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0/01/10 22:11

2010/01/10

2009년 말 당시, 나는 화가 많이 났었고 지금은 괜찮다. 아니 그냥 고된 일정을 마치면 약간 예민해.

2010년 계획을 세우고 2009년 평가서를 쓰면서 느낀 건 내가 언제 이렇게 관성적인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것, 한글2007 화면 가득히 몇 십년 전부터 선배들이 써놓았던 글귀와 말투, 단어들이 나열이 되는 것을 보고 나는 참신해야하는 사람인데 이상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일을 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때론 과거가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그 때 배웠던 것을 버려야 할 때도 있고, 때론 그 곳을 부정해야 할 경우도 있다.

31일과1일의 경계처럼 활동하는 것에서도 경계란 존재하는 거구나.

 

그래서 오늘은 그냥 용산참사에 대해 써야겠다.

 

1. 1월20일, 전날 술먹고 혜화동에 뻗어있다가 일어났다. 문자,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잤는데 문자엔 속보, 긴급 이란 단어가 한 가득, 정신없이 광화문에서 사회권 담당자를 만나고 용산으로 달려갔다.

 

2. 인태순동지, 연대회의에서 몇 번 보았던 인태순 동지가 추워서 인지 눈물인지 얼굴이 벌개져서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지르고 있었고 정종권선배는 쌍욕을 하며 길을 열으라고 하고 있었다. 철도회의실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 범대위구성을 결의하고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건물 넘어 들려오는 싸이렌 소리,

 

3. 망루에서는 그 때까지도 연기가 나고 있었다. 탄내.

 

4. 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도, 망루에 타버렸다는 것도, 빈활에서 보았던 그 아저씨 시신이 위에 있다는 것도, 다만 실감이 나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 진짜 격하게 진행되겠다라는 생각.

 

5. 순천향병원 생활이 시작되고 3명의 수배자들이 생겼다. 전철연동지들을 비롯한 상황실장님, 등등의 사람들이 긴급체포되고 소환되고 구속되는 나날들, 나는 그 속에서, 그 곳에서 성명서, 신문을 만들었고 그 외에 것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불만만 늘어놓았지.

 

6. 사실 파견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내가 한달만 더 있었더라면 끈질기게 할 수 있었을 텐데,

 

7. 그런 아쉬운 상황들이 지속되었다. 병원 앞 육회집에서 조직위원장과 이야기하면서 내 거취라던가, 앞으로 용산 활동, 사랑*활동이나 이러저러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끈질기게 잡아야 할 무언가가 생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8. 병원생활이 지속되고 서로 지쳐가던 찰나에 전철연 국장이 술 한잔하자고 했다. 내가 30대 였다면, 나이가 좀 더 먹었더라면 아마 얼씨구나 하고 받았을 것 같은데 연배가 많으신 그 분과 술 한잔하려는 것이 부담스러워 냉큼 내뺐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곧 감옥에 갔지. 망루에 올라간 시간이 평균적으로 짧았지만 그 시간동안 그 황소같은, 노동으로 일궈진 손을 가진 그 이들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 아픈 가슴의 느낌을 가지고 용산투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려는 준비는 하지 못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9. 내가 기억도 잘 안나는 몇 개월간의 긴 투쟁에서 도대체 내가 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회의가 들고 래군이형, 종회선배 얼굴보기도 쪽팔렸지만 그래도 가끔 찾아서 한번씩 안아주고 술도 마시고 그랬는데 아무튼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것들은 많았다.

 

10.  그건 아마 자책일 것이다. 자책,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

 

앞으로 용산에 대해, 개발에 대해, 3인에 대해, 유족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날 것 같다.

가슴에 잘 고이고이 모시고 필요할 때 잘 펴서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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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22:11 2010/01/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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