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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루홈런의 꿈, 인필드플라이의 삶

  • 등록일
    2010/11/17 15:58
  • 수정일
    2010/11/17 15:59

 

과거에 썼던 글이 생각이 났다. 그가 갔으니까.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 어딘가에 먹고살자고 남이야기를 매주 써대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찾아갔던 어느 공연에서 달빛요정이 무당 이야기를 했다. 누가 자기보고 무당이랬다고. 내 이야기인가 싶어 기분이 매우 묘했다. 하지만, 이렇듯 사소한 인연도 이젠 안녕이구나. 슬픈 일이다. 그냥 그 작은 인연을 추억하고 (또 뭔가 티를 내고) 싶어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새삼 다시 들추어 내본다.

 

 

= 만루홈런의 꿈, 인필드플라이의 삶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랜만에 참 좋은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입가에 웃음이 돌긴 하지만 달콤한 맛 보다는 쓴 맛이 입안을 감도는 그런 노래다. 또한 그 맛이 쓰다 한들 입에 담긴 한 방울이라도 허투루 생각지 않게 되는 좋은 약처럼 내 삶에 푸근하게 쓴소리를 던져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같은 노래다. 가수의 이름은 오래전 박봉성의 만화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노래 분위기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이름하여 원맨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프로젝트를 이끄는 원맨은 ‘신인 가수’라고 말하기는 좀 쑥스러운 73년생, 이름은 이진원이라 한다.

 

<역전만루홈런>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게도 이 밴드의 홈페이지 대문에는 근육질의 한 남성이 야구 방망이를 꾹 움켜쥐고 마치 멋진 만루홈런이라도 후려칠 듯한 모습으로 지켜서 있다. 그러나, 대충 30대를 전후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마치 사천왕(四天王)처럼 대문을 지키고 있는 근육질 남성의 이름이 사실은 ‘삼미’라는 것을. 너구리 장명부, 수퍼스타 감사용 등을 배출하고 프로야구사에 수많은 금자탑을, 다른 팀들이 세울 수 있도록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삼미 슈퍼스타즈’.

 

‘삼미’를 앞세운 뮤지션이 왠 가당치 않은 <역전만루홈런>을 밴드의 이름으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거지들이 야구팀을 만든다고 해서 꼭 ‘거지스’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꼭 그 만큼의 크기로 함께 떠올랐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팝 가수 프린스(Prince)의 이름과 그의 노래 스타일에서도 그렇듯, 누군가의 이름이 삶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름은 이름, 삶은 삶일 뿐. 아니나 다를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름을 가진 이 프로젝트 밴드의 음반 내용은, 앨범 제목은, 허무하게도, 정말 이다지도 허무하게도 <인필드플라이Infield Fly>다.

 

인필드 플라이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거다. 득점권에 주자가 가득한 긴장된 상황에서 타석에 나선다. 자신은 물론 양팀 선수들 모두 긴장하고 있다. 젖먹던 힘까지 다 해서 휘두른 배트, 야구공은 알밤까기 하듯 배트의 윗부분을 미끄러지면서 대략 80~90도 각도로 하늘높이 치솟는다. 순간 모든 이들의 긴장은 일시에 이완된다. 선수들은 공이 낙하하기도 전에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서 하품을 하거나 신발끈을 묶는다. 심판 역시 수비수가 공을 잡기도 전에 아웃을 선언한다. 홈런을 꿈꾸던 타자는 자기 편의 따가운 시선을, 상대편의 조롱 어린 시선을 뒷통수로 막아내며 덕아웃으로 들어온다. 물론 그곳마저 이미 가시덤불 같은 곳이지만, 그래도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한다. ‘XX, 그래도 병살타 안 친 게 어디야.’

 

야구장 안에서 인필드플라이란 주로 8번이나 9번타자의 인생일 테지만 야구장 밖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필드플라이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언제나 만루홈런의 유혹이 가득하다. 로또, 경마, 대박...... 충혈된 두 눈, 긴장된 마음으로 야구빳다를 힘껏 휘둘러보지만,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내가 그랬듯이 너도 늘 인필드플라이다. 그것은 죽도록 일하고 쥐꼬리만큼 쉬는 요즘 세상 밑바닥 인생들, 노동자들의 삶의 법칙이다.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헌사한 이들, 1할2푼5리의 승률로 살아가는 그 사람들, 바로 우리들 말이다.

 

그의 음반에는 인필드플라이의 인생, 삼미슈퍼스타즈의 인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어두운 과거와 미래로 가득하다. 음반의 첫 노래에서부터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 미친 게 아니라면’으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스끼다시 내 인생 /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 / 스끼다시 내 인생’을 거쳐 ‘죽는 날까지 살겠어 / 어렵지 않아’, ‘무척 힘들었지만 / 죽을 만큼 슬프진 않아’등으로 이어지고 맺어진다. 달빛요정 스스로 가사에는 자신 있다고 했지만 읽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심난할 수가 없다. 모든 살과 영혼이 ‘응어리’로 가득한 사람만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이미 그와 ‘똑닮은 응어리’들이 한 주먹씩은 뭉쳐져 있을 게다.

 

응어리..... 그 응어리가 커지면 우리는 그걸 병이라고 부르고 병에 걸리면 우리는 병을 치료해줄 누군가를 찾는다. 누구는 병원에 가고 누구는 약국을 찾으며 누군가는 야매[暗]로 주사를 맞고 또 누군가는 굿판을 벌인다.

 

무당의 굿판이 예술이던 시절이 있었다.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예술이란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굿판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굿판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여러 방법 가운데 가장 흥겨운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빛요정의 노래는 우리 시대 고통 받는 청년들의 한판 굿거리인 셈이다. 풀어헤쳐지는 응어리의 심난한 가사 내용과 달리 달빛요정의 노래들은 굿판처럼 흥겹기 때문이다. 미간이 찌푸려지기는커녕 입가에 웃음이 감돌고 그 속에서 나의 꾀죄죄한 삶을 같이 풀어놓고 흥얼거리게 만들어 준다. 고해성사를 하면 마음이 행복해지는 것처럼 꾀죄죄한 자신의 인생을 털어내는 사람은 행복해 진다. 게다가 그 사이에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웃음까지 더해지면 더 말해 무엇 할까.

 

장조의 선율 속에 담겨져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달빛요정의 웃지못할 슬픈 인생과 그래도 웃는 그의 삶과 노래는, 슬프지만 울지는 않으려 이를 악물고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소중한 삶을 가꾸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 애쓰는 청년들의 삶이며 노래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돼지머리가 없어 쌀 몇 알을 통해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의 푸짐한 한판 굿거리이자 골방 속 작은 축제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그 굿판과 축제를 주관하는 달빛요정은 세상을 살아가는 고달픈 청년들의 21세기 버젼 쿨한 무당이다. 

 

- 아마, 2004년 어느날엔가, 썼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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