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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술과 담배를 배웠어요. 10대시절, 저는 꽤나 범생이었거든요. 엄마 아빠가 나쁜 짓이라 규정지은 행위들은 멀리 하고 학교, 집, 학교, 집 그랬더랍니다. 처음 배웠을 때부터 술은 미친듯이 퍼부었고, 담배는 그냥 저냥 피웠다 안 피웠다 했어요. 20대 중반까지는요. 그리고 드디어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심한 연극영화과 생활을 하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반쯤 미쳤을 때부터 매일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저의 흡연 생활은 평균적인 흡연자의 생활에 비하면 많이 파란만장했답니다. 왜냐구요? 저는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20살 때부터 그랬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길래 더러운 화장실에서 숨어서 피워야 하냐구요. 그래도 얼굴 팔리는 건 싫어서 길거리에서 대놓고는 못 피워도 이 골목 저 골목 열심히 찾아다니며 화장실도 아니고, 얼굴 팔리는 길거리도 아닌 적당한 지점에서 열심히 피웠던거죠. 그래도 골목을 지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총각, 아가씨, 여자 아이들, 남자 아이들은 혐오스럽다는 듯, 세상 말세라는 듯, 저 년이 미쳤구나, 나도 여자지만 이건 아니야, 저 언니 무서워 등등 각자의 입장에 제격인 눈빛을 주며 스쳐지나갔습니다. 뭐, 젊은 여자가 자기 집 앞에서 담배 피고 있으니 재수없다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쫓아내는 사람도 있었고요, 보기 안 좋으니 자기네 식당 옆에서 그러지 말고 딴 데로 가라는 사람도 있었고요. 아이들 교육에 안 좋으니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멀리서 째려보는 사람도 자주 있었구요.
어느 날은 밤에, 나의 흡연 자유 구역을 찾아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서 그야말로 소중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저쯤에서 이런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나 저번에 밤에 여기 지나가다가 깡패만나서 저 골목(내가 담배 피고 있던 바로 거기!!)에서 삥 뜯겼잖아.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전 정말 아연실색했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서둘러 담배를 마구 빨아대고는 내게 몇 안 되는 흡연 자유 구역에서 탈출했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사각지대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여성 흡연자를 이렇게 위험한 뒷골목으로 몰아내는 사회에 분노했어요. 정말 우리 사회는 젊은 여자가 으슥한 뒷골목에서 담배피우다 강간 살인이라도 당해야 여성에게 길에서 담배 피울 권리를 쥐어줄 건가봅니다.
담배를 권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여성 흡연자가 상당히 많은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왜 항상 정해진 밀폐된 공간에서만 흡연을 해야하죠? 도대체 왜, 언제부터 여성에게 흡연이 금기시 된 걸까요? 왜 담배가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었을까요? 여성 흡연자들은 너무 불편해요. 부모님께, 남편에게, 시부모님께, 자식에게, 심지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어떤 때는 같은 여자한테도 흡연 사실을 숨겨야 되며, 아침에는 내게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을까 킁킁대며 출근하고, 저녁때는 밀려오는 흡연 욕구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내야합니다.
혹시나 오랫동안 제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어디 으슥한 뒷골목에서 담배피우다 강간 살인이라도 당한줄 아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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