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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4차 총회,
혁명정치를 폐기하고 조직을 유지하다.
이성효
지난 6월 사노위의 3차 총회는 공동실천위원회로서의 사노위가 출범시 노동자계급에게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이루어내 추진위로 전환하겠다고 밝힌대로 1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노위 활동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의 전면화/대중화 등을 비롯,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했으나 반면 내부적으로 도저히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이 불가능했고 이에 따라 추진위로 전환할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 결과가 1년간 강령위를 비롯해 전조직적으로 논의되었던 강령초안이 단일화에 실패한 것이었고 3차 총회는 강령통일에 실패했으므로 출범시의 계급에 대한 약속대로 해산을 선언했어야 마땅했다.
예정된 결과
그러나 소수파(이후 사노위 해산 선언자 모임으로 활동)가 제기한 강령통일 실패에 따른 해산안은 부결되었고 다수파는 소수파의 퇴장 후 사노위의 출범/합의 정신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결정 -- 강령위를 새로 구성해 강령단일안을 마련해 4차 총회에서 유보없이 강령초안을 채택한다는 -- 을 한다. 이는 1년간의 사노위 활동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의견을 가진 회원들의 토론과 논쟁, 실천활동을 통해 강령/전술/조직상에 화해할 수 없는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4차 총회에서 다수파의 입맛대로 강령안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었고, 이 결정으로부터 이미 내적인 야합으로 조직유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잔존 사노위의 행보는 예정된 것이었다.
연방주의와 관료주의
잔존 사노위는 9월 3-4일 4차 총회를 열었고 이 총회를 통해 ‘3차 총회에서 유보된 강령초안이 채택됨으로써 공동실천위원회에서 단일조직으로 위상을 전환하여 추진위 출범계획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3차 총회까지 사노위의 당건설 투쟁의 경로였던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통한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이 마치 강령건설이 미진해 3개월 연장되었다가 마침내 초안을 채택함으로써 그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다. 이것은 물론 거짓이다. 사노위의 1년간의 과정은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작년 사노위 출범 직후 벌어진 가입원서 작성 거부 사태와 중앙위의 사보타지는 당건설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연방주의에 맞선 투쟁이 조직노선을 확립하고 당건설 태세를 확고히 하는데 필수적임을 보여줬다. 출범총회 결정사항인 가입원서 작성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사보타지한 구 사노준 회원들에 대해 규율을 세우는 것은 당연했으나 1기 중앙위는 “공동실천위원회이기 때문에 징계는 과도하다”며 “결정은 유효하나 따르는 것은 회원 자유”라고 결정하며 자신의 역할을 회피하고 조직규율 파괴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 사노위의 당건설 총력투쟁 체제를 위해 의견그룹은 2차 총회에서 중앙위를 정치적 중앙으로 구성하는 것 등을 중심으로 연방주의에 맞서 조직활동의 원칙을 확고히 하고 중앙지도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쟁했으나 기존 무규율과 연방주의 경향이 표결에서 다수를 획득한다.
무규율과 연방주의 경향의 다수파는 중앙위원회를 비롯한 대다수의 조직기구에서 산술적 다수를 점해 실질적으로 사노위를 통제하게 된다. 의견그룹은 계속해 연방주의에 맞서 민주집중제를 확립하기 위해 투쟁했고 이를 가로막은 것은 다수파의 관료주의였다. 다수파는 서울지역위의 <사회주의자 통신>에 한 회원이 기고한 소책자 비평글이 조직의 사업을 부정하고 파괴했다고 규정하며 공개사과와 글의 삭제를 관철시켰다. 이러한 다수파의 관료주의는 다수 회원들의 무규율적이고 연방주의적인 활동과 양날개를 이룸으로써 실질적으로 사노위가 당건설을 위한 조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미 혁명정당 건설과 양립할 수 없는 경향이 사노위 다수파에 의해 뿌리내렸던 것이다.
조합주의
다수파의 조직노선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사노위 출범시 결정된 11가지 정치원칙에 근거한 정치방침을 매 국면 수립하고 이에 근거해 회원활동과 조직사업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범시부터 구 사노준 회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치원칙에 대한 사보타지는 급기야 조직의 정치적 활동정지에까지 이른다. 특히 ‘강령(이행요구 포함)에 입각한 노동자투쟁 조직화’라는 정치원칙에 대한 내용상의 논쟁이 아닌 무조건적인 거부는 강령토론회를 비롯해 강령위 내부에서까지 재논의해야 한다는 따위의 입장에 부딪쳤다. 정치원칙에 입각한 조직활동만이 써클주의를 극복하는 공동실천위원회의 사활적 과제임에도 이러한 정치원칙에 대한 부정 속에 사노위 활동은 조합주의로 점철되게 된다.
작년 타임오프 투쟁 시기 기아차는 전국전선의 핵심 사업장이었다. 사노위 소하리 공장의 회원들은 김성락 집행부와 같은 현장조직 소속이었고 사노위는 금속파업에 기아차가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선전선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는 무쟁의 합의를 선언했고 사노위 중앙집행위원회는 긴급하게 사노위 화성/소하리 공장회원들을 소집했고 무쟁의 합의에 맞서 전직임원으로 활동했던 소하리 공장 회원들에게 전임임원단 공동농성을 제안했으나 이는 거부된다. 같은 현장조직 소속인 김성락 집행부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노위의 11가지 정치원칙중 하나가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으로 해소되지 않는 사회주의 현장분회 건설’을 통한 정치활동 전개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는 분명히 교정되고 평가되어야 했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유성기업에서는 처음 공장을 점거하며 기조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사노위 충남대표가 야간노동 철폐, 주간연속 2교대는 불가능하며 민주노조 사수 정도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기각되었지만 두 차례나 제기되었다. 사노위 회원들이 유성기업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한 것과 별도로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말하는 사노위가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전망을 제시하는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후진적 정서로 투쟁을 쪼그라들게 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것은 사노위가 자본가 언론이 유성투쟁의 ‘배후’ 운운하는 것과 무관하게 실제 조합주의와 맞서는 사회주의 정치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원칙과 전술방침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따라서 우리는 가장 열심히 연대하는 조직일지는 몰라도 정치적 지도를 수행할 수는 없는 조직이 되었다. 조합주의와 단절하기 위한 사노위의 투쟁은 정치원칙에 대한 부정 속에 회원들의 개별적인 활동으로 방치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출범 후부터의 활동으로 사노위는 연방주의와 무규율, 조합주의와 후진성, 다수파의 관료주의로 인해 당추진위로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모든 회원들이 정치적 통일보다 차이와 이견 속에 조직활동이 아닌 개별활동에 머물렀다. 당건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강령임을 상황은 반증했다. 사노위가 당건설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혁명적 강령의 채택이었다.
조직보존주의
1년간의 사노위의 정치활동은 실천 속에 정치를 검증하고 통일해 나가지 못한 채 차이와 혼란만을 드러냈고 이것이 강령위원회에서 강령초안을 채택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령위에서만의 논의가 중심이 아닌 대중적이고 전조직적인 토론과 이를 통한 강령건설을 위해 소수파는 3차 총회를 앞두기까지 혁명강령 토론회를 비롯해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투쟁을 전개하고자 노력했지만 다수파는 형식적인 한 차례의 강령토론회만 진행했고 전조직적인 강령토론은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 강령위의 논의는 서로 근본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강령(안)임을 확인하고 끝났다.
그러나 다수파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5월 15일 ‘3차 총회에서 강령초안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차기 총회에서 강령초안을 유보 없이 채택한다’, ‘단일안 작성을 전제로 강령기초위원을 선출한다’고 결정했다. 이미 3개 강령초안을 제출안 강령기초위원 전체를 포함한 강령기초위가 단일안은 불가하다고 보고한 상황에서 말이다. 이것은 당건설로부터 정치투쟁 수행, 권력장악에 이르는 당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이 다르고 이 차이가 1년간의 사노위 활동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다수파가 밀어붙여 강령안을 채택하겠다는 것이었다.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강령(안)으로 확인한다’는 사노위 출범시 결정과 ‘1년간 단일화되지 않은 강령을 단일안을 전제로 구성한 밀실 강령위에서 작성하고 유보 없이 채택한다’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3차 총회에서 소수파의 ‘강령통일 실패에 따른 해산안’은 부결되었다. 다수파는 1년 활동의 총체적인 결과물로서의 강령통일 실패가 아닌 강령위의 책임론 따위를 늘어놓았다. 다수파는 하나의 총체적인 권력장악 프로그램으로서의 강령을 떼었다 붙였다 협상하는 ‘이견을 병기한 강령’으로 타협하자는 논리를 늘어놓았다. 다수파는 ‘자본가언론이 주요투쟁에 사노위를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며 사노위 유지론을 제기했다. 이 모든 주장의 논리적 근원은 맹목적인 조직보존주의다. 사노위 출범시 무원칙한 동거를 방지하기 위해 1년이라는 기한을 설정한 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혁명강령은 조직유지를 위해 3개월만에 밀실에서 만들어진다. ‘사노위를 통한 당건설’은 ‘사노위에 의한 당건설’이 되었다.
4차 총회의 정치적 의미
4차 총회를 통해 제출한 강령초안은 기존 제출된 3개의 안이 이미 단일안 작성이 불가능하다고 모두 인정한 2개의 안(2인안은 4차 총회 결과에 불복해 탈퇴함)의 합의된 지점을 모은 것이며, 이행요구 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하지 못한 채 이견을 병기해 제출되었다가 총회 현장에서 서로에 대해 최후통첩을 날리다가 밀실에서 몇 명이 이행요구 합의안을 급조해 채택되었다. 혁명강령은 강령건설을 위한 실천적인 투쟁으로 건설되는 것이지 이미 1년의 경험으로 정치적 통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정된 기반 위에서 조직유지를 위한 야합으로 제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강령이 될 수 없다.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권력장악을 위한 노선인 강령은 과학적 인식에 기초한 총체적인 세계관으로 그것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계급에 복무한다. 혁명강령은 구체적 현실에서 계급의 무기로 활용되어야 하며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적당히 묶어놓은 것은 노동자계급 권력장악 투쟁에서의 날카로운 지침이 될 수 없다. 강령 간 총노선의 차이는 작년 사노위 정치신문에 ‘카다피 정권을 방어하라’ 대 ‘카다피에 맞서자’ 라는 서로 충돌하는 의견이 게재된 것처럼 노동자계급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혁명투쟁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다. 여기서 굽힘없이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취하는 것만이 혁명강령이 될 수 있다. 혁명강령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혁명강령 건설에서의 협상과 양보는 혁명투쟁에서의 협상과 양보를 예고한다. 강령에 기초한 혁명정당 건설의 원칙은 폐기되었다. 결국 잔존 사노위의 4차 총회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잔존 사노위는 노동자계급에게 약속한 사노위라는 당건설투쟁을 대중적이고 실천적으로 전개하여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이루어내고 검증받는 대신 계급에 대한 거짓과 은폐, 내적인 야합으로 변질시켰다.
둘째, 잔존 사노위는 그들의 정치가 강령/전술/조직상의 통일을 통한 혁명정당 건설이 아니라 무규율, 연방주의, 추수주의에 근거한 조합주의로 조직을 보존/유지하는 데 급급할 뿐임을 드러냈다.
셋째, 잔존 사노위는 노동자계급의 무기로서의 강령 건설을 개량주의에 뒷문을 열어놓은 중도주의까지 여러 경향들을 두루뭉실하게 섞어 적당히 타협해 만드는 것으로 희화화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훼손했다.
잔존 사노위와 같이 조합주의 정치와 단절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강령에 입각하지 않는, 조직보존을 위해 야합하는 세력은 결국 파산하게 된다. 이로부터 다시금 혁명세력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갖는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확고히 하는 혁명강령의 기초 위에서 계급투쟁의 최선두에 서서 노동자계급과 함께 전진하는 혁명정당을 건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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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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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자들과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다수 포함된 리비아 반군을 지지하는 당신들이 어떻게 혁명정치를 할 수 있나요?무슨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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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자들이 포함된 반군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봉기에 반군이 포함된 리비아혁명 자체를 지지하는것 같은데요.그래서 혁명의 가장 큰 장애물로 인종주의, 제국주의 등등을 경계하면서, 혁명의 급진화를 지지하는것 같은데, 서로 잘못 읽히나요?
혁명에 대한 지지와 반군에 대한 지지는 다른것 같은데요. 제가 알기로 노혁추 내부의 국제주의 그룹(좌익공산주의 경향?)은 인종주의, 반군내 반노동자 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반군을 지지하는 입장이 공식입장이 아니겠죠. 문구가 좀 거슬리는 것이 있긴 하지만........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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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혁명세력은 누구인가요. 자러 가야하니까 빨리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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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혁명이라면 리비아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분석도 하셨겠죠. 리비아의 최대산업은 석유산업이에요. 이 노동자들의 동향에 대해 알고있나요. 제가 본 기사는 반군이 오니까 다 도망갔다고 하던데요. 왜냐면 반군은 노동자들에겐 관심이 없고 석유시설 장악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무슨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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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의 주체에 대하여는 3호 [트리폴리 서신]을 인용하면 적절하겟네여." 현재 혁명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세력들이 여럿 있다. 1) 지난 2월의 봉기 첫날 이래 트리폴리에서 운동을 이끌어온 트리폴리의 혁명적 지도자들. 이들은 나토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다. 2) 트리폴리 출신 혁명가들로서 외부에, 벵가지나 튀니시아나 기타 외지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사람들로 지금 트리폴리로 돌아오고 있다. 3) 저명한 성직자들이 이끄는 이슬람주의 세력들. 4) 벵가지에 근거지를 두고 나토의 지원을 받는 국가과도위원회(NTC), 그리고 특히 그 안의 내각 역할을 하고 있는 NTC 집행위원회. 5) 트리폴리 출신 군 세력. 이들은 두 파벌로 갈라졌는데, 하나는 이전에 이슬람주의자였던 압델 하킴 벨하지의 지휘 아래 있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카다피 측근들이었던 인사들의 통제 아래 있다. 과거 미국 CIA가 카다피와 공모하여 체포해서 고문하고 투옥했었던 벨하지는 동부 리비아에서 일정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고, 카타르 정부가 뒤를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리비아 전역에서 온 약 40개의 반군 카타이바(병단)."
2. 혁명의 성격은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아직 노동자혁명,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꾸 리비아혁명을 사회주의혁명으로 바라보시니깐 오해를 하시지요.
이혁명은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이상 현재로선 아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다피를 타도하는 민중혁명에 대한 지지, 제국주의 개입반대, 반군의 또다른 부르주아분파로서의 정체세력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며, 리비아혁명의 새로운 주체가 나타나는 것을 지지, 지원하는것이 국제주의 원칙입니다.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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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 분파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누가 다수고 누가 소수인가요. 누구는 누구와 협력하고 누구와 대립하고 있나요.2. 리비아혁명이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 그 이상이 아니다? 그러면 가다피는 어떤 지배자인가요? 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지도자와 어떻게 다른가요? 혁명이 일어나려면 거기에 혁명세력이 존재해야죠? 이집트에서는 최소한 2008년부터 운동이 존재했어요. 리비아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운동이 존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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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비아 흑인과 이주노동자들을 재판없이 즉결처분하는 자들이 어떻게 민주주의 혁명을 할 수 있나요. 최소한 가다피 체제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곳이 군대가 아니라 혁명위원회였고, 리비아인들은 이 혁명위원회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래서 그게 불만이었나요?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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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 이라크에서 돌아온 알카에다 전사들은 빠져있네요. 분석은 제대로 하고 있는건가요. 지금 온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카다피를 지지하는 리베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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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리 당신은 카다피를 지지한다고 솔직히 얘기하세요. 말 비비꼬지말고. 총들고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에서 반군 상층부를 핑계로 반군에 반대하고 카다피 지지하는 리베리 당신이 얼마나 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모를 거라 봅니까.차라리 내놓고 나는 카다피를 지지한다, 또는 리비아 봉기에 반대하여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 라고 솔직히 얘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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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를 지지하는 리베리에게의 논리는 이것이다.내전은 어차피 서로 죽이는 것이다 - 반군이 이주노동자들이나 리비아 흑인을 죽이는 것을 얘기하면 반군에 반대하기 위한 핑계를 대는 것이다 - 그 얘기를 하면 가다피를 지지하는 것이다 - 따라서 반동적이다 -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 다 알고 있으니 가다피를 지지한다고 말해라
당신이 진정 사회주의자가 맞긴 맞는지.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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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reverie 불어인거 모르지. 마지막 e에 악상떼귀 붙어있어.이것은 내가 틀렸어요. 마지막 e가 아니라 처음 e가 모자같은걸 쓰고 있어요.
무슨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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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는 여러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어느 한쪽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그쪽 정보에만 의존하게 되는거죠. 예를들어 카다피를 옹호하는 입장의 정보들을 보면, 반군의 잔혹성, 반노동자성,친제국주의적 행위등을 사실관계에 근거한것처럼 하여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산해내고 있죠. 마치 스탈린 암흑기 스탈린을 찬양한 왜곡처럼요(일부사실도 있지만 그것만을 강조하고 확대시켜). 하지만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주었죠.
리베리님은 우선 자신의 정치입장부터 밝히셔야할것 같습니다.
1. 카다피체제에 대한 입장 (반제국주의 전사인지, 김정일과 같은 최악의 독재자인지, 차베스와 같은 부르주아 분파인지, 제국주의의 괴뢰정권인지 등)과 리비아 산업의 국유화 시스템에 대한 입장은?
2. 리비아 혁명의 정치적 성격과 발전가능성 그리고 왜곡의 정도
3. 본인의 노동자국제연대에 대한 입장은 국제주의자 입장인지? 무조건적인 반제국주의 입장인지(스탈린주의 경향)? 민족자결권에 입각한 자국민중 중심주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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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의 잔혹성을 얘기하면 가다피를 옹호하는건가요? 반군의 잔혹성을 가지고 가다피를 옹호하는 자가 있는거지, 반군의 잔혹성을 얘기하면 그 자체가 가다피를 옹호하는 것이 되나요?1. 가다피 체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어떤 입장이 있을 수 없어요.
2. 리비아 혁명은 혁명세력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죠?
3. 사실이 중요하지 제 입장이 왜 중요한가요?
4. 객관적 현실을 알기도 전에 자신의 입장이 생길 수 있나요?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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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근거?님은 무슨 입장인지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일어나는 급변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려면 반드시 지정학적 분석이 들어가야하는거 아닌가요?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강대국의 이해관계, 리비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리비아의 대외적 관계, 이런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입장이 나오고 있는건가요?무슨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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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리님, 짧은 댓글로 논쟁을 하다보니, 서로 오해를 할수도 있겠군요.위의 답글
1. 가다피 체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어떤 입장이 있을 수 없어요.
2. 리비아 혁명은 혁명세력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죠?
3. 사실이 중요하지 제 입장이 왜 중요한가요?
4. 객관적 현실을 알기도 전에 자신의 입장이 생길 수 있나요?
에 감사드리며, 바로 이런수준에서 논쟁을 하면 좀더 진전된 논쟁이 가능할것 같습니다. 왜냐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에서 사실관계의 확인을 근거로 논쟁을 하다보면, 논쟁이 아니라 규명차원으로 가니까요.
리비아 혁명에 대한 각자의 원칙과 판단은 있겠지만, 이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리베리님 의견대로 사실에 근거한 분석과 내용토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음 ..그러기 위해서는 반군의 잔혹성/카다피 방어, 카다피타도/제국주의 지지..이런 논리는 누구든 자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찰스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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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 혁명????왕정의 깃발을 든 민주주의 혁명???
현재 리비아 사태는 리비아에서의 지배권을 획득하고 리비아 석유산업(전 세계 3위의 산유국)을 장악하기 위한 제국주의 열강과 그의 꼭두각시는 친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기획되고 조정되는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들을 혁명세력을 보는것은 현실과 유리된거 같군요.
그리고 님들은 상층부만을 문제삼는데 상층부만이 그러하고 반군의 하위대중은 그렇지 않다는 근거는 어디있나요? 제국주의의 군사적 개입을 지적하는것에 대한 반론을 구상하기 위해 상상하시는거 아닌가요? 님들 말대로 반군의 지도부만이 제국주의와 결탁하고 하위대중은 민주주의혁명 세력이라면 이들간의 분화는 필수적인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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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리비아인들 자체가 침략자들이에요. 원래 리비아에는 아프리카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랍인들이 침략한거에요. 리비아는 13세기까지만 해도 노예무역이 성행했어요. 그래서 아랍계 리비아인들 다수가 인종주의적인 심성을 갖고 있고 힘든 일은 선주민들이나 아프리카인들에게 시키려고 해요. 아마 국방의 의무도 남에게 떠넘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15세기부터 4세기 동안 오스만제국의 영토였어요. 이때 자신들이 번영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1911년에 이탈리아에 점령된 뒤 독립한 후에는 이드리스 국왕이 중앙집권을 해체하고 연방제를 성립했어요. 그래서 지방자치 전통이 강해요. 가다피의 쿠데타 이후에는 아마 가다피의 국가주의에 대항해서 싸웠을 거에요. 뱅가지는 이드리스 국왕이 속해있는 세누시부족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반정부 세력의 중심지에요. 점령의 결과 아랍계 리비아인들은 자신들이 아랍계가 아니라 지중해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어요. 가다피는 쿠데타 후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했어요.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경멸하는 아랍계 지배자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어요. 가다피는 아프리카 연방주의자에요. 그래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가다피를 지지하는거에요. 물론 가다피는 자신의 반대파들에게 매우 모질게 대했어요. 하지만 그는 유엔 연설에서도 보듯이 오바마를 우리 아들이라면서 굉장히 칭찬했고, 가다피 아들은 콘돌리자 라이스하고 스캔들까지 있었어요. 이 관계를 잘 생각해보시면 되요. 왜 리비아인들이 가다피를 증오하는지. 물론 상층부는 제국주의의 보호를 받는 종속국을 원할거에요. 하층은 리비아를 유럽과 대등한 지역의 강대국으로 만들고 싶어할거에요. 이것이 저의 짤막한 생각이에요.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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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국내 좌파들에게서 나온 리비아 분석을 보면 일국적이지도 않고, 세계체제적이지도 않고, 그냥 자신의 욕망을 타자에게 투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사실 이건 타자에 대한 무관심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