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양상

분류없음 2013/11/26 01:07

얼마 전 야간노동을 마치고 교대를 기다리는 아침 무렵, 늘 그렇듯이 인터넷을 통해 지난밤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늙은 여남커플이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에서 동반 투신 자살을 했다. 두 이는 성도 다르고 '법적' 혼인 상태도 아니지만 이웃들은 '부부'로 알고 지냈다고 전한다. 경찰은 두 이가 최근 들어 노환과 만성 (chronical) 질환에 따른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견디기 힘들다"는 말을 이웃을 통해 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웃들은 "평화롭고 다정한" 두 사람이 삶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늘 그렇듯이,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타인의 삶은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잔잔한 호수와 같다. 그럴 줄 몰랐던 이웃들에겐 아무 책임이 없다.

두 이는 각각의 삶을 중년까지 지내다가 황혼기에 서로 만나 우정을 쌓으며 삶을 함께 보낸 것 같다. 유서를 남기지 않은 두 이는, 여자는 동유럽에서 오래전에 이민온 사람이고 남자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유러피안 배경을 지닌 사람이다. 투신 직후 둘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절명한 것을 경찰이 확인했다.

 

또 얼마 전 한반도 남쪽의 어느 도시에서 숙환을 견디지 못한 노부부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너무 아파서" 연탄을 피우고 동반자살한 것이다. 유서를 남긴 이들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삶을 적극적으로 중단한 이유를 밝혔다.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은 십여 년을 넘는 동안 함께 투병생활을 했다. 불치병을 의학적으로 확인한 사람은 도린이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앙드레 고르가 도린의 투병을 '도왔다고' 전하지만 앙드레 고르 스스로 도린 없이 사회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을 토로한 바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삶을 '함께' 하다가 삶의 중단을 또 '함께' 선택한 셈이다. 이 둘이 앞의 두 커플과 다른 점은 문 앞에 "경찰에 신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또 여러 방편의 글쓰기를 통해 둘의 삶과 삶의 중단을 설득해왔다는 정도.

 

앞선 두 커플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죽음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때때로 내 삶을 중단하는 것에 관해 스스로 되뇌이거나 짝과 토론을 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방법에 관해 때로는 그 과정에 관해. 그러나 어떻게 해도 현세에 남아 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남기지 않을 방법이란 건 없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길래 동반자살을 결심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혹은 영화를 따라했다거나, 앞선 사람들 '흉내'를 냈다거나, 그런 추측은 아무 의미 없다. 나는 앙드레 고르 커플을 포함해 앞선 두 커플의 삶과 결단,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결단과 결심을 묵묵히 지지하고 그이들이 살아낸 거친 삶을 축복하고 싶다. 고개를 숙인다. 그이들의 명복을 빈다. 저세상 따위는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있는지조차, 그것을 알아내는 일이 나에겐 요령부득이지만 부디 그들이 다음 세상에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까닭 없는 연민에서 나오는 낭만이라고 비난받아도 나로선 할 말이 없다. 그 결심은, 결단은 무엇보다 고귀하기 때문이다. 사는 것보다, 치욕스런 삶을 살아내는 것보다 영예롭기 때문이다.

2013/11/26 01:07 2013/11/2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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