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무너짐의 사건

며칠전 있었던 술자리 이야기다.

우리는 얼큰이 취한 상태에서 허름한 꼬치집에 앉아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면서 눈물을 흘린 영화 이야기...

 

당시 술자리 멤버가 남자 네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독특한 화제였던 듯하다.

 

영화나 음악에 별 취미가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은 침묵했고,

 

강한 인상을 풍기던 한 사람은 오토모 가츠히로의 <스팀보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사람은 스스로도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감성을 지닌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산업혁명기의 어떤 치열함같은 것이 뜨겁게 밀려왔었다고 했다.

 

나는 왠지 이해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평소에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려본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기억나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

 

그 영화를 처음볼 때는 나도 독립 다큐멘터리계에 살포시 발을 담그고 있던터라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보다 영화를 형식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반년 정도가 지난 후 친구와 그 영화를 다시 보러 갔다.

 

영화 중반 즈음부터 울기 시작한 나는 그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졌을 때, 왠지 챙피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의외의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바로 <쉘 위 댄스>.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냐고 묻자, 그는

 

주인공인 스기야마가 춤을 배우러 다닐 때 그의 부인이 하던 말 때문이라고 했다.

 

스기야마의 부인은 스기야마가 바람난 것인 줄 알고 오해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건 혹은 대화로 그 오해는 풀리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던진 마음속 응어리진 한마디!

 

“분해...”

 

조용히 내뱉은 그 한마디에 그 사람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쏟아낸 그 사람은 당시 대학생이었고, 아는척 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가 하는 세미나에 그의 여자친구는 동참하고 싶다고 했으나, 그 세미나는 대학원생들이 주가 된 세미나였고, 그는 그 세미나에서 별 볼일 없는 일원 중 하나였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별 볼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세미나에 나오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일이 계기가 되어 그 사람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 사람은 <쉘 위 댄스>를 보았다고 했다.

 

스기야마의 부인이 “분해...”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 사람은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물었다.

 

“혹시 내가 오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 형의 그 울음은 형 안에 남성성이 무너져 내리는 어떤 계기나 사건 같은게 아니었을까요?”

 

그 사람이 대답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 영화, 그 울음 이후로 사람들을 대할 때, 특히 후배들을 대할 때 내 안의 벽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껴.”

 

“그렇군요. 나도 한번쯤 그렇게 울어보고 싶어요.”

 

내 안에는 너무 큰 장벽이 놓여 있다. 아직 깨지 못한 벽.

 

그걸 남성성이라고 칭하든 말든 그런건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혹은 그 이해력 자체, 혹은 배려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무너져야 한다. 무너뜨려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