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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에어쇼에 다녀오다

지난 10월 11, 12일 송탄의 K-55 미공군 기지에서는 에어쇼가 열렸습니다.

토요일, 여느 날처럼 바닥과 합일이 되어서 끝없이 뭉기적거리고 싶었던 저는, 에어쇼 염탐(?)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따뜻한 전기장판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며 일어났지요. 날씨도 참 좋더군요.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행사장인 두리틀 게이트까지 송탄역에서 셔틀버스가 운영되기 때문에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게이트 앞에는 몇몇 노점상들이 먹을거리를 팔며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고 사람들은 손에손에 주민등록증을 들고 줄지어 검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은 안 된다는 겁니다. 불행히도 제 지갑 속엔 달랑 운전면허증만이 얄궂게 들어있었구요. 살짝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사전에 충분히 공지를 했어야지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이러면 입장도 못 하고 그냥 돌아가라는 거냐구요. 운전면허증은 왜 안 되냐고, 미리 공지를 했어야지 않냐고 따져 물었지만 원형탈모증 증상이 있던 그 대머리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되돌아가는 시민들이 일부 있었지만 늘 그렇듯, 이런 퐝당한 상황에서도 항의하는 건 저 혼자 뿐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반대로 걸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 방 서랍 안에서 내 나이 18세 때의 모습이 봉인되어 있는 주민등록증을 챙겨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때는 오후라서 사람들이 더 많더군요. 참 많은 사람들이 송탄역에서 내려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암튼 그럭저럭 해서 드디어 입장을 하게 됐습니다. 공항 검색대처럼 네모난 장비도 지나고 CSI에서 봤던 것처럼 무슨 청소기같이 생긴 장비로 몸수색도 받고 그랬습니다.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는 마침 가방 안에 가지고 있던 평화센터 안내 팜플렛과 소음 관련 스티커 때문에 살짝 쫄았지만, 통과되었습니다. 부대 안으로 입장해서는 빨랫줄 같은 걸로 표시해놓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잘생긴 군견들도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고요. 저 멀리 행사장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열심히 구경하고 있습니다.

 

길게 늘어선 각종 부스에서는 미군 부대 내의 각종 위원회나, 단체들이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핫도그, 햄버거, 바비큐, 김밥, 라면, 맥주 등 여러 가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에 저도 군침을 좀 흘렸죠.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 날 아침 배달된 신문에서 본 환율은 달러당 1300원대였습니다. 그즈음 1400원대로 진입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달러당 1500원을 적용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 듯해 또 기분이 살짝 나빠졌습니다.

행사장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보였습니다. 가족단위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여유로운 휴일을 만끽하는 모습이었죠. 헬기, 전투기, 전차, 저 멀리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까지 온갖 무기들에 둘러쌓인 채 말이에요. 미군 밴드의 신나는 연주는 더욱 흥을 돋궜지요.

 

혼자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정말 예뻤던 머핀도 사먹고 그러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에어쇼가 시작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들으니 이륙시 전투기 굉음이 엄청나더군요. 몸을 울리는 진동도 엄청났구요. 사람들은 열심히 구경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준비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많았구요. A-10, F-16, 블랙 호크, 아파치 헬기 11대가 날아올랐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에어쇼라는 건 별거 없었습니다. 크지도 예쁘지도 않은 폭죽 같은 것만 연신 터트렸어요. 그냥 전투기들 날아다니고 폭죽 몇 개 터트리고 작은 폭격 시범과 인명구조 시범 이런 게 다였습니다. 볼거리는 별거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 미국 사람들이 잘 하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전투기들이 ‘슈우욱~’ 날아오릅니다. 활주로를 따라 촘촘히 늘어선 스피커에서 ‘두두두두~’하며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마치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는 그림이 연출됩니다. 그러면서 멘트가 이어집니다. ‘미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평화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또 ‘두두두두두~’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꽝! 꽝!’ 소리를 내며 폭격 시범을 보입니다. 처음엔 빨간 불이 일다가 시커먼 연기가 원모양으로 퍼져 오릅니다. 헬기에서 몇 몇 미군들이 내려오더니 인명 구조 시범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또 멋진 멘트가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적진에 둘러쌓일 때 미군이 여러분 곁을 지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이겁니다. 그들이 에어쇼라는 걸 하는 이유죠.

 

이라크 전쟁에서만 미군 병사가 4200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미국에서 반전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죠. 하물며 이라크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라크 현지로 파병된 미군의 소원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서 나가는 것이고, 민간인의 소원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전쟁을 하고 있는 곳이 이라크만이 아니구요.

 

이런 아픔들을 외면하고 전쟁 무기를 그럴듯한 쇼로 위장해 시민들에게 선전하는,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끔찍한 논리를 멋지게 포장해 전달하는, 그 현장의 한 가운데서, 수 천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참 외로웠습니다. 이 싸구려 쇼 뒤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슬픈 피를 기억하는 이는 나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 전투기들의 굉음을 들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두려울까. 그들의 소원대로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후에, 평생동안 그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살아야 하는 그 삶들은 또 얼마나 고단할까.

 

그 곳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또 한 번쯤, 전쟁의 참상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며 측은지심도 가져봤을 겁니다. 부디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멋진 모습보다 그 측은지심이 더 강한 힘을 갖고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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