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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미행(美行) :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역 순회 사업, '미디어 게릴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미행'은 블로거, 만화가, 노동자, 작가 등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미행의 지역 순회 사업은 진보신당과 함께 진행된다. |
▲"지금 20대들이 처한 이 곤란한 경제 상황은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나 인생 설계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정서적인 측면에 주는 상처도 커요." ⓒ프레시안 |
구미. 무엇보다 죽은 독재자의 고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매우 보수적 일 거라 예상되는 곳이었는데, 그 지역의 실업계 고교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 커플인 듯 어울리는 한 쌍,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남학생 한 명, 고등학생 인 줄 알았던 젊은 취업 담당 선생님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고졸이란 최종 학력으로 취업을 해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이 친구들은 비정규직을 바로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비정규직이란 상시적인 고용불안 그 자체. 구조조정이 단행될 시 가장 먼저 희생되는 노동 약자들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그런 고용 불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공사판 노가다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 빈부가 고착화 된 사회에서 가계를 통해 대물림되는 비정규직의 아픈 모습입니다.
현실에 대해 너무나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이 친구들과의 대화 끝에 우리는, 우리들의 잊혀진 로망인 10대의 감성 같은 것에 굉장히 목말라졌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꿈이 뭐에요?"
돌아오는 답변, 꿈은 꾸어봤자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현실을 빨리 직시하는 게 낫다. 먹고 살기도 벅찬 세상에 꿈은 필요 없다.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취직, 먹고 사는 것, 이것 외에는 무엇도 바랄 수 없는 10대들. 우리 사회는 왜 젊은 그들에게서 꿈을 약탈했을까요? 그리고 언제까지 우린 이런 약탈에 고요히 동조하고만 있을까요? 꿈은 사치라는 젊은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미래가 있을까요?
구미의 전교조 사무실에서 10대들을 만나고 우리는 밤길을 달려 경산에 이르렀습니다. 대구 지역의 대학생들을 만났어요. 인터뷰에 응해 준 다섯 명의 대학생들 가운데 연극의 꿈을 가진 한 친구 외에 누구도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이렇다'라고 말하지 못 했습니다. 모두들 그저 막막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선배, 동기들의 얘기만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두들 그저 막막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선배, 동기들의 얘기만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프레시안 |
2006년도에 편의점에서 시급 2500원을 받으면서 야간 알바를 했다는 여학생의 이야기는 참 화나더군요. 어떻게 밤새 일을 시켜놓고 시급 2500원을 줄 수 있는지. 또 사장에게 최저 시급을 요구해봤자 결국 싫으면 나가라는 얘기밖에 들을 수 없는 힘없는 알바생의 현실이 토해져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비정규직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구질구질 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 따위는 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다른 대학생들이 다 실업자나 비정규직이 될지라도 나는 자격증 많이 따고, 토익 공부 열심히 하고, 학과 성적 관리하고, 거기에 보험으로(!) 공무원 시험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어떻게든 나 하나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될 거라고 맹목합니다. 이것은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대학생이라는 특권 의식에서 발로하는 것입니다. 사방 천지에 널려있는 고깟 대학생이 뭐라고 말예요.
보다 깊은 원인은 우리 모든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공교육에 있습니다. 초·중·고 12년의 공교육 과정 동안 공동체, 연대라는 가치보다는 경쟁, 우위, 승리라는 가치만을 배워온 결과입니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나 하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사고가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는 거죠. 저처럼 경쟁에서 도태된 다수의 삶은? 물론 알바 아닙니다. 그치들도 자기들이 다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거죠.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던 그 때 어느 일간지에 이런 만평이 실렸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기쁨은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기륭 노동자들의 고통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들이대는 이중 잣대에 대한 슬픈 꼬집음. 이 편협한 이중 잣대의 가장 큰 피해자는 20대인 당사자이면서도 끝내 그 편협함 안에서 스스로들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입히고 있는 그들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친구들도 당장 먹고 살기위해 아무데나 취직해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그냥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나처럼 꿈도 희망도 없이 매일 술이나 퍼마시며 지내게 될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마음 한 켠이 어두워졌습니다.
취업을 앞둔 그 여고생이 월급 40만원을 받고 미용실에서 일하지 않게 되길 바래봅니다. 유아 교육을 전공한 그 여대생이 월급 60만 원을 받고 어린이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살피는 중노동에 시달리지 않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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