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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2-탐라국 여행 2

8월 마지막 날,

여행 3일차, 눈을 뜨니 남쪽 바닷가가  비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지난 밤, 잠자리가 사나워 기분도 꿀꿀하고.

해수욕장 관리하는 아줌마가 등장, 잠시 긴장했었지만, 어차피 손님은 우리 하나.

해수욕장 관리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했다.

그가 열심히 밥을 하는 동안 지도를 펼치고 여기 저기 살펴봤다.

오늘도 미역국에 청량고추볶음, 깻잎짠지로 맛있게 먹었다.

비가 와도

자전거는 달린다.

길이 자꾸 헷갈려 원하던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어쨌거나 마을길을 돌고 돌아 본격적으로 남쪽 바다를 달리기로 했다.

 

 

up hill, up hill~그리고,

down hill~~~~

 

 

 

전날, 산허리를 넘을 때 내리막에서 최고 75km/h까지 속도가 났을 때도 짜릿했지만

가장 짜릿했던 다운힐은 단연 여기.

언덕을 올라가서 그 끝에서 내려오는데 딱 바다와 초원이 펼쳐졌다.

저 멀리 삼방산은 신비로운 뽀스를 어깨에 걸치고 계시고...

 

조랑말들. 왠지 소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곳에 언제나 말이 있다.

 

그렇게 마라도잠수함 타는 곳 앞에 갔다가, 삼방산쪽 길 따라 들어갔다가,

하멜상선기념비 있는 곳에 갔지만,

보고싶은 용머리해안은 출입금지고, 슬슬 다리가 땡겨왔다.

남쪽에선 해안도로를 잘 타지 못했다. 계속 해안길-내륙산간길-해안길-산간길..

지도가 왜 이 모냥이야! 하면서 더 큰 지도를 펼치기도 했지만,

남서쪽 1132도로는 유난히 산길이었다.

우리는 어쨌거나 중문을 거쳐 서귀포로 들어가기로 했다.

전날 무리를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로가 슬슬 오고 계셨다.

 

 

건강과성박물관 앞을 휙 지나 인덕계곡 입구를 획 지나 중문골프클럽 따위를 휙 지나

슝슝슝 지나가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또 길을 잘못들어 중문관광단지에 들어섰다.

왠 호텔들이 이리 즐비하냐-  =-= 기분 바빠서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해안가 쪽엔 길이 없다는

어떤 자전거족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다시 내륙쪽으로 업힐하여 아프리카박물관쪽으로 갔다.

 

 

난 계속 자전거 뒤에서 사진 찍고...

 

다리가 아팠다.

힘줄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의 하이라이트, '주상절리대'를 보긴 해야할 거 아닌가.

이렇게 도로 주행만 할 수는 없다! 라면서 여기 저기 쑤시며 돌고 있었다.

그런데,

주상절리대 근처로 가까스로 찾아가보니,

아까 중문에서 이쪽으로 오는, 평탄한 해안길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쉐엣!

 

하지만, 헤맨 보람이 없지 않았다.

관람료 2000원씩 내야했지만, 들어갔다.

 

<잠깐, 공부>
제주중문 ·대포해안주상절리대는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대포동 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약 3.5km에 이르며, 용암의 표면에는 크링커가 형성되어 거친 표면을 보이나, 파도에 의해 침식당해 나타나 있는 용암단위(熔岩單位)의 중간부분을 나타내는 그 단면에서는 벽화와 같은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다.

주상절리의 크기는 키가 큰 것은 20m 내외로 발달하며 상부에서 하부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고 다양한 형태의 석주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식애를 따라 발달한 주상절리는 주로 수직이나 수평인 곳도 있으며 주상체의 상부단면은 4-6각형이다. 해식작용으로 외형이 잘 관찰되고 서로 인접하여 밀접하게 붙어서 마치 조각 작품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제주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현무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현상과 그 후의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지형 발달과정을 연구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질 자원으로서 학술적 가치와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캬- 물빛 봐라-

한 친구가 저 색을 좌변기 청정제 풀어놓은 색이라 했지만

직접 보고 있으면 저 퍼런색이 눈구멍부터 시작해서  몸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서귀포로 찾아드는 길.

지난 밤, 잠을 잘 못 잔데다가

서귀포 시내에 들어서서 숙박업소를 잡기로 했다.

인근 시장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밥을 해먹고

오랜만에 뜨시게 샤워를 쌰악 한 후

넓은 침대에 누워 캔맥주를 따며 텔레비전을 봤다.

그때까진, 그래도 좋았다.

 

<셋째날> 라이딩 : ?? 한 4-50km

지출 : 여관25000/김치1500+달걀1700+양파300+빵3000+담배4600+컵라면1800+망고하드2000/주상절리대4000

 

 

넷째날,

9월의 첫 날.

여행에 불운한 기운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 여행, 어딜 어떻게 가겠다는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었으니 코스 짜는 것부터

밥 지어먹는 것부터 시간이 빡빡했다.

이래서 한 바퀴 다 돌 수 있겠나...

이런 조급증이 들기 시작하면서 일이 더 커졌다.

마침 서귀포에 m군의 지인이 머물고 있다고 해서 숙소를 그쪽으로 알아보려 찾아갔다.

월평리.

전날 강정마을을 지나며 봤던 마을.

 

 그분은 제주 토박이면서 예술가시다.

문화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데, 우리도 내려와 살라고 자꾸 꼬시는... 흣.

하여간 월평에서 숙소를 잡을 수 있을까 했는데, 서귀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다시 서귀포로 돌아가면 뭐하나.

이때 마음에 갈등이 때렸다.

'다리도 아픈데 쉴까? 아님 코스 하나라도 더 돌까?'

'이래가지구 동쪽을 마저 돌 수 있간? 그냥 숙소가 불안해도, 지인의 호의 무시하고  쭉 달려줄까?'

'비바람치는 해수욕장에서 잠 자도 안 무서워할 수 있나? 안 피곤하나?'

 

하여간에, 우린

바로 앞에 올레길7코스가 시작된다는 말에 별 선택의 여지없이 발길을 향했다.

짐을 그분 차에 실어 서귀포로 보내고,

나와 m은 월평포구에서 외돌개까지 7코스를 거꾸로 걸어가기로 했다.

 

...

...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

...

 

그러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왜?

어쩌다가!!!!

슬프게도, 그 다음날에도 뭔가 일을 서두르다가 카메라 메모리에 있던 사진 중 100장이 날아가버렸다.

가장 아름다운 절경따라 걸으면서 여유롭게 찍어댄 그 100장.

월평포구-알강정-강정포구-풍림리조트-서건도-일강정길-법환포구-수봉로-속골-서귀포여고-돔베낭길-외돌개

총 15.1km의 5시간 코스.

이제 이름만 기억해야하나. 흙.

 

m의 필카에 몇 장의 사진이 담겨 있을거라 위로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냥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밖에.

그리고 남은 일정을 완전히 뒤흔든 하나의 비극.

 

내 다리가 고장났다.

서귀포여고에서 바로 버스 타고 돌아왔어야 했다.

오른쪽 무릎 안쪽 근육이 파열된 것 같았다.

무릎 안쪽이 무릎 앞쪽처럼 부어서 튀어올라왔다.

벌겋게 부은 다리는 이미 페달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m은 월평으로 돌아가 자전거를 몰고 서귀포로 오기로 했고,

난 절뚝이면서 외돌개에서 버스를 탔다.

 

다리를 다쳐서 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밤에 서귀포에 있는 지인의 숙소는,

전날 우리가 묵었던 여관 근처 시장 안에 있었다.

*다방.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다방을 빌려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 기다리는데, 이분 연락이 안되었다.

기다리다가 천지연에 다녀왔었다. 칠성사이다 배경사진으로 나올법한 그런 폭포였다.

지인은 연락이 안되고, 그냥 근처 밥집에 들어갔다.

'창훈이네'.

서귀포항 한쪽 끝에 있는 밥집인데, 5천원짜리 정식을 시키면 제육볶음과 쌈, 생선구이가 나온다. ㅎㅎ

우리는 순두부와 옥돔구이를 시켰었나?

그집의 자리젓을 잊을 수 없다.

밤이 되어 지인과 연락이 되었다.  서귀포항에서 술을 먹었다.

술을 계속 먹었다.

노래를 불렀다. 내가 술먹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면, 얼른 재우는 게 좋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새벽 3시가 되었다.

나중에 계산해보니 맥주 큐팩 산 돈만, 그것도 기억나는 것만  4만원을 썼더라. ㅜ,.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 이야기도 풀다보니 낭창한 밤이 되고 말았다.

이제와 생각이지만ㅡ 여행도 하나의 호흡이 있을터인데

 7박 8일간 여행의 중턱에서 완전히 페이스를 잃었다.

슬프고 괴로운 아침이 기다리고 있었다.

 

넷째날 : 걷기 15.1km와 약간의 라이딩.

지출 :  76,100원

천지연입장4000/떡갈비1500+차비2000+커피2300+담배4600+샌드위치3300+요구르트1400+저녁식사16000+맥주 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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