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 정치에 관한 10개의 테제 4

[사고들]

테제4: 데모크라시는 하나의 정치적 체제가 아니다. 데모크라시가 아르케의 논리와의 ― 즉, 아르케에 적합한 기질에서 지배를 예견하는 것 ― 단절인 한에서, 데모크라시는 하나의 특수한 주체를 규정하는 어떤 관계의 형식 속에서 [존재하는] 정치의 체제이다.

 

정치에 고유한 메테시스metexis[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르케에 대한 참-여에서 실행되는 모든 할당의 논리들로부터 단절이다. 데모크라시의 공리를 구성하는 인민의 ‘자유’는 자신의 실질적 내용인 지배의 공리들로부터 단절한다. 즉, 지배의 능력과 피지배의 능력 간 상호관련의 단절. ‘지배와 피지배’에 참여하는 시민은 일련의 상호관련된 능력들의 간 대응을 단절하는 하나의 형상인 데모스를 기초로 해서만 오로지 사고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해 데모크라시는 인민을 하나의 공통된 권위 아래 배치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결정하는 특수한 구성이라는 의미를 띠는 하나의 정치적 체제(a political regime)가 아니다. 데모크라시는 정치의 설립(institution)이다. 즉 관계 맺기의 정치적 양식과 정치적 주체 모두에 대한 설립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데모크라시는 데모크라시의 적대자, 즉 나이, 태생, 부, 덕, 지식[savoir] 덕택에 통치할 ‘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용어이다. 데모크라시를 조롱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사물의 질서에 대해 전례 없는 전도를 분명히 표현하였다. 곧 ‘데모스의 권력’이란 지배자들이 어떠한 공통의 특성(speciality)도 가지지 못한 자들, 지배를 위한 어떠한 자격도 가지지 못한 자들을 뜻하게 된다.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 이름이 되기 전에, 데모스는 공동체의 한 부분(part), 즉 가난한 자의 이름이다. 그렇지만 ‘가난한’ 자란 인구 중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셈해지지 않는 인민들, 즉 아르케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자들, 계산[고려]되어질 자격이 없는 자들의 범주를 가리킨다.

이것은 정확히 위에 언급된 에피소드에서 호메로스가 테르시테스를 묘사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데모스에 속하더라도, 또한 비록 그들이 ‘셈해지지 않는 [미계량의] 자들’[l'hors-compte](anarithmoi)의 획일적인 집단에 속하더라도, 오디세우스의 홀에 등을 맞아 살해되어 버린다. 이것은 하나의 연역이 아니라 하나의 규정이다. 곧 ‘셈해지지-않는’ 자는, 즉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자는, 데모스 중에 한 사람이다. {오디세우스} 12권의 비범한 구절은 이 점을 묘사하고 있다. 즉, 폴리다마스*)는 헥토르가 그의 견해를 계속 무시했기 때문에 불평한다. 잘 알다시피, 그가 말하길, ‘만약 사람들이 데모스에 속한다면, 그는 결코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한데 폴리다마스는 테르시테스같은 악한이 아니다. 그는 헥토르의 형제이다. 따라서 데모스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범주를 가리키지 않는다. 데모스는 그/그녀가 말할 수 없음에도 말하는 자이자, 그/그녀가 어떠한 몫(part)도 갖지 못하는 것에 참-여하는 자이다. 그러한 사람이 데모스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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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리다마스는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군의 원로이자 아폴론의 신관(神官)인 판토오스의 아들이다. 그리스군의 파트로클로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에우포르보스와 히페레노르와는 형제 사이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능한 웅변가이자 전사로 활약하였으며, 트로이의 기둥인 헥토르도 그의 말에는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아가멤논과의 불화 때문에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던 아킬레우스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전투에 복귀하였을 때, 헥토르에게 아킬레우스와 맞서지 말고 성 안으로 철수하도록 충고하였으나, 헥토르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싸우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었다(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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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02:05 2008/01/0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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