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묘한 고양이 쿠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동화.

이 만화를 단정지어 말하자면? 동화다. 말 그대로 동화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고양이의 세계를 다룬. 그림도 딱 동화풍이다. 동화의 삽화를 보는 듯 단순하면서도 분방한 그림에 귀여운 캐릭터들. 컷 하나하나가 동화의 삽화를 보는 것 같고 그래서 어느새 아무런 거부감 없이 쿠로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 동화냐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쿠로는 자신의 형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종이박스에 담겨 두 동생과 함께 버려진다. "털보"에게 구해지기는 하지만 그때 이미 남동생은 죽어있는 채였다. 아직 젖도 채 떼지 않을 나이에 어미로부터도 형제로부터도 떨어진 채 죽음마저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 쿠로의 경험은 오렌지의 일가를 만나면서 더 처절함을 더한다. 어미인 양 여겼던 오렌지의 어미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남겨진 오렌지와 마다라, 하이이로는 어미의 보호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고, 그것은 아직 어린 새끼인 그네들에게는 너무나도 처절한 싸움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워간다. 쿠로가 사는 집에 몰래 들어와 먹이를 얻어먹으려다 "털보"에게 얻어맞는 하이이로를 보는 쿠로의 모습은 그래서 차마 볼 수 없이 애처롭기만 하다.

이처럼 처절하던 오렌지들의 투쟁은 여우여인에 의해 오렌지가 거둬지면서 한 차례 일단락된다. 거칠고 난폭한 숫코양이이던 오렌지는 편안한 쉼터와 맛있는 먹이를 얻은 댓가로 거세되고 발톱마저 잃는다. 쿠로의 여동생 칭코에게 관심을 보이던 숫코양이인 오렌지는 더이상 숫코양이가 아니게 된 채, 항상 다투던 쿠로에게마저 배를 드러내야 하는 한심한 처지가 된다. 그럼에도 결코 여우여인의 품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차라리 그것이 나을 정도로 산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오렌지에게 닥친 재앙은 마찬가지로 칭코에게도 닥치는데, 그토록 좋아하고 따르던 보스 마시로와 관계를 갖기 시작한 지 얼마만에 털보는 칭코에게 불임시술을 해버린다. 역시나 숫코양이가 아니게 된 오렌지와 마찬가지로 칭코 역시 더 이상 암코양이가 아니게 된 것이다. 결국 보스 마시로도 암코양이가 아닌 칭코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발정기에 보스 마시로의 새끼를 밴 것은 칭코가 아닌 둔한 마다라였다. 그것을 보는 칭코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태어난 마다라의 새끼 네 마리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단 두 마리. 한 마리는 태어나서 얼마 안 있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리고, 다른 한 마리 코마다라는 무심코 도로에 나섰다 차에 치여 형체도 알 수 없이 죽어 버린다. 그러고 보면 쿠로의 남동생도 종이박스 안에서 차게 식어버렸다. 쵸비라는 한 달 만에 버려진, 어미만 찾다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새끼 고양이도 추운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죽었었다. 고양이의 새끼란 참으로 약하고 약해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버린다.

그래서 하이이로는 맛도 없는 먹이와 종이박스로 만든 허름한 집으로도 낡은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 곁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맛이 없어도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고, 허술해도 의지할 곳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아파트가 헐리면서 한 차례 봄날의 꿈이 되어 버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도 의지할 곳도 보호해줄 누군가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처절하고 잔인한 일인 것이다.

묘한 고양이 쿠로는 그 처절하고 잔인한 삶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정하게 따뜻한 애정이 담긴 눈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동화는 너무 아름답고 또 너무 잔인하다. 너무나도 쉽게 죽어 버리는 새끼고양이들이나, 작은 인정에 목말라 하는 들고양이들이나, 인간의 편리를 위해 당연한 본능마저 당연하지 않게 되어 버린 고양이들은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지고 있어 어느새 메이도록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더구나 나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바로 내 주위에 두 마리나 있다. 아직 작기만 하던 새끼 때 종이상자에 담겨 우리집에 오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겁에 질려 감히 종이상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쓰다듬어주려 손을 내밀어도 겁먹어 컁컁거리던 그 작고 어리던 녀석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어쩌면 그저 그런 만화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르는 이 만화가 이토록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쿠로에게서, 칭코에게서, 오렌지에게서, 우리집 쭈르기와 꼬맹이의 모습을 발견한 때문일 것이다.

만화로서도 매우 완성도가 높다. 허술해 보이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도 않다. 담담하고 냉정하면서도 따듯하고 유쾌한 감정이 넘친다. 한참 고양이 쿠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나 자신도 고양이 쿠로가 된 양 고양이의 세계에 빠져들 수도 있다. 분명 좋은 만화다. 그림도 딱 적당하고, 이야기들도 맛깔나다. 연출도 동화와도 같은 만화의 내용을 아주 잘 받쳐주는 딱 그대로의 연출이다. 너무 완성도가 높아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그야말로 수작이라 하겠다.

한 번 씩들 읽어보시라. 재미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