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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의 리얼함...? (1)

흔히들 건담의 중요한 설정 가운데 하나인 뉴타입을 "우주시대에 맞게 진화된 새로운 인류"라 정의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초의 뉴타입이라는 라라아 슨은 콜로니가 아닌 지구, 그것도 인도의 한 뒷골목 출신이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소설판을 보면 인도의 한 뒷골목에서 몸을 팔다가 샤아를 만나면서 지온에 들어오게 되는데, 아무로에게 마음을 끌리면서도 끝내 샤아를 지키기 위해 죽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때 그녀를 구원해준 것이 샤아였기 때문이었다.

 

하사웨이 노아 역시 지구 태생이다. 아버지인 브라이트 노아도 지구출신이고 어머니인 미라이 야시마도 지구연방의 명문 출신이다. 태어난 곳도 역시 지구. 1년전쟁이 끝나고 지구로 돌아간 미라이와 브라이트 사이에서 태어나 <역습의 샤아>까지 지구에서 자랐다.

 

<역습의 샤아>에서 최악의 패륜녀로 악명을 높인 퀘스 파라야 또한 지구인. 그녀의 아버지는 지구연방의 고관이고, 그녀 역시 샤아와의 협상을 위해 우주로 향하는 아버지를 따라 셔틀에 오르기 전에는 우주로 나와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스페이스노이드라 할 수 있는 초기 뉴타입이자 최강의 뉴타입 아무로 레이도 스페이스 노이드 1세다. 지구출신인 양친이 사이드7으로 이주해 와서 낳은 자식이 아무로 레이다. 진화라는 것이 과연 단 1세대만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카뮤 비단이나 쥬드 아시타에 대해서는 패스. 얘들에 대한 설정은 아직까지는 없으니까.

 

물론 하만 칸이나 파프테마스 시로코의 경우는 완벽한 우주태생의 뉴타입들이다. 시부크 아노 또한 스페이스노이드로서의 뉴타입이고. 그런 점에서 우주세기의 새로운 인류 뉴타입이라는 설정은 그럴싸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그렇지 않은 초기 뉴타입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사실 78년 방영되기 시작한 <기동전사 건담> 방영분 초기에는 뉴타입이라는 존재는 거의 언급되지조차 않는다. 아무로 레이가 모빌슈츠에 타자 마자 메뉴얼 한 번 훑어보고 조종하는 것을 두고 뉴타입 어쩌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마징가 제트>에서의 카부토 코지도 마찬가지였다. 설정상 아버지 템 레이의 작업을 옆에서 훔쳐보면서 건담에 대한 데이터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되어 있으니 굳이 뉴타입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사실 뉴타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토미노 감독의 전작 <라이덴>에 등장하던 초능력의 아류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전체주의의 영향인지 일본에서는 초인을 소재로 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오래전부터 상당히 널리 유행하고 있었는데, 로봇이라고 하는 비합리적인 설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로봇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사용되곤 했었다. 이를테면 <단바인>의 오라배틀러라던가, <라이덴>의 주인공 아키라의 초능력과 같은 식으로.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에서의 기사라는 존재도 그와 같다. 뉴타입이란 단순히 그러한 연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 뉴타입은 사람들의 환상과는 달리 지구인이거나 우주이민 1세대였고, 오히려 우주세기의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강력한 뉴타입이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역습의 샤아에 이르면 등장하는 뉴타입 가운데 절반 - 하사웨이와 퀘스 - 이 지구인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모순을 제작진에서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인지 최근 개봉된 극장판 를 보면 뉴타입에 절망하는 올드타입의 한계를 보여주던 캐릭터 라이라 라이라에게 뉴타입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부여한다. 결국은 <기동전사 z건담>의 초기설정을 극장판에서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이니 그 모순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우주세기를 위해 새로이 진화된 인류라고 하는 뉴타입. 그러나 정작 뉴타입 가운데 스페이스 노이드보다는 지구인 - 어스노이드, 혹은 스페이스 노이드 1세대가 더 많았던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구의 중력에 사로잡힌 영혼" 어쩌구 주절거리는 하만과 샤아의 모습이 몹시도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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