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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관악에서의 지난 1년에 대한 회고(1) - 선관위

기숙사 밖을 잠옷 차림으로 나갔다가 얼어 죽을뻔 했다. 정말로 겨울이라는 것을 실감케하는

 

순간이었다. 이 쌀쌀한 날씨만큼 올해 관악도 전반적으로 쌀쌀했다. 단지 날씨뿐만 아니라

 

여러 환경적인 면에서 그렇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서울대에 입학했다. 합격 통지를 받아들고 온 가족이 기뻐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활동'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정치적

지향성이 강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실제적으로 한 것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49대 총학생회 재선거 선거관리위원이었다. 학생회관에

서 공고에 있는 연락처를 보고 바로 연락했다.(아님 바로 총학실로 갔던가? 이것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첫 회의가 소집되고 선관위원들의 면면을 보았다. 4명은 재학생, 4명은 신입생이었다. 인사

를 하고 3, 4월에 정말 열심히 선관위 일을 했다. 이것만큼은 자부할 수 있다. 다른 7명보다

도 말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아픔도 많이 겪었다. 3월에 수습 시험을 통해 들어간 '교지관

악' 활동을 게을리 해버리고 만 것이다. 수습 교육을 몇 번 빠지자 당시 교지관악 편집장이었

던 김지산씨(이 분은 원래 성을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여성주의적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

는 굳이 그렇게 써주지는 않겠다.)는 나더러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빠

진 교육을 보충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둘 것인가. 사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을 강요받을 그 당시에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아마 그 때가 투표율 저조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담배에까지 손을 댔으니 말이다.(사실 나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특히 동갑내기 녀석들에게. 그런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그러한 요구에 자제력 같은 것을 별로 없었던 그 시절

에는 속으로 화가 났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선거에 올인했다.

 

 

  투표 마지막 날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전날까지 누적 투표율이 약 43%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50대 총학 선거는 총 누적 투표율이 이것도 안 되니 그것보다는 낫지만)

그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 자신을 책망했다. 선관위가 홍보를 못 한 것일까?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걸까? 이러한 고뇌 끝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종 행동을 택했다.

 

 

  그것은 바로 '마임'이었다.(혹시나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 중에 본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

겠다.) 그것이 투표율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 지, 영향이나 끼칠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달리 선택의 방법은 없었다. 우리 반 애들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줄 친구들을

구했다. 그리고 중도, 자하연, 해방터 등에서 '불나비', '희망은 있다' 등등의 마임을 하면서

투표를 독려했다. 정말 이 때는 미쳤었다. 선거 성사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대학

시절 처음의 좌절의 기억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 글을 빌어 그때 도와준

한길반 학우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날 기적이 일어났다. 투표율 50%를 넘은 것이다. 이 당시에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뻤다.(이후에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 그리고 문득 다른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날에 각 선본의 후보들이 밤 늦게까지 투표를 독려했다. 그러나 제49대 총학

재선거에 출마한 세 선본 중 한 선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직접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이후에 나와 인연을 맺다가 지금은 거의 인사도 안 하게 된 조직이다. 제25대 

사회대 선거에서는 My 머시기로 출마한 선본이다.) 게다가 그 한 선본은 바로 내가 투표한

선본이었다. 인간적인 배신감과 경멸감을 느꼈다. 아마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러한 감정을 느낀 대상이었던 것 같다. 동시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투표를 독려하는

황라열씨의 모습에서는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개표장에서 수락 연설을 통해서

(나는 개표장에서 투표 기간에 죽도록 한 '불나비' 마임을 선관위 새내기 발언 시간에

또 하였다.)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을 돌리겠다고, 학우들의 지지를 받는 학생회

를 만들겠다고 말을 했을 때는 정말 울뻔했다.(물론 이에 대한 판단도 나중에 바뀌니

오해 마시길)

 

 

  개표가 끝나고 총학생회가를 불렀다. 사실 이 때 총학생회가를 알 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물쩡어물쩡 따라 부르는 총학생회가는 정말 감격적이었다. 나는 이 순간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학 졸업 전까지는.

 

 

  그렇게 나의 3, 4월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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