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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1
    로스트... 한국을 대체 뭐로 아는 거냐?(2)
    불그스레
  2. 2006/03/02
    묘한 고양이 쿠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동화.
    불그스레

로스트... 한국을 대체 뭐로 아는 거냐?

1. 김윤진 - 극중 이름 <선> - 은 어쨌거나 "회장님" 소리를 듣는 사람의 딸로 나온다. 가든파티를 여는 장면이나 남편인 <진>과 아버지인 "회장" 사이의 관계를 보더라도 결코 범상한 신분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남편과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전까지는 영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그녀 스스로 영어를 할 수 있음을 밝히기까지 남편인 <진>이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재벌집안 교육이 그렇게 형편없었나? 하긴 <루루공주>를 보면 재벌집안 여자들은 덜떨어진 바보로 나오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여자가 영어 하나 못할까? 최소한의 단어 정도는 알아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어를 한다고 해서 <진>이 놀라거나 자존심 상해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2. 더 압권인 것은 <선>의 남편이자 <선>의 아버지인 "회장님"의 보좌관까지 되는 남편 <진>이 영어를 전혀 못 한다는 것. 아주 간단한 단어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진짜 아주 간단한 생활영어조차 못한다. 뗏목을 타고 섬을 떠날 때 김윤진이 그를 위해 만들어 건네준 영어단어장을 보면 아마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주 간단한 단어를 일부러 단어장까지 만들어 건네주다니.

 

무엇보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아주 지랄맞은 데가 있어서 중학교만 졸업하면 어느 정도 간단한 회화는 가능하다. 영어교육 어떻네 하고 난리를 피우지만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교과서 무척 잘 되어 있다. 최소한 영어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아주 간단한 일상적인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다. 인사를 한다거나, 밥을 먹는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를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더구나 <선>은 "회장님"의 딸이고, <진>은 그런 <선>의 남편이자 "회장님"의 사위이지 않은가 말이다.

 

 

3. <선>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라는 것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 차관의 집에 총을 든 킬러를 보내지 않나, LA의 정체불명의 거래처에 심부름을 시키지 않나, 이건 무슨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조폭의 보스와도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최소한 드라마상에 나온 모습으로 <선>의 아버지는 조폭의 보스가 아니다. 마치 80년대 홍콩느와르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던 비밀결사와 결탁한 기업가의 모습 그대로다.

 

 

4. 환경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사는 집이 참 멋지다. 일본풍이지? 분명 일본풍이다. 어찌 보면 고증이 잘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특히 엘리트라 불리우는 사람들 가운데 일본 마니아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 환경부 차관이라는 이도 일본 마니아였던 것일까? 사는 집을 온통 일본식으로 치장해 놓고 살 정도로?

 

 

5. "회장님"의 심부름을 온 사람에게 딸의 개를 빼앗아 선물하는 센스는 또 뭔가? 한 나라의 환경부 차관 쯤 되는 이가 아무렴 선물로 줄 게 없어 딸의 개를 뺏어서 선물로 주나? 우리나라 환경부 차관 월급이 그렇게 짠가? 아니 환경부 차관에게는 뒷줄로 들어가는 돈 없어? 무엇보다 기르던 개 받으면 뭐가 좋은가? 아무래도 수상쩍다. 거기서 왜 하필 개를 선물로 준 것일까? 그것도 기르던 개를. 북한에서 일부러 차로 개를 치어 당간부에게 뇌물로 바치곤 했다는 말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6. 환경부 차관을 죽이라고 "회장님"이 보낸 킬러. 무려 총씩이나 들고 있다. 믿겨지는가? 총을 들고 있다. 총을 들고 행정부 관료를 죽이려 하고 있다. 어디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거의 무법지대에 가까운 나라들을 연상한 모양이다. 마피아가 태연히 고위관료를 암살하고, 검찰이 오히려 범죄조직을 두려워하는 행정공백의 저개발국가를 생각하고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소한 길 가다 총 맞아 죽을 일 없는, 그랬다가는 환경부 차관이 아니더라도 큰 뉴스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건 개념이 없는 모양이지?

 

 

7. <진>이 아내에게 죽었다고 거짓말 했던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 좋다. 어촌 풍경이라는 게 여러가지 있으니까 나무로 얼기설기 짜맞춘 선착장이라든가, 선착장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물고기들은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그 아버지 등 뒤로 둥실 떠다니는 돛단배는 무언가? 돛단배다. 분명 돛단배다. 돛도 단 배가 아니라 돛을 단 배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돛단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은 것이 언제였을까?

 

 

8. 한국 남자에 대한 표현도 아주 지랄이다. 아무렴 요즘 남자가 아내가 비키니 좀 입었다고 그렇게 난리치나? 한국 남자가 조금 - 아니 많이 가부장적이기는 해도 바닷가에서 비키니 입고 물에 뛰어드는 것 가지고 그렇게 지랄거리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30줄 안쪽에서는 그런 남자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체면을 무척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집 밖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9. 김윤진의 캐릭터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학원에서 영어를 배워야 했던 김윤진이 놀랍게도 식물의 전문가다. 정확히는 약용식물의 전문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한국인은 모두 허브의 전문가라 생각하는 것일까? 영어는 못해도 비전으로 전해받은 식물에 대한 전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치 일본 만화에서 "중국 3천년의 비전"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생각나 웃음부터 난다.

 

 

10. 내가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아주 안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묘사한 작품은 보다보다 처음이다. 일본식 집에, 돛단배가 떠다니는 어촌에, 총을 들고 관료를 죽이려는 킬러에, 한국에서도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적 남성에, 무엇보다 어떻게 "회장님"씩이나 되는 이의 딸과 사위가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우습게 여겨졌으면 이따위로 묘사했을까?

 

새삼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말이 현실에 와 닿는다. 하다못해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고, 한국에 대해 최소한의 경험이나 지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면 이런 식의 어처구니 없는 묘사는 없었을 텐데. 아니 그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어지고 있는가 조금은 엿볼 수 있게 되어 입맛이 쓰다. 역시 미국에게 한국은 그렇게 우스운 것일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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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고양이 쿠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동화.

이 만화를 단정지어 말하자면? 동화다. 말 그대로 동화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고양이의 세계를 다룬. 그림도 딱 동화풍이다. 동화의 삽화를 보는 듯 단순하면서도 분방한 그림에 귀여운 캐릭터들. 컷 하나하나가 동화의 삽화를 보는 것 같고 그래서 어느새 아무런 거부감 없이 쿠로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 동화냐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쿠로는 자신의 형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종이박스에 담겨 두 동생과 함께 버려진다. "털보"에게 구해지기는 하지만 그때 이미 남동생은 죽어있는 채였다. 아직 젖도 채 떼지 않을 나이에 어미로부터도 형제로부터도 떨어진 채 죽음마저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 쿠로의 경험은 오렌지의 일가를 만나면서 더 처절함을 더한다. 어미인 양 여겼던 오렌지의 어미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남겨진 오렌지와 마다라, 하이이로는 어미의 보호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고, 그것은 아직 어린 새끼인 그네들에게는 너무나도 처절한 싸움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워간다. 쿠로가 사는 집에 몰래 들어와 먹이를 얻어먹으려다 "털보"에게 얻어맞는 하이이로를 보는 쿠로의 모습은 그래서 차마 볼 수 없이 애처롭기만 하다.

이처럼 처절하던 오렌지들의 투쟁은 여우여인에 의해 오렌지가 거둬지면서 한 차례 일단락된다. 거칠고 난폭한 숫코양이이던 오렌지는 편안한 쉼터와 맛있는 먹이를 얻은 댓가로 거세되고 발톱마저 잃는다. 쿠로의 여동생 칭코에게 관심을 보이던 숫코양이인 오렌지는 더이상 숫코양이가 아니게 된 채, 항상 다투던 쿠로에게마저 배를 드러내야 하는 한심한 처지가 된다. 그럼에도 결코 여우여인의 품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차라리 그것이 나을 정도로 산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오렌지에게 닥친 재앙은 마찬가지로 칭코에게도 닥치는데, 그토록 좋아하고 따르던 보스 마시로와 관계를 갖기 시작한 지 얼마만에 털보는 칭코에게 불임시술을 해버린다. 역시나 숫코양이가 아니게 된 오렌지와 마찬가지로 칭코 역시 더 이상 암코양이가 아니게 된 것이다. 결국 보스 마시로도 암코양이가 아닌 칭코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발정기에 보스 마시로의 새끼를 밴 것은 칭코가 아닌 둔한 마다라였다. 그것을 보는 칭코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태어난 마다라의 새끼 네 마리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단 두 마리. 한 마리는 태어나서 얼마 안 있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리고, 다른 한 마리 코마다라는 무심코 도로에 나섰다 차에 치여 형체도 알 수 없이 죽어 버린다. 그러고 보면 쿠로의 남동생도 종이박스 안에서 차게 식어버렸다. 쵸비라는 한 달 만에 버려진, 어미만 찾다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새끼 고양이도 추운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죽었었다. 고양이의 새끼란 참으로 약하고 약해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버린다.

그래서 하이이로는 맛도 없는 먹이와 종이박스로 만든 허름한 집으로도 낡은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 곁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맛이 없어도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고, 허술해도 의지할 곳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아파트가 헐리면서 한 차례 봄날의 꿈이 되어 버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도 의지할 곳도 보호해줄 누군가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처절하고 잔인한 일인 것이다.

묘한 고양이 쿠로는 그 처절하고 잔인한 삶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정하게 따뜻한 애정이 담긴 눈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동화는 너무 아름답고 또 너무 잔인하다. 너무나도 쉽게 죽어 버리는 새끼고양이들이나, 작은 인정에 목말라 하는 들고양이들이나, 인간의 편리를 위해 당연한 본능마저 당연하지 않게 되어 버린 고양이들은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지고 있어 어느새 메이도록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더구나 나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바로 내 주위에 두 마리나 있다. 아직 작기만 하던 새끼 때 종이상자에 담겨 우리집에 오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겁에 질려 감히 종이상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쓰다듬어주려 손을 내밀어도 겁먹어 컁컁거리던 그 작고 어리던 녀석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어쩌면 그저 그런 만화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르는 이 만화가 이토록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쿠로에게서, 칭코에게서, 오렌지에게서, 우리집 쭈르기와 꼬맹이의 모습을 발견한 때문일 것이다.

만화로서도 매우 완성도가 높다. 허술해 보이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도 않다. 담담하고 냉정하면서도 따듯하고 유쾌한 감정이 넘친다. 한참 고양이 쿠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나 자신도 고양이 쿠로가 된 양 고양이의 세계에 빠져들 수도 있다. 분명 좋은 만화다. 그림도 딱 적당하고, 이야기들도 맛깔나다. 연출도 동화와도 같은 만화의 내용을 아주 잘 받쳐주는 딱 그대로의 연출이다. 너무 완성도가 높아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그야말로 수작이라 하겠다.

한 번 씩들 읽어보시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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