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 2009/08/29 19:15

코비동지들께...

글쓴이: [민주시민] 한혁 조회수 : 361 09.03.01 07:48 http://cafe.daum.net/coskom/4eyx/2995

 

두갈래의 철길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현재 사용중인 철길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래전에 폐쇄된 것입니다. 예를들어 십여명의 아이들이 현재 사용중인 철길에서 놀고 있었고 폐쇄된 철길에는 두어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고, 마침 당신이 철로변환기 옆에 서있습니다. 아이들을 대피시킬 방법은 없고 오직 당신이 어느 쪽으로 기차를 돌리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생사가 갈리게 됩니다 이 경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폐쇄된 철길쪽으로 기차를 돌리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두어명 희생시켜서 십여명을 살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일터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희생될 두어명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폐쇄되어 안전한 철길에서 놀고 있었는데, 오히려 놀지 말아야할 철길에서 놀던 다른 아이들 때문에 자신들이 희생되는 겁니다.

이것이 ‘다수’의 막강한 특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쓰고 ‘다수’에 속하려고 노력하고, ‘다수’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간략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지난 12월말 회사와 합의한 내용의 핵심은 네트워크팀은 3월말까지 근로조건을 협의하여 고용하겠다는 것이고, 아이티네이드에 대해서는 ‘협의후 합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두가지 줄기인데, 이중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회사가 어찌됐든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그러나 아이티네이드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를 못하겠다며 약속을 파기하고 있습니다. ‘구두약속도 합의아니냐'는 초딩수준의 질문을 하실분은 안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즉 아이티네이드에 대해서는 사장이 그러겠다니 믿어보자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네트워크 동지들이 “우리는 구체적인 약속을 받았고, 더 이상 싸울 수도 없으니 아이티네이드가 희생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티네이드 2년차 이상의 경우에는 고법판결에서 고용의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 경우 대법까지 가더라도 2심판결이후의 급여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개인적 희생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제가 아이티네이드 2년차 이상이라면 절대 소송포기안하고 그냥 재판 갑니다. 미쳤습니까? 그렇지만 조직과 동지들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할 수는 있겠지요. 이 희생은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코비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네트워크 동지들의 태도는 상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다수’라는 것은 그래서 좋은가 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한다”고 서운해하실 동지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사가 아이티네이드 고용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전면파업에 돌입하겠다?

무슨 방법으로 파업에 돌입할 생각입니까?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파업에 돌입하려면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노동위 조정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회사가 조합원에 대한 고용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현행법상으로는 정당한 쟁위행의의 목적으로 인정받기 힘듭니다. 결국 불법파업을 하거나 다른 이유를 대서 절차를 거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즉 임단협 교섭을 하면서 계속 아이티네이드 고용에 대한 제기를 하고, 조정신청을 낼 때에는 다른 이유로 교섭이 결렬된 것처럼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고민해 보시고 파업을 하겠다고 결정하신 겁니까? 아니면 이렇게 고생해서 코스콤에 고용됬는데, 아이티네이드 동지들을 위해 해고와 구속, 손배 때려맞을 것을 각오하고 불법파업까지 감행하겠다는 결의가 있으신 건가요? 도대체 이런 고민을 해보고 내린 결정인지 저는 심히 회의스럽고, 따라서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파업을 결의한다는 말이 현상황을 넘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네트워크팀 선복귀후 현장투쟁을 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다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쟁의조정절차없이 활용가능한 합법전술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민해보셨습니까? 그리고 그 수준의 준법투쟁으로 회사가 밀릴 것이라 생각하기도 힘들고 그러면 상황은 제가 앞서 얘기한 파업결의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조합원 평균임금을 생계비로 지급하겠다는 것도 솔직히 100% 믿기진 않습니다.

회사가 제시한대로 위로금 200만원을 받으면 그걸로 소송비용에 각종 벌금등을 내기에도 부족할 테지요. 여기에 아이티네이드 동지들 생계비를 지급하려면 최소한 조합원 1인당 30만원 이상을 매달 내야 합니다. 이 돈을 매달 조합원 100%가 모은다는게 현실적으로 그리 쉽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우리를 못믿느냐고 볼멘 소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차파업이후 생계비 마련을 위해 CMS 후원회원을 모집했을때 코비는 조합원 1인당 10명의 후원회원을 모집한다고 결의했으나 실제 모집률은 40%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조합원들 상황으로 볼때 한두달 월급 받는 것으로는 그동안 빌린 돈 갚기도 모자란 사람이 태반일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티네이드 동지들이 분란을 일으켰다”는 그럴싸한 명분도 있습니다.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열받아서 못그러겠다’는 핑계거리가 생긴 셈이지요. 군말없이 꼬박꼬박 내는 조합원들이 몇 명 정도이고 누구일지는 동지들도 알고 저도 알고 하늘도 땅도 압니다. 이런 조합원들의 상태나 불만을 최대한 다독이면서 조직이 결의한 기금을 정확하게 걷는 것은 지도부, 집행부의 의지와 실천이 있을때나 가능할텐데, 그건 앞으로 두고봐야겠지요. 게다가 그 돈을 어떻게 걷을 것인지, 예를들어 사측에 체크오프를 요구할 것인지, 조합원들이 자동이체를 신청하도록 조직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대안도 전혀 제시된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판단은 네트워크 동지들이 “우리를 믿으라”며 핵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두가지 대안 모두 사실은 구체적 준비나 고민이 없는 네트워크 선타결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해 집시다!

차라리 아이티네이드 동지들에게 “우리를 위해서 동지들이 희생해 달라. 그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도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진정성있게 설득하는게 올바른 방법입니다.

희생당할 사람들에게 그 희생을 통해 이익을 볼 사람들이 너희가 희생하라며 윽박지르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부의 상황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들어도 믿기지 않을 대책을 내놓으며 자신들이 다수라는 점을 이용하여 마치 모든 정당성을 다 가지고 있는듯이 밀어붙이는 방식이 오히려 조직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봅시다. 아이티네이드는 고용의제가 적용되고 네트워크는 불파 고용의제 미적용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그런데 대법에서 불파에도 고용의제를 적용한다고 정리했고 조금만 기다리면 고법에서 판결이 납니다. 그런데 아이티네이드 동지들이 자신들 먼저 복귀하겠다며 네트워크 동지들에게 ‘회사를 믿고’ 소취하후 기다리라고 요구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경우에도 동지들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을까요? 몇몇 동지들은 그 경우에도 같은 주장을 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지만 입장이 바뀌면 주장도 바뀔 것이라 생각되는 동지들도 많습니다. 제가 너무 코비지부 동지들을 폄하하고 있는 건가요?

 

지난 여름즈음에 문경에서 총회가 있은후 정용건 위원장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정용건 동지가 저더러 “코스콤의 ‘안’수준을 어디까지로 보고있냐”고 물으셔서, 저는 “타결안 수준에는 별 욕심이 없다. 설령 노동조합을 포기하더라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가 함께 간다는 약속만은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미 그 시점에 일부를 희생시킬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그런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미 작년 3~4월쯤부터입니다. 조합원 일부를 버리고 갈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부터 그것만은 막아보고자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지금의 상황까지 왔습니다. 저는 개새끼가 됐고, 아이티네이드 동지들은 조직분란을 일으킨 주범으로서 아무런 기약없이 그저 김광현 사장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텨야 되는 상황말입니다. 제 부덕의 소치이고 실력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일부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그 희생을 통해 혜택을 누릴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집단이기주의입니다. 다수가 자기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폭력입니다. 코비투쟁의 전 과정을 볼때, 가장 마지막까지 가장 열심히 싸웠던 동지들이 누구였는지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동지들이 싸우고 있을때 본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할때 투쟁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던 조합원 명단을 제출해, 정리해고 당하도록 하겠다는 살벌한 조직에서, 오히려 가장 열심히 참여했던 조합원들이 다양한 이유로 탄압당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다수의 담합입니다. 프레시안 인터뷰기사가 나지 않았다면, 정인열 동지의 문자메세지가 없었다면, 학습팀의 사전토론이 없었다면 동지들의 입장이 지금과는 달랐겠습니까? 앞에 열거한 사건들과 지금의 교섭국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입니다. 왜 상관관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일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지, 그리고 사실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일들을 마치 중대한 과오인듯 주장하며 자기 결론을 수용하라고 요구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최근의 신기한 흐름중에 하나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던지 그것이 네트워크의 대동단결에 복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정인열 동지는 보내지 않았다는 문자메세지를 어떻게 황영수지부장이 가지고 있는지, 조합원의 수술비 대출은 거부하면서 음주폭행사건의 벌금은 대출해준 것이 정당한 것인지, 학습팀이 지부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실천해온 것이 왜 문제인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김은아 동지의 글에 대해 ‘돈과 사람을 바꾼다’는 표현에만 분노하고 과연 간담회 결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 보지 않습니다. 제 글에 소와 닭이 출연한 것만 문제이고 제가 개새끼란 쌍욕을 들은 것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상식수준에서 품어봄직한 의문이나 다른 시각의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습니다. 오직 “누가 감히 우리편을 건드리냐”는 살기등등한 호통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작년에 김은아, 이민정 동지가 증권노조에서 해고된 적이 있습니다. 그 여파로 김은아 동지는 이제 곧 10년 넘게 일해온 증권노조를 떠나게 됩니다. 이 동네에서 한창 투쟁이 진행중인 투쟁사업장의 담당자를 해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해당사업장의 반발 때문에 그 사업장의 동의 없이는 담당자 교체나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추측컨대 증권노조 중집회의에서 황영수 지부장이 두사람의 해고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한번이라도 내놓았으면 두사람에 대한 해고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제 당시 상황에서 다른 지부의 동지가 코비의 주요 지도부중 한명에게 “코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동지들인데, 코비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때 그분은 “코비의 실리를 우선에 두고 판단하겠다”고 답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은아, 이민정 동지가 해고된지 얼마후에 그 동지들을 해고한 증권노조의 중집성원들이 수천만원을 들고 농성장에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 수천만원이 ‘코비의 실리’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저는 그 돈을 ‘피묻은 돈’이라 표현했고, 주변의 몇몇 동지들에게 “김은아 이민정을 버린 사람들은 실리를 위해 누구든 버릴 것이다”고 얘기했습니다. 제 끔찍한 예상이 빌어먹게도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요즘 저는 느낍니다.

 

노동조합이 실리만을 추구하고, 그 실리를 위해 동지적 의리를 버린다면 더 이상 노동조합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동지들이 코스콤 정규직들을 왜 무슨 근거로 비판했었는지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원칙대로 갈것을 주장하는 저에게 황영수님은 “대한민국의 모든 노동조합이 FM대로 하냐”고 되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민주노총 산하의 대다수 노동조합들은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으로부터 심하게 일탈했거나 일탈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지금 이모양 이꼬라지입니다. 그렇지만 동지들의 투쟁이 지지받고 엄호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던 것도 그놈의 민주노조운동의 원칙덕분이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코스콤정규직노조가 사무금융연맹에서 제명된 것도, 동지들은 이제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수많은 연대의 손길들과 투쟁기금들도 모두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동지들에게 필요할때만 찾고 실리에 도움이 안되면 버려도 되는게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아닙니다. 지키기 쉬우면 굳이 원칙이란 표현도 쓰지 않습니다.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가기 힘든 길이기 때문에 원칙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동지들이 이 사회에 요구했던것, 코스콤정규직노조나 다른 노동조합들을 비판했던 이유, 다른 동지들에게 요청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기준에 비추어 동지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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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9 19:15 2009/08/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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