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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종량제? 모뎀시절로 돌아가자고?

예전 56K모뎀으로 전화선에 연결해 통신을 하던 시절. 전화 요금 많이 나올까봐 오래 쓰지도 못하고 하루 한 시간, 그것도 새벽에만 겨우 썼었다. 그때 내가 하이텔에 가입해 있던 동호회의 수가 13개. 토론방과 플라자까지 드나들었으니 하루 검색하고 써야 할 글의 수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 모두 한 시간 안에 다 처리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글 쓰는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다. 어지간한 글은 10분을 넘어가지 않고, 조금 장문이다 싶으면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다 쓴다. 논리의 비약이나 논거의 오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일단 다 쓰고 올리고 나서 그 다음에 생각한다. 그때 길들여진 습관이다. 한 시간 안에 여러개의 글을 써서 올려야 했던 그때의 버릇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 왜 그렇게 급하게 글을 써가면서까지 하루 한 시간 통신만을 고집했느냐? 말했다시피 전화요금 때문이다. 하루 한 시간으로도 2만원이 훌쩍 넘어가는데 마음대로 썼다가는 10만원이고 20만원이고 대책이 없다. 우리집이 남들만큼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들만큼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통신을 오래 쓴다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딱 한 시간 쓰고 더 이상은 쓰지 않았다.

 

지금도 다른 사람과 리플 논쟁이라도 할라치면 꽤 피곤해 하는 것도 그때의 영향이다. 글 올라온 것 보고 일일이 반론 달 수 없으니, 일단 통신을 끊고 나왔다가 생각을 정리해서 노트패드 같은 것으로 정리해서 반론을 올리곤 했었다. 그러다보니 내 토론방식은 조금 느리다. 아니 한참 느리다. 하루에 글 한 개. 거기까지가 한계다. 그때는 그런 식으로 인터넷을 썼었다.

 

만일 인터넷 종량제를 실제로 실시한다 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때 하이텔 쓰듯 그렇게 인터넷을 쓰게 될 것이다. 돈이 아까우니까. 그렇지 않은가? 기본요금이야 어쩔 수 없이 낸다고 하더라도, 추가요금은 너무 아깝고 부담스럽다. 하루 한 시간. 아니 사실 그것도 무리일 지 모르겠다. 지금 예상되어지고 있는 요금정책대로라면 이틀에 한 시간이나 겨우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만 그럴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솔직히 인터넷 쓰지 않는다고 죽는 것 아니지 않은가? 처음이야 조금 불편하겠지만 나중에 인터넷 요금 나온 거 보고 나면 대부분 쓰린 속을 참아가며 인터넷을 줄일 것이다. 자신의 경제사정에 맞추어서. 여전히 인터넷 많이 쓰는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들에 불과하겠지.

 

결국은 인터넷조차도 돈 없는 놈은 쓰지 못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돈 없는 인간들이가 가장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돈 많은 인간들의 것으로 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돈 없는 인간들이 무슨 재주로 그 많은 비용까지 지불해가면서 인터넷을 하겠는가?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이라도 사서 읽는 게 백 만 배 이익이다. 아니면 술을 마시던가.

 

온라인 게임?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시장도 넓고 유저들의 충성도도 높아서 다종다양한 온라인 게임들이 세계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지고 서비스되어지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종량제 해보라. 누가 하겠는가? 온라인 게임 요금에 더해 막대한 인터넷 요금까지 지불해야 하는데. 결국 온라인 게임도 끝장이다.

 

결국 남는 것은 인터넷 요금을 감당해낼 정도의 경제력이 되는 사람들끼리의 노닥거림 뿐. 돈 없는 놈들은 인터넷 요금 감당하지 못해 차마 끼어들기조차 두려운 돈 있는 놈들끼리의 노닥거림만 인터넷에 남아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인터넷의 죽음. 계급도 신분도 성별로 나이도 상관없이 모이던 불특정다수의 네티즌이 경제력에 의해 구분되어지는 계급적 특권화에 따른 차가운 소멸. 대한민국 인터넷의 미래는 그렇게 소멸되어간다.

 

하여튼 걱정이다. 하는 꼬라지 보아 하니 인터넷 종량제는 이미 기정사실이다시피하다. 앞으로는 하루 한 시간 겨우 인터넷 하는 것이 고작이게 될텐데, 그동안 인터넷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것을 한 시간으로 줄이려 하니 벌써 정신이 아뜩하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8개의 블로그 가운데 몇 개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쯧.

 

저작권법으로 VTX시절의 텍스트문화를 다시 되살려내더니, 이번에는 인터넷 종량제로 전화요금 계산하며 통신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다. 복고풍의 유행이라는 것인가? 그 인간들 머리가 퇴화한 것일까? 아니면 시대가 퇴행하는 것일까? 정신없는 요즘이다. 원래 앞으로 걷기보다 뒤로 걷기가 더 정신없는 법이니까.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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