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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에 씨앗을...(5) : 팔당(8黨) 첫 모임

풀이 무성한 깻잎밭과(왼쪽) 새로 김을 매고 씨뿌린 허브밭(오른쪽).

 

 

정리 안 되는 막글.

마구잡이 형식, 뒤바뀌는 화자,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쓴 메모.

정리하려니 한나절은 더 걸릴 듯.

그래도 궁금하신 분은 읽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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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다녀왔어. 팔당에.

함께 나눈 그 밤이 참 따스했어.

비는 쏟아지는데 비닐하우스 농막 안에서 투두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와 깻잎전을 먹었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리는

에코토피아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노래 가사를 썼어.

완성되지 않았지만, 지난 번 열무밭을 만들었을 때

옆의 농막에서 깻잎농사를 많이 지으시는 아저씨께서 오셔서

직파를 해주셨던 모습이 자꾸 시처럼 떠올랐거든.

감기로 다 죽어가던 M은 자전거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꺼냈고

흥에 겨웠던 모야는 젓가락 장단에 노래를 불러주었어.

꼬미는 휴대폰을 꺼내 기타 프로그램으로 Am를 잡았고

지각생은 그날도 역시 김광석 노래를 불렀어.

아마도 이번주에 있을 칼챠파티에 이발사님도 오셔서 기타를 연주해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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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출발하여 팔당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세 번째.

중간 중간 비를 피해 멈춰섰다가 비구름 지나가면 다시 출발해서

구리를 지나 남양주시로 들어섰다. 갑자기 굵어지는 빗줄기에

도농역으로 들어가 아이스크림도 먹고 담배도 몇 대 피웠는데 장대비가 쏟아지고

결국 자전거를 전철에 실었다.

 

 

<- 비가 와서 나무 밑에서 쉬었다.

 

 

 <- 좋아하는 욱순과 이발사님의 자전거

 

운길산역까지 다섯 정거장. 전철을 탈 동안은 비가 안 오더니

운길산역에 도착하니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쫒아다니는 꼴이란. 잔잔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두물머리로 들어갔다.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맨 뒤에 서서 함께 미사를 드렸다.

매번 미사 시간에 도착했는데 그때마다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었다.

친구들이 먼저 미사에 들어가 있기에 따라 들어갔는데

처음 본 사람들과 두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눈인사 나누니 마음은 숙연해졌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주민분들은 몇일간 했던 3보1배 때문에 많이 힘들고 피곤하신 듯 했다.

인사만 나누고 우리는 공용밭으로 나가

저번에 씨뿌린 열무, 상추, 쑥갓 등을 둘러봤다.

 

 

 

쑥갓은 식당 농막 안에 뿌렸는데, 풀이 너무 많이 넘어왔었는지 주민분이 다 갈아놓으셔서 없었고

열무랑 상추는 손가락만큼 싹을 올렸다. 그런데 2주 사이에 공용밭은

무엇을 심었던 곳인지 알기 힘든 거대한 풀밭이 되어 있었다.

함께 온 친구들과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풀을 맸다.

 

 

누구든, 필요한 만큼 거둬가고 능력만큼 일하고 가는 모두의 텃밭. 일산에서 오신 부부.

 

 

 <- 지각생. 얼굴 안 나오고 일 열심히 해서 잘나온 사진.

 

 

 

 

 

낫으로 벤 풀더미가 웅크린 소만큼 밭 저쪽에 쌓여갔고

밭은 조금씩 검붉은 색깔로 다시 바뀌어갔다.

비가 또 오니 내일은 다시 풀이 마구 올라올 것이지만

토마토, 고추, 옥수수, 완두콩이 제 얼굴을 드러내며 서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밤이 되어 모두들 둘러앉았다.

밭에서 뜯고 주민분께 얻은 깻잎을 튀겨 막걸리에 먹었다.

우리, 여기서 무슨 일을 할까?

 

에코토피아를 준비하자고 모였지만, 좀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우리가 팔당에서 뭔가를 하고 싶어 모였지만, 그게 꼭 '에코토피아'이어야 하는지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에코토피아- 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들,

'에코'라는 말이 소비의 중심적인 테마가 된 시대에

모든 것을 '녹색'으로 포장해서 자본화하고 관리하려는 때에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반-시대적' 에코를 말하고 싶어

처음 에코토피아라고 했을 때 어쩌면 난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생태주의적인 생활 시스템들을 실험해보는 것.

이를테면 에너지 절약할 수 있는 특이한 모양의 조리기구들을 사용하고

자가발전 형태로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 등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해서 팔당으로 오는 것도 하면 되겠고

내 주변엔 재주많은 친구들이 많으니 이들이 워크샵을 열어주면 되겠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갑갑했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에게, 또 이곳 농민들에게,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에코토피아가 제시해온 생활 시스템이 어떤 에너지를 줄까?

 

 

 

<-  돌아오는 길. 운길산역에 걸려있는 거대 홍보판.

이 시대의 에코는 팔당 유기농단지를 밀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세계유기농대회를 진행한다.

 

이런 기만술에 실제 생태계는 파괴되고 그걸 지키려는 농민들이 쫒겨나게 된 상황에서 에코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가 중요하다.

에코를 말하고자 한다면 현재 상품화되고 제도화된 에코를 스스로 문제삼는 에코여야 하고,  에코토피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집행위원장님이 세계유기농대회에서 있었던 '유기농이란 무엇인가' 재정의하는 토론을 그렇게 참여하고 싶으셨던 것은 정말로 유기농을 실천하는 자에게 유기농을 정의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 질문이기 때문이듯이,

에코를 실천한다면 그 에코를 정의내리는 행위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플러스-----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으로 만들어지는 자치 공동체를 고민해보았으면.  

지난 주에 잠깐 괴산에 다녀왔는데, 난 수진감자가 에코토피아에 관한 글을 썼던 걸 본 적이 있어

그걸 살짝 물어봤는데 수진감자가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어.

생선을 구우면서 말이지. 수진감자가 허공에 눈을 돌리며 한 첫 마디는,

에코토피아가 그의 삶의 태도, 운동에 대한 생각들을 180도 전환하게 했고 지금도 그 안에 있다는 것.

운동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조직될 수 있구나- 단체의 조직 동원이나 대표자 회의구조 없이도

개개인들이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너무 좋았다고.

 

그렇구나- 자발성. 수평적인 의사소통.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한때 평화캠프에서 그렇게 좋았던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쁨. 그건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방식들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거기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어떤 사람은 티셔츠 만들기 워크샵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캠프 기간 동안에는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평화는 휴식이므로 내내 잠만 자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사람들이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그것,

자발적으로,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실천하는 것.

그때 느꼈던 기쁨은 서로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힘을 싣는 방식으로 아이디어들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새로운 신체적 반응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그런 것들이 너무 멀어져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일들을 홀로 고립을 자초하면서 하기도 하고, 주어진 일들을 버겁게 처리하듯 해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새 나는 평가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고. 

언제부터인가 다시금 절실하게 내게 저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리고

이제와 다시 비폭력 직접행동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까.

 

일상 속에서 그런 자발성과 수평적 의사소통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면

빈집에서의 생활도 좀더 풍요롭겠지.

또한 팔당의 한 공간을 거점으로 삼아서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그런 경험들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면

어느 한 날 한 시에 특정 공간에서 잠깐 있다 사라질 행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어떤 활동이고 삶의 과정이 될 수 있다면 팔당의 에코토피아는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쪄면 처음부터 에코토피아는 그런 의미에서 준비되고 실현되고 있었던 것일지도.

아직은 팔당 두물머리에 와도 일상적으로 뭔가를 해보기엔 뻘쭘한 구조인 게 사실이라,

낮에도 밤에도 사람들이 둘, 셋씩 들르러들 오는데

그냥 한 번 쓰윽 보고 가는 것 말고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저렇게 텃밭도 말씀드리고, 음식도 나눠먹고, 같이 김도 매도록 말씀을 드리니 참 좋아들 하셨는데,

어떤 큰 행사가 없더라도, 언제든 누구든 이곳에서 뭔가 활동을 하고 갈 수 있게 공간을 구성해보면 좋겠다는 생각.

 

무엇보다

관성을 깨고 삶을 의문에 붙이라. 가장 좋은 것, 가장 꿈꾸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거침없이 해보라.

사람들과, 강과 바람과 비와 흙과 함께.

 

 

 

그렇게 이야기가 무르익고

사람들이 붙든 키워드는 이렇다.

 

자발성, 수평적 소통, 비폭력 직접행동, 자치, 생태주의, 일상성, 북적북적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사람들이 해볼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몇 가지 더 생각한 것들을 추가했다.

 

 - 자전거 관련 워크샵들(자전거 수리, 개조, 현 자전거 정책에 대한 토론, 자전거와 자유에 관한 수다)  - 사실 매번 자전거를 타고 팔당에 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수다들이 펼쳐지고 있다.

 

 - 태극권 혹은 택견(두물머리 공간은 신성하고도 연극적인 공간이다. 뭔가 저런 것이 무척 어울릴 것 같은)

 

 - 커피 마시기(커피를 내려먹을 수 있는 도구들을 갖다놓고 다녀가는 사람들이 직접 내려먹을 수 있도록 해도 좋겠다. 커피와 공정무역에 대한 논쟁들도 같이 해봐도 좋겠고. 무엇보다 팔당생협에서 동티모르 커피를 원두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니 커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듯.)

 

 - 샤워장 만들기 (이 공간을 꾸미고, 이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워크샵으로 진행되면 좋겠네. 그러니깐, 에코토피아는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시작된 거라니~ )

 

 - 상영회(좋은 영화를 상영한다고 사람들이 두물머리를 곧장 찾지는 않을 것 같구, 뭔가 특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 공연(팔당 농지 밀고 공연장 세운다고 하는데, 그냥 여기서 이 상태로 얼마나 훈늉한 공연이 가능한지 해볼 수 있지비. 날 잡아서도 가능하고, 몇몇 팀들이 자발적으로 아무 날이나 잡아서 해도 좋고.)

 

 - 주민 간담회(아직 팔당까지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팔당과 관계맺기를 시도할 빌미를 제공하자. 서울 모처에서 해봄이 어떠한가? ----- 하쟈, 6월 30일 수요일 저녁 7시 경. 장소는 미정. 주민분들 2-3분 오신다고 함)

 

 - 팔당 관련 기사와 영상들 모아 함께 공부하기

 

 - 농사워크샵(같이 씨뿌리고, 고춧대도 세워 묶고, 풀도 뽑고 농사에 관한 각종 수다들 떨기)

 

 - 티셔츠 만들기(무지 티셔츠 갖다 놓고 거기에 그림도 그리고 구호도 써서 입고 갈 수 있도록 상설 매대를 만들어도 좋겠다. 돈통도 만들어두고.ㅎ)

 

 - 전혀 엉뚱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워크샵이 있었으면 좋겠다. .... 음.... 내 요즘 최대 관심사는 스마트폰과 트윗질을 어캐 잘 할 수 있냐 하는 건데... 누가 교육해주면 어떨까. ㅋ

 

 - 술을 빚어볼까. 남아날까?

 

 

 그것 말고도,, 이전에 했던 에코토피에서 해볼만한 것들을 건져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 매년 하는 큰 행사고, 한국에서도 몇 번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유럽에서 했던 에코토피아는 일단 특정 공간을 준비해서 기본적인 생활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참가자들이 텐트를 가져와 즐겁게 노는 캠프.

생활 시스템을 만들 때는 외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광 발전기를 돌리자는 식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을 많이 고민했던 모양이다.

식단은 채식으로 하였고,

참가비는 나라별 소득수준을 감안해 요율을 적용하여 지불하게 하고

먹거리 등을 현물로 받아 대체할 수도 있다고 하고. 

제일 재밌는 건

참가자들이 워크샵의 시간표들을 직접 채워서 진행하는 것이었다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준비해와서 직접 시간을 잡고 하는 거지.

누구는 아침마다 요가를 어디서 하겠다 하고, 누구는

뭔가를 만들 워크샵을 오후에 열겠다고 적어놓고 하는 식으로.

영화도 봤다고 하는데, 쏠라 씨어터 어쩌구 하는 트럭이 와서 자가발전으로 했다고.

 

그리고 그 캠프 전에 bike tour가 있었다고 한다.

캠프하는 장소로 오는 자전거 여행이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몇 번 진행되어왔는데, 지난 에코토피아는 '살살 페스티벌'.

새만금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질 때, 해창갯벌에서 3박 4일 캠프. 그 전에 열흘 정도

공간을 만드는 준비들을 했었고.

화덕도 만들고 샤워장도 만들고

케노피도 설치했고,

생태화장실을 만들어 똥오줌을 받아뒀는데, 변산 공동체에서 퇴비용으로 쓰셨다고 한다.

 

 크흠-

이제,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쯤 생기지 않았을까?

제주도말로 '기이~?' 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동의를 구하는 의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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