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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몽상가의 정치, 사회 관련글

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7/14
    저도 담배 좀 피웁시다!!
    몽상가
  2. 2008/07/14
    백수라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몽상가
  3. 2008/07/14
    동부연합의 누군가가 쓴 글을 봤다
    몽상가

저도 담배 좀 피웁시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술과 담배를 배웠어요. 10대시절, 저는 꽤나 범생이었거든요. 엄마 아빠가 나쁜 짓이라 규정지은 행위들은 멀리 하고 학교, 집, 학교, 집 그랬더랍니다. 처음 배웠을 때부터 술은 미친듯이 퍼부었고, 담배는 그냥 저냥 피웠다 안 피웠다 했어요. 20대 중반까지는요. 그리고 드디어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심한 연극영화과 생활을 하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반쯤 미쳤을 때부터 매일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저의 흡연 생활은 평균적인 흡연자의 생활에 비하면 많이 파란만장했답니다. 왜냐구요? 저는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20살 때부터 그랬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길래 더러운 화장실에서 숨어서 피워야 하냐구요. 그래도 얼굴 팔리는 건 싫어서 길거리에서 대놓고는 못 피워도 이 골목 저 골목 열심히 찾아다니며 화장실도 아니고, 얼굴 팔리는 길거리도 아닌 적당한 지점에서 열심히 피웠던거죠. 그래도 골목을 지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총각, 아가씨, 여자 아이들, 남자 아이들은 혐오스럽다는 듯, 세상 말세라는 듯, 저 년이 미쳤구나, 나도 여자지만 이건 아니야, 저 언니 무서워 등등 각자의 입장에 제격인 눈빛을 주며 스쳐지나갔습니다. 뭐, 젊은 여자가 자기 집 앞에서 담배 피고 있으니 재수없다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쫓아내는 사람도 있었고요, 보기 안 좋으니 자기네 식당 옆에서 그러지 말고 딴 데로 가라는 사람도 있었고요. 아이들 교육에 안 좋으니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멀리서 째려보는 사람도 자주 있었구요.

 

어느 날은 밤에, 나의 흡연 자유 구역을 찾아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서 그야말로 소중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저쯤에서 이런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나 저번에 밤에 여기 지나가다가 깡패만나서 저 골목(내가 담배 피고 있던 바로 거기!!)에서 삥 뜯겼잖아.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전 정말 아연실색했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서둘러 담배를 마구 빨아대고는 내게 몇 안 되는 흡연 자유 구역에서 탈출했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사각지대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여성 흡연자를 이렇게 위험한 뒷골목으로 몰아내는 사회에 분노했어요. 정말 우리 사회는 젊은 여자가 으슥한 뒷골목에서 담배피우다 강간 살인이라도 당해야 여성에게 길에서 담배 피울 권리를 쥐어줄 건가봅니다.

 

담배를 권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여성 흡연자가 상당히 많은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왜 항상 정해진 밀폐된 공간에서만 흡연을 해야하죠? 도대체 왜, 언제부터 여성에게 흡연이 금기시 된 걸까요? 왜 담배가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었을까요? 여성 흡연자들은 너무 불편해요. 부모님께, 남편에게, 시부모님께, 자식에게, 심지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어떤 때는 같은 여자한테도 흡연 사실을 숨겨야 되며, 아침에는 내게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을까 킁킁대며 출근하고, 저녁때는 밀려오는 흡연 욕구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내야합니다.

 

혹시나 오랫동안 제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어디 으슥한 뒷골목에서 담배피우다 강간 살인이라도 당한줄 아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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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라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여러분도 이쯤되면 대충 눈치채셨다시피 저는 백수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카드 한 장 손에 쥐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어요. 카드 한 번 긁을 때마다 조금씩 더 우울해져가는 제 마음 아실는지요..

처음엔 놀고 있다는게 챙피하고 부끄러웠죠. 사지육신 멀쩡한 젊은 여자가 자기 밥벌이도 못 하고 산다는게 부모님께도 너무 송구스럽고 내가 굉장히 못난 애인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도 떳떳치 못 하고 뭐 그랬어요. 거의 매일 꿈을 꾸는 저는 꿈 속에서 정말 출근 안 해 본 사업장이 없었어요. 이런 사무실, 저런 사무실, 편의점, PC방, 간밤엔 카페에 출근해서 얼마나 열심히 돈까스를 만들고 있던지요.

 

하지만 여러분! 저같이, 저희 같이, 백수로 분류되는 인간이 이미 대한민국에 300만명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소수도 아니고 약자도 아니에요. 씁쓸하지만 젊은 실업자 역시 우리 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이고 집단이 되었습니다. 우리 더 이상 숨지 말아요. 상처는 드러내놓고 까발릴수록 빨리 낳는 법입니다. 머리가 아픈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말해야 아스피린 한 알을 구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자아 실현과 생계 수단으로써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중학교 도덕시간부터 배워왔던 직업이라는 것 없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널리 널리 알려야 해요. 그래야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깊이, 이런 아픈 현실들을 인식하고 치유하고자 할 겁니다.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물정 모르고 누군가 당신에게 경망스럽게도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보고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세요. 백수라구요. 하릴없이 매일매일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구요. 그 경망스런 누군가가 이렇듯 당당한 우리의 대답을 듣고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토록 분위기 파악 느린 그 사람의 인생을 되려 우리가 걱정해줘야 할 겁니다.

개인의 인생역정에 따라 인격은 다른 것이니, 자신에게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직업이 없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일자리가 없어진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의 윗세대는, 한국 전쟁후에 잿더미뿐인 이 땅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그 후에는 독재자에 목숨걸고 저항해 정치적인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거기까지 뿐이었습니다. 거기까지가 우리 윗세대들의 몫이었던 거죠.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내오는 동안, 그들은 경제적인 민주화에까지는 신경 쓸 기력이 없었어요. 빛나는 경제 성장의 뒤안길에서 빈부의 격차는 극단으로 치달았고, 시장만능주의 정권들은 자기들과 대기업의 이익 챙기기에만 열심이었습니다. GNP는 증가했지만, 서민 소득과 일자리는 줄었습니다. 윗세대들이 이룩했던 업적의 후유증을 우리가 지금 온전히 떠안고 있는 것입니다.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직업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무능력이나, 게으름의 표식도 아니에요. 고용없는 경제성장 기조를 철썩같이 지켜온 한 사회에서 실업자가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당당히 드러내고 아프다고 얘기할 때 우리는 소중한 아스피린 한 알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힘든일이겠지만 우리, 상처를 드러내요. 그리고 당당히 치료를 요구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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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연합의 누군가가 쓴 글을 봤다

그러니까 제발,

정치를 정치로 하자구요.

종교적인 신념으로 하지 말고!

주체 사상이 당신의 신앙인 것이 자랑입니까?

당신의 신앙인 주체사상으로 통치되는 제정일치 사회를 꿈꾸는 겁니까?

 

아~ 정말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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