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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둘 글 - 2006/08/21 07:01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강하게 살아남으라! 한치의 타협도 없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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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07:01 2006/08/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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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둘 글 - 2004/09/14 09:48

나는 흙이다. 흙 중에서도 인간들이 쓰는 도자기나 토기를 만드는데 유용한 고령토의 일족으로 태어났다. 당연히 나나 내 친구들의 꿈은 名人의 눈에 띄어 그의 손에 빚어져 멋진 자기나 토기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궁에 진상되거나 귀족들의 은밀한 벽장 속에서 온갖 칭송과 우러름을 받으며 오래오래 사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었다.

어느날 어느 도공이 나를 선택했다. 그 도공은 국내 최고의 명인이었다. 그가 만든 자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왕궁 납품 아니면 대갓집행의 길을 걸었기에 나는 뛸뜻이 기뻤다. 이제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듯 했다.

그 행복감은 나를 불가마 속의 뜨거움을 견디게 했고 물레 위의 어지러움도 웃어 넘기게 했다. 온갖 고통을 즐거이 이겨내던 내게 마침내 완성의 순간이 다가왔다. 가마에서 나를 꺼낸 도공은 "됐다"는 환성을 지르며 나를 고이 모셔 두었다. 그때까지도 행복했다.

그러나 우연히 옆에 있던 거울을 쳐다본 순간 그 행복은 천리 밖 만리 밖으로 달아났다. 거울에 비친 것은 내가 듣도보도 못했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괴한 토기의 모습이었다. 주둥이는 누가 먹다 남은 찐빵 모양 찌그러져 있었고 항아리 귀 (항아리를 드는 손잡이)는 코끼리 귀처럼 넓적한 모양으로 삐져 나와 있었다. 세상에... 이것이 이 나라 최고의 명인의 솜씨란 말인가. 그는 뭐라고 했던가.. "됐다"고 환성을 지르지 않았던가. 되기는 뭐가 되었단 말인가.

나의 뒤를 이어 가마에서 나온 동료들이 나를 보고 배를 쥐고 웃어 댔다. 그들이 분주히 왕궁으로, 귀족의 집으로 배달되는 동안 나는 찌그러진 입과 길게 늘어진 귀를 세운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자살을 기도했다. 안간힘을 다해 내가 세워져 있던 벽장에서 굴러 떨어지는 순간, 명인은 몸을 날려서 나를 받아 냈다. 그리고는 내 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비단으로 세 겹 네 겹으로 싸서 나의 자살 기도를 막았다. 이제 나는 자포자기에 빠졌다. 그래... 과연 네가 나를 어디로 데려 가나 두고나 보자.

어느날, 명인은 나를 가슴에 안고는 집을 나섰다. 왕궁이나 귀족들이 사는 거리와는 반대 방향, 성문밖 농민들의 마을이 그의 목적지였다. 대체 누구에게 나를 보내려는 건가. 이 몰골로는 어떤 비천한 농꾼이라도 물그릇으로도 쓰려고 하지 않을 텐데....

명인은 한 누추한 집의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나온 집주인을 보았을 때 나는 또 한 번 경악했다. 그는 농사일을 하다가 두 손이 잘려나간 사람이었다. 명인은 그가 나를 손 없는 팔로 가볍게 들 수 있게끔 항아리 귀를 코끼리 귀 모양 크게 만든 것이었고, 그의 가슴에 들어맞게끔 내 입을 찌그러뜨렸던 것이다. 명인의 솜씨 때문이었을까.. 내 몸과 농민의 몸은 마치 한몸처럼 어우러졌다.

무언가 내 몸 안에 떨어졌다. 처음으로 내 그릇에 담긴 것은 농민의 눈물이었다. "나으리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목마를 때 제 팔로 물을 떠먹을 수도 있고 수프도 옮길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나으리의 이름은 지워 주십시오. 이 불쌍한 몰골의 토기가 나으리의 명성에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이 말에 명인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내 생애에 한 사람에게 이렇게 유용한 그릇을 만들어본 적이 없네. 나는 아름다운 그릇은 많이 만들어 봤으나 한 사람에게 그토록 절실한 그릇을 만들어 본 적은 없다는 말이네. 왜 내 이름을 지우겠나. 이 토기는 내 생애 최대의 작품일세. "

명인의 말을 들으며 농민과 나는 더불어 울었다. 나는 이 나라 최고의 명인의 최대의 걸작이 된 것이다. 고고하고 우아하게, 하지만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신세로 벽장 속에 갇힌 도자기 친구들과 달리, 한 사람에게 가장 값지고 소중한 한 몸같은 도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물론 도자기의 삶은 자신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빛내며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 삶을 포기한 데 대한 후회도 없다. 그대.. 누구에게 절실함이 되어 본 적 있는가, 그 기쁨을 혀에 묻힌 적이 있는가.

 

* 어딘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게시판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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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09:48 2004/09/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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