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태 지회장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이 올해 투쟁을 가늠하는 투쟁이 될 지 짐작하지 못했다. 돈으로서의 가치조차 희미했던 30원 때문에 노동자 한 명이 죽음을 택할 줄은, 또 그 죽음이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전으로 모이게 하고, 다시 전국으로 흩어져 총파업을 준비하게 할 줄은 예상조차 못했다. 화물연대 노조 광주지부 박종태 제 1지회장은 지난 3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숲 속, 아카시아 나무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나이 38세.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동지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려고, 대한통운 네 까짓 게 얼마나 버티나 보려고 그 자리를 택했다. 대한통운은 지난 3월 16일 문자메세지를 통해 제1지회 소속인 대한통운택배분회 화물연대노동자 78명을 정리해고 했다. 노조는, 박종태 지회장은 특수고용직인 화물노동자의 노조활동 인정과 수수료 30원 인상,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대한통운을 향해 간절히 외쳤다.
“내가 박종태고 당신이 박종태다” 고백컨대, 나는 그리고 내 곁의 노동자들은 지난 3일 까지 그들의 투쟁에 관심이 없었다. 4월 말 대전 대한통운 앞 인도에서 집회를 하던 노동자의 발이 도로를 밟았다는 이유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거참 너무하네. 노동절 끝나면 한번 가봐야지’였지, ‘지금 당장 가야겠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들려온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 대전에서 나는 “종태야, 그토록 기다리던 동지들이 왔어.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네가 웃으면서 좋아할텐데”라고 오열하는 택배노동자들과 마주쳤다. 그러나 택배노동자들은 “내가 박종태고 당신이 박종태다”라며 “종태가 우리보고 빨리 투쟁하라고 동지들을 보내주었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날 이후 고인을 중심으로 특수고용직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외침이 대전과 전국으로 민들레 홑씨처럼 퍼져나갔다. 정부와 경찰 역시 고인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곤두서고 어떻게든지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다.
군홧발로 투쟁을 잠재울 수 없다 결국 사이렌 소리와 군홧발에 짓밟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했던 16일 밤 대전, 고인과 함께 투쟁하고자 했던 노동자민중대회 참가자 486명이 연행됐다. 대전지법은 개원 이래 단일 사안으로 최대 인원인 32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펼쳤고, 곧이어 경찰이 대전에서 최초로 민주노총 대전본부가 있는 화물연대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현재까지도 경찰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들었던 만장용 대나무를 ‘죽창’이라 통일해 부르기로 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고, 언론은 택배노동자들을 폭도라 지칭하며 누구든 빨리 구속하라고 악을 쓰고 있다. 이에 택배노동자들은 더 큰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통운이 아닌 그 뒤에 숨어있던 금호 아시아나와 정부,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하수인 경찰과 언론을 향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투쟁은 택배 노동자만의 투쟁이 아닌 건설과 각 지역 현장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외쳐질 것이다. “억울한 종태의 영전에 승리의 깃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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