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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묻은 생과일주스, 그리고 눈물의 커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온몸이 아프고 졸렸다.

뒷산에 벚꽃이 만개하고, 어떤 싯구 같은 것이 떠올랐다가 그냥 잠들어버렸다.

언제나 그렇듯 다리가 찢어질듯 아프고 어깨가 빠지는 것 같다.

이제 한 달째다. 

 

새로 취직한 매장은 그야말로 '바쁜' 매장이라서

7시간 동안 밥먹는 시간 20분을 제외하고 언제나 서서 바쁘게 몸을 써야 한다.

정신은 온통 주문내역과 준비해야할 샌드위치 소스, 깎아야 할 과일에 쏠려있다.

그리고 간간히 숨쉴 틈이 생기면 어딘 가에 주저앉고 싶지만, 냉장고에 살짝 기댄다.

오후 2시에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이미 퓨즈가 나가버린다. 일은 재밌고 사람들도 좋은데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일찍이 그만뒀을 것이다.

사실, 돈이 떨어져 당장 급한 불을 꺼야겠기에 하는 생계 노동이니 말처럼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을 거다.

 

취직하고 일주일 동안은 매일

집에 오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가 잤다.

월요일은 일끝나고 바리스타교육에 가서 또 2-3시간을 더 서서 조교 일을 하니

지난 몇 주동안 월요일 밤엔 몸이 아파 절로 울음이 쏟아졌다.

2-4시간쯤 자고 일어나면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둘째, 셋째 주에는 내가 힘들다고 어쩌지 못하고 울상을 지으니

점장과 사장이 과일깎는 일을 많이 해서 그나마 나았는데

넷째주로 접어들면서 뽑기로 했던 과일알바는 안뽑기로 결정나고 그 부담이

점장과 사장과 그리고 내가 분담하면서 다시 피곤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익숙했던 생활이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그 간단하게 여겨지던 집안일들, 국을 끓이거나 생리대를 빨거나 마른 빨래를 개는 일 같은 것들이

5배 쯤은 힘겹게 여겨져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 주제에 그냥 집에선 TV나 보고 잠이나 자야 하는데 그렇게 살기는 싫어

세니마도 하고 주말 농장도 가고 빈마을 일도 좀 고민하고 하다보니 더더 몸이 아파온다.

날마다 온몸이 쑤시고 특히 다리는 한달 째 알이 베어 있다. 집에서 어기적 거리며 걷거나

아예 기어다니는 꼴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자고 나면 손끝이 퉁퉁 부어 아프고.

그래도 한 달간 무수히 칼끝에 베이고 피흘리고, 그 손으로 과일깎아 쓰라리고 상처가 자꾸 벌어지고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슬라이스햄을 굽는 둥근 팬에 손목 안쪽을 데이고 하다보니

이제 좀 손이 빨라지고 의식없이 과일깎을 때도 조심하게 되나보다.

요 며칠은 피를 보지도 않고 데이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 내 머릿속에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걸 보니 이제 진짜 좀 숙련된 것일까.

 

누가 3-4평짜리 조그마한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시급 5천원짜리 알바가 하는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질까.

나도 처음엔 실감조차 하지 못했던 강도. 상상도 못했다.

생과일주스를 준비하는 거나 커피 뽑고 샌드위치 만드는게 이렇게 힘들줄은.

그래서 엄마는 내가 이런 일 하는 걸 그렇게 넌더리를 떨며 싫어했는가보다.

엄마는 그렇게 10년을 치킨집을 했고 지금은 술파는 노래방을 운영하며 과일안주를 만든다.

예전에 엄마가 부스스한 머리로 낮잠을 자고 나서 벌겋게 퉁퉁 부은 손을 내게 보여주며 울상을 지었던 것이 스치듯 떠오른다.

나라도 딸래미가 돈 좀 벌어다주어 조금이라도 쉬며 살고 싶다고 날마다 부처님게 빌었을 것 같은데

그런 엄마를 무슨 계도라도 해야할 것처럼 면박주면서 회피해온 것이 마음 아프다.

 

지난 주말에 논둑에 가서 쑥 뜯지 말 걸 그랬나.

어제 일 마치고 4.20 집회에 가지 말 걸 그랬나.

무릎이 빠질 것 같고 어깨가 무너질 것 같으니

세상사 어찌 돌아가는지 신문 한 쪽 읽기도 귀찮고 집회에 나가기도 버겁다.

그래도 봄날 하루 낮 쑥 뜯을 기력도, 

내 동지들의 투쟁에 오후 한 나절 함께 노래할 마음도 갉아먹는 이 노동환경을

어떻게 더 밀어붙여 바꿔낼지 앞이 캄캄하다.

그냥 어느 순간에 그만 두는 수밖에.

 

잠시 잠깐 바리스타 노조 같은 걸 떠올려보기도 했는데

생각이 복잡할 뿐이다.

다들 언젠가는 자기 카페를 낼 생각으로 버티다보니 자기 시급을 사장 기준에서 계산하고 따지는 게

나 역시도 그렇게 되는 게. 참.

1천원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내 손님들은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올리면 지금처럼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러 올 것인가.

그때도 눈인사 하며, 내 고된 노동에 연대하며 기꺼이 더 많은 돈을 낼 것인가.

그런 건 일단 오지 않을 상황이다. 사장은 가격을 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쓰기로 하자.

이렇게 드러누워 키보드를 두드리는데도 다리가 아파 신경질이 나니

고민도 쉬엄쉬엄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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