고 말라면 말란 강짜 되겠다. 자 그럼 그 첫 번째, <하녀>의 전도연.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1. 그녀를 만난 건 어느 오후의 삼청동 모 카페.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채 안 된다. 그나마 전후로 사진 박느라 부산떨고 나니 내 기준으론 대면이 거의 찰나다. 시간은 또 어찌 그리 야박하게 관리하는지. 사람 만나러 갔는데, 배우 하나가 스케쥴 콘베어벨트 타고 스르륵 통과한다. 씨바 이게 뭐 인터뷰야. 그냥 구경이지. 이따구 공장체제로 찍어내니 매체 인터뷰가 죄 뻔할 밖에. 어차피 서로 장사면서. 상도의가 없어, 조또. 그녀 책임은 아니다만 하여튼 이 시스템, 지랄 같다. 하여 당 인터뷰 목표는 애당초 단출했다. 한 가지만 묻고 오자, 한 가지만. 전도연은 어쩌다 배우가 되어, 어떻게 탑이 된 건가. 그러고 보니 아따 길게도 투덜댔다. 이제 진짜 가 보자.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2. 전도연, 코 앞서 보니 눈주름, 적당히 자글거린다. 미안타. 눈부시다 못 해줘서. 하지만 눈 안 부신 데 어떡해. 다만 묘하게 마음 놓게 만든다. 사람 같아서. 어쨌거나 대뜸 임상수, 싸가지 없지 않냐 부터 물었다. 감독이 어떤 이인지 이해해야 그 디렉션도 온전히 이해할 테니. 그렇게 임상수 받아들인 방식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실은 그게 내가 임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라서. 한국적 가부장 규범과 위계, 한국적 영화 문법과 관습이 요구하는, 그 없어도 좋을 싸가지가, 그의 영화엔 없다. 윤리나 도덕 생략하고 타고난 제 동물적 템포로 그냥 혼자 가 버리는 그거. 이율배반 같겠으나 동일 맥락에서 난 이창동이 좋다. 왜. 그는 없어도 되는 싸가지까지 있어서. 우하하.)

 

아니란다. 자기도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여리고 섬세하고 따뜻” 하단다.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쿨한 척” 하는 거란다. 오히려 “소심해서 잘 삐진” 단다. 그저 “소통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관계 맺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러는 거란다. 자기도 처음엔 걱정했단다. 머리 좋은 감독이 “뱀처럼 교묘하게 배우를 이용할까봐”.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 더란다. 그래서 좋았단다. 호. 감독더러 잘 삐진다니. 쿨한 척 하는 거라니. 그 판단의 옳고 그름 떠나 제 의견 피력에 유불리 따지지 않는다. 논평 이전에 리턴 피해와 챙길 잇속 계산이 먼저기 십상인데. 이거 맘에 든다. 잔머리가 없잖아. 특히 몸으로 부딪는 게 좋다는 대목,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일단, 드러낸다. 논리가 아니라 몸과 직관으로 세상 상대하는 이들의 기호. 확인 차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감독도 말로 설명치 못할 때는. “부딪혀 보면 알아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감독과 그의 디렉션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읽는다는 거, 이거 몸으로 세상 체득하는 자의 독법.

 

그럼 전작 감독 이창동과 차이는 뭐냐 물었다. 이렇게 푼다. “인간을 보는 것과 인간을 통해 사회를 보는 것”. 전자는 이창동, 후자는 임상수. 동의, 안 된다. 물론 내 동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정치하지 않아도 제 언어만 있음 족하다. 그러나 이건 전도연의 언어 같지 않다. 차용의 냄새 난다. 졸라 다그치려다 말았다. 그 정도 폼도 못 봐주면 담 인터뷰는 아예 안 잡힐 것 같아서. 아, 타협하는 나. 대신 그렇게 이해해둔 감독과 그의 지시가, 도저히 이해 안 갈 때는 어찌 하냐고 물었다.

 

“저는 감독님에게 100퍼센트 의존적인 배우거든요. 끊임없이 감독님에게 확인을 하죠. 저의 불안이나 저의 의심을. 어느 순간 감독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그제야 인물이 받아들여져요. 그 인물을 100퍼센트 알고 연기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그 애를 좀 알 거 같아지면 영화가 끝나는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그 인물과 가장 유사한 저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거죠. 영화를 끝날 때 마다 제 안에서 뭐 하나씩 찾는 거 같아요.”

 

그렇군.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걸 퍼다 쓰는군. 그렇지만 그렇게 묻고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는.

 

“전 이해를 못하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못 해요. 전 항상 감독님이 저를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저는 다 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해요.”

 

오, 감독이 자신을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 태도. 브라보. 이거, 배우 전도연 최고의 미덕이라는 데 한 표다. 그렇지. 배우란 그런 거지. 영화의 서사와 인물 위해 제 한 몸 고스란히 빌려주는 이들. 그게 재능 아니라 무슨 벼슬인 줄 아는 배우들 하도 부지기수라 이 대목에서 아싸 한 번 외쳐줬다. 그런 그녀에게 “전도연, 벗었다” 란 타이틀로 스타로서의 노고를 칭송해마지 않는 기사들, 얼마나 웃긴가. 스타라서 어쩌라고. 그들 찌찌는 세 갠가. 관람 가게. 아님 스타가 벗어줘 황송하나. 어떻게. 커튼 들고 달려가 줘.

 

이 대목서 궁금했다. 근데 이 여자, 자기가 그렇다는 걸 어찌 알고 배우가 된 거지. 그녀, 이렇게 답한다. “어쩌다 보니깐 됐어요.” 푸헐. 제 성공의 몇 할을 운의 몫으로 돌리느냐 하는 데서 자의식과잉의 정도가 드러나게 마련. 그러더니 이렇게 이어 붙인다.

 

“꼭 되어야겠다는 목표, 이런 거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TV에도 나오고 또래 보다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런 게 그저 좋았어요. 저는 대개 평범한 애여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어요.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뭐 안 되면 결혼하면 되지 하고. 일이 좋아서여서도, 즐거워서도 아니었어요. 그냥 불평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그럼 대체 자기 안에 배우가 있단 걸 언제 스스로 자각 한 건가.

 

“영화를 하면 감독이 신이잖아요.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시대로 따랐어요. 그런데 <해피엔드> 정지우 감독님과 일하면서 내 생각을 말하고 그 사람이 내 생각을 받아주고, 그렇게 서로 동의를 구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찍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사람들은 <해피엔드> 찍을 때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저는 너무 즐거웠어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도 없고 두려움도 없었어요. 그래서 조명하시는 분이 어린 것이 욕심이 많네... 하셨었어요. 왜 보통 베드신 그런 데서 많이 감추려고 그러자나요. 제가 안 그러는 걸 욕심이라고 보셨나 봐요. 근데 전 감독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해 뭔가 만들어 가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처음으로 영화가 재미있어 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오라. 그랬던 거구만. 그녀, 애초 직장인이었던 게다. 취직은 어쩌다 보니 타고난 제 자산 일부가 우연히 해당 직종의 요구조건을 적정 수준 만족시켜 가능했을 뿐. 그렇게 현장에 출근하는 연기 직공이었던 게다. 그러던 어느 날 최초로 공장장과 소통하다 자신이 주문받은 부품만 찍어내는 직능공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까지 가능하단 사실에 신이 난다. 그리하여 연예인 전도연, 배우 전도연으로 각성이 시작된다. 이쯤에서 확인사살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뭐를. 글쎄 보면 안다.

 

무대 위에선 배우지만 끝나면 내려와야 하는 건데, 안 내려오는 이들 많다. 당신은 어떤가.

 

“저는 일을 안 할 때는 난 배우라는 걸 인식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전 평범해요. 평상시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지 하는 것도 없어요. 물론 카메라 앞에서는 예쁘고 싶지만.”

 

그렇군. 그녀는 비어 있군. 이거 칭찬이다. 복이다. 배우가 저를 비워 인물에게 제 한 몸을 빌려주는 데 과잉자의식만큼 후지고 같잖은 방해물도 없으니까. 그럼 어디까지 비어 있는 걸까. 노무현을 물었다. 좋다, 싫다 없단다. 이명박은. 마찬가지란다. 4대강은. 생각해 본 적 없고. 투표는. 아빠 때문에 한두 번 해봤단다. “자고 있는 데 나가서 1번, 1번, 1번, 2번 찍어라 해서.(웃음)”

 

이건 섹시하지 않다. 모든 배우에게 투사되라 요구할 순 없다. 그럴 수도, 필요도 없다. 허나 지들은 시민 아닌가. 소속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거,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이나 품성 탓으로 양해하기만 하고 말기엔 심통난다. 왜. 부러워서. 그런 배우들 가진 나라들이.

 

이제 그런 그녀가 <하녀> 은이를 어찌 받아 들였는지 물을 차례. 어쨌거나 <하녀> 덕에 만났으니 서비스는 해야지. 너무 갑작스러워 가장 난감했던 마지막 장면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물었다.

 

“은이는 뭘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애가 아니에요. 그런 의식이 없어요. 병식이는 자식을 검사로 키우려는 게 있었고, 해라는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인데, 은이는 지켜야 하는 그 무언가가 없는 애에요. 그냥 그게 좋아서 뭔가를 하지. 그런데 처음으로 남이를 통해 예쁘고 친절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불친절한 세상에서 자신에게 친절한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그런 희망이 그렇게 처절하게 짓밟혔을 땐,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해 안 갔는데 영화를 끝낼 즈음에는 저도 그럴 거 같단 생각을 했어요.”

 

이게 전도연이 제 몸에 들인 하녀다. 인간의 하녀본성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건 감독 구라가 감당할 몫이니까. 난 배우 전도연만 궁금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질투 나는 배우 있느냐 물었다. 콤플렉스 좀 엿보려고. 그녀의 대답.

 

“난 내가 좋아요.”

 

우하하하.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한 마디. 이 자기애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무지하게 따져보고 싶었으나, 그 순간 스태프가 날 잘랐다. 그만 나가란다. 우라질. 이 기사 나가면 다음 기회나 있으려나.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3. 전도연 어떤 배우냐는 내 질문에 이창동은 이렇게 한 줄 요약했다. “몸이 악기야.” 무슨 말인지 만나 보니 알겠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세상 읽고, 읽은 그대로 제 속에서 퍼내, 야로 없이 액면가로 부딪히는 거, 그게 그녀 방식이다. 그러니 실은 그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전도연 속에서 전도연을 길어낼 뿐. 그 방식으로 그녀, 정상에 섰다. 하여 배우 전도연에 대한 내 버전 한 줄 요약은 이렇다.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PS - 한겨레, 잘하자. 우리, 진짜 인터뷰 좀 하자고.

 

글 김어준 딴지일보 종신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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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유언장

권정생 선생님처럼 살아가자.

작은 풀처럼, 그렇지만 진실하고, 소박하고, 아름답게.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어 번 왔지만 나는 대접 한번 하지 못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끝이다.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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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

콩알을 불려두었다

오늘 다이소에 갔더니 배양토랑 씨앗이 있길래

배양토가 탐이 나 한 개 사 왔다

그 양으론 텍도 없겠지만 시험삼아서...

콩 싹을 틔워볼 생각이다

 

며칠 전 농장에 가서 싹튼 콩을 보고 너무 행복했었다

내가 틔운 건 아니었지만

땅을 볼 때, 땅에 호미질을 할 때 왜 그리 마음이 좋은지...

이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집 마당에 심은 열무랑 아욱도 싹이 텄다

꽃도 싹이 났고, 상추는 먹을만큼 자랐다

내겐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말처럼

급하지 않게

한 번 틔워볼련다

사실 작두콩 싹을 한 번 틔우긴 했는데

또 콩 싹을 틔워 그것을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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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3년째

내 곁에 있어준 친구

아니, 그 친구는 그 친구의 삶을 잘 살아가고 가끔 만나면 힘이 되는 친구

어느 애인보다도 그 친구가 나는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벌써 10대 때 만나 30대에접어들었고...

그 친구가 내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었고

 

거저 친구를 얻고

이렇게 내게 힘을 주고 있는 그 친구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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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그대를 사랑하고

혹은 그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있기를...

브라보!

사랑이란 말은 아껴두는 말이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님 내가 너의 영역으로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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