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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JW지회> 단결로, 연대로 직장폐쇄 철회 투쟁 승리, 비정규직 조직화와 더욱더 과감한 투쟁이 승리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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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자신있게! 단호하게! 끈질기게!

 

[JW지회] 단결로, 연대로 직장폐쇄 철회 투쟁 승리


비정규직 조직화와 더욱더 과감한 투쟁이

 

승리의 관건!

 


구재보

 

 

 

  충남 당진에 위치한 JW생명과학(주)는 JW중외그룹 계열사로 한국에서 생산하는 링거수액의 60~70%를 담당하고 있다. JW중외그룹은 사업부문인 JW중외제약과 투자부문인 지주회사 JW중외홀딩스로 나뉘어져 있는데, 1945년 설립된 해방둥이라 일컬어지며 제약업계 10위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작년 10월 JW생명과학의 노동자들이 일어섰다. 생명과학과 한 울타리에 위치한 중외제약 노동자들과의 차별때문이었다. JW중외제약에는 이미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위원장이라는 자는 15년간 위원장직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고, 얼마 전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서 현 위원장과 맞붙은 노동자가 떨어졌다. 중외제약 자본은 선거에서 떨어진 노동자를 다른 계열사로 인사발령 했지만, 그는 홀로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신청해 승리했다. 그리고 결국 JW생명과학의 노동자들을 규합해서 노조를 설립하고 전국화섬노조에 가입했다. 현 JW지회의 지회장이 바로 그다.

 


노조설립 후 회유와 협박, 그리고 컨설팅 회사

 

  지회 설립 총회 과정을 통해 90여명이 지회에 가입했다. 자본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끈질기게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다. 자본은 브릿지컨설팅이라는 업체를 고용했다. 브릿지컨설팅은 오자마자 조직 진단이라는 내용으로 전 조합원에 대해 개별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회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10여명이 탈퇴하기에 이르렀고, 시급히 조합원 교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1부 근무자, 통상근무자, 2부 근무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조합원들을 모아 노조란 무엇인지, 자본이 왜 회유와 협박을 하는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들을 진행했다.

 


교섭 결렬, 98%의 압도적 찬성

 

  지회는 한편으로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단체협약 요구안을 마련해나갔다. 11월부터 올해 2월중순까지 9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그러나 자본은 한국노총 중외제약노조의 단체협약의 내용과 동일한 요구조차도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법에 명시되어 있는 그대로의 내용도 삭제를 주장했다. 총 90여개의 조항중 단 세 개 조항 정도만 합의되었고 결국 조정절차를 거쳐 파업권을 획득하고 98%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시켰다.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교섭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매주 교섭속보와 투쟁소식지를 제작 배포했고, 공장 앞 출근선전전과 식당 앞에서 중식집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본은 소식지를 배포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장을 남발했다. 사내 질서를 흩트리기 때문에 소식지 배포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쉬는 시간에 전체 조합원에게 문자메세지를 발송한 것을 두고 근무지 이탈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감봉)를 때렸다. 또 라인 설비가 고장난 것을 두고 조합원이 고의로 고장냈다는 주장을 하며 대기발령을 때렸다. 지회는 이러한 탄압들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대응을 했다. 감봉 조치에 대해 조합원 전체가 식당 앞에서 대자보와 모금함을 만들어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이 모금운동에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도 함께 동참했고, 감봉 액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모금되었다. 또 대기발령 조치와 동시에 조합원들은 식당 앞에서 하던 집회를 사무동 앞으로 옮겨 규탄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결국 사측은 일주일만에 대기발령을 철회했다. 첫 출근 선전전을 진행할 때는 때마침 쌍용차 희망텐트 ‘노동자참가단’ 동지들이 전국 순회 투쟁 도중 달려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조합원 동지들은 처음으로 연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충남서부지역지부 주최로 열린 JW지회 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100여명의 지역동지들이 연대했고, 그동안 머뭇거렸던 조합원 동지들이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분적,공격적 직장폐쇄, 현장을 분리시켜라!

 

  2월 22일은 지역의 노동자들과 처음으로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2부 근무중이었던 조합원 동지들은 생애 처음으로 4시간 부분파업을 전개하고 문화제에 참여했다. 문화제가 끝난 후 모인 자리에서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듯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말 한 마디 못한 채 기계처럼 노예처럼 억눌렸던 삶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자본은 바로 다음날인 2월 23일 조합원 14명에 대해 직장폐쇄를 때렸다. 이에 지회는 곧바로 4시간 부분파업을 전개하고 연대한 지역의 노동자들과 긴급하게 직장폐쇄 규탄 집회를 전개했다. 자본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날인 24일에 22명, 27일에 2명을 추가로 직장폐쇄를 때렸다. 72명의 조합원 중 38명은 공장 밖으로 쫒겨나고, 34명은 공장에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격적 직장폐쇄를 부분적으로 때린 자본의 의도는 명확했다. 조합원들을 현장 안과 밖으로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투쟁에서 현장 안과 밖의 조합원들이 담당하게될 투쟁과 거기에서 나오는 서로에 대한 불만들, 그리고 임금을 받고 못받고에 따른 분열등을 노렸던 것이다. 따라서 지회의 전술 역시도 현장 안과 밖의 조합원들이 겪게 될 분리를 막아내기 위한 것에 일차적으로 맞춰졌다. 지회는 곧바로 총회를 열어 자본의 직장폐쇄의 의도를 명확히 하고, 현장의 조합원들이 임금을 받게 될 경우 임금의 15%를 직장폐쇄된 조합원을 위해 사용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투쟁 전술을 논의했고, 분임조를 새롭게 편성, 격일마다 공장 안팎의 조합원들이 회의를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투쟁의 독으로 작용한 직장폐쇄 가처분 소송

 

  자본의 직장폐쇄 단행 후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부분파업을 4시간 밖에 진행하지 않았고, 직장폐쇄를 맞은 조합원 중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사측의 직장폐쇄는 공격적이고 부당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측은 지회가 지속적으로 잔업 및 특근거부를 하고 있으며 심각한 태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직장폐쇄를 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법률이라는 것은 활용적 측면에서 고민되고 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률이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투쟁보다 우위에서 제기될 경우 투쟁 자체를 뒤죽박죽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투쟁의 요구 또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작년 야간노동 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유성기업지회만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유성기업지회는 야간노동 철폐를 걸고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직장폐쇄와 공권력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쫒겨난 후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현장복귀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그 때부터 유성지회의 요구는 야간노동 철폐가 아니라 현장복귀와 직장폐쇄 철회로 대체되었으며, 급기야 굴욕적인 법원 조정안을 받고 현장에 복귀했다. JW지회 역시도 가처분 소송 이후 소송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그것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파업을 하게 될 경우 소송결과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며, 그럴 경우 생계문제로 인한 조직력 훼손이 발생할 것이라는 이유때문에 지금 당장의 일차적 목표는 직장폐쇄 철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장폐쇄가 두 달 넘게 경과하면서 조합원 내부에서의 문제들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측이 의도한바 현장 안팎의 분열이었다. 심각할만큼 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방치할 경우 심각한 조직력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심도 깊은 고민과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지회는 현장 안 조합원들이 순번을 정해 천막농성에 결합하고, 출퇴근하면서 천막에 들러 밖의 조합원들과 함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연대투쟁에 적극 결합 등을 결정했다.

 


단조롭고 불투명하게 이어지는 투쟁 전술

 

  노조를 만들고 모든 것이 첫경험이었던 조합원들은 마냥 신기했고 활력이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투쟁의 단조로움과 불투명함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본사 일인시위, 계열사 노동자를 상대로 한 집회 및 선전전, 식약청 집회, 대시민 선전전, 지루하게 계속되는 반복적 교육. 교섭도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의 반응이 무뎌져 가고 있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투쟁을 한 가지 기획하고 실천했을 때 그것에서부터 나오는 새로운 경험들은 그 불만들을 일정정도 해소시켜낼 수 있었다. 때문에 지회는 뭔가 새로운 투쟁을 쌈빡하고 재밌는 아이디어 제출하듯 고민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 목표에 부합될 수 있도록 전술이 제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날 그 날, 혹은 일주일 단위로 프로그램들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방식이었다.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4박 5일간 진행했던 상경노숙투쟁은 흐트러져 있던 조합원들을 다시 한 번 세우기 위한 투쟁이었다. 상경노숙투쟁의 목표는 첫째, 27일 서울 본사 앞 집회를 힘있게 전개하기 위해서 둘째, 흐트러져 있던 조합원들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곧추 세우고 현장 안팎의 조합원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셋째, 이 투쟁을 통해서 사측과 교섭자리를 만들어보기 위해서 넷째, 조합원들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조합원들과 함께 상경노숙 투쟁의 의미와 목표를 공유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이 함께 결합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천막농성장은 현장 동지들이 담당키로 했다. 상경노숙투쟁에서의 대부분의 일정은 연대투쟁이었다. 세종호텔노조, 쌍용차지부, 콜트콜텍지회, 재능교육지부, 대우자판지회, 기륭전자분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K2코리아지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그리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열사문화제에 결합했다. 그리고 27일 본사 앞 투쟁에서는 조합원 스스로도 놀라고 감격스러울만큼 연대가 풍성하고 화려했다. 투쟁을 마치고 돌아온 조합원들은 “노숙투쟁 한 번 더 하자! 연대의 힘과 소중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더욱더 과감하고 단호한 투쟁들을 해야한다고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직장폐쇄 자진 철회

 

  상경노숙투쟁을 마치고 돌아온 조합원들의 활력과 사기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더욱더 과감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던 중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자본은 5월 3일 24시부로 직장폐쇄를 철회한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사측이 밝힌 직장폐쇄 철회 이유는 첫째, 직원들의 경제적 곤란함을 해소하고 둘째, 노조의 쟁의행위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첫째, 조만간 있을 가처분 소송 판결에서 사측이 패소할 것에 대한 부담감 둘째, 자본이 의도했던 바대로 현장 안팎이 분리되지 않았고 직장폐쇄 이후 조합원 이탈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점 셋째, 연대가 더욱더 확대되고 있으며, 더욱더 큰 투쟁을 할 것에 대한 우려가 직장폐쇄 철회의 진짜 이유다. 또 자본이 노조무력화 전략을 일정정도 선회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본의 전략이 실패함으로 인해 나온 판단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폐쇄 철회에 대해 조합원들은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했고, 한편으로는 기뻤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했다. 어리둥절했던 이유는 직장폐쇄가 갑자기 철회되었기 때문이며, 기뻤던 이유는 직장폐쇄를 사측 스스로 철회시켰기 때문이며, 걱정했던 이유는 아직 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며 사측의 탄압이 더 거세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합원들은 긴급하게 회의를 열고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그리고 조합원 전체 모임을 열고 현재의 상황을 공유하고 현장 복귀 전술과 사측의 탄압 예상치, 그리고 대처방안과 현장투쟁 전술에 대해 토론했다.

 


일차전 승리

 

  JW생명과학 자본과의 일차전은 조합원의 승리로 끝났다. 자본이 스스로 직장폐쇄를 철회하고 조합원들이 기세등등하게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노동자에게 생명과도 다름없는 단결과 연대 때문이다. 투쟁이 본격화된 시점(2월 23일)부터 단 한 명도 이탈자가 없을 만큼 조합원들은 끈끈하게 단결했다. 또 쌍용차 희망텐트 ‘노동자참가단’의 연대를 시작으로 해서 크지는 않지만 지역노동자들이 보여줬던 연대와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유성지회,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보령화력환경지부, 프럼파스트지부 등 지역 투쟁 사업장에 대해서도 연대를 실천했다. 형식적인 연대가 아니라 연대하러 갔던 동지들에게 생기발랄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연대를 실천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연대였다.

 


앞으로 가야할 길

 

  5월 7일 현장 복귀와 동시에 자본은 사무장 동지에 대해 대기발령을 때렸다. 복귀 조합원 전체에 대해서는 하루종일 GNP교육과 시험을 치르게 했다. 공장 밖 설치한 천막농성장을 철거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협박하고 있으며, 공장 내 66대의 CCTV로 조합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JW지회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일차전을 승리했을 뿐이다. 단체협약을 쟁취해야 하고, 민주노조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자본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교섭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JW지회는 복귀와 더불어서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5대 핵심 요구를 결정했다. ①노조사무실 보장 ②전임자 보장 ③조합비 일괄공제 ④공장 내 교섭 ⑤ 연대동지들의 공장 출입 보장이 그것이다. JW지회가 자본을 상대로 완전하게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첫째 단결과 연대를 더욱더 확대해야 한다.
둘째 생산에 타격을 미치기 위한 더욱더 과감하고 단호한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셋째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인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와 한국노총 중외제약노조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를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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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 2막을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로 열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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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 2막을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로 열어 나가자!

 

 

임천용

 

 


  민노당을 통해 10년 넘게 진행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파산이 눈앞에서 분명해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결의로 정치세력화가 시작되었지만, 민주노총이 만든 정당이 노동자계급을 배신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1막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 계급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개량주의, 의회주의 정당의 불가피한 경로다.

 

  지난해 민노당이 국참당, 노심조와 합당하고 총선 비례후보 선출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더해져서 몰락 사태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통진당의 부르주아 정당화가 이번 사태에 의해 가속화되지 않았다면, 대선에서 야권연대가 이어지고 그래서 ‘만약’ 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면 거기에서 더 큰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통진당 사태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만약’의 영역은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개량주의, 사민주의 정당들이 국가권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동자계급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의회주의 정당들이 나아가는 기본 발전경로의 종착점이다.
의회주의에 결박된 통진당, 진보신당은 자본주의 체제의 개선을 목표로 자본가계급 내 한 분파와의 연대를 추구해왔다. 이들 정당들이 노동자 투쟁에서 권고안이라는 형태로 자본가계급과 타협을 권유하는 것은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한 이상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민주당과 함께하는 야권연대를 옹호하고 실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들을 자본가 정당의 2중대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이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는 것이야말로 사활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요즘 통진당 사태로부터 “진보정당”의 몰락을 설명할 때, 패권주의니 비민주주적의니 하는 형식들을 가지고 자본주의 체제의 보수, 수선에 집착하는 의회주의 정당의 본질을 숨겨버린다면 이번 사태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단지 또 다른 의회주의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공염불을 외치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래되기는 했지만 민주노총을 매개로 시작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사회주의혁명정당 건설운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정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개량주의 정치세력화의 시작 속에서 이미 노동자계급 배신의 씨앗이 발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통진당 사태는 선거를 통한 집권이라는 개량주의의 꽃이 피기도 전에 몰락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선언과 국민승리 21 시기

 

  김영삼 정권 당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등의 노동악법에 맞선 민주노총의 96-97년 총파업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추동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노동자 국회의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의 진면목이었던 무기한 총파업과 거리에서의 투쟁은 96-97년 총파업 당시 수요파업으로 사그라졌고, 노동악법들은 98년에 다시 살아나기에 이르렀다. 총파업을 통한 노동자 정치가 왜곡되고 파괴되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 정치투쟁은 정당이 담당한다는 의회주의 양날개론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될 수가 없다.

 

  97년 2월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98년 지방선거, 98-99년 당건설, 2000년 국회의원 선거 참여 등의 일정들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전국연합, 진보정치연합 등이 주축이 되어 민노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민승리 21을 결성하여 권영길을 97년 대선후보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전국연합은 대선 한 달을 남겨놓고 정권교체, 민주정부 수립을 구실로 사실상 김대중을 지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연합에는 이미 혁명을 공개적으로 포기한 노회찬 등이 있었는데, 이는 진보정당운동의 주요한 이론적 대변자들이었고 선구자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진보정당” 운동으로부터도 너무 멀리 나아가버렸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을 주창하던 세력들과 심상정 등의 중앙파에 의해 노동운동을 계급협조주의로 이끌어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98년 2월에는 정리해고 도입을 노사정 합의로 진행했다. 당시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물리적 투쟁이 아닌 대타협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고백했다. 노사협조주의로 점철된 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정치세력화 운동에 반대해서 전투파들은 97년 전국현장조직 대표자회의를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전투파들은 노동조합 장악에도 불구하고 국민파, 중앙파와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더해져 세력이 위축되면서 2004년에 해소했다. 노동자운동이 정치운동으로 발전한 상황에서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전투적 노동운동 진영은 스스로 사회주의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사회주의 세력들은 소규모 써클로 머물러 있었고 전투적 노동자 운동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이끌 수 없었다.

 

  이처럼 국민승리 21이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첫 단추는 개량주의자들, 김대중 “비판적” 지지론자들, 노사협조주의를 주창한 노동조합 관료들이 끼웠다. 이렇게 시작된 정치세력화의 15년 결과가 지금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치세력화의 주도자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이 올곧게 표출될 수 있는 방법은 그러한 당의 노동계급적 성격을 보다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정부” 10년의 시기에 노동운동의 전투적 부위는 거의 전멸하였고, 노사협조주의적인 노조관료들에 의해 현장은 장악되어 가고 있었다. 현장이 망가지는 것과 동시에 “진보정당”의 노동자 당원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격은 더욱더 우향우되어 갔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심지어 민노당을 통한 정치운동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정당에 가입하는 편을 택하기도 했다. 2012년 3월 5일에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 조합원 1000명의 입당원서와 함께 1만5천명의 지지서명을 가지고 민주당에 입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주노동당의 결성과 분당

 

  98년 6·4 지방선거에서 국민승리 21은 기초단체장 3명,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17명을 당선시킴으로써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민노당을 창당하는 바탕이 되었다. 선거에서 비판적 지지만 하면 되었던 민족주의 세력들, 1국 1당을 원칙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들은 2002년을 경과하면서 “전술적으로” 민노당에 대거 입당하였다. 이로써 언론에 오르내리는 방식으로 지구당 장악과 당권 장악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내내 정리해고제, 비정규직법, 공기업 구조조정, 노동탄압 공격을 당했다. 이에 맞서 투쟁을 전개한 한국통신 비정규직, 발전, 두산중공업, 한진중공업, 세원테크 등 수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해고를 당하거나 분신으로 항거해야만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이야기는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 “민주정부”때 시작되었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의 심화, 노동조건의 악화는 노동조합 조직률을 떨어뜨렸고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은 10석을 차지하였다. 노무현 정권에 맞서 투쟁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열망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민노당은 열우당의 2중대 역할로 한정함으로써 2007년 대선에서 창조한국당보다 못한 5위를 차지함으로써 패배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분당이라는 변수가 작용하지만 의석수가 5석으로 줄어들게 된다. (2004년에 비해 2012년 총선에서의 13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의 연합으로 팔아버린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민노당이 열우당이나 민주당의 2중대가 된 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70만 표(3%)는 이명박의 압도적인 승리 예측 속에 나왔기 때문에 2002년 노무현과 이회창의 박빙 때 나왔던 95만 표에 비해 훨씬 적은 득표율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민노당 내에서는 당 대표인 심상정과 당을 실제 장악하고 있는 민족주의 세력 사이의 논쟁이 진행되었다. 특히 민노당 사무부총장이 핵심당직자와 당원명부를 북한에 넘겨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심상정 대표를 위시한 세력들은 종북 노선 청산을 주장하면서 2008년 2월 민노당 당대회에서 “일심회 관계자 제명 안건”을 상정했으나 투표에 의해 상정 자체가 무산되었다. 이로써 민노당 일부는 분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종북 노선 청산 요구는 사실상 민노당을 탈당하기 위한 노회찬, 심상정 등 핵심 인사들의 선동 구호였다. 이 요구 때문에 노심조가 지난해 말 진보신당 탈당할 때, 당 유지를 원하는 진보신당 당원들로부터 민노당이 종북 문제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시 투항한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진보정당”들

 

  민노당을 통한 정치세력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자 투쟁에 대해 상급노조는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중재자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2000년대 내내 그랬다. 특히 투쟁사업장들은 노사정위원회 입성을 위한 방해꾼으로 여겨졌다. 2005년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에는 “과격한 투쟁은 비판만 받고 쟁취한 것이 없다”며 노사정위원회 복귀 시도를 지속적으로 진행했고 이에 맞선 전투적 노동자들이 단상점거투쟁을 전개하면서 가까스로 막아냈다. 이러한 노동조합 운동의 노골적인 노사, 노정 타협주의 흐름 속에서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4월에 금속노조 관료들이 3년째 진행되고 있던 하이닉스 비정규직 투쟁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대신 노동조합 깃발을 내리면서 보상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합의에 대해 반대한 동지들이 대중적인 반대 흐름을 조직해 나가기도 했었다.

 

  지금의 장기투쟁사업장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이유는 자본의 힘이 노동계급을 완전히 압도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중재 같은 것조차도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을 동원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내내 진행되었던 운동의 우경화 흐름은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더욱 더 악화되었다. 상급노조뿐만 아니라 “진보정당”들은 노동과 자본의 투쟁에 있어서 독보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하기에 이르렀다. KEC 공장점거 파업과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점거 파업 해제를 위한 중재를 진행함으로써 파업을 최종적으로 파괴하는 역할을 맡았다. 공장점거를 푸는 순간 자본측의 성실교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징계와 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희망버스 때 한진 중공업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국회 환노위 권고안은 대중적 투쟁을 파괴하는 데 교과서적 모범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더 이상 끌기 싫어하는 투쟁을 정치권에서 권고의 형태로 정리시켜 줌으로써 투쟁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진보정당” 정치인들은 정치적 해결 운운하며 성과로 챙긴다. 이명박 정권 내내 노동조합과 정당의 분업체계가 노동자 투쟁을 파괴하기 위해 작동했다.

 

  반한나라당, 반이명박을 위한 야권연대는 야당들의 이러한 공동의 행동들로부터 무르익었다. 노동자 집회에 공공연히 참여해서 발언하는 민주당이 이제 이상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민주당이 노동계급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자본가 정당이 아니라 더 나쁜 자본가 정당에 비해서는 친구라는 인식이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에 의해 심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사실상 민주당에게 바치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권에서 진행된 “진보정당”들의 야권여대의 최종적 결말이다. 그래서 지난해 내내 전개된 민노당, 국참당, 진보신당 사이에서 진행된 통합의 방식과 대상에 대한 논쟁은 각 당의 대의원대회 결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진행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야권연대를 둘러싼 각 세력 사이의 이전투구에 불과했다. 정치적 내용과 입장을 가진 투쟁이었다면 명료하게 진행되었을 것이지만, 명망가들 중심의 이합집산에 머물렀기 때문에 매우 소란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국참당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본질적이지 않았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조차도 반대하는 흉내만 내면서 마지못해 따라가는 형식을 취했다. 민노당이 노동자들과 적대전선을 형성했던 열우당 후신인 국참당과 함께할 만큼 노동계급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따름이었다. 통합진보당은 노심조 세력과 민노당, 국참당이 함께함으로써 만들어졌다. 진보신당은 탈당한 노심조 대신에 총선을 앞두고 사회당과 함께 했지만 4.11총선 결과 국회의원 한 석도 얻을 수 없었다.

 

 

통진당 사태 - 의회주의 진보정당 운동의 파산

 

  통진당 사태의 핵심은 의회주의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처참한 몰골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통진당은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하위파트너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유지시켜야만 하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들이 100년 역사 동안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한국에서는 민노당 이후 10여년의 짧은 시기에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구에서처럼 독자적으로 정권을 잡거나 자본가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면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의 폭과 깊이는 훨씬 넓고 깊어질 것이다. 통진당 결성 과정과 민주노총의 통진당 배타적 지지로부터 발생한 분쟁들은 어린애 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의회주의, 개량주의 정당이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고 결정적인 시기에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인류에 대한 학살이 자본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어버린 제국주의 시대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개량이냐 혁명이냐의 문제가 곧바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개량주의 정당들은 개량의 축적이 사회주의를 앞당긴다면서 노골적으로 자본가들과 협력한 대가로 떡고물을 받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이러한 개량주의 정당의 발전 과정은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노골적인 부르주아 정당으로의 귀결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었다.

 

  통진당 결성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민노당 강령에 있는 사회주의라는 말조차도 삭제했다. 개량주의적, 의회주의적 수사에 불과했지만, 그마저도 거추장스러운 듯이 빼버린 것이다. 그래서 강령적으로는 부르주아 정당의 충실한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통진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신당의 경우에도 빠르든 늦든 불가피하게 나타날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진보신당은 선거 시기에 이미 야권연대를 진행한 바 있고, 지난해 말 진보신당 당 대표 출마 시 홍세화 후보가 야권연대 지속 의지를 밝혔고, 4.11 총선에서 통진당과 민주당에게 야권연대에 끼워줄 것을 애원하기도 했었다. 진보신당에게 있어서 통진당이 미끄러진 길에서 발을 빼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야권연대로 표현되는 자본가정당과의 단절이다. 

 

  통진당과 진보신당의 강령은 본질상 자본주의의 개선과 수리에 있다. 고통이 덜한 “합리적” 자본주의가 노선이다. 이러한 노선은 자본가계급을 필요로 하고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협조와 화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노선은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수리, 개선하는 것이다. 억압기구에 대한 해체와 폐지가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일례로 경찰, 검찰과 같은 억압 기구들의 해체와 자본가 군대의 해체를 요구할 수 없다. 이러한 요구들은 통진당과 진보신당의 개량주의, 의회주의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도로 민노당이 아닌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자!

 

  통진당도 진보신당도 아니라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야하는가의 문제가 곧바로 제기된다. 국민승리 21부터 진행된 9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사회주의 진영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운동 세력 자체가 미약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개량주의 세력과 하나의 당에서 함께할 수 없었다. 전투적 노동자 운동진영이 민주노총 내 노사협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당 운동에 함께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극히 당연했다. 그리고 취약한 사회주의 세력은 둘째 치더라도 당시에도 사회주의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불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전과 선동은 비밀리에 주로 소규모적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히 말해 써클적 활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물론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회주의자 탄압과 기소,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노동계급 운동의 후퇴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 운동의 파산에 직면한 사회주의 세력들의 자기반성인 동시에 긴급한 대응이기도 하다.

 

  통진당 사태는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빠르든 늦든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파산의 실례로 인식하게끔 작용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건강한 세력이 통진당에 함께해서 바꿔나가자고 하고, 어떤 이들은 노동에서 탈피해서 국민정당화로 나가자고 한다. 이러한 훈수에 대해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의 대답은 노동자들이 통진당과 같은 의회주의 정당으로부터 단절하고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나서도록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것이어야 한다. 통진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배신한 사실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열망이 비아냥과 환멸로 돌아서게 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도로 민노당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도로 민노당은 노동자들에게 비극 대신에 소극을 선사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문제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 새롭게 건설될 노동자 정당은 의회주의, 개량주의에 기반한 “진보정당”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정당 이외에 다른 것 일 수 없다. 한 사업장의 노동자 투쟁조차도 전제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 투쟁을 조직하고, 의회에서의 잡담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을 선동하고 투쟁을 조직할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이 사활적인 과제로 다가온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불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역사발전법칙을 수용한다면, ‘진보’는 엄밀히 말해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적 투쟁 과정에 가정 적합한 용어다. 사회체제의 변동은 언제나 치열한 계급투쟁을 동반했고, 점진적 변화의 합에 의한 변동 사례는 역사적으로 발견되지 않았다.

 

  쌍용차와 같은 노동계급의 투쟁들, 장기투쟁 사업장과 비정규직 투쟁들은 자본가계급과의 화해할 수 없는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만들어내고 있는 폭력적인 계급대립인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각각의 투쟁들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 등 자본가 기구들을 동원해서 계급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이에 맞선 노동자들은 자본가 야당과 “진보정당”들에 의해 타협을 설교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지 않는다면 노동자 투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사회주의 혁명정당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입장을 대변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적 투쟁 속에서 건설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위해서 작지만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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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프랑스 ∙ 그리스 선거 이후 유럽 정치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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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그리스 선거 이후 유럽 정치정세

 

 

이민수

 

 

 

  프랑스와 그리스 선거가 한국에서도 많은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 더해 독일 최대인구 지역인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주(州) 지방선거 결과도 한국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었는데, 이 세 선거 모두 유럽에서 불고 있는 좌경화 바람과 함께 현재 모든 나라에서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비쳐주는 사건이다.
  세 경우 모두 선거에서 승리한 당이 유럽연합(EU) 재정협약 및 긴축 프로그램의 시행에 반대하거나(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 또는 케인스주의 “성장 프로그램”으로 “긴축 정책을 수정할 것”과 금융시장에 거래세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프랑스에서 올랑드, 독일에서 사민당).
  그리스에서는 좌익개량주의 정당인 급진좌파연합(SYRIZA)이 유럽 좌경화 바람의 주 수혜자가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멜랑숑의 좌파전선(좌파당과 프랑스공산당의 선거연합)과 올랑드가,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수혜자였다. 동시에 그리스에서 파시스트들이 성장하고 프랑스에서 극우 국민전선이 크게 세를 불리기도 한 선거였는데, 이는 만일 노동자운동이 현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을 내놓고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파시즘과 인종주의가 정세를 장악할 수도 있는 실제 위험을 보여준다.

 

  유럽의 좌경화 바람은 지배계급이 유럽 전체가 직면한 경제적 ∙ 사회적 ∙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이다. 이 유럽 위기는 그 자체가, 2008/9년에 발발해서 마찬가지로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세계자본주의체제 위기의 본질적인 구성부분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여타의 제국주의 지배계급들이 체제 전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은행 및 거대 독점자본에 대한 구제금융 등 각종 조치를 취해 왔지만, 위기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역사적인 차원의 자본 과잉축적 및 하락하는 이윤율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의 폭발성을 높여놓았다. 유로화와 국채에 대한 투기 물결은 이것의 표현이다. 자본주의 아래서 이 근본 문제는 오직 ‘폭력적’으로만, 즉 과잉 자본의 대대적인 파괴를 거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본성, 즉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 및 민족국가들의 체계로서의 그 본성 자체 때문에 ‘조화로운’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자본들 간의 투쟁을 거쳐서, 즉 각 민족국가 부르주아지들 각자가 자신의 위기를 서로에게 수출함으로써 위기를 ‘해결’할 요량으로 벌이는 투쟁을 거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세계경제 자체의 재분할을 위한 투쟁에 의해서 오직 위기는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자 민중들에게 위기를 전가시키기 위한 투쟁과 연동되어 있다. 

 

  현재의 유럽연합 위기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럽이 위기의 초점이 된 것은 그 동안 유럽연합이 자신을 하나의 조화로운 경제·정치적 단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취해 온 많은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질적으로는 민족국가들의 연맹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독일 제국주의는 유럽(유럽연합, 유로존)을 자신이 통제하는 블록으로, 자신의 ‘뒷마당’으로 재조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나라들을 반(半)식민지로, 또는 제국주의 하위 파트너로 종속시켜야만이 가능하다. 독일한테 이를 위한 열쇠는 유럽연합에 대한 ‘지배’를 놓고 대등한 역할을 주장하고 있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있다.

 

  유로존 내 남유럽은 계속되는 깊은 공황(‘공식’ 경제 용어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경기후퇴’[recession])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프랑스는 GDP가 정체 상태에 있다. 반면 독일을 비롯한 여러 중북부 유럽 나라들은 당장 공황을 맞을 가능성은 낮다. 유로화의 대대적인 위기가 상황을 바꿔놓을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 공황은 유럽 전역의 불균등성을 더 크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 추세는 오로지 심화될 일만 남았다.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독일 메르켈 정부가 가혹한 긴축안을 강요하고, 특히 남유럽에 대해서는 “노동시장 규제완화”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등 유럽연합은 또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사실상 자신들이 임명한 파파데모스 정부와 몬티 정부를 들어앉힘으로써 두 나라에 대한 훨씬 더 직접적인 정치적 통제의 끈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러한 행보들은 유럽연합(좀 더 정확히는 유로존)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신이 통제하는 블록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독일 (그리고 프랑스) 제국주의의 전략적 의도를 비춰준다. 메르켈의 강경일변도, 즉 독일 정부가 가혹한 긴축안을 관철시키고자 취하고 있는 비타협적인 태도와 함께 유로화와 유로존을 지키고자 취하고 있는 단호한 결의도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재정협약”은 독일 제국주의가 남유럽에 대해 유로존에 남아 있고 싶다면 더 큰 ‘희생’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희생은 잔인한 긴축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유럽연합 기구들이 남유럽 나라들의 예산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이를 제도화하겠다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이러한 틀 내에서 더 직접적으로 독일 제국주의가 통제권을 틀어쥐는 것으로 결과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협약은 전혀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못 된다. 첫째, 재정협약으로 독일 자본은 특히 수혜를 보지만, 남유럽은 훨씬 더 깊은 경제위기와 의존 심화로 몰아넣는다. 이것은 유럽연합 및 유로존의 불균등성을 그 극한까지 몰아갈 것이고, 심지어 잠재적으로는 이를 넘어 그리스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통제되지 않은 파산’과 유로화 이탈,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대한 대대적인 투기 물결로 결과할 것이다. 둘째, “재정협약”이 여전히 현 유럽연합 기구들 내에서 조직되고 있는데, 이는 보다 장기적인 견지에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제국주의 강국들이 유럽연합을 정치·군사적 차원의 글로벌 파워로 만들기 위해서는 필히 극복해서 보다 직접적인 통제 ·지배 형태로 대체해야 하는, 그러한 숙제이다. 유로본드의 도입도 이 방향으로 가는 주요 포석이 되겠지만, 현재로선 독일이 반대하고 있다. 겉으로는 헌법상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독일의 보다 근본적인 속내는 보다 장기적인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더 큰 통합”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럽연합 및 유로존의 깊은 내적 모순은 단지 유럽 자본가들의 “탐욕”과 “근시안적 태도”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유럽 강대국 지배계급들이 유럽 통합을 원하면서도 그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들 간의 뿌리 깊은 경쟁관계로 인해 그것을 해낼 수 없는 그 근본적인 무능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은 보다 약한 나라들을 종속시켜서만, 그리고 노동자계급 대중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의해서만 오직 유럽을 “통합”시킬 수 있다. 즉 미래의 긴장과 붕괴·와해의 위협으로 찢겨진 “통합” 조치들을 강요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많은 유럽 나라들에서, 특히 남유럽에서 대중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노동자 민중들을 투쟁의 전선으로 결집시켜 놓았다. 그러나 또한 프랑스와 아일랜드, 체코 등에서도 대중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혁명적 정세로 치닫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에서 유로화 도입은 그 나라들의 수출 제품 가격을 낮추어줌으로써 성장 촉진제로 작용했다. 그 덕에 노동자계급과 특히 노동귀족층에 대한 지배계급의 일부 양보조치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노동조합 관료들과 전통적 사민주의 정당들이 투쟁을 봉쇄하고 투쟁의 뇌관을 제거해낼 수 있었던 한편, 상대적 고임금의 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정 정도 신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올랑드의 “성장” 요구는 유럽 사민주의와 대규모 노동조합 연맹들 대부분이 공유하는 요구일 뿐만 아니라, 현 공황에 대한 구제책으로 국가 부양을 통해 수요 증대를 꾀할 필요를 느끼는 다수의 유럽 정부들과 자본가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요구이기도 하다. 프랑스 제국주의도 그 같은 일정 정도의 양보조치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메르켈조차도 재정협약에 대한 독일연방의회 양원 모두로부터의 지지(무엇보다도 사민당의 지지)를 확보해야 할 필요 때문에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올랑드는 유권자들에게 “긴축 종식”을 약속했고, 독일사민당 지도부들도 “성장 정책”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이들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2,3만 명 수준의 상징적인 “행동의 날”과 선거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 테두리 밖에서는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결집시킬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아 왔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재정협약을 “수정”, 또는 일부 조세 개혁과 경기부양책으로 그것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연합 부르주아 정부들(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제국주의 프로그램 조항들을 놓고 협상테이블을 열자는 요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요구는 노동자계급 상당 부분의 기대(사회보장 강화 등)를 반영하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구들 통해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사민당이 기민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여전히 강력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개량주의 정당,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임을 과시하고 있다.

 

  올랑드와 독일사민당과 여타 공식 노동운동의 개량주의 지도부들은 “재정협약”을 놓고 메르켈과 거래를 할 완벽한 준비 상태에 있다. 최종 합의는 프랑스 ∙ 그리스 총선과 유럽정상회담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나 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 때가 되면 협상테이블에서의 지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그리스를 더는 소외시키지 않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파와 노동자운동은 사민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한다. 하나는 지난 1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 “개혁”에 워낙 철저하게 장단을 맞춰 오는 바람에 더 이상 노동운동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조차도 부정당해 온 사민주의자들을 다시 받아들여 화해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한 그들의 행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랑드 정부는 프랑스 부르주아지를 위한 정부이지 노동자계급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 올랑드는 프랑스 제국주의 국가의 이해를 방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랑드의 반긴축 언사와 그가 공약으로 내건 반긴축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남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친구가 아니다. 그의 “유로본드” 요구는 ‘노동계급적’ 또는 ‘민중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요구가 아니라, 세계공황을 기화로 해서 유럽연합을 글로벌 파워로 발돋움시키려는 유럽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여망을 반영하는 부르주아 정책이다.

  프랑스 (그리고 독일) 지배계급과 똑같이 올랑드도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에서 그 자신과 닮은 정부 -- 부르주아 노동자정부 또는 1922년에 코민테른이 사용한 표현처럼 “가짜 노동자정부” -- 가 구성되는 것조차도 두려워한다. 그리스 민중이 직면한 절박한 조건 하에서는 그 같은 정부조차도 유럽연합 상전들에 정면으로 저항하기를 바라는 수백만 노동자 민중들의 기대로부터 오는 거대한 압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특히 시리자가 승리할 경우 전개될 상황에 대비해 저들 지배계급만이 아니라 올랑드도 지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시리자 주도 연립정부는 이미 투쟁전선으로 집결해 있는 그리스 노동자들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공장에서 노동자통제 기관들이 형성되었고, 지역에서 대중총회와 각종 실행위원회들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경찰과 황금새벽당 파시스트들로부터 이들 투쟁기관들을 방어할 노동자민병대가 건설되면 진정한 노동자정부 -- 완전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단계를 대표하는 -- 가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정부는 1960년대와 70년대 이래 자본주의 유럽에서(당시에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에서도) 한 번도 구체적 가능성이었던 적이 없다. 지금 사회∙경제적 위기가 얼마나 깊고 만연해 있는지를 웅변하는 단적인 증거이다.

 

  유럽 자본의 충성스런 하수인으로서 올랑드는 그 같은 시나리오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그가 메르켈에 대해 보이고 있는 의견 불일치는, 긴축을 놓고 메르켈이 취하고 있는 도발적인 강경일변도가 그 시나리오를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개량주의의 배신자적 역할, 즉 불타는 자본주의 집을 구조하기 위해 뛰어드는 소방수로서의 역할을 한 순간도 망각해선 안 된다.

 

  다른 오류는 폭로 ∙ 비판과 “경고”에 만족하고 마는 오류이다. 올랑드 같은 무리들은 그 어떤 혁명적 해결책에 대해서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약속한 개량조차도 일관되게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올랑드나 여타 사민주의 정당들에게 표를 던진 수백만 대중이 자신들의 개량주의 지도자들과 단절해야 할 필요를 확신하게 되려면 단지 폭로와 비판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혁명가들의 주장만으로 대중들이 환상을 깨지 않는다. 설사 그러한 주장이 실제로 대중들의 광범위한 다수에게 미칠 수 있게 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아무리 맹렬한 폭로와 비판이라 하더라도, 혁명가들이 이들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이 한 약속을 이행하도록 투쟁에 나서고 대중을 투쟁으로 결집시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그러한 폭로∙비판을 이러한 요구와 결합시키지 않는다면 대중은 여전히 수동적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공격에 맞서는 전 유럽적 차원의 공동투쟁 요구를, 그리스혁명 및 각국 대중운동과의 연대를 위한 전 유럽적 규모의 공동행동 요구를 단지 ‘좌파’ 정당이나 좌파 노조에게만이 아니라 개량주의 정당과 대중적 노동조합의 평회원과 지도부에게도 똑같이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와 함께 유럽연합 및 유럽중앙은행의 긴축에 반대하는, 그리고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의 투쟁들과 연대하는 전 유럽 차원의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전통적’ 개량주의 정당들이나 좌익개량주의 정당들이 득세한 것은, 보다 전투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노동자들 및 운동세력들이 많은 나라들에서 투쟁을 총괄 조정하고 중앙집중화를 이루어낼 대안 구심을 세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전 유럽적 수준에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좌익개량주의자들과 자율주의-무정부주의 세력들은 전 유럽적 대안구심을 세우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차단했다. 기껏해야 단지 자신들의 프론트에 불과한 ‘구심’을 세웠을 뿐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범죄행위인데, 여기에는 프랑스의 NPA(반자본주의신당)나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이나 그리스의 시리자 좌익 및 안타르시아(반자본주의연합) 같은, 규모 있는 반자본주의 정당들과 전선체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가운데 어느 조직도 단 한 차례의 진지한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못했다. 그들의 세력으로 -- 세력들이 결합된다면 특히 --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와 같이 유럽적 수준에서는 운동이 공황의 시작 때와 동일한 문제들에 부닥쳐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적들이 나서서 투쟁의 지형을 실제로 바꿔내기 시작한 상황임을 상기한다면 당시보다 어떤 면에선 더 불리한 조건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유럽 기구들 일부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유럽연합과 유로존의 계급투쟁들과 정치생활들은 서로 간에 더 통합되어졌다.

 

  이것은 투쟁이 제기하는 과제들이 훨씬 더 긴급해졌음을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슬로건들을 중심으로 긴축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 모든 긴축안 폐기! 재정협약 폐기!
- 유럽 국가들의 부채 무효화! 은행 및 금융기관들에 대한 무상몰수, 노동자통제 하에 단일 국영은행으로 통합!
- 임금 지급을 거부하는, 또는 직장폐쇄와 정리해고 위협을 가하는 모든 기업을 노동자통제 하에 무상 국유화하라!
- “노동시장 규제완화” 반대!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협조항 일체를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장하라!
- 유럽연합 전역에서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3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 연금 및 사회보장 삭감 분쇄!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퇴직연령 연장 반대!
- 최저임금, 실업수당, 연금을 모두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하라!
- 민영화 분쇄! 교육 ∙ 인프라 ∙ 환경 ∙ 사회서비스의 개선을 위한 전 유럽 차원의 공공사업 프로그램을 도입하라! 노동자통제 하에 수백만 해고노동자 원상회복! 자본가들의 이윤과 부자들의 부에 대한 대규모 과세를 통한 해고노동자 원상회복 기금 마련!
- 파시즘과 인종주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정방대, 노동계급 지구별 자위조직 건설! 일체의이민 통제 반대! 유럽연합에서 일하며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 보장!
- 그리스혁명 지지 지원! 그리스 인민에 대한 일체의 수탈에 맞서 싸우자!

 

  이 같은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도시와 지역에서 실행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위원회들을 전국적, 전 유럽적 수준에서 총괄 조정하고 중앙집중화 할 대안구심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모든 노동자 정당들 및 조직들에게 이를 지원하고 위의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시위와 파업 등 행동플랜을 내올 것을 호소, 촉구한다.

 

  그리스에서는 지금 혁명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당면한 긴축에 맞선 공동투쟁으로부터 권력쟁취 투쟁에 이르는 길을 안내할 혁명정당 건설이 긴급하다. 그리스에서 당면 투쟁과 노동자권력을 위한 투쟁은 이미 서로 맞닿아가고 있다. 당면 요구 투쟁과 혁명적 이행요구 투쟁 사이에 그 어떤 장벽도 허물어지고 간극이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이러한 정세가 곧 도래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 위기는 제2라운드로 넘어가고 있다. 위기에 맞선 핵심 요구들을 위한 단호한 반격투쟁과 노동계급적 해결책을 자본가들에게 강제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지배계급과 그들의 국가기구가 이 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따라서 투쟁으로 얼마간의 개량을 일시 관철시킬 수 있을지라도 최종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고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그것을 노동자평의회와 노동자민병대에 바탕한 혁명적 노동자정부로 대체함으로써만이 위기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길을 열수 있다.
  유럽 위기는 글로벌 자본주의 위기의 본질적인 구성부분이다. 오직 사회주의혁명만이, 사회주의유럽합중국 창설만이 전 유럽 대륙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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