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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민주화, 진보진영 다시 들판에 서라.

올해의 마지막을 가장 그럴싸하게 자알 평가해준 글이 있어 퍼왔다.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활자가 화장실에가서 읽는 신문이지만, 난 오늘도 '한겨레 신문'이 있음에 감사 한다. 

 

모두들, 건강하게 Hppy New Year!!

 

 



5·16 쿠테타의 암흑 속에서도 ‘민주’를 밝히는 작은 불씨들은 꺼지지 않았다. 불씨는 학교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감옥에서 모이고 또 모였다. 그리하여 위수령, 유신, 긴급조치로도 어찌할 수 없는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을 이뤘다. 신군부의 학살 속에서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쳐 결국 6·10 항쟁으로 타올랐다. 

 

멀고 험한 길이었다. 그 도정에 뿌려진 피와 땀과 눈물은 강을 메우고 산을 이뤘다. 그러나 그 위에서 지금의 시민적 권리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냉전의 질곡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뤄냈으며, 군사적 대치 속에서도 인권과 양심, 인류애와 연대라는 진보적 가치를 심을 수 있었다. 이제 6월 항쟁은 스무 돌을 앞두고 있다. 6월 세대는 민주화 이후에 민주적 가치가 이땅에 구현되도록 노력해야 할 스무 살 청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 앞에는 꽃다발이 아니라 조롱만이 가득하다. 민주화 운동은 멸시당하고,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경멸당한다. 오만과 독선에 무능이라는 낙인까지 찍힌다. 가난했지만 가슴 가득했던 자부심은 사라졌다. 한때 기득권자들을 겨냥했던 그 매서운 질책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정녕 민주화·진보 진영의 위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민주주의의 위기에 있다. 정권교체 이후 계속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은 독재자 박정희를 저 깊은 무덤 속에서 살려냈다. 경제적 양극화는 서민들이 재벌 및 수구 정치집단의 상징조작에 놀아나는 양상을 가져왔다. 지난해 국회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가운데 택일하라는 물음에 응답자의 84.6%는 경제발전을 택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퇴행한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이 엊그제 자성하는 모임을 열었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각 세대가 모였다니, 그 울림은 적지 않을 터이다. 원인과 처방에 새로울 건 없겠지만, 인식과 대안을 공유하는 데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손호철 교수(서강대)가 소개한,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때 실종자된 이들의 가족 모임인 ‘5월 어머니회’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5월 어머니회는 지금도 세 가지 금기를 지킨다. 실종자의 주검을 발굴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죽은 게 아니라 지금도 민주화 운동의 현장과 젊은이들 속에 살아 있다. 기념물을 설립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은 민주화 투쟁을 통해 기념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돌 속에 가둘 수 없다. 금전 보상을 거부한다. 생명의 가치를 금전으로 격하시킬 순 없다. 어찌 정신을 돈과 바꿀 수 있을까. 5월 어머니회의 기상은 지금도 아르헨티나의 양심을 밝힌다. 그 등불은 언제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비춘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누가 보상을 받고자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겠으며, 누가 출세를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손을 잡았을까. 그러나 지금 낡은 훈장과 싸구려 보상이 그 정신을 가려버렸다.  민주화는 이뤄졌다지만 더 깊은 상실과 가난을 감당해야 할 이들은 더 많아졌다.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한 민주화는 끝난 게 아니다. 뚜렷한 전망과 현실적 대안으로 사회적 연대를 이루고,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왼쪽 깜박이 켜고 오른쪽으로 질주하는, 무지와 오만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그러자면 5월 어머니회가 그러하듯이, 다시 찬바람 부는 들판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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