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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 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들...

"나는 무언가를 완전하게 믿고 있다는 것이 왠지 꺼려진다. 댄디즘이 생겨나는 것 같아서. 댄디즘은 영화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몰아가게 만들고 그런 방식은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없게 만든다. 영화는 그런 구차한 것이 아니다." - 이누도 잇신 감독 인터뷰 중에서... <히미코>는 3세기 중반에 일본의 규슈기역(긴키지역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에 있던 마마타이국(일본 최초의 국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의 여왕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최초의 왕이기도 하지오. 그래서 남자이면서 여자이기도 하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옛 여왕의 일음을 빌려서 모종의 유토피아를 민든다는 게 너무 은유적인 설정이 아닌가요? - 씨네 21 블로그, <한 일본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영화> 중에서...


http://blog.cine21.com/trb?22098 씨네 21 블로그, <한 일본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영화>에서 번역해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인터뷰 -- 우선 이 영화가 언제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말해달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기획되기 전에 오시마 유미코(주=일본 만화가)의 "츠르바라츠르바라"를 영화화시키고 싶어서 와타나베 아야씨(주="조제"의 시나리오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스토리가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미술부분에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제2호로 멈쳐보렸다. 그런데 2000년말에 프로듀서인 그보타 오사무씨가 마니라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양로원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이걸로 영화를 찍으면 어떻느냐고 제안해줬다. 나는 "츠로바라츠르바라"를 읽으면서 동성애자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오시마 사토코의 다른 만화중에 복권에 당점한 여자애가 아파트를 사니까 그 아파트에는 노인만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이야기의 동성애자판을 찍으면 어떨까 싶었다. 실은 그때 와타나베 아야씨는 따로 늙은 아버지를 간호하는 여자 이야기를 구성했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한가지로 섞혀서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가 생겼다. 시나리오를 고치다가 먼저 "조제"를 찍게 되었으니 "조제"의 촬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시나리오작업에 들어갔다. --왜 "츠르바라츠르바라"를 영화로 찍으려고 했느냐? 첫째는 내가 원래 오시마 유리코 팬이라서다. 둘째는 아무래도 내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워낙 "마음에 와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동성애자들이나 "둘이 지껄인다" "오사카 이야기"에서 그린 개그맨들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무슨 "해방된 사람들"처럼 보인다. 여태까지 스스로가 살아온 일반사회나 생활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 발을 내뎌야 한다. 거기는 힘들지만 자유로운 곳이며 동성애자도 그런 장소에 있다고 여긴다. 물론 이건 내 멋대로 상상한 것이지만. 아무튼 "츠르바라츠르바라" 준비 때문에 동성애자에 관한 자료를 많이 읽고 있었고 그것이 자연수럽게 "메종 드 히미코"에 결부되었다. -- 와타나베 아야씨보다 당신이 더 적극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커뮤니티를 무대로 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와타나베 아야씨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였으니까. 무대가 동성애자들의 양로원이 되어서 그녀가 처음에 생각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나는 동성애자들의 자료를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그들이 억압당한 역사 같은 것을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와타나베 아야씨는 오히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요시했던 것 같다.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잘 섞혀 있는지는 실을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잘 몰랐다(웃음) 그러나 어떤 작품이 되는지 잘 알면서 찍기보다 훨씬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하루히코와 사오리가 성적 관계를 맺는 대목은 어떻게 생겼느냐? 와타나베 아야씨와 상의하면서 이 작품이 무슨 영화인지 모르게 되었을 때 나는 모종의 벽 같은 것을 타고 넘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목이 필요했다. 진짜 동성애자들은 이 대목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나와 와타나베 아야씨에게는 있을 수 있어 보였다. -- 크랭크인은 2004년 9월 25일인데 최종고를 쓰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뭐죠? 크랭크인 직전에 사오리의 어머니 이야기를 좀 더 강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죽은 사람이 한 것이 영화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도 표현하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사오리의 어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후도 가끔 만나고 있었다는 설정으로 했다. 양로원을 지운 아버지도, 성관계를 맺으려고 한 하루히코와 사오리도, 헤어진 전남편과 만났던 어머니도 "뭔가를 시도하려고 한 사람"이다. 어떤 결과가 되는지 간에 각기 입장에서 뭔가를 시도하려고 한 것이 중요하다는 매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컨셉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 캐스팅에 관해서, 먼저 오다기리 조씨와 시바사키 고씨에 대해서 말해달라. 오다기리꾼 이외에 이 역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카르이 미라이(밝은 미래)"속에서의 그의 모습을 보고 너무 섹시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시바시키 고씨는 일전에 티비 프로에서 만났을 때 같이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틀림없이 지금 가장 빛나는 여배우니까. 그런 사람이 사오리 같은 수수한 사람을 연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워낙 오다기리꾼이나 시바사키 고씨처럼 스타성을 가춘 사람이 좋거든. 그들이 지닌 빛이 영화를 리럴리티를 줄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수수한 리얼리티에 빠지면 재미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스타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니시지마 히데토시씨는? "에일리언"속에서 '그들은 먹는 것도 사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생물으로서 완벽하다'는 대사가 있는데 내 안에서 도장회사 상무는 그런 케릭터였다. 그런 역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니시지마 히데토시밖에 없다고 여겼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씨에게는 스스로가 나오는 씬 이외는 대본을 읽지 않아도 관찮다고 했다. 물론 읽었지, 뭐(웃음) 아무튼 상무는, 예를 들어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가 티비에서 방송되고 있다면 곧 채널을 바꾸는, 그런 캐릭터다(웃음) -- 히미코(사오리의 아버지)역을 맡은 다나카 민씨는 언제 캐스팅했느냐? 가장 마지막이다. 제일 중요한 캐릭터인데 좀처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무척 멋진 아저씨기 눈에 뛰었는데 그사람이 바로 다나카 민씨였다. "이것이 운명이다. 절대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다"고 내 멋대로 생각해서 제작화사를 통해서 출연요청을 했는데 좀처럼 승낙을 받지 못했다. 다나카 민씨가 나를 만나서 결정하고 싶다고 하니까 야마나시형까지 만나러 갔다. 거기서 2시간쯤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더니 출연을 승낙해줬다. 게다가 다나카 민씨는 한번 동성애자를 맡고 싶었더라. 다나키 민씨는 나에게는 이상적인 배우였다. 카메라앞에서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를 가장 중요시하는 배우니까. --이 영화에는 진짜 동성애자도 출영한다. 양로윈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그중의 몇명은 진짜 동성애자다. "바디"란 잡지에서 공모하거나 동성애자의 배우나 게이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결정했다. 나로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출연시킥고 싶었다. 만약 일본영화에 자주 나오는 조역배우가 나오면 관객들이 "이 사람은 실은 동성애자가 아니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다. 출연해준 사람들은 모두 다 평상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고생한 적이 없었다. -- 호소노 하루오미씨의 음악과 동성애자들의 의상담당인 기타무라 미치코씨는 당신이 직접 요청했느냐? 그렇다. 호소노 하루오미씨는 애니영화"은하철도의 밤"의 음악을 듣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다. 같이 작업하면서 느낀 것은 멜로디뿐만아니라 음색 하나하나에 대해서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호소노 하루오미씨는 거짓말처럼 착한 사람이다(웃음) 내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해줬다. 의상담당의 가타무라 미치코씨는 반대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해줬다. 그녀에 관해서는 그녀가 승낙해줬을 때 모두 잘 할 줄 알았다. -- 무대로 한 양옥집은 원래 레스토랑이라고 들었다. 시나리오에서는 러브호텔이라는 설정이었는데 나는 히미코라는 캐릭터와 건물 분위기가 일치되는 양옥집이라면 호텔이 아니라도 관찮다고 생각했었다. 스탭들이 찾아준 건물을 많이 보러 가봤는데 좀처럼 좋은 것이 없더라. 그래서 프로듀서인 그보타 오사무씨에게 좋은 집이 없다면 촬영을 그만두자고 했곤 했다(웃음) 막바지에 와서 조감독과 제작쪽 사람들이 그 집을 찾아줬다. -- 영화속에서 갑자기 행복감 넘치는 댄스씬이 나와서 놀랐다. 내가 워낙 그런 짓을 하고 싶어져서다. 그때까지의 묘사의 분위기를 거기서 부수려고 했다. 오다기리꾼에게도 시바사키 고씨에게도 춤추는 사이에는 캐릭터를 잊어달라고 했다. 그 장면 이전도 그 장면 이후도 상관없이 거기서 한번 관객들으로 하여금 기분전환시키려고 했다. 그 후에는 무거운 씬이 계속 나오니까.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서 소감이 어땠느냐? 재미있었다. "조제"를 봤을 때는 실패한 데가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그런 부분이 있어도 왠지 마음에 안걸리더라.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영화가 있어도 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발표 기사회견 때 당신은 "젊은이들이 봐줬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개인이 각기 뭔가를 시도한다. "메종 드 히미코"는 그런 "도중" 이야기다. 비록 그 시도가 실패해서도 뭔가를 시도했다는 행위가 남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젊은이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싶었다. 촬영의 비교적 후반부에서 "이 양로원은 가짜다"는 사오리의 대사를 새롭게 추가했다. 그 대사에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이 장소를 만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매시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남자들은 조직을 만들어서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집단으로 뭔가를 바꾸려고 하거나. 와타나베 아야씨가 쓴 시나리오속에는 그런 것에 대한 비판 같은 것도 느꼈다. 개개인이 나름대로 스스로의 벽을 타고 넘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한다. 그런 시도가 결국 남의 가슴에 남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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