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살면서 생각하는 것들... . . . .

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9/13
    그래, 여기 한국이야.
    몽상가
  2. 2009/03/09
    뒤늦게... 워낭소리
    몽상가
  3. 2009/01/13
    너무 마음이 아프다
    몽상가
  4. 2008/12/11
    제주도는 아름답다.
    몽상가
  5. 2008/11/13
    2008/11/13
    몽상가
  6. 2008/11/07
    2008/11/07
    몽상가
  7. 2008/10/21
    2008 에어쇼에 다녀오다(3)
    몽상가
  8. 2008/10/02
    2008/10/02
    몽상가
  9. 2008/09/15
    오랜만에 글을 쓰다!!
    몽상가
  10. 2008/07/30
    넋두리
    몽상가

그래, 여기 한국이야.

9월 3일 토요일
오늘 점심식사를 하고 부장님과 팀장님이 공장 직원들과 사무실 직원들 모두 일찍 정리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

부장님은 '왜 아무도 퇴근 안 해?' 라고 말했다.
정말 그 이유를 모르실까?
 

평소에는 늘 아침, 점심으로 하루에 두 번씩, 아무도 시키지 않은 상사들 커피를 자진해서 타는
우리 사무실 막내 여직원이 오늘은 점심을 먹고와서 걸레를 들었다.
그리고
상사들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자리가 깨끗해졌다며 상사님들이 헤벨렐레 좋아라 한다.
그래, 여기 한국이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뒤늦게... 워낭소리

늙어가는 것은 슬프다.

죽어가는 것은 슬프다.

홀로 있는 것은 슬프다.

 

한 생명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언제이든, 그것이 어떤 생명이든 나를 고통스럽게합니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소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극장의 그 한 구석 자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소 등 곳곳에 생긴 상처에는 파리가 꼬이고 그 안타까운 등을 70년 세월 흙을 파오던 고된 노동의 손이 어루만집니다. 늙은 소와 늙은 할아버지.

 

30년을 함께 일하고 어느새 함께 병들어 죽음을 앞에 둔 old partner.

고통스런 소의 죽음앞에 왜 한 줄기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왜 한 줄기 쇳소리 한숨조차 쉬지 않으냐고 할아버지께 따져 묻고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살아온 그네들의 인생임에 어쩔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노동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하게 병들어 살아야 하는 걸까요?

평생을 새벽부터 밤까지 흙파는 고된 일을 하며 그저 정직하게 농약 한 번 안 치고 살아온 이 소와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 세상일까요?

 

영화가 말해주듯, 물질 중심적이고 탐욕적인 우리의 삶이 가난한 그들의 삶을 더욱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요? 남보다 내가 더 잘 살아야한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더 부유해 질 수록 더 행복하다. 정말 우리는 남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까요?

 

우리의 교육 속에서는 어떤 가치관을 가르치고 있나요?

남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 남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야 남보다 더 좋은 직장을 갖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 내 삶이 행복하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줄세우며 상대를 짓밟는 이런 교육이 되풀이 되는 한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겁니다.

 

우리, 사람사는 세상 입니다.

좋은 대학을 안 나와도, 영어를 잘 못 해도,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되야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람사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너무 마음이 아프다

울산에서는 100m 높이의 굴뚝위에서 두 동지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고

 

제발 .......  건강히 내려오시길.........

 

가자지구에서는 어린이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이 끔찍한 학살의 상처는 그네들에게 돌이키지 못할 인생의 고통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 아침 전해받은 시사인에서는 청년 실업으로 인해 20대 범죄와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더 아프다.

 

나 자신에게 어떠한 고통스러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에도

 

세상은 참 고통스럽다.

 

슬프다.

 

슬프다.

 

나는 어쩌면

 

어쩔수 없이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하는 사람인가보다.

 

아니 어쩌면

 

어쩔수 없이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하는 세상인가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주도는 아름답다.

저는 지금 비행기 안입니다.

제주도 가는 길이에요.

아침이 밝아오고 있는 이 시간, 비행기 한 구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햇빛에는 참 오묘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잠도 거의 못 잤습니다.

공항까지 오는 차안에서 몹시 피곤하고 기분도 별로였습니다.

2박 3일동안 잘 지내고 올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조금전에, 투명한 아침 햇살이 내 얼굴 표피에 와 닿자마자 그냥 또 이유없이 미소가 번지고 맙니다.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많은 20대 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직업병 같은거라 어쩔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떤 고용형태로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고객에게 품격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겉으로는 예쁘게 화장한 얼굴로 친절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그네들 역시 비정규직 20대의 벅찬 삶을 끌어안고 버둥거리고 있지나 않은건지 궁금해졌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창 밖 세상이 대각선으로 기울었습니다.

저 아래로 세상이 보입니다.

문득 김포 공항 이착륙 항로에 있는 기륭 골목이 떠올라 저 밑에서 거기 함 찾아볼까?  하는 이상한(?)생각도 했습니다.

비행기는 금방 구름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음~ 저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좌회전(?) 우회전(?) 할 때마다 약간씩 무섭네요.

 

제주도입니다!!

바다입니다!!!!  그토록 오랜시간 그리워했던, 마냥 그리워만 하게 될 줄 알았던 푸른 빛 바다입니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우린 제일먼저 4.3 유적지 북촌 너븐숭이에 갔습니다.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서있는 위령비와 아픈 역사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4.3사건이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비극적인 사건임을 인정하고 제주도민께 머리숙여 공개 사과를 했다는 설명이 들려옵니다. 새삼 노무현 아저씨가 그리워집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너무 너무. . . . .

 

그리고 우린 돌하르방 공원에 갔습니다.

숲을 따라 나무와 작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조각해 놓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유언비어가 빛의 속도로 살포됩니다.

이동갈비 사장님이 유난히 아들에 집착하시는군요.

 

오호라~ 남근석이 나왔습니다.

아저씨들이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근데요. . . . 남근석이니까. . . . . .     여자들이 좋아하는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음~ 우리 나라에 게이 인구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스러워집니다.

아니면 돌로 만든 그  다.른.놈.의.물.건.을 보고 우리의 아저씨들이 갑자기 벅차오르는 자신감(!)에 그토록 기분이 좋아들 지셨던 걸까요.

 

공원을 돌아보며 마음이 치유됨을 느낍니다.

숲과 나무와 돌하르방과 여러 작품들이 어릴 적 한 두번 느껴보았던 엄마의 따뜻한 품처럼

나를 안아줍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매미 떼의 습격을 받아서 쓰러졌다는 한 가녀린 나무를 어떤이의 작품이 받치고 있습니다.

어떤이의 거친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못질을 한 그것은 해학적인 사람의 모양을 하고

그 한쪽 손으로 나무를 단단히 잡아받치고 있네요.

그저 맥없이 쓰러진 얇은 나무 하나, 한가닥 숨쉬고 있는 생명을 살리겠다고 어떤이는 열심히

그 나무사람을 만들었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예술가들이 참 좋아요.

우리들 사는 세상의 아픔, 상처, 고통들을 그들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표현해냅니다.

마음 한가득 따뜻함 품고 공원을 빠져나옵니다.

 

다음에 우린 성산일출봉에 갔습니다.

너른 잔디밭, 저 위에 봉우리, 맑은 바람, 바다.

행복했습니다.

이럴때 사랑하는 그이가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그의 잘나지 못한 얼굴, 희미한 채취, 몹시 너털거리는 웃음, 나를 안아주던 그 단단한 가슴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로나마 목소리만 들어도 이토록 좋은데. . . . . .   보고싶다.

 

다음 코스인 승마장 가는길. 제주의 시골풍경이 펼쳐집니다. 검은 흙, 당근 밭, 검은 돌담.

뭍에서만 자란 내겐 너무나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오후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저 많은 억새들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말에 올라탔습니다.

눈앞에 푸른 초원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또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승마장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줬어요. 그 모자를 쓴 제 모습이 몹시 미소년스럽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이 미소년 스타일의 저를 간직하고 싶어서 나른한 오후 햇살받으며 셀카질에 빠져듭니다. 음~ 무지 만족할만한 예쁜 소년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나름 또 혼자 좋아라합니다.  

   

첫째날 해가 저물었습니다.

술을 좀 많이 먹고^^;

좀 늦게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피곤함과 귀찮음에 아침도 거르고 주차장 버스앞에 집결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붑니다.

그냥 또 기분이 좋아져서 괜히 혼자 통통 거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소인국 테마파크'라는 데를 갔습니다.

우리의 기행과 어울리지 않게 참 통속적인 관광지입니다.

입구부터 저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들판에 살고 있던 숲과 갖가지 생명들 다 쫓아내고

거기다 콘크리트 깔고 졸속으로 만든 이상한 미니어처들 구경이나 하라니,

그리고 출구와 연결된 기념품점에 들러서 돈이나 펑펑 써대게하는 

이런데가 참 싫었습니다.     

 

다음에 우린 주상절리에 갔어요.

용암이 바다와 만나 급속도로 식으면서 다각형 모양으로 쪼개졌다는군요.

정말 흔히보기 힘든 돌의 모양이었어요.

 

사람들이 주상절리를 구경하기 쉽도록 높은 곳에 나무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에서서

나는 가만히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저기, 저 멀리, 아득한 아래에,

살아있는 바다가 마치 아라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나운 괴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용맹스런 생명력의 바다가 나를 집어삼킬것만 같은 아찔함에 나는 가끔씩 몸을 떨었습니다. 

그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그 바다안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털코트를 입고 있어도 추운 이 계절, 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오직 삶을 살아내야하므로

전복이며 해삼 등속의 것들을 따기 위해  바다보다 더 사나운 생명력을 가진 여인네들이  끊임없이

물속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물질하는 모습에서  민중의 여인들을 봅니다. 

노동하고. . .   노동하고. . .  노동하고. . .

합당한 댓가를 받지 못할지라도,남편에게,아들에게 많은것을 빼앗기거나 모든 것을 양보당할지라도

살아야하므로 또 그 거센 바다를 찾는 이들의 물질은 끝이 없습니다.

그네들의 노동이 아름답게 아프게 다가와 나를 작게 울립니다.

 

주상절리를 돌아보고 나옵니다.

너무나 훌륭한, 정말이지 완벽한 명당에 자리잡은 선술집에서 회한접시 하지 못하는게 너무 아쉬워

못내 시선을 거두지못하고 돌아서나왔습니다.

 

강정마을 부근의 식당에서 흑돼지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왠 고기를 이렇게 많이 시켰는지 테이블마다 태반이 남습니다.

남겨져서 버려질 그 고기들이 너무 아까워 저는 입안에 마구마구 집어넣었습니다.

게중에는 제가 많이 먹기 때문에 그다지도 와구와구 입에 들이밀었다고 오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저는 버려질 음식들이 너무 아까워서 지구와 제주 흑돼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다지도 많이 먹은겁니다.

 

물론 제가 눈에 띄게 많이 먹는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건 아닙니다.^^';

그덕에 제주에서 보낸 2박3일동안 배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만큼 더 나오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흑돼지를 좀 덜 사랑해 줄 걸 그랬나? 이제와서는 좀 후회가 되긴합니다만. . . .

암튼 대추리 이민강 아저씨는  입에다 막 집어넣고 있는 제가 뭐가 그리도 좋으셨는지

다른 테이블에서 남은 고기랑 고추까지 자꾸 갖다 주십니다.

아저씨 감사했어요.

 

그리고 하나더,

바쁜 서빙시간, 손이 모자란 어느 제주도 아주머니께서 저에게 한마디 하십니다.

"젊은 총각, 공기밥 좀 저리로 옮겨줘"

참고로, 저는 머리 길이가 꽤 짧은 여자입니다.^^

 

식사를 하고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대했던 일정인 강정마을에 다다랐습니다.

현재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고 있고요.

여러 언론보도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표현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도 의심많은 저는, 그냥 기자들이 과장해서 그런표현을 한 줄 알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마치 화가가 숱한 고민과 번민의 나날들을 거쳐 한 폭의 그림안에 완벽하게 아름다울만한 위치에   

피사체 하나 그려넣은 듯이,

곡선을 이룬 해안선과 돌과 섬들이 완벽하다싶은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 여기, 저기 사방 팔방 어디를 보더라도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마을에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사람죽이는 전쟁연습하는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네요.

버스를 타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가끔씩있는 해군기지라는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정마을을 저렇게 만들어버리겠다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군부대가 더 필요한 걸까요?

왜 더 필요한걸까요?

백수가 태반인 20대들에게 2년동안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려는 애국애족의 순수한 마음으로?

군부대 주변에 성매매 산업 육성해 번 돈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서?

아니면 북한이랑 한 판 붙어서 이겨먹으려고? 정말 한 판 붙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저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 틈새에 끼기를 포기한채 초저녁부터 줄창 잤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먼저 한라산 어승생악 방문자 센터에 갔습니다.

숲속에서, 우리 가이드인 고제량님이  문제를 내십니다.

삼촌의 울끈불끈한 몸처럼 쌔끈하게 잘 빠진 느낌의 나무는 무엇일까 맞춰보시오.

근데요 고제량님 나무는 생각이 안 나고 울끈불끈한 몸 같다는 저 표현만 생각나는데 어쩔까요? ^^;

돈 열심히 모으고 모아 언제 함 또 제주도 가겠습니다. ^^;;

 

어딘가 이동하는 차안에서 고제량님이 해주셨던 제주도의 설화가 생각납니다.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를 만든 이야기. . . .

언젠가 그 설화가 입에서 입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래 대대로

할머니께 재밌는 옛날 이야기 해달라고 무릎베고 누워 곤히 들으며

똘망똘망 새초롬히 눈빛을 밝혔을 아이들.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 이제는 자신을 닮은 아이를 자신이 그러했듯 무릎에 뉘여놓고

가슴 한 가득 사랑하는 마음으로 설문대할망 얘기를 전해주었을 그 많은 할머니들.

그렇게 사랑을 타고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

그렇게 살아왔을 제주도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참 예쁘더라구요.

 

마지막 날의 일정을 숨가쁘게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박3일동안 너무나 그리웠던 내 사랑과의 만남!!

으헉~                     *^________^*

난 자기가 너무 좋아!

 

2박3일 동안 옆에서 저 참 잘 챙겨주시고 잘 놀아주신 상규 아.저.씨.

음~ 사회 통념상 본인은 아저씨가 맞는데 자꾸 오빠라고 우기시면. . . . .

다음에 어르신이라고 불러드리는 수가 있어요. ㅡ,.ㅡ

아저씨 덕분에 많이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추억거리 만들어주신 이은우 대표님이랑 우리 소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_ _)*

제주도 기행 실무 맡아서 고생 너무 많이 한 성철씨 푹~~~~ 잘 쉬어요.(헉, 왠지 약간 무섭게 들리는^^;;;)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어요.

바람은 따사롭고 소와 말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억새는 빛이 나고

바다는 사납도록 강인했습니다.

 

제주도에 한 번 또 가고 싶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11/13

우리 사회에서 존경할만한 어른을 만난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적개심에 가득찬 반공주의자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강철같은 심장으로 무장한 채 인정사정없이 돌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적인 경우는 있기마련이라서 가끔은 저같은 젊은이들을 감동시키는 어른들을 만나게됩니다.

 

얼마 전 모 오락프로그램에 소설가 황석영씨가 나오셨죠.

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셨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가져라, 너의 꿈을 바라보며 살아라,  사람은 누구나 오늘은 산다 하셨습니다.

 

달변과 함께 쏟아져나오는 그의 따뜻함에 저는 감당하기 벅찰만큼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참 시렸습니다. 상처투성이, 미움투성이인 제 가슴을 어느 따뜻한 손이 다정히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습니다.

 

황석영이라는 사람이 참 부러웠습니다.

훌륭한 어른이라는 자질을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아서 많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많은 곡절들을 몸으로 겪으며 그 아픈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 그의 삶이

나에게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니.

 

팍팍한 세상,  점점 강철 같아지는 것만 같은 내 가슴이 따뜻함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덥혀진 가슴으로 또 세상 살아가게 됩니다.

차갑지 않게 따뜻하게. . . .   혹은 뜨겁게. . . .

 

그처럼 묵묵히.  미움없이, 분노없이, 폭력없이, 무거운 삶을 견뎌내고 싶습니다.

 

그와는 달리 훌륭한 어른의 자질을 타고나지 못한 저는 최소한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추한 어른이 되긴 싫거든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11/07

또 사랑에 빠졌다. 나 정말 왜이러니?

내게 사랑은 언제나 힘들고 슬픈, 그런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되버렸다.

게다가 그는 내 기피대상 1호 바쁜 남자다. 그리고 사는 곳도 멀다.

으흐~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그를 만나게 된 이후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민이 많다.

 

28살이 된 후, 나는 더이상 사랑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행복같은건 바라지도 않게 되버렸다. 그냥 너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를 좀 덜 힘들게 했으면 좋겠다. 그가 나로 인해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는 내가 그리도 좋은지 동네방네 나랑 사귄다고 소문을 열심히 내고 다닌다.

사실 나 쫌 이상한 앤데 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더욱 고민스럽다.

 

늘 사랑이란 걸 그리워하지만 막상 다가오면 두렵고 슬프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늘 아프다.

 

나랑 비슷한 여자가 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뜨 삐아프.

나를 감히 그녀와 비교한다는게 몹시 겸연쩍하긴 하지만

그녀도 꽤나 사랑에 결핍돼 평생을 사랑만 쫓아다니다 결국 혼자 쓸쓸히 죽었다.

이렇듯 불행한 또 불쌍한(내 판단에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속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년의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 . "

사랑으로 인해 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만을 갈구한다.

사랑, 그 황홀한 느낌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

난 진심으로 그녀를 동정한다. 그녀의 삶이 참 가엽다.

 

나도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

나 정말 그렇게 살기 싫은데 내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와 많이 닮아있다.

 

글 쓰는 김에 내 연애이야기 좀 한번 해볼까?

그와 나는 기륭 농성장에서 만났다. 난 그날 거기에서 너무 슬펐다. 아무도 모르게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닦아내고 닦아냈다.

그리고 농성장에서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당원들을 만나면 참 할 말이 많다.

 

우리 자리에 어떤 사람이 왔다. 

우리는 계속 얘기했고 그 사람은 잠시 있다 막 돌아다녔다.

그러다 가끔씩 와서는 집에 안 가냐고 자꾸 물었다.

난 처음엔 막차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더 있겠다고 얘기했다가

술 더 먹고 가겠다고 했다가 자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남이사 집을 가던가 말던가 뭔 상관이야.

기집애는 싸돌아 다니지 말고 빨리 집에 쳐 들어가란 얘긴가?'

어쨋든 "집에 안 가요?" 소리만 듣다가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어머나 그 다음날 저녁, 그에게 전화가 왔다. 평택에 놀러올테니 술 먹잔다.

난 엉겁결에 그러마고 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남자 변탠가? 여기까지와서 나 술먹여 놓고 함 어떻게 해보려고 그러는건가?

아니면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음~ 전자일 가능성이 높아.....'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무슨 핑계를 대고 파토를 낼까?

열심히 생각했다.

 

하지만 몇일간의 자체 조사 결과, 그가 평택까지 와서 나를 만나려는 이유는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시키려는 의도인 것이 유력해졌다.

 

정말이지 마음이 한결 놓였다.마음을 푸욱~ 놓고 그와 통화를 했다.

이번 주에 있는 경기도당 사무실 개소식에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는 무척 당황하더니 대뜸 말했다.

나한테 관심있어서 함 만나보고 싶단다.

사실 티는 안 냈지만 난 속으로 무지 기뻤다.

나 아직 죽지 않은 것이었다!

난 여전히 매력적인(?) 미녀(??)였던 것이다!!

 

그후로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쯤 나를 좋아한다던 그를 볼 수 있을까?

그사람이 어떻게 생겼었지?

내 희미한 기억에 내가 좋아할만한 스타일이긴 했던 것 같았는데. . . .

 

그를 만났다.

기륭의 그 어두침침한 농성장에서 봤을땐 20대로 보였는데. . .

음. . . 그렇군.

배운게 많은 그는 자꾸 어려운 단어를 쓴다.

음. . .   음 . . .

횟집의 밝은 불빛에서 보니 날나리 활동가의 고단한 생활이 엿보인다.

음. . . .

 

난 점점 취해갔다.

취하니 그의 팔뚝이 꽤 섹시해 보인다.

맨날 나이 40먹은 두아이 아빠인 우리 소장님 팔뚝만 보다가 37세 미혼 남성의 팔뚝을 보니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니 더 취했다.

그가 조승우로 보인다.........

 

그는 내게 해독제(숙취해소제) 2캔을 사줬다.

그리고 날 집에 넣어줬다. 안 그래도 되는데. . . ; 굳이 뭐. . .  왜?;;

 

몇일 뒤 우린 다시 만났다.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장난을 치면서 

그는 나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해준 맛있는 밥도 좋고

같이 얘기하는 것도 좋고

그의 팔베게도 좋다.

 

맥주 시킬 때 꼭 신경써서 내가 좋아하는 카스 주문하는 걸 잊지 않는 것도 좋고

바쁜 와중에도 잊지않고 나 챙겨주는 것도 좋고

너털거리는, 얼핏 보면 무지하게 착한 사람일 것 같은 그 웃음도 좋다.

 

항상 지금처럼 그가 건강하길. . .

힘든 현장에서 너무 상처받지 말길. . .

용역 깡패들이 때리려고 쫓아오면 맞지말고 요리조리 잘 도망다니길. . .

 

그리고

 

나 때문에 너무 힘들게 되지않기를. . . . .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 에어쇼에 다녀오다

지난 10월 11, 12일 송탄의 K-55 미공군 기지에서는 에어쇼가 열렸습니다.

토요일, 여느 날처럼 바닥과 합일이 되어서 끝없이 뭉기적거리고 싶었던 저는, 에어쇼 염탐(?)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따뜻한 전기장판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며 일어났지요. 날씨도 참 좋더군요.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행사장인 두리틀 게이트까지 송탄역에서 셔틀버스가 운영되기 때문에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게이트 앞에는 몇몇 노점상들이 먹을거리를 팔며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고 사람들은 손에손에 주민등록증을 들고 줄지어 검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은 안 된다는 겁니다. 불행히도 제 지갑 속엔 달랑 운전면허증만이 얄궂게 들어있었구요. 살짝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사전에 충분히 공지를 했어야지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이러면 입장도 못 하고 그냥 돌아가라는 거냐구요. 운전면허증은 왜 안 되냐고, 미리 공지를 했어야지 않냐고 따져 물었지만 원형탈모증 증상이 있던 그 대머리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되돌아가는 시민들이 일부 있었지만 늘 그렇듯, 이런 퐝당한 상황에서도 항의하는 건 저 혼자 뿐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반대로 걸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 방 서랍 안에서 내 나이 18세 때의 모습이 봉인되어 있는 주민등록증을 챙겨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때는 오후라서 사람들이 더 많더군요. 참 많은 사람들이 송탄역에서 내려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암튼 그럭저럭 해서 드디어 입장을 하게 됐습니다. 공항 검색대처럼 네모난 장비도 지나고 CSI에서 봤던 것처럼 무슨 청소기같이 생긴 장비로 몸수색도 받고 그랬습니다.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는 마침 가방 안에 가지고 있던 평화센터 안내 팜플렛과 소음 관련 스티커 때문에 살짝 쫄았지만, 통과되었습니다. 부대 안으로 입장해서는 빨랫줄 같은 걸로 표시해놓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잘생긴 군견들도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고요. 저 멀리 행사장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열심히 구경하고 있습니다.

 

길게 늘어선 각종 부스에서는 미군 부대 내의 각종 위원회나, 단체들이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핫도그, 햄버거, 바비큐, 김밥, 라면, 맥주 등 여러 가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에 저도 군침을 좀 흘렸죠.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 날 아침 배달된 신문에서 본 환율은 달러당 1300원대였습니다. 그즈음 1400원대로 진입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달러당 1500원을 적용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 듯해 또 기분이 살짝 나빠졌습니다.

행사장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보였습니다. 가족단위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여유로운 휴일을 만끽하는 모습이었죠. 헬기, 전투기, 전차, 저 멀리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까지 온갖 무기들에 둘러쌓인 채 말이에요. 미군 밴드의 신나는 연주는 더욱 흥을 돋궜지요.

 

혼자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정말 예뻤던 머핀도 사먹고 그러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에어쇼가 시작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들으니 이륙시 전투기 굉음이 엄청나더군요. 몸을 울리는 진동도 엄청났구요. 사람들은 열심히 구경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준비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많았구요. A-10, F-16, 블랙 호크, 아파치 헬기 11대가 날아올랐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에어쇼라는 건 별거 없었습니다. 크지도 예쁘지도 않은 폭죽 같은 것만 연신 터트렸어요. 그냥 전투기들 날아다니고 폭죽 몇 개 터트리고 작은 폭격 시범과 인명구조 시범 이런 게 다였습니다. 볼거리는 별거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 미국 사람들이 잘 하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전투기들이 ‘슈우욱~’ 날아오릅니다. 활주로를 따라 촘촘히 늘어선 스피커에서 ‘두두두두~’하며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마치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는 그림이 연출됩니다. 그러면서 멘트가 이어집니다. ‘미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평화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또 ‘두두두두두~’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꽝! 꽝!’ 소리를 내며 폭격 시범을 보입니다. 처음엔 빨간 불이 일다가 시커먼 연기가 원모양으로 퍼져 오릅니다. 헬기에서 몇 몇 미군들이 내려오더니 인명 구조 시범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또 멋진 멘트가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적진에 둘러쌓일 때 미군이 여러분 곁을 지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이겁니다. 그들이 에어쇼라는 걸 하는 이유죠.

 

이라크 전쟁에서만 미군 병사가 4200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미국에서 반전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죠. 하물며 이라크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라크 현지로 파병된 미군의 소원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서 나가는 것이고, 민간인의 소원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전쟁을 하고 있는 곳이 이라크만이 아니구요.

 

이런 아픔들을 외면하고 전쟁 무기를 그럴듯한 쇼로 위장해 시민들에게 선전하는,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끔찍한 논리를 멋지게 포장해 전달하는, 그 현장의 한 가운데서, 수 천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참 외로웠습니다. 이 싸구려 쇼 뒤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슬픈 피를 기억하는 이는 나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 전투기들의 굉음을 들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두려울까. 그들의 소원대로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후에, 평생동안 그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살아야 하는 그 삶들은 또 얼마나 고단할까.

 

그 곳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또 한 번쯤, 전쟁의 참상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며 측은지심도 가져봤을 겁니다. 부디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멋진 모습보다 그 측은지심이 더 강한 힘을 갖고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10/02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 .

그렇게 큰 집에서 호의호식 하면서 살면서도. . .

자살하는군요.

. . . . . . .

 

 

 

 

나도 데려갔으면. . . . . .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랜만에 글을 쓰다!!

요즘 참 아무생각없이 살았다.

일이 바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신문 볼 시간도 없으면서 책도 못 보고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그러다 며칠전 하루 8시간 근무를 반상근으로 돌리면서 책을 좀 볼 여유가 생겼다.

마지막 몇 페이지 남겨둔 88만원세대를 마저 읽고 참 우울했다.

정말 마지막 10페이지 정도 됐나? 고것만 읽었는데도 사람 참 우울하게 만든다.

모든 페이지가 우울한 전대 미문의(!) 책이다.

 

생각해보니 올해 초에 막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면서 열심히 썼을때는 일이 없어서 팽팽 놀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글 쓸 여유가 좀 있었는데 출근하면서부터 책도 못 보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거의 글을 못 썼다. 그렇다고 일이 바빴냐. . .    그것도 아니다. 역시 나의 나태한 정신력이 문제인건가~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넋두리

요즘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특성상 당연히 급여는 적다. 그거는 뭐 나도 돈 많이 벌고싶은 생각이 없으니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일하는게 전혀 즐겁지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

그러니 당연히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안생긴다.

 

오늘은 좋은 사업 아이템이 떠올라서 열심히 기획안을 작성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획하고 있는 대중사업이 잘 되면 좋은데,

별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이 단체가 득을 보게되는게 싫다.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는,이 지역은, 운동권 특유의 경직된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담배 한 대를 피울 때, 여기저기 눈치를 보아야 한다.

왜냐면, 내가 여자니까

그리고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정파 사람들을 자극하면 안된다.

왜냐면, 내가 속한 정파는  힘이 없으니까.  맞대거리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의 패권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비민주적인,

그리고 기본적인 정치소양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유아적인 모습을 봐야 한다.

80년대에 멈춰있는 사고방식과 이론, 지겹다.

난 그게 싫어서 탈당한건데, 여기서 일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자주 본다.

그들은 내가 속한 정파를, 정말이지 만만하게, 아주 우습게 생각한다.

왜냐면 이쪽 지역은 그 사람들이 장악했으니까

 

여기서 말 안 통하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정말이지, 맘이 맞고 말이 통하는, 진짜 동지라고 할 만한 사람이 이곳엔 없다.

우리 단체에만 없는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자체에 없다.

 

이번에 나는 정말이지, 동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여기에 몇 달 있어보니 정말 외롭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엔 상근자가 두 명이다.

소장님과 나.

소장님은, 상근자는 활동가이지 절~~~~~~대 노동자가 아니라는 굳은 신념아래 헌신적으로 일하신다.

상근자도 당연히 노동자라는 생각을 가진 나는 나름 꾀부리며, 사실은 좀 많이 꾀부리며^^;  열심히 눈치보고 있다.

 

단체에 정이 안 가니 일의 능률은 떨어지고, 눈치보면서, 재미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죽을 맛이다.

다니기 싫은 직장에 억지로 다녀서 그런지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업무량이 과한 것도 아닌데 항상 피곤하다.

가벼운 우울증 증세다.

 

그래서 그만둘 예정이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ㅠㅠ

서울쪽에, 진보적인(!) 단체도 생각해보고, 일단은 몇 달 알바를 하면서 천천히 일자리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해 볼 예정이다.  

 

대학 졸업후 지금까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취직하는 식이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부모님돈 까먹으면서 놀만큼 여유가 넉넉지 않다. 그렇게 급하게 들어간 직장을 오랫동안 다닌적이 없다.

 

일반적인 회사처럼 경직된 조직은 내게 맞지 않고, 시민단체도 나와 정파가 너무 다른 시민단체는 겪어보니 힘들다.

 

이직의 전과가 이렇듯 화려하니, 지인들은 그냥 여기 다니라는 분위기다. 어딜가나 넌 마찬가지일거라는 식이다. 다들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데 넌 조금 힘든것도 못 참고 어떻게 먹고 살거냐는 얘기다.

 

그 말도 맞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나도 참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나보다 더 발전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지금껏 생각지 못해왔던 것들에 대해서 듣고 생각해보고, 그런 것이 좋다.

그런데 여기 있으면, 배울게 별로 없다. 오히려 퇴보하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집도 절도 없는 이 가난한 20대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