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 한국 강연 질문과 답변 요약

[사고들]

민주주의와 인권, 2008/12/04, 서울대

질) 최근 한국에서 국방부의 금서목록이 지정되었는데,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은 금서의 매출이 오르는 반면에 헌책방에서 같은 책을 팔면 감독과 단속을 한다. 이 경우, 현실적인 투쟁의 중심을 조직해야 한다면, 내가 보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대형 헌책방을 중심으로 연합하는 방식일 것 같다. 당신의 ‘셈해지지 않는 자들’에 비춰서 볼 때, 당신은 이 사안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답) 먼저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전제하에,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가 말하는 ‘이름 없는’ 혹은 ‘셈해지지 않는 자들’은 (대형) 헌책방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셈해지지 않는 것을 셈한다는 것은 기존의 주어진 이름들을 초과하는 것이다. 오히려 금서 목록을 읽고 반응하는, 예컨대 온라인상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질) 최근 한국에서 지하철 파업과 같은 경우, 파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정부와 언론에서 파업을 공격하고 나만해도 당장 불편을 겪으면 그것이 먹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정당, 시민사회단체 같이 현실적인 투쟁의 주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논의에 비춰볼 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답) 한국 상황은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도 철도파업과 같이 파업을 공격하는 비슷한 사례는 많다. 투쟁에서 문제는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다. 몫이 없는 자들이란 이러한 조직이 아니다. 문제는 조직이나 정당이라기 보다는 '연대(성)'에 있다. 연대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여기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는 이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아무개들이다.

 

감성적/미학적 전복, 2008/12/05, 홍익대

질) 저는 평소에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내가 보기에 당신의 작업은 프랑스 내의 정세에 대한 개입이라고 보인다. 특히 부르디외와 교육에 관한 입장에서 차이가 보이는데,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사례를 들어서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란다.

답) 기본 관점에서 차이는, 부르디외는 지배의 문제인 반면 나는 해방, 지적 해방의 문제이다. 교육문제에서, 부르디외는 지배가 교육에서 자동적으로 재생산된다는 입장이며 이것은 소위 '맑스주의'의 입장과 유사하다. 부르디외는 피지배자가 자신이 지배받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배되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를 때, 학교에서 평등은 이러한 지배의 가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반면 이러한 가상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칸트이다. 왜냐하면 칸트(의 미학)에 따르면, 사회적 불평등의 사실인 취향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가상을 벗어나는 자들의 지위를 아무나가 아닌 과학자나 지식인들에 부여하였다. 나는 이와 반대로 아무나의 지적인 평등에서부터 출발하여 지적인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다.

 

질) 당신은 정치와 미학, 또는 윤리를 경험의 문제로 보고 있고, 여기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미학적 실천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답) 나는 프랑스의 방리유 문제처럼 구체적인 실천 전략보다 원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나는 전략보다 일반인들이 가진 능력에서 출발한다. 앞서 부르디외에 관한 질문과 연결된 것인데, 이러한 입장은 무능력에서 출발하는 입장과 대립된다. 노동자와 자본가를 대립시키는 방식과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방리유 사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은 ‘소통의 부족’이라는 통념을 말했지만, ‘도시야영’의 활동가들은 ‘혼자 있을 공간의 필요’를 주장하고 창출했으며, 스위스에서 온 예술가들은 방리유에 퐁피듀의 예술작품들은 전시했다. 또한 방리유의 청년들이 이 전시장의 경비가 되고 작품의 가이드가 되었다. 결국 여기에 걸린 문제는 이름 없는 아무나들이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이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

*) 본 요약문은 다분히 저의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제가 필기가 느린 편이고, 통역을 한 번 거쳤기 때문에 두 세번 '번역'과 '요약'을 거친 셈입니다. 특히 첫 째날은 메모를 하지 못해서 인상적인 질문만 옮겼는데, 참고로 주로 나왔던 질문의 요지는 다른 날에도 반복되었 습니다. 특히 이 날은, 현실적인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과 한국 및 프랑스의 현상황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마지막 날은 영어로 진행된 심포지엄이라서, 옮기지 못했습니다. 첫 째날과 넷 째날, 메모하신 분은 올려 주시면 좋겠군요. 다행히, 도서출판b에서 한국 강연을 출판할 때 질답을 덧붙인다고 하니까 그 때 확인이 가능할 겁니다.



질) 당신은 미학과 정치의 접합에서 상징적 보편화의 차원을 강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동되는 배제는 다시 지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즉, 미학과 정치에서 개별성의 차원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답) 나는 초기부터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나의 경우, 19세기 노동자들의 문서고를 뒤지면서, 소위 집단적 해방과 개인적 해방은 결코 나눌 수 없음을 발견했다. 당시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기대와 달리, 노동자 의식이나 하층문화는 없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노력과 그 조건에 대한 탐색이었다. 그것은 상징체계를 둘러싼 투쟁들이었고, 소위 집단적 해방이란 개인의 소소한 감성적 경험을 거치는 것이었다.

 

질) 당신이 허락한다면, 한 가지 무식한 질문과 한 가지 무례한 질문을 하겠다. 무식한 질문은, 당신은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헤게모니론에 바탕을 둔 포스트 맑스주의자로 평가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례한 질문은, 당신과 알튀세르의 거리에 관한 것인데, 알튀세르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는 무엇이며 혹시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는 없었는가?

답)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나는 그람시의 영향을 전혀 받은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나는 맑스주의 내부의 이론적 논란에는 관심이 없었고, 19세기 노동자들의 문서고에 관심이 있었다. 포스트 맑스주의라는 구분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나와 알튀세르 사이에 사적인 충돌은 없었다. 우리의 입장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견이었다. 알위세르의 이데올로기는, 무지한 자와 아는 자의 구별에 근거한다. 즉, '무지한 자-이데올로기-피지배자'와 '아는 자-과학-전위나 무지한 자들의 대변자'로 대별된다. 이것은 알다시피 68년 학생운동에 대한 논쟁에서 불거졌으며, 알튀세르는 학생운동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나와 알튀세르와의 차이이다.

 

질) 당신이 오늘 강연문, ‘감성적/미학적 전복’에서 칸트의 ‘천재론’을 평가하는 부분, ‘천재는 전능한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천재란 예술작품을 예술가의 앎과 의지에서 분리해내는 비인칭적 역량이다’는 언급은 매우 흥미롭다. 그렇지만 실제 작가들은 분명히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미학체제에서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답) 여기서 칸트는 예술가의 문제와 관객의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분명히 예술가의 의도(또는 관념)가 존재한다. 예술가의 이러한 형태의 문제와 관객의 지각의 형태가 존재한다. 여기서 후자가 더 중요하며, 관객들은 작가의 의도와 달리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다. 앞서 언급한 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보통 스승의 지식은 제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혹은 효과를 미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스승의 지식은 제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거나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교육에서 제자의 체험과 효과는 스승의 그것과 구별된다. 이러한 분리나 괴리 차제가 미학체제에 더 적합한 것이다.

 

질) 나는 문화사회학을 연구한다. 당신의 부르디외의 논의에서, 노동자와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또 노동자들의 다양한 층위들에 따라 세분화된 조건에서 각각의 경험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공통의 감각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 증거는 무엇인가?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답) 부르디외에 따르면 취향은 계급별로 차이가 있으며, 계급에 따라서 상징적 자본에 따라 경험 형태가 규정된다고 본다. 또 각 계급 내부에서도 경험은 개별적으로 다양하게 차이가 난다. 그의 문제는 이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차이를 인정할 수 있지만, 나의 문제는 공통세계의 구성이란 감성적, 미적 경험을 보편화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퐁피듀 센터는 예술적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場)과 공간, 즉 개별적이지만 접근이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질) 당신은 칸트의 ‘무관심한 판단’, 혹은 주관적 보편성이 정치를 생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보편성이 달성될 수 있는 조건들이, 가령 매체의 문제가 더 중요하지 않는가? 예컨대, 타문화가 경험되는 가상현실에서, 또한 마치 일반적으로 기술과 관련해서, 공통의 공간에서 볼 수 있지 않는가, 영화가 큐비즘에 미친 사례도 있지 않는가?

답) 우선 보편화에 관해서는, 상이한 문화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타문화의 경험에서 보편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미학적, 경험적 문제이며, 특수성의 문제에서 보편성으로 가는 문제이다. 칸트는 개념이 없이 (작동하는) 아름다움에서 보편화 과정을 보았다. 다음으로 기술과 매체에 관련해서, 나는 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공통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보지 않는다. 특정 매체도 마찬가지인데, 알려진 대로 (둘이 결합된 사례로서) 비디오 아트를 예로 들어 보자. 당시 사람들은 비디오 아트의 새로움, 시선의 변화가 지각방식의 변화를 자동적으로 형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의 형태들, 2008/12/06, 중앙대

질) 당신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자본이 항상 새로운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만들어 내지 않는가? 따라서 그들보다 자본이 항상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답) 물론 모든 체계는 자신의 원리를 지속하려 하고 기능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긴장과 갈등을 겪는다. 자본주의는 갈등(또는 모순)을 내재한다. 네그리와 같은 경우나, 맑스주의자들의 일부는 자본주의 자체는 내부에 파국을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어떻든 하나의 체계로서 자본주의는 자기조절체계이고 재생산을 지속하려 한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전혀 완결적인 자기조절체계가 아니다. 체계가 폐쇄되고 완결되었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항상 무너져 왔으며, 이점에서 자본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질) 제도화나 당의 문제를 거치지 않고, 과연 아무나가 가진 능력이 어떻게 가능한가?

답) 당 형태가 여러 가지 기능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당의 기본 목적은 권력의 쟁취, 획득이다. 반면에, 정치는 국가-당 형태에서 독립된 것이다. 정치는 인민의 고유화하는 힘이다. 정치는 집단적 주체화의 보편화하는 힘에 기초한다. 정치는 국가 통치와 관련된 몫에 관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도 가능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영역과는 다른 공적 영역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틈새, 틈 속에서 ‘공통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틈에서 삶의 형태와 토론이 가능한 영역이 구축된다.

 

질) 탈정체성에서 공통의 형상을 발명하는 것이, 특히 새로운 국제주의와 유사한 논의로 보인다. 또한 그것은 그러한 조건(즉, 새로운 국제주의)에서 가상적인 보편성의 형성과 유사해 보인다.

답) 정치적 보편화의 측면에서 볼 때, 우선 국제주의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가령 국가들 사이의 국제주의, 자본들 사이의 국제주의, 노동자들 사이의 국제주의, 오늘날 국가에 맞서는 국제주의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국제주의가 어떤 실체화된 영역처럼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틈새, 예컨대 이주민의 문제에서 국제주의를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G8 반대 투쟁은 국민국가의 틈새가 아니라, 국제문제 자체에 한정되고 만다. 불법체류자의 문제처럼, 틈새에서 국제주의를 보아야 정치적 보편화로 나갈 수 있다.

 

질) ‘몫 없는 자들’은 이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이미 특정 정체성을 가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탈정체화가 아닌가?

답) (통역자가 보기에)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 같은데 통역을 하자면, 몫 없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의미한다. 몫 없는 자들은 사회(학)적인 특정한 범주, 예를 들어 주변부 주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일정한 정체성에서 탈정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가 가진 능력을 현시하는 자들이다. 특수한 집단에서가 아닌, 누구나가 가진 능력이란 의미에서 ‘전체’이지, 특정한 주민(의 일부)이나 노동자가 아니다.

 

질) 당신이 사용하는 치안(police)의 개념이 푸코가 <생명정치>나 <안전, 영토, 인구> 등에서 사용하는 치안의 사용법과 친화성을 갖는가? 푸코의 개념과 변별점은 무엇인가?

답) 푸코의 경우, 치안을 정치의 경우(또는 사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수단이나 장치로 사용한다. 즉 푸코는 치안을 신체에 대한 기술, 테크놀로지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반면에, 나는 사회의 상징적인 편성에 관련된 것으로 치안을 바라본다. 특히, 보충적인(또는 여분의) 요소를 배제하는 것으로서 치안을 파악하며, 보충적 요소를 기입하는 것이 정치이다. 이것은 권력도 기술도 아니다. 감각적인 것의 나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나눔 등 여러 가지 나눔의 한 가지 방식이 치안일 뿐이다.

 

질) 물론 당신의 주장처럼, 맑스에게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을 소멸시키는 계급이다. 하지만 당신에 따를 때, 프롤레타리아트가 경제적인 피압박 계급이 아니라면 과연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엇인가?

답)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기원은 원래 경제적인 것과 관계없이 시작되었다. 이 말은 애초에는 아이를 낳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말 그대로 상징적인 몫이 없는 자들, 즉 단지 생물학적인 재생산만을 하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사용할 때, 셈해지지 않는 셈을 하는 것이고, 상징적으로 몫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맑스는 물론 경제에서 이 표현을 강조하였지만 정치적인 주체화에서도 사용하였으며, 맑스에게는 이런 측면에서 긴장이 존재한다. 나는 후자를 강조하는 것이다. 네그리 같은 경우, (정치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경제적인) 인지 노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경제적 범주가 아니라 정치적 범주로 사유해야 한다.

 

질) 바디우가 말하는 ‘공백’과 당신이 말하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답) 나와는 달리, 바디우는 정치를 체계 속에서 사유한다. 특히 집합이론에 의존하며, 집합론에서 공백의 존재에서 정치를 사유한다. 말하자면 체계에서, 같은 말이지만 공백에서 주체화가 이루어지는 일반화를 사유한다. 나는 체계가 아니라 독특성에서 정치와 주체를, 또한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정치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슬로건과 발화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과 전체가 관계 맺는 것을 탐색한다. 나는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독특성에서 출발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12/09 04:34 2008/12/09 04:34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simppo/trackback/41

  1. Subject: 랑시에르

    Tracked from [2008/12/10 11:49]
     삭제

    뽀사마님의 [랑시에르 한국 강연 질문과 답변 요약] 에 관련된 글.

  2. Subject: 랑시에르 한국 강연 질문과 답변 요약

    Tracked from [2008/12/10 18:09]
     삭제

    뽀사마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 민주주의와 인권, 2008/12/04, 서울대 질) 최근 한국에서 국방부의 금서목록이 지정되었는데,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은 금서의 매출이 오르는 반면에 헌책방에서 같은 책을 팔면 감독과 단속을 한다. 이 경우, 현실적인 투쟁의 중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