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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논란, 새삼스럽다.


 

학교 폭력 논란, 새삼스럽다.

 

학교 폭력이니, 일진회니 하는 말들로 한 달째 세상이 떠들썩하다.

초-중-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조직화에 전국연합 조직의 결성, 선배의 후배를 이용한 금품 갈취, 일상적인 구타, ‘살인축구’에 ‘섹스머신’ 등의 ‘퇴폐놀이문화’까지.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이른바 ‘일진회’의 실태는 소심한 어른들의 간을 그만 개미허리만큼 오므라들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매일, 뉴스에는 새로운 학교 폭력 소식이 올라오고, 정부와 언론은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호들갑을 떨면서 ‘스쿨폴리스’, 학생 연행, cctv에 이어 심지어 ‘야간 통행금지 조치’에 ‘병영체험’까지 동원하며 연일 강경 대책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학교 폭력에 대한 정부의 알레르기 반응은 거의 7,80년대의 실미도나 삼청교육대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클릭할 때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학생이...폭행’, ‘정부...강경대응 방침’ 뉴스를 보며 생각한다.

도대체 뭔 난리야? 새삼. 학교에 폭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학교=구타’ 아니었냐고. 참 내...


학교. 일상적 폭력의 장.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일제와 군국주의의 군대문화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학교 현장에서 폭력은 새삼스러운 화두가 아니라는 것쯤이야.


아침 7시 등교. 서서히 교문이 닫히고 미처 그 사이를 통과하지 못한 지각생들은 운동장에 열 지어 서서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 ‘운동장 10바퀴’, ‘오리걸음 왕복 10번’ 등의 특훈을 받고 9시 정규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교사에게 회초리 세례를 받거나 교무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한다.   

저기. 한 놈이 된통 잘못 걸렸다.

운동장을 달리다가 담배 한 갑을 떨어뜨린 놈.

“너 이 새끼 이리와!” 불호령이 떨어지고, 어기적어기적 교사 앞으로 간 녀석에게 교사의 커다란 주먹과 발이 무작위로 날아든다. 몇 대? 셀 수도 없다. 어느 새 녀석의 입가에 피가 맺히고 녀석이 조그맣게 읊조린 “아이, 씨” 한 마디에 또 다시 무기들이 세차게 날아든다.

그 녀석, 맞거나 말거나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첫 시간부터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이 연이어 불려나가 교탁 앞에서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았다. 회초리 10대쯤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그냥 엉덩이를 슥슥 문지르며 자리로 돌아온다. 시간은 흘러 3교시. 악명 높은 물리 시간이다. 뒤에서 킥킥거리며 만화책을 돌려보던 녀석들이 ‘걸리면 죽는다’고 별명이 ‘폐암말기’인 ‘물리’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듯 연신 툴툴대던 ‘물리’가 놈들을 불러내더니 교탁부터 교실 끝까지 쫓아가며 두 녀석의 뺨을 후려친다.

“너희들 같이 쓸모없는 새끼들은 진작에 공장이나 가! 뭐하러 여기 앉아서 시간 낭비하고 있어 이 ** 같은 새끼들아!”

‘물리’의 목소리가 교실에 쩌렁쩌렁 울리고 놈들의 뺨은 붉게 부어 달아올랐다. 잠시 후 ‘물리’는 씩씩거리며 교탁으로 돌아왔다. 순간 교실에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정적이 감돈다.


점심시간이다. 

좀 전에 ‘물리’에게 뺨을 맞아 얼굴이 달아오른 한 녀석이 동아리실로 향했다. 점심시간까지 열 명이 집합해 있어야 하는데 세 놈이 보이지 않는다. 들어서자마자 동아리실에 서 있는 일곱 명의 후배들에게 ‘일렬종대’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 세 녀석을 기다린다. 잠시 후 세 녀석이 동시에 헐레벌떡 들어섰다. 한 놈씩 차례로 발길질을 당하고 다시 열 명은 일렬로 섰다. 오늘 집합명령이 떨어진 이유는 ‘인사를 하지 않아서’이다. 대략 삼십 분 정도 훈계를 들은 후배 녀석들은 오늘 저녁 노래방으로 다시 집합하여 전체 선배들로부터 얼차려를 받고 몇 대씩 돌림 빵을 당해야 할 것이다. ‘물리’에게 뺨을 맞은 녀석은 후배들이 ‘싸가지가 없다’며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폭력은 순환되기 마련.


참고로 위의 서술은 철저히 필자와 친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더 심한 이야기도 많으나 소심한 어르신들 그나마 간당간당한 심장 무너져 내릴까봐 이쯤 하기로 한다.

일진회를 비롯하여 조직화된 학생들의 폭력은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이들의 폭력이란 온갖 종류의 폭력이 당연하게 자행되는 학교와 사회에서 그들이 배운 삶의 방식에 불과한 것이다.

힘으로 권력을 과시하고, ‘시키면 무조건 따르고 때리면 그냥 맞아야 하는’ 법칙이 초중고 12년의 삶 속에서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하기에, 이렇게 길들여진 폭력 문화를 다시 공권력으로, 감시와 통제로 해체하겠다는 교육부와 경찰청의 발상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의 확대와 악순환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cctv’는 감시의 눈길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될 것이고, ‘병영캠프’는 소위 말해 ‘까라면 까는’ 힘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더욱 강력하게 인식시키게 될 것이다.

3월 초, 신입생이 들어오면 상담 일정을 잡기 이전에 보충수업 시간표를 짜기 바쁘다는 한 교사의 말이 그대로 학교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공부 못하고,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놈은 학기 초부터 일찌감치 골라 내버리는 것이 이 사회의 냉정한 ‘경쟁의 법칙’을 가르치는 학교의 교육 방법이다.


학교 폭력? 호들갑 떨 것 없다. 작금의 사태는 지금 호들갑 떨고 있는 교육부, 경찰청, 정부 당신네들이 오랜 세월에 거쳐 갈고 닦은 결과일 뿐이니.

하기야, 여의도 돔 뚜껑 아래에 앉아 허구헌날 머리 쥐어뜯고 양복 찢어가며 싸우는 어르신들이 어찌 ‘폭력의 순환’을 끊어내는 방법을 알 수 있으리오.

 ‘인권’이란 두 글자의 깊은 의미를 어찌 알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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