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여
아마 독자들 중에는 이게 뭔 소린가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줄 안다. 그동안 이 신문을 한 번이라도 접해봤거나 다르게라도 들어본 분들은 그래도 얼마만큼은 이해가 되시겠지만 처음 받아보는 분들이나 달리 아무런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기사를 보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한 번 관심 갖고 읽어보길 권한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 분들은 확인삼아 보면 되겠다.
정치 환경
실망스럽더라도 현실은 삐걱거리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가닥이 잘 잡히질 않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의지와 역량의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객관적으로 지난 10여 년에 걸친 진보정당 운동이 끼친 폐해가 너무 크다는 점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진보정당 운동은 노동자정치의 핵심인 ‘대중의 자기 권력화 의지’를 사실상 약화시켰다. 즉 대중 자신이 권력의 주체로 성장/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오히려 후퇴시키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분당, 즉 진보신당의 출현이 이 점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많은 현장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목격하면서 그나마 존재하고 있던 노동자정치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접고 오히려 염증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처음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비판적으로 대해왔던 노동자들한테는 오히려 지금 상황이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전면화/대중화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틀에서 봤을 때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아직은 크며, 전자의 파급력이 후자의 동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세력 및 이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의 정치 역량이 이와 같은 정치 환경 앞에서 아직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딘 변화
문제는 객관적인 정치 환경만이 아니다. 사회주의 정치세력 자신이 취하고 있는 태도에서도 아직은 눈에 띄는 변화의 모습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그들 각자가 처한 조건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긴 써클(작은 정파)운동 시절을 통해 몸에 밴 습성과 경험에서 좀처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기 조직 중심의 사고틀에 갇혀 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논쟁과 검증’ 과정이라는 모양을 띠고 있지만 그 실상을 보면 대단히 폐쇄적이며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자신만을 정당화하고 발생된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외부에 전가시키는 ‘알리바이’ 운동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런 양태는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 속에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정당한 문제제기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러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토록 크지 않다. 그 보다는 오랜 폐쇄된 조직활동 속에서 몸에 익숙한 각자의 생존 방식에 의존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더욱 크다. 똑 같은 의미를 표현하거나 전달하기 위해 쓰여 지는 시간과 정열의 낭비가 많다. 이것이 심각한 것은 대중의 언어나 정서와는 유리된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상호침투나 교류가 일어나기보다는 일방적인 관철을 위한 목소리 높이기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기회 비용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오히려 냉엄한 역사의 복수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지금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중이다. 진보정당 운동에 노동대중을 방치한 대가, 지난 시기 각자의 생존을 우선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세력 사이가 단절된 채 지나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정치세력 사이의 통합과 단결의 기운은 매우 더디게 형성되고 있다. 주객관적으로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이를 담당하고 감당해야 할 사회주의 정파의 활동 속도는 이를 충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차피 치러야 할 것들이며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를 경유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일종의 말 맞추기 과정을 겪고 있다. 똑 같은 의미를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정열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단지 의지나 능력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그 만큼 전 세계 사회주의 운동이 처한 조건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20세기 혁명운동의 실패를 딛고 새롭게 운동을 일궈야 하는 후세대가 겪어야 할 불가피한 과정을 밟고 있다.
마지막 기회
위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주의 정치세력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 시도일지 모른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고 있다. 겉으로는 제 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느린 속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분명히 형성되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의 상과 성격, 사회주의 강령, 사회주의 전략,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둘러싼 토론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당 건설 경로를 둘러싸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사회주의 당 건설 운동을 전면화/대중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는 이미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좀 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공동으로 느끼고 있다. 어느 정파도 독자의 역량만으로 또한 사회주의 정파만의 통합만으로 당 건설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장에서의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펼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다.
사실 이런 것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는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어려움과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당 건설 운동은 뒤로 돌아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시작이 어렵다고 끝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은 노동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 단계를 밟고 있는 중이다. 대중과의 전면적인 교류를 이루어 나가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그 차원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한편에서의 난장과 한편에서의 소통과 타진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펼쳐나갈 활동력을 지니고 있으며 활동할 의지와 의사가 있는 전국의 활동가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당 건설운동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비약이 이뤄질지는 아직은 불투명하지만 그를 위한 축적이 더딘 속에서도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고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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