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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리의 열병

뚜리와 나무씨가 옆집에 들어온 지 한 달쯤 되었나?

(참고로 내가 사는 집 이름이 '옆집'이다.)

어제, 뚜리의 열병 때문에 온 가족이 비상이었다.

 

먼저, 뚜리 소개.

뚜리는 새벽 1시 반-2시 사이에 한 번 깨서 울고,

아침 5시 반-6시경에 다시 한 번 깨서 우는 친구다.

면기저귀를 채워주면 바로바로 오줌을 누며

종이기저귀를 채워주면 오래 여러번 싼다.

아직 똥누는 것을 힘들어한다.

 

뚜리는 사람들에게 안겨있기를 좋아하고, 가끔 기분 좋을 때는 혼자서도 잘 논다.

요즘엔 날마다 뚜리의 목소리에 아침 일찍 깨는데

깨고나면 다시 잠들 수 없어 좋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다.

 

뚜리를 보고간 한 친구는 '다니엘 헤니'처럼 생겼다며

그의 유난히 댕글하고 큰 눈, 긴 속눈썹을 칭찬했다.

6개월 된 아기 치고는 몸이 크고, 팔 다리가 길며 손가락 발가락도 길다.

몸을 뒤집는 기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아직 한쪽으로밖에 못 뒤집는다.

그래서 혼자 두면 방 저쪽 끝에 가서는 못 돌아오고 계시기도 한다는...

 

재울 때는 안거나 업거나 눕혀재울 수 있는데

아직 혼자 잠들기 힘들어하므로 누군가 재워야 잔다.

재우는 타이밍을 놓치면 애가 잠잘 에너지까지 다 써버리고 완전 피곤해져서 더 잠투정을 많이하고 힘들어한다.

따라서 적시에 바로 재우는 게 테크닉.

나는 주로 업어 재우는데, 포대기로 싸고 뚜리 팔까지 포대기 안으로 숙 집어넣은 후

조용한 방에 들어가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재운다.

10여분간 칭얼대며 머리를 등에 박고 침을 묻히다가 오줌을 눠서

내 등짝이 몇 번은 젖었었다. 하여간, 그러고 나면 20여분 안에 잠이 들어 고개가 옆으로 툭 떨어진다.

그럼 바닥에 천천히 눞히고 살짝 깨는데도 토닥토닥 해주면 잔다.

 

 



그저께부터 아파서 한의사가 와 손발 따고 귀 따고 했다고는 했는데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밤까지- 모두들 긴장의 연속이었다.

 

1신.

아침 8시, 뚜리의 열을 확인하고는 연구실 앞마당에 심어놓은 피퍼퓨(fever few)라는 허브를 뜯으러 왔다가

엎어지는 바람에 다리에 큰 멍이 들었다. ㅡ,.ㅜ;;

그런데 그 허브를 끓여서 물에 타 줬더니, 이 자슥이 그걸 거부했다.

속상했다.

 

2신.

연신 '풍욕' 이란 것을 시켜줬는데

30분 동안, 풍욕을 위한 cd를 틀어놓고, 종 소리 한 번이면 이불을 덮어주고, 두 번이면 이불을 뺏는 그런 짓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열을 내리기 위해 특별히

찬물에 손수건을 적셔 온몸을 닦아주었다. 열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지만

의례 그렇듯 열나면 춥고, 추우면 이불 뺏는 게 싫고, 거기에

찬 물수건은 정말 너무너무 싫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뚜리는 울고, 자지러지게 울고, 몸을 뒤집었지만

이틀 동안 7-8번을 그렇게 시켰다.

난, 그 cd에서 나오는 노래가 너무 차분해서 옆에서 누가 아프든 말든 자고 싶더라..

하여간 뚜리는 나중에는 넘 지쳐보였다. 졸려하며 눈꺼풀이 닫히는 애기에게

다시 이불을 뺏고 찬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나무와 달군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난 얼른 자리를 떴다.

 

3신.

연구실 나오려 준비하는데,

뚜리 방에서 뭔가 분주했다.

뚜리 봐주러 온 신짱이 "체온계가 깨졌어요"라고 차분히 말해주었다.

허어어어어억!

난 얼른 뚜리부터 안아들고 옆방에 눞힌 다음, 나무를 내보내고, 창문을 열고

기저귀 등 아기용품들을 밖으로 빼낸 후 매트에 산산히 흩어진 수은 덩어리를 찾았다.

신짱이 한 덩어리로 뭉쳐놓았지만, 지름이 1mm도 안되는 듯한 작은 반짝거리는 알갱이들이 보였다.

흙. 한 시간 내내 장판 밑까지 휴지로 싹싹 닦아가며 대략 치웠다.

뚜리방에 대해 24시간 접근 금지를 명하고 연구실 나갔다.

 

4신.

밤 9시 반경.

뚜리의 얼굴이 새빨갰다. 온몸은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듯했다.

잠을 자더니 더 뜨거워졌다고 한다.

올 초에 내가 열 때문에 죽다 살아난 일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풍욕. ㅡ,.ㅜ

 

곧 나무가 전자체온계와 부르펜시럽을 사들고 왔다.

얼굴이 완전 노래져가지고는 정신이 없어보였다.

전자 체온계로 겨드랑이를 쟀는데 10분이나 걸렸다. 뭔가 정확하지 않은 듯도 하고.

나무와 달군과 승욱과 말랴가 돌아가면서 체온을 재보고는,

이게 정확한가 다시 의문이 들고,

난 옆에 있다 재보니 35.7? 하여간 정상.

뭔가 좀더 정확히 재는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는 혀 밑이고 하나는 똥꼬다.

 

어젯밤 11시, 결국 그의 똥꼬에 체온계를 꽂았다.

흠- 38.7도. 가슴이 두근두근.

나무는 내게 혹시 관장약도 똥꼬에 넣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기 열 날 때는 무조건 관장부터 시키라고 했는데, 자기는 계속 실패했다며...

그래서 뚜리의 똥꼬에 글리세린 10ml 정도를 넣었다.

그리고  2분 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로 부르릉 부브브븡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관장 성공.

모두가 크게 웃었다.

 

하여간, 아기의 열병은 무서웠다.

뚜리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38.7도의 고열을 보였을 때

모두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웬만하면 병원에 데려가자고 했는데-

오늘 아침엔 아직 뚜리가 깨지 않아서 얼굴을 못보고 나왔다.

어쨌는지 모르겠다. 뚜리의 열병이 내렸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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