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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1- 탐라국여행

by Mallya  2009.08.30

 

 

8말 9초.

그 시간이 오긴 오더라.

지구가 반쪽이 나도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서른살 제주 여행.

실로 여행가기 직전 한 달간은 좀 과장해서, 지구 한 귀퉁이가 잘려나가기라도 한듯한 

여파 속을 헤매고 있었다.

아- 나는 갈거야, 떠날거야, 룰룰루-

 

8월 29일 토요일.

그렇게 떠났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해방촌-고속터미널 구간을 페달을 밟고, 목포까지 버스에 자전거를 실어 간 후, 제주까지 승선.

새벽 6시에 출발해 저녁 8시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우웍. 빌어묵을 멀미를 참아가며. ㅎㅎ

항구 근처는 서울 번화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어둑한 가운데에도 호텔 주변 야자나무와 현무암 바닥재 등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제주.  

제주의 가로수와 보도블럭.

근처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야영을 위해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을 물어물어 간 게 이호테우 해수욕장이었다.

이호동에 있으니 '이호'는 그렇다치고, '테우'는 뭐냐? '태우'도 아니고... (이건 나중에 밝혀진다)

하여간 이호테우  해수욕장의 소나무숲 야영장엔 두어팀 정도만 텐트를 쳤을 뿐 한가했다.

역시 여행은 성수기 근처의 비수기를 노려야한다. 그래야

부대시설들이 철거되지 않았으나 한가로이 이용할 수 있으니까. 물론 정취 역시 최고다.

여름의 끝자락. 파도는 아직 더운 바람과 함께 모래를 쓸고 갔다.

욕하며 싸우는 야영객 아저씨와 아줌마만 없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첫날> 라이딩 :12KM

지출 : 143,800원

(버스 37400/김밥 2500+음료 1500+샌드위치4500+담배2100/목포점심12000+목포과일막대3000/배 51600+3000/김밥3000+맥주3000+짱다리1200/제주 저녁9000/쌀9000+초장1000)

 

 

 

둘째날. 새벽같이 일어나 밥부터 짓다.

 

아직 그는 깨어나지 않은 새벽 6시.

난 뭔 지랄로 일찍 깨서 쌀씻고 국끓이고 방파제 구경하고 그러고 있었다.

저 뒤, 벌써 날밝은 바닷가.

 

이런 사진 흔하다고 지우라는 M을 뒤로하고

기어이 올리고 만다.

왜?

내가 얼마나 꿈꾸던 캠핑인데!!!!! 

스물 둘이었나 셋이었나, 혼자 4박 5일 여행한 것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짓거리.

 

하여간 밥먹고 해수욕장 한 바퀴 돌아본 후 바로 빡센 페달질에 돌입했다.

이호테우 해수욕장-곽지해수욕장-협재해수욕장-금능해수욕장...

이 북쪽 해안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자전거로 달릴 때, 맨 위에 올린 그 사진을 찍었다.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내,

느므느므 행복했다.

말이 필요 없이, 속이 씨언해지는- 것도 있고. 

자전거 타고 달리면서 보면 5분 간격으로 해안의 모습이 싹싹 바뀌어 자주 서게 되었다.

어디는 해안이 모래사장인데, 좀 지나면 바위고, 좀 지나면 현무암이고, 좀 지나면 판암이고,

주상절리 깎인 육각모양 무늬들이 바닥을 이룬 해안가도 절경이고, 좀 가면 방파제 나오고,

코너 돌면 또 느낌이 달라지고.

오전 내내 비가 오다 말다 했고, 안개비를 등짝에 맞으며 가다 서다 했지만

해안가 풀밭의 묘하게 포근한 느낌,

그리고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들에서 풍기는 짠내가 우리를 인도하였다.

 

좀 남사스럽지만, 그 정취를 담은 사진 올려본다.

허수아비와 에꾸눈, 제주에 가다!

 

(주의!)인물에 집중 말고, 정취를 즐기시라.

 

 

 

 

 

 

 

 

 

 

 

 

 

 

ㅎㅎ. 정취만 느끼기는 좀 어려울 듯.

 

그렇게 서쪽으로 돌아 제주 유명 관광지가 모여있는 산 중턱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산쪽으로 들어서니, 식물들의 식생이 눈에 띄는데,

나무들이- 한 10미터 넘는 나무들이 잎사구를 팔랑거리면서 높고 치렁치렁하게 자라있고

검은 청록색 땡땡한 감귤이 징그럽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나 그나 약간은 충격이었다.

감귤이 저래 퍼래도 되는 것이냐-

어느 파충류 혹은 설치류 동물을 본듯 잠깐 얼었다 풀려났다.

 

그리고 관광지들을 쉭쉭 지나쳤다. 방립원, 생각하는정원 따위를 지나쳐

무인카페인 '오월의 꽃'에 갔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다가, 커피포트 여섯 개에 커피가루 다 넣어주고 물 넣어주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업구상을 했다. 무인카페인데, 사람도 많고 장사도 잘 되는 듯.

이쁘게 만들기도 했거니와 편리하기도 하고,

발길 닿기 좋은 곳에 편안한 메뉴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쉬어가기 좋은 곳.

여기 사진도 있으나 더더욱 남사스러워 올리지 않겠다.

 

가마오름까지 갔다가 입장료가 몇 천원 든다기에 자전거를 돌려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들렀으면 좋았을만한 곳이었다. 힉.

하여간 괜히 길만 잃고 뱅뱅 돌다가 다시 오월의 꽃 앞을 지나 '오 설록'에 갔다.

 

오, 설록이니, 녹차라떼와 녹차케익 한 조각 먹어줘야 하지 않은가.

배도 고팠거니와, 맛도 워낙 좋았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돈이... 아까웠다.

뭐, 우리와 같은 버렁뱅이들이 노니기엔 너무도 사치스럽고 잘 꾸며진 공간이랄까.

녹차의 맛에 취하기 보다는, 저 쟁반이 놓인 야외 테이블의 훌륭한 짜임을 뜯어보다가

"말*, 나 이거 만들어줘."

"... 어려워."

"이뿐데? 이거 만들기 어렵나?"

"씨*, 이거,.. 아후... 이거, 졸라... 어려워. 몬 만들어."

"그래. 얘네는 이런 거 밖에 두고 걍 테이블로 막 쓰네."

그러면서 씨불씨불 거리며 나와 다시 라이딩에 매진했다.

 

그렇게 산을 넘었다. 이젠 저녁먹고 텐트칠 시간.

그러나 우리의 야영지는 어디이며, 일용할 양식을 사먹을만한 곳은 또 어디뇨.

지도가 벌써 너덜너덜해졌지만, 대정읍 어딘가를 지나 큰 도로, 작은 도로, 몇 개의 3거리 4거리를 지나

길 끝, 서남쪽 해안가의 작은 마을로 진입, 정말로 길 끝에 위치한  '해녀회관'에 들어갔다.

그때 먹은 오분작뚝배기와 갈치국이

우리가 제주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이었다고 자부한다.

아침부터 저녁이 다 되도록 풀코스로 아름다웠던 풍광에 대박 뽀너스였다.

 

밥먹고 근처 하모해수욕장에 갔다.

하모해수욕장엔 아무도,

아, 무, 도

없었다. 우리만, 비바람 몰아치는 제주 서남쪽 해안의 해수욕장 화장실 앞에

텐트를 얹어놓고 히히히- 웃으며 맥주를 마셨드랬다.

 

 

 

그밤, 비바람 몰아치는데

자전거 젖지 말라고 쳐둔 판초우의가 펄럭이는 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누군가 자꾸 우리 텐트를 '스윽' 만지고, 툭 치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나는 한 손에 랜턴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벌벌벌 떨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칼을 쥔 손아귀가 아프고, 힘이 빠지고, 지쳐서 잠들려 하던 찰라,

누군가 갑자기 텐트를 '팍' 쳤다. 

'누구야!'

그였다. 그가 모기를 잡으려 팔을 뻗은 것이었다.

 

조금 울고, 잤다.

 

<둘쩃날> 라이딩 : 66KM

지출 : 50,340원

(팔토시 4000+칫솔2700+참치캔2800+아이스크림2200/오월의꽃4000+담배2갑 4600+오설록11000+해녀회관16000/사과2800+구운김1050+맥주2360+두부1800+연양갱400+조미유부2100+초코다이제1080+칼450+참치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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