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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스페이스 공감에 주현미가 나온다. 소개가 트로트가수 주현미가 아니라 보컬리스트 주현미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주현미다. 아마도 울 할머니가 주현미를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익숙하고 친숙함을 추구한다는 것만으로 주현미에 대한 나의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보컬리스트'주현미라는 소개에서 드러나듯이 주현미자체가 뛰어난 보컬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김지애나 다른 트로트 가수중에 유독 주현미만을 좋아했던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로 한발짝씩 다가서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혹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주현미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주현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는 친구들에게 골방늙은이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트로트는 어른들이 즐기는, 그것도 감상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술자리에서 얼굴이 불콰해져 소주병에 숟가락 꼽고 부르며 나머지는 젓가락으로 반주를 맞추는 음악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신승훈이나 서태지 이승환 015B 등을 좋아하기 위해 애쓰며 그 가수들의 노래를 외워부르곤 했다. 그후로 트로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가사를 중요하게 듣는 나의 입장에서는 온통 사랑노래 일색-그것도 통속적이고 신파조로 흘러만가는 트로트의 저급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주부가수왕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부들은 BMK나 박정현 등 탁월한 보컬들의 노래나 최신 곡들을 부르는데 초대가수로 나오는 B급의 트로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왠지 서글플 정도로 촌스러웠다. 트로트를 사랑한다는 것은, 트로트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 또한 그 촌스러움을 뒤집어 쓰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전람회, 김광진, 이소라 등의 좀 더 고급스런 가수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안치환, 윤도현 등의 힘찬 가수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산울림이나 김광석, 정태춘 등을 찾아들으면서는 스스로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착각도 했었었다. 트로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 빠지면서부터다. '낭만에 대하여'는 트로트의 기본공식이라 할 수 있는 유치하고 뻔한 사랑이야기의 가사가 아니었다. 무언가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실린듯한 최백호의 목소리가 가사를 읊조릴때 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를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오지혜가 '사랑밖에 난몰라'를 부를 때 과연 좋은 노래란 어떤 노래일까에 대해서 또 한 번의 심각한 감흥이 일었다. 그리하여 심수봉의 노래들을 다 찾아들었다. 그 노래들의 가사는 역시 트로트가 가지고 있어야할 덕목들을 충실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심수봉의 코킅에서 위태롭게 떨어지는 목소리 또한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의 두곡이 트로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그 전까지는 농활가서 분위기 띄울때 부르는 노래정도였던 음악이, 기쁘거나 슬플때 위로나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스페이스 공감에 나온 주현미는 자신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팝송들을 적절히 뒤섞어 부른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신사동 그사람'과 '비 내리는 영동교'다. 나는 신사동이 어디 있는 동네인지도 모른채, 영동교가 어느 강에 있는 지도 모른채, 가사에는 하나고 감정몰입이 안된채로 주현미의 노래들을 나름 구성지게 따라부르곤 했었다. 이제 다시 말할 수 있다. 주현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중 하나라고. 그녀의 보컬은 그 진부한 가사마저도 가슴을 후벼파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공감에서 주현미의 노래를 듣게 되어서 참 고맙다. +그러나 사실 내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노래는 '나 어떡해' 참 쉽게 쓰여진 가사같은데.... 가장 진실되게 쓰여진 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무슨 멋있는 말들로 치장하는 노래들은 가식처럼 느껴진다. 무슨 다른 말이 나올까. 그런 상황에서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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