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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5/22
    바보
    씨앗(산길)
  2. 2010/05/20
    관계
    씨앗(산길)
  3. 2010/05/14
    합주(4)
    씨앗(산길)
  4. 2010/05/13
    마음은(2)
    씨앗(산길)
  5. 2010/05/12
    사투리
    씨앗(산길)
  6. 2010/05/12
    소설가 서영은의 글..(1)
    씨앗(산길)
  7. 2010/05/12
    연민-가브리엘 로스
    씨앗(산길)
  8. 2010/05/11
    연애는(1)
    씨앗(산길)
  9. 2010/05/05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다, 눈 있으면 보라!"(2)
    씨앗(산길)
  10. 2010/05/05
    예전 일터의 작업- 상량문(2)
    씨앗(산길)

바보

온다고 거기에 흔들리면 그건 나의 문제인거야

나무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만은 아니니까

혼란스럽기만 하네. 

 

다시 그런 관계에 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성숙해지기 전까진...

규정짓지 말자고 했지만 규정지을 수가 없어

 

휘몰아쳐주지 말라구.너의 말처럼 넌 쿨한 거겠지

세상의 벽, 틀이란 걸 네 안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

그게 너의 매력이지

어쩔 땐 한없이 편안하고부드럽고 어쩔 땐 다가가기 어려운 무표정함.

하지만 넌 닫혀 있지 않아서 좋아

 

언제나 내 스스로가 문제의 중심이고 열쇠임을

너는 내가 잊어버릴까봐 항상 지적해주고 있지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내 스스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을 것 같아

글 쎄 잘 될 수 있을지..하지만 노력해볼게 친구로라도.. 내 친구여.

 

처음부터 알게 해 줘서 고마워 나의 한계를

멍청하게 환상만 키워가지 않게 해주고 있어서 고마워

 

처음부터 아는 게 좋아

나를 , 그리고 너를미워하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감정에 매몰되는게 아니라

그러한 혼란을 사랑이라고 믿을 게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해 너를 보고 좋아하게 될 때

그 때 사랑이라고 해야겠지

 

폭풍이 지나간 후의

그 고요함 처럼...지켜볼래

 

부모님께도 이야기드렸어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잘 만나보래

 어떤 사이가 앞으로 될지는 모르지만, 미리 이야기해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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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한겨레  
 
 
»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Q 왜 연애 유통기한은 3년일까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죽을 것같이 좋다가도 3년이 되면 사랑이 식는 걸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3년이 되면 고비를 맞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3년이라는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A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하는 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로다

내가 미치거나 총 맞지 않고서야, 왜 이런 코너를 맡겠다고 홀라당 넘어갔는지 지금도 거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 총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 전자가 확실할 텐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지…. 새삼 온 정신으로 돌아와 걱정만 하고 있는데, 세 살짜리 아들놈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총을 쏘고 도망갔다. 아아, 그래서 걱정은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건 그냥 총 맞은 거였구나, 총 맞은 거였어! 그렇게 두 팔 벌려 환호작약한 다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총 맞고 난 뒤, 쓰는 원고라는 점, 유념해주길 바란다. 거 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하나. 연애의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요, 묻는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 땅의 중등교육의 또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3년이 지나면 왠지 졸업해야 할 거 같고, 그다음엔 다른 애인으로 진학해야 할 거 같고, 학용품도 새로 장만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렇고 그런 모범생들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주위엔 그런 모범생이 제법 많다. 50분 전화하고 10분 침묵하고, 50분 이야기하고 10분 섹스하고, 50분 술 마시고 10분 꺼이꺼이 울고. 연애를 학교 시스템에 맞춰, 똑같이 운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다. 3년에 맞춰 교과서를 다 떼고 나니, 이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도, 궁금한 것도 없구나, 그러면 남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애인을 ‘수학의 정석’화시킨 전형적인 사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일화 하나. 예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네에 노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이 형님은 학교를 무슨 유엔안보리 이사회 참석하듯 띄엄띄엄 다니셨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1년 더 ‘꿇게’ 되신, 학교 시스템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한데, 이 형님의 마지막 학교생활 1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이었다. 체육대회에도 열심, 보충수업이나 ‘야자’에도 열심(안타깝게도 성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반 미팅에도 열심. 해서, 어느 토요일 하굣길이던가, 내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 요새 왜 이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세요? 그러자, 동네 노는 형님은,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를 꿰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들어서.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 형님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정든다는 것의 참말로 큰 의미 말이다.

둘째. 동네 노는 형님이 해준 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빠져 죽을 거같이 좋은 시기가 3년 이상 지속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단 정말 죽고 만다. 심장마비나 고혈압 같은 것이 올 확률이 높다. 내 경운 분명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좀 식을 필요가 있다.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우리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 전부일 것이다. 그다음은 그저 리얼리즘의 시대일 뿐이다.(내가 알고 있는 한 선생님은, 이 리얼리즘의 시대가 수십년 이어지고 나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방귀도 트고, 트림도 트고, 쩝쩝 음식 먹는 소리도 갑자기 요란해지는 리얼리즘의 시대 말이다.(그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살아보겠다고, 이러단 만성 속쓰림에 암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 때문에 튀어나온 본능들일 것이다.) 그 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는 쫑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꼭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랑에는 당연히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빤히 알면서도 가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무슨 이마트나 홈플러스냐, 새삼 유통기한 따위에 놀라게.


 
» 이기호의 독고다이
 
정리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옛날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가장 처음 공격한 곳은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당시 시민들은 시간에 대해,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부터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시간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우리가 3년이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랑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적마다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 양반하고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지, 뭐. 따져 보니 그 세월이 40년이었다. 너무 날짜 따지고, 그러면서 다시 날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때론 한 달 만난 사랑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랑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와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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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건가

드러내고 싶은 건가

 

왜 나는 나를 가두고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가

 

역시 사랑 앞에 서면 그것은 잘 안 된다

 

더욱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ㅠ,ㅠ,

 

너무 깊은 생각 때문

너무 깊은 방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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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

오랜동안 내가 가져온 꿈-합주.

키보드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가끔 생겨나지만

그게 없으면 미쳐버리기 전까진 사고 싶지는 않더라

 

예전부터 난 밴드 하는 게 꿈이야, 라고 했지만 막상 전업으로, 밴드를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게아닌지도 모르겠어. 아마츄어로 즐기는 것, 하지만 막상 어떤어떤 밴드에서 건반멤버를 구해요, 그러면 아직 준비도 안 된 내가 마음이 가끔 흔들리기도 해.

 

악보를 그리려면 건반악기가 분명히 필요해. 귀로 음악을 듣자마자 바로 그릴 수 있는 천재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멜로디혼을 하나 샀다.

친구가, 노래를 하나 듣더니 악보를 찾아서자기가 기타를 치고 내가 멜로디혼을 불자고 한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찾을 수 있는 악보가 없었다. 그래서 그렸다. 너무 다행히도 코드가 쉬웠다. 

그런데 둘만 하면 조금 썰렁하지 않을까?거기다가 오카리나랑 우쿨렐레를 할 줄 아는 두 친구가 있으니 가서 합주를 해 보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근데 솔직히... 그 전에 키보드를 하나 사서 멜로디혼보다 키보드로 연주하면 훨씬 소리가 풍성해지긴 할 게다... 욕심나네..-.-;;

 

아직 음표의 길이까진 정확히 표시를 못 하지만, 음악을 귀로 듣고, 기준점이 되는 한 음을 찾고 거기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찾으면 악보는 금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오래도록 가져온 꿈이었다.백수가 되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귀로 듣던 음악을 악보로 옮겨보기 시작했는데 몇 번의 시도끝에 그 음을 찾아서 그리게 되었던 게 불과 작년.

 

한 가지 한계가 있다면 키보드는 두 손을 동시에 치면서 코드를 찾아 따기가 쉽지만 멜로디혼은 그게 어렵다. 나름 저렴한 악기들로도 잘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난 오래전부터 합주하는 것을 꿈꾸었어. 나 혼자 연주는 재미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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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는

다다르지 못해 괴롭고

다다른 후에는 다다랐기 때문에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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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나도 전라도 사람이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가끔 맛깔나게 구사하는 친구를 보면 참 재밌다. 말이나 억양이나 완전히...

요새 다들 서울말 쓰는데 .. 물론 평상시에는 그냥 일반 표준말이더라.. 그런데 그 가끔의 사투리가 ㅎㅎ

 

서울말은 따라하기 쉽다믄서?

서울말은 왜 이렇게 낯선지 몰러 ㅋㅋ

난 사투리보다도 억양이 완전 전라도 억양이야..

 

친구가 생겼다.

얼마 안 되는 친구가 하나 늘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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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영은의 글..

 인생의 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것이 태반이다. 짐을 지는 것으로 사랑이 가늠되기도 한다. 아무 짐도 지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해 의무도 책임도 안 지려는 태도이다. 때문에, 짐을 무조건 가볍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일 뿐,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영육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짐을 벗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 꿈꾸는섬

 

김동리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는 한 번도 내가 그의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호적상에 엄연한 그의 세번째 아내였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여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날들 저편에서 그는 항상 내 사는 집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 감춰진 남자였다.
(…) 김동리를 만난 지 3년째 되던 어느 해 정월, 교통이 끊길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김동리의 수필집을 보다가 연인을 그리워하는 한시(漢詩)를 인용한 부분이 너무 좋아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했다. 손소희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그냥 끊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끓어오르는 그리움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생각다 못해, 그 시를 종이에 써서 봉투에 넣어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용두동에서부터 신당동까지 걸어서 가는데 눈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마침내 김동리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는 조금 이르긴 해도 외등이 켜져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틈에 나는 외등 전봇대 밑의 눈을 파헤치고, 또 흙을 파헤치고 가지고 간 봉투를 거기에 파묻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흙으로 덮고, 눈으로 덮고 나서 되돌아섰다. ‘이 담장 안에 내 연인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때 마침 손소희 선생님이 밖으로 나와 본다면, 어떤 발자국이 문 앞에서 끊긴 것을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공중전화를 보고 안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했다. 다행히 그분이 전화를 받았다.
“제가 지금 집 앞 전봇대 아래 편지를 파묻어놓았으니 나가서 보세요.”
“알았어.”
하는 목소리가 이미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다. 나는 그분이 그 봉투를 눈 속에서 파내서 꺼내어본 소감을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자취방에 전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322~325쪽)

그는 스스로 “나는 김동리란 거물의 온갖 것들, 그의 갈증, 외로움, 정염, 모순, 인색함 등 온갖 인간적인 것들을 붙잡고 씨름해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것은 남편 김동리가 그에게 남긴 유산이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길었던 김동리와의 사랑과, 그에 반해 너무도 짧았던 아내로서의 삶을 고통스럽게 또 행복하게 회고한 그는 서울로 돌아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김동리의 유품과 그가 남긴 문학자료들을 모두 기증했다.

 

- 어떤 만남이든 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추억, 기억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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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가브리엘 로스

나는 어떤 거짓된 감정으로 나를 위장하고 있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_^

 

 

연민

 

 

연민의 감정은 두려움, 분노, 슬픔, 그리고 기쁨의 과실로서 온다.

그대가 일상에서 이 두려움, 분노, 슬픔, 그리고 기쁨의 감정들을

알아차릴 때, 그대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삶에서

그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정확히

필요로 하는 것을 주기 시작한다. 연민은 무조건 상대를 껴안아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때때로 그것은 상대방의 뺨을 때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연민은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줄 만큼

충분히 초연해졌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그대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그대를 그들과 연결시켜준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대가 정말 연민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이 그대의 마음을 힘들게 할까봐 저어할 때에도

그대는 그것을 느끼고 그들의 두려움을 자기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다.

 

 

1970년대초에 배우들과 작업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5가지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했다. 그때 나는

무척 놀랐다. 그들은 전문적인 배우들이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표현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 5가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의 진부한 틀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보았다.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대로 자기 감정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자기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이 가장 표현하기 힘들어했던 것은 연민이었다.

그들 모두 다른 이들의 불행에 눈물이 메마른 듯이 보였고,

동작도 틀에 박힌 행동이었다.

 

 

연민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연민은 카멜레온과 같다.

연민은 그때그때 상황의 필요에 따라 두려움의 표정을 지을

수도 있고, 분노, 슬픔, 기쁨, 심지어 낙담의 표정을 지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카멜레온 같다고 하는 것이다.

연민을 느낀 부처는 한눈에는 미소를,

한눈에는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부처의 임무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 속에서,

연민은 상대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무엇이든.

 

 

연민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이런 것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갖는 거라는.

하지만 그런 감정은 단순한 센티멘탈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동정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참된 연민은

다른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뭔가를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거짓말일 수도 있고,

잘 될 거라는 장밋빛 위로일 수도 있고, 힘들어하는 부분을

대신 떠맡아서 챙겨주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연민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연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한번은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을 다섯 가지 감정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한가지 감정의 그룹에 들어가도록

나누어본 적이 있다. 그들 중 절반이 연민의 그룹 쪽을 선택했다.

분노의 그룹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연민 그룹에 든 사람들은 이제부터 모두

분노의 그룹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기 바래요.”

그러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전 화나지 않았어요! 전 분노의 그룹에 속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뾰루퉁한 표정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연민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번은 내가 가르치는 맛사지 과정에서였다.

한 여인이 맛사지 테이블 위에 누운 채 히스테릭하게 느껴질

정도로 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파트너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다. 그들은 모두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고통의 감정이 스쳐갔다.

 

 

나 역시 그녀의 목소리의 어떤 톤과

그녀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어떤 에너지의 진동이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

언짢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로했으며, 그녀의 울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미소지었다. 그들은 내게 물었다.

왜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냐고.

그리고 왜 그녀에게 다가갈 때 선생님한테서

한기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그녀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마침내 내가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해요. 그녀가 슬피

우는 건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여러분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시험해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의지가 너무도 강하다는 거예요.”

 

 

살다보면 종종 이런 일과 마주하게 된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누군가 정말 고통스러워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그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내가 아직 젊고 겁이 많았을 때, 에살른에서 있었던

또 다른 경험이 생각난다. 그때는 우연히 어떤 그룹과 만나

처음으로 그룹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목욕탕

욕조 안에 앉아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여인이 큰소리로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7년전에 죽은 남편이

생각나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우리가 모두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아래쪽에 있는

탕 속으로 들어갔다.

 

 

리더가 그녀에게 욕조 안을 빙 돌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그녀가 자기 앞에 오면 그녀를 위로해주라고 했다.

우리는 한사람씩 그녀가 자기 앞에 올 때마다 탕 속에 들어가

그녀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녀는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내가 맨 마지막 차례였다. 그녀가 내 앞에 왔을 때

나는 왠지 그녀가 자기연민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도와드릴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내게 오길 바래요.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왠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는군요. 오직 당신이 내게

오실 때만 나는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거칠고 차갑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뭔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얼핏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보았고,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내쪽으로 움직여왔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서,

연민의 마음은 그들이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연극에 동조할 마음이 없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들은 비로소 또 다른 광장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상황이라면 정확히 껴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옆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대가 정말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대는 값싼 동정보다는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변화에 맞설 수 있도록 인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미망인이 아무런 희망없는 슬픔의 심연 속에 빠져

있다면, 단순히 그녀를 위로하기보다는 그녀가 그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녀가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연민은 누군가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 그것이 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 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그대가 슬픔에 빠져있는 어떤 남자와 함께 있다고

해보자. 그에게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슬퍼했으면 됐다고 말하는 것은 연민이 아니다.

만일 정말로 됐다면 그는 그대의 말이 아니라더라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에게 자신의 슬픔의 핵심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가 그 슬픔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그 슬픔을 온전히 겪어야 한다는 깨닫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결코 우회하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대가 그와 함께 울어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거짓된 연민 - 윤리적 의무감이 없는

감상적 센티멘탈리즘이 - 이 만연해 있으며

또한 지나치게 냉정하거나 심장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지나치게

무감각한가 하면,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반응하거나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어느 날 나는 뉴욕에서 워크숍을 하는 동안 잠시 짬을 내어

길을 건너 던바의 카페테리아에 갔다. 그곳은 매달 정부에서

주는 고정수입으로 사는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장소였다. 나는 친절하게 생긴

한 노인의 뒤에 줄을 섰다. 그는 주의깊게 으깬 감자와

배, 시골치즈, 그리고 제너럴 푸드사에서 나온 젤로를

고르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매일 먹는 주메뉴 같았다.

그는 계산대에 가더니 점원에게 몇 번이나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느 날 새 메뉴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지. 그런데 도대체 변화가 없어. 똑같애.

물론 나는 원치 않아도 그걸 좋아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내가 들고 온 게 값이 맞지?”

점원은 정면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요. 그건 5불 49전인데요. 다음 손님요!”

 

 

그 노인은 몹시 당황하듯, 비틀거리며 내내 혼자 앉아있던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가 원한 것은 오직 작은 미소와

다정한 말이었다. 그러나 점원은 그걸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그녀의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라는 듯이.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매일 만나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보다

그처럼 돌처럼 무표정한 표정을 짓는 것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은 연료와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소모하거나 사용하거나 남에게 주어버리면 곧 고갈될

것이라는 듯이. 그러나 이 에너지는 사용하고 나면 고갈되어 버리는

일용품이 아니다. 우리의 몸 속을 흐르는 피처럼,

우리의 감정 또한 흐르고, 사용될 필요가 있다. 그때

그것은 스스로 재충전되고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감정적 에너지를 사장해두는 것은, 댐에 가두어두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며, 궁극적으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계산대의 점원은 외로운 노인에게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그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온정을 주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을 감정의 시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최근의 심리학적

연구는 보여준다. 친절하게 굴면 생리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몸에 활력이 넘치게 되고, 가슴의 어두운 에너지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물론 모든 사람의 주의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 개중에는

좋지 않은 감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워크숍에서 한 여성이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끼어들어 사사건건 반대를 했다. 그녀의 목적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려는 것이었다.

상황이 명확해지자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원을 만들게 한

다음 그녀를 가운데에 세웠다.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당신은 우리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때때로 연민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을

포함한다. 성난 아이에게 최상의 것은 그의 분노를 다른 데로

돌리거나, 내려놓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분노를 억제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분노에게

기회를 주고, 스스로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대는

몹시 당황하거나 아이보다 더 성이 나서

펄쩍펄쩍 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동료나 애인, 아이들,

또는 친구들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을 숨쉬게 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 속에 들어가

그들의 닫혀져 있던 감정의 문을 활짝 열고는

위장된 감정의 베일을 걷어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많은 가족에서

어떤 감정은 허용되고 어떤 감정은 허용되지 않는 것을 본다.

내 남편의 경우에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표현은 신성한 것이다. 그와 그의 가족은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가족에서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대신

슬픔은 표현하도록 허용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남편의

분노에 놀라지 않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낯선 감정을 서로에게 가르쳐야 했고 인정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나는 분노를 인내할 수 있도록.

 

 

정말로 건강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다양한 관계가 지속되게 하려면 이런 종류의 교환도 필요하다.

이러한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주위에 있는 그 많은 관계들이

너무도 쉽게 지루해지고, 실패로 끝나게 되는 이유이다.

관계의 생명의 핏줄은 억제와 부정의 덩어리들에 의해서 동맥경화가

일어난다. 우리의 창조적이고 건전한 삶의 에너지는

바로 이런 회피의 끊없는 소모적인 전략들에 의해서

사그라드는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연민은 텅 비워진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대가 상대방의 감정의 진실에 마음의 문을 열 때

그대 역시 그대의 과거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민은 텅빈 그릇과 같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두려움으로 채운다면,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제대로 담을 수 없게 된다. 오직 그대가 세련되게 조율된

감정의 도구일 때만, 그대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의 서정시가

되고, 노래가 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대는 해결되지 않은 두려움과

분노, 슬픔의 왜곡된 필터를 통해서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반응할 것이다.

 

 

연민은 텅 비워진 감정이다.

바로 그 텅 비워진 감정으로부터 온갖 감정이 흐를 때

그대의 역동적인 고요함이 모든 삶의 에너지의 근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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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복잡한 것.

단순해지고 싶다고.

연애 아니어도.

 

단순하다고 해서 가짜는 아니거든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무엇이든

가짜는 아니거든

 

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건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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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다, 눈 있으면 보라!"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다, 눈 있으면 보라!"

[포토] '남한강의 눈물'…남한강 공사 현장 항공 사진 공개

기사입력 2010-05-03 오전 9:04:39

강을 따라 이어진 널따란 백사장은 이제 거대한 공사장으로 바뀌었다. 백사장을 이루던 모래와 자갈은 파헤쳐져 거대한 흙 무덤으로 변했고, 강을 따라 펼쳐진 갈대숲 역시 자취를 감췄다. 4대강 사업으로 본 모습을 잃은 남한강의 전경이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남한강 일대 공사 현장을 항공 촬영한 사진을 2일 공개했다. 사진은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단현리의 강천보·능서면 백석리의 여주보·금사면 이포리의 이포보 등 3개의 보 공사 현장의 모습으로, 지난달 11일 촬영됐다.

준설 공사가 진행 중인 도리섬(점동면 도리섬), 바위늪구비 습지(강천면 강천리), 금모래은모래강변(여주읍 연양리), 당산제(능서면 백석리섬) 일대의 사진도 함께 공개됐다. 중장비동원한 준설 작업으로, 강바닥의 대부분이 파헤쳐진 채 뿌연 탁수가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 여주군 여주읍 단현리 일대의 강천보 공사 현장의 모습. ⓒ4대강범대위

▲ 금사면 이포리의 이포보 공사 현장 모습. 뿌연 탁수가 보인다. ⓒ4대강범대위

▲ 이포보 건설 현장에서 나온 탁수가 강 본류로 유입되는 모습이 선명하다. ⓒ4대강범대위

▲ 여주보 건설 현장의 모습. ⓒ4대강범대위

▲ 신륵사 맞은편에 위치한 금모래은모래강변의 모습. 준설 작업을 위해 강을 가로질러 만든 가물막위 둑 위로 작업 차량이 오가고 있다. 공사장에서 형성된 흙탕물은 양수기를 통해 남한강 본류로 배수된다. ⓒ4대강범대위

▲ 금모래은모래강변의 모습. 시민들의 휴식처였던 이곳이, 밤낮으로 진행되는 골재 채취로 인해 파헤쳐졌다. ⓒ4대강범대위

▲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백석리섬 상공에서 내려다 본 당산제의 모습. 준설 작업의 일환으로, 강을 가로질러 가물막이 둑이 설치됐다. 사진 우측 아래 탁수를 퍼내기 위한 양수기가 보인다. 사진 왼쪽 상단의 내양지구 준설 현장에서는 얼마 전 1000여 마리의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4대강범대위

▲ 역시 준설 작업이 진행 중인 도리섬 일대의 모습. 가물막이둑 왼편으로 뿌연 탁수가 남한강 본류로 흘러들고 있다. ⓒ4대강범대위

▲ 도리섬 준설 현장의 모습. 도리섬은 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돼 논란을 빚었던 단양쑥부쟁이와 표범장지뱀의 자생지이다. ⓒ4대강범대위

▲ 바위늪구비습지의 모습. 버드나무 군락이 사라지고, 굴삭기 등 중장비 기계가 지나간 흔적이 흉터처럼 깊게 패였다. 이곳은 세계 유일의 휘귀 식물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2급인 단양쑥부쟁이의 대규모 생육지이기도 하다. ⓒ4대강범대위

▲ 여주군 여주읍 연양리 인근 이호대교 하류의 준설 현장의 모습. 강바닥 준설 공사로 인해 드러난 하천 바닥의 고압 가스관(LNG)을 새롭게 매설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4대강범대위
 
 
 

/선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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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터의 작업- 상량문

예전에 하던 일 하면서 썼던 글들

내가 쓴 건 위의 설명 뿐이고 해석은 문화원장님께서 ㅋㅋ

요거 해석요청하러 다니는 과정, 그래도 재미있었다

 

집을 지으며 담았던 마음


원운교마을에 살고 있는 전진기 씨는 약 4년 전 예전 집터를 허물고 새로 집을 짓는 과정에서 상량문을 발견하였다. 전진기 씨는 이 상량문을 표구하여 집에 보관하고 있다.

상량이란 기둥에 대들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옮기는 일을 말하며 상량을 올리는 날 고사를 지내는데 아래의 문서는 고사를 지낼 때 읽었던 상량고사축문이다.

이 상량문이 작성된 시기는 1817년이며 작성자는 정동기라는 분인데 이 분이 자신의 집을 짓는데 상량문을 직접 작성했는지 아니면 남의 집 짓는데 상량문을 대필해 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축문에는 백운과 마령 일대의 지명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중 내동산의 과거 한자표기가 萊東山이 아닌 內洞山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상량문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큰 집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상량고사축문

 

 

 

歲次 丁丑七月癸卯朔十九日辛酉 

때는 정축년(1817년) 칠월(초하루 간지는 계묘) 십구(신유)일 (양력으로는 8월 13일)에


幼學 鄭東起 敢昭告于 后土土地神 今營新基建屋宇于日吉辰良 玆以上樑

유학(벼슬하지 않은 유생) 정동기는 삼가 토지신께, 이번 집짓는 공사에 일진이 좋아 이에 상량함을 고하나이다.


述夫 무릇

地已平矣 爰及經始之功  材旣良哉方建棟樑之美

 

 

대지는 이미 고르고, 이제 일을 경영하려 하니, 좋은 재목과 동량들이 준비되었습니다.


吉宿照臨之地 福神下降之辰 

길성이 비치는 터, 복신이 내리는 때에


惟我 생각하니


舊基移居 家業新創 

옛터에서 이거하여 가업을 새로 일으키면서,


美地初奠乃相土地之宜 嘉慶恃期爰占福祿之永

좋은 땅에 먼저 제사지내고 토지의 길흉을 판단해보니, 경사스러움을 믿고 이에 복록이 영원할 것을 점지하나이다.


地靈鍾異下臨百尺之雲橋 天極垂光上照一片之營室

지령이 뭉쳐 백척을 내려와 운교(리)에 이르고, 천극의 광채가 드리워 한조각 영실(건축지)을 비춥니다.


乃營慶(결)之建  爰選工(결)之良 ->

이에 멋진 집을(?) 지으려 함에, 솜씨 좋은(?) 목수를 골라 놓고,(훼손으로 판독이 불가능한 한자가 있어 해석이 미흡함)


礎繡方花已運泰山之玉石 樑掛雲漢爰來遠方之梓桐

방화무늬 주춧돌은 태산의 옥석으로 이미 실어왔고, 대들보에 걸칠 건자재(은하수)는 멀리서 온 가래나무와 오동나무랍니다.


種大德於先世擬高大之于閭 望餘慶於後孫期挑李之狄檻

선대에 대덕을 심고 우공(중국의 인물)의 집과 같은 높고 큰집을 짓는 이유는, 후손들이 경사스럽게 적인걸(중국의 인물)의 도리화원같은 누각을 꾸미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貴則曰卿曰相 富則乃積乃倉

벼슬하게 된다면 공경이나 승상일 것이며, 부자가 된다면 (재물이) 창고 가득이 쌓일 것입니다.


翬飛詹簷末耀壯居之門欄 鷰語簾前賀新成之棟宇

처마 끝은 마치 날아갈 듯 하고, 집은 웅장한데, 제비들은 지지배배 주렴 앞에서 새집 짓는 걸 축하합니다.


夢於霄夢於畵 惟熊惟羆,  寢于地寢于床 弄璋弄瓦

마치 하늘에 있는 양, 그림 속에 있는 양, 꿈꾸며, 오순도순, 바닥에서나 침상에서나 뒹굴며 아들딸 낳고 살으리니


榱桷秩秩 子孫綿綿

서까래는 가지런하고 자손들은 면면할 것입니다.

 

 

堂廡向陽人莫及於高明之德 丙峰尖筆世不乏於文士之名

큰집이 양지를 향하니 사람들의 고명지덕이 미치는 않는 곳이 없고, 남쪽(병방)에 문필봉이 뾰족이 솟았으니 문사의 이름이 대대로 줄지 않으리오,


傳之子傳之孫自千世而萬世 居斯土居斯室乃有始而無窮

전하고 또 자손에 전하여 천만세를 이 터와 이 집에 살게 되어 무궁할 것입니다.


抛樑東 (註 : ‘포량’은 들보가 울리는 소리를 의미하는 관용어.)

동쪽 들보 울리니

馬耳峰頭淑氣浮 爲誰雙尖如許立 精神淸爽揷雲留

마이산 봉우리에 맑은 기운이 뜨고, 누구라 뾰족한 두 봉우리 세웠는가, 정신도 상쾌하게 구름 속에 꽂혀있네.


抛樑南 남쪽 들보 울리니

德泰山光垂且奇 美峙村前連地脈 諸峰羅列似孫兒

덕태산 빛이 드리우니 그 또한 기이하다. 미재마을앞 지맥이 이어져, 여러 봉우리 나열한 모양이 마치 손자들 같구나.

 

抛樑西 서쪽 들보 울리니

內洞山前水抱回 其上鍾生佳麗地 依然金谷好樓臺

내동산 앞 물이 휘감아 도는 가운데, 그 위에는 아름다운 땅이 맺혔고, 금곡의 멋진 누대는 의구하네.


抛樑北  북쪽 들보 울리니

地闢名區是馬靈 多小村家回首處 山光水色繞門欞

땅이 트여 보이느니 이름하여 바로 마령이로구나. 크고 작은 촌가들 고개 돌리는 곳, 산빛과 물색, 창문을 두르네.


抛樑上  위쪽 들보 울리니

上有銀河一帶橫 風起天街雲歸盡 吉星垂影夜三更

하늘에는 은하수가 걸쳐있고, 바람이 하늘에 일어 구름을 밀어내니, 길성이 그림자를 드리워 야삼경일세.


抛樑下

아래쪽 들보 울리니

簾滴靑山若有情 生色門閭千萬載 承承繼繼好家聲

주렴에 청산의 흔적 만약 유정하다면, 집안 문려 천만년 생기가 돌고, 좋은 가문 이어가리.


[축문해석 자문 : 진안문화원장 최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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