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s2 : 축복 받은 조건

축복 받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도, 심지어 운동권 내에서도 나의 조건들이 자유를 얻은 바 없었으나,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위한 단계의 하나가 '가족'의 해체라면 난 단 한 차례 해체되어본 적도, 관계의 단절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난 오히려 요즘 축복받았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미숙하고 감정조절에 능숙치 않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고, 일찍이 아빠라는 존재는 사회에 환원한 채 '존경하는 전교조 교사'로 관계 진화를 한 지 오래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을 경험했고, 부모는 어린 나와 함께 성장했다.  한 때는 아빠의 라이벌이자 전 직장 동료의 아버지로부터 해체된 가정을 확인받고,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전교조 위원장 선거기간 당시에는 연락이 끊긴 지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낯선 전화한통으로 엄마는 별거상태를 인정해야 했지만, 스스럼없이 인정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은 난 그들보다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해체는 커녕 난 단 한번도 관계에서 도망쳐본적도 없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왔다. 나는 그 관계가 부모자식간일지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난 그렇게 그들에 대한 나의 책임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난 어리광부리는 엄마랑 함께 살고 있으며, 아빠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지 못할뿐더러 모두에게나 다가올 그의 죽음은 따뜻할 순 있어도 '객사'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안부를 묻고, 가족 행사에 참여를 유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퍽 축복 받은 조건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난 내 마음에 맞는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고, 무인도에 혼자 들어가 자유로이 사는 것은 70살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 좀더 세속적일 것이고 현실에 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다.  혼자 날 때 보다 관계 속에서 공동체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더 높고, 멀리 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뭐든 시작하기 좋을 만큼 난 참 많이 성숙했고, 강해졌음을 느낀다. 더 파괴되고 분열되도록 더 깊이 들어가볼 참이다. 단지 아쉬움이라면, 응석을 부려보지 못한 것인데, 가능하면 이런 것도 미친 척 부려볼 것이다. 나의 응석을 받게된 그 누군가도 어떤 관계 속에서 성숙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