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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친구와 화해하기 3단계 해법 2009/09/11

친구와 화해하기 3단계 해법

친구와 화해하기 3단계 해법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30대 나이에 친구와 다투고 나니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네요
 
 
한겨레  
 
 
» 친구와 화해하기 3단계 해법.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Q 33살 대기업 직장여성입니다. 반년 전에 한 외부 세미나에서 너무나 마음이 맞는 동갑 여성을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말도 아, 하면 어, 하듯 너무 잘 통하고 가치관도 비슷해서 틈날 때마다 만나서 같이 놀고 많이 대화를 나누고 또 짬 나면 같이 해외여행도 다녀오곤 했어요. 이런 농밀한 여자끼리의 우정은 고교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아 무척 신선했죠. 사실 기존 여자친구들은 대부분 시집가서 자기 살기에 바쁘고 여가시간조차도 회사 동료들하고 주로 보내서 조금 외롭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급하게 빨리 친해진 탓일까요. 최근에 한 가지 일로(그녀가 제게 실수를 했는데 그녀에겐 그게 뭘? 싶은 사소한 것이었지만 저에겐 컸던 거죠) 대판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도 오갔죠. 한 인간의 상식과 인간에 대한 예의의 정의가 이렇게도 다른가 싶어 당황하며 ‘우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구나’ 싶은 심한 이질감을 서로 확 느낀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아직 일주일째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있습니다. 사회 나와 만난 친구의 한계인가도 싶고, 이 나이에 연애도 아니고 우정에 감정노동하기도 싫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참 가까웠던 사람을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좀 아쉽고 이런 갈등 상태로 있는 게 마음도 불편합니다. 화해해야 할까요? 한다면 어떻게? 참고로 저희 둘 다 이빨이 세서 서로 말로는 안 지거든요.

 

A 화해해야죠. 어차피 친구도 별로 없잖아요. 화해에도 차근차근 순서가 있지요.

1단계 : 필요한 만큼의 타임아웃 기간 갖기

지금 서로 연락 안 하고 끙끙 앓는 상태죠. 먼저 연락하긴 자존심이 상하고 지는 것도 같고, 상대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면 그때 한 번 더 튕겨서 굴복시켜 말어, 오만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심신이 무척 피곤한 시기입니다. 헌데 이런 무거운 시간을 감수하고 인내해내야 합니다. 갈등 상황 자체가 힘겨워 급히 ‘땜빵 화해’ 하려 들면 속으로 더 곪기 때문이죠. 날림으로 화해하니 충분히 생각 못한 상태에서 할 말 다 못하고 하하호호 막상 되돌아서면 호상간에 내가 더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남아 개운치가 않거든요. 언제까지 연락하는 걸 참느냐고요? 노여움의 독이 다 풀리진 않았더라도 싸우기 이전 상태의 상대의 좋았던 모습도 공평하게 생각날 때까지요. 그런 후 결정하십시오. 이 모든 사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가 이 사람을 결국 끌어안고 갈 건지 말 건지를. 왜냐면 우리는 타인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조작할 수가 없고 그냥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2단계 : 화해 교섭

자, 두 사람 다시 만났습니다. ‘넌 이걸 잘못했다, 이걸 바꿔라, 안 그럼 너 이제 안 봐’라며 협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나이쯤 되면 서로 아무리 필요하고 원해도 가치관과 성격을 바꾸기 힘듭니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의는 목이 마르고 닳도록 소통 노력을 해서 상대에게 나의 불편한 감정의 핵심을 이해시키고 또 상대의 그것도 그만큼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두 분 다 한 이빨 하신다니 그것 참 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때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어른스러운’ 우정에서 쓰는 게으른 숏컷. 그건 바로 ‘차이 인정’과 ‘입장 존중’이라는 클리셰인데요, ‘난 솔직히 이해는 안 가지만 그래도 네가 그런 식으로 느꼈다고 하니 너의 입장을 존중해. 생각의 차이도 인정해야 하니까’는 안 좋네요. ‘너는 너, 나는 나’라며 관계의 평행선만 그릴 뿐입니다. 그런 관계는 민감한 핵심을 피해 가기 때문에 ‘좋게 좋게’ 자연 소멸하는 운명으로 갈 뿐이죠. 화해의 제스처를 했다는 것으로 순간 모면 타협한 꼴입니다.




포인트는 서로 부딪혀서 아플 정도로 마모가 되더라도 생각과 관점과 마음을 공유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뭐가 구체적으로 잘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왜 어떤 관점에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진심으로 알아야 그때 비로소 상대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겁니다. 이때 어쩔 수 없이 입 밖으로 꺼냈다간 바로 상대의 취약한 부분을 찌를까 봐 두려워하는 그 부위, 콤플렉스와 자의식을 건드리게끔 되어 있지만 피할 게 아니라 더 정직하게 직면할 수 있게끔 서로 도와야 합니다. 심리적으로 벌거숭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기본적으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임한다면 이거야말로 위기 대처 시스템을 단단하게 구비해놓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열받은 감정 사이에서 내 안의 생각들을 솎아내는 것도 모자라 상대 머릿속을 들여다봐야 하는 감정노동이 여간 힘든 게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땅에 묻으려 해봤자 무용지물. 지금 서로 신경이 한창 예민해져 있으니 진심이 아닌 건 딱 보이거든요. 되레 ‘아, 네가 날 포기하는구나’ 싶어 상처가 될 뿐입니다.

 
»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3단계 : 추가 소통의 여지 주기

정신없다 보면 간헐적으로 놓치는 것들이 있지요. 화해할 당시 왠지 빠뜨린 것 같은 이야기, 내가 충분히 내 생각과 감정을 설명했을까, 그 부분을 정말 걔가 제대로 이해를 해줬을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안하면 주저하지 말고, 화해 무드 정점인 그날 중으로 다시 상대와 접선해서 추가 소통을 해야 합니다. 찝찝한 불씨는 살려두면 안 돼요. 그 이물질에 대한 우려가 반려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아직 핵심이 통하지 않았다는 얘기니까.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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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17:08 2009/09/11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