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生生현장 5.18 광주 그 뜨거운 도시- 4
[생생현장 르포]= 5.18 사적지, 기념 문화센터와 기념문화관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5.18기념 문화센터로 갔다. 이곳은 상무대가 이전한 이후 정부가 광주시민에 보상하는 차원에서 상무 도심 재개발지구내에 시민공원 부지로 조성된 곳이다. 5.18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과 값진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 각종 의미 있는 조형물과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다. 5.18기념문화센터, 5.18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 자료실, 휴식공간 등이 조성돼 있다. 기념문화관은 이래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199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4월 27일에 개관을 했다. 민주홀(802석) 대동홀(285석) 리셉션홀, 동시통역실,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고 5.18과 유관한 기념회 3곳의 사무실도 입주해 있다.
자료실에서 두 학생을 만났다. 수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한 사람은 화성에 또 한사람은 안산에서 살고 있다는 고 2학년 남학생들이었다. 4시 반에 도착해서 곧장 이곳으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늘 저녁엔 어디서 묵게 되나?”고 물었다. 광주로 전학을 온 친구의 초대로 온 것이라서 그 친구 집에서 잘 거란다. 마침 지인 한분이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잘 왔다.”고 격려를 하며 말을 걸었다. 원탁에 비치돼 있는 자료를 챙겨주면서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고 있었다.
미니 인터뷰, 5.18구속부상자회 대변인인 김공휴 씨
김공휴 씨는 5.18 당시 29세였다. 김공휴 청연은 신군부에게 잡혀서 무수히 많은 구타를 당하고 심지어 고문까지 당하고 구속됐던 사람이다. 이 후유증으로 인해서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안 앓아본 병이 없다고 한다. 허리 다리 골절에 신경 심지어는 정신병까지. 힘들고도 험난한 세월을 온갖 후유증과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도 사는 것 답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이 제일 힘든가 물었다. “저의 병은 4월이 되면 심해지기 시작하여 5월이 되면 더 심해집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면 두렵습니다. 올해엔 세월호 사건이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하고 운을 뗀다. 고문당한 이야기를 물었다. “고문이야 많지요. 보통 하는 고문 다 당했어요. 저같은 경우에는 ‘개미고문’도 당해봤습니다.” 개미고문이 뭔가 물었다. 그들은 김공휴 씨의 옷을 손발을 묶고 옷을 벗겨서 도청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데려갔다. 거기서 지휘봉으로 개미굴을 헤집어 건드리면 개미떼들이 김공휴 씨 몸으로 기어올라서 간질이고 따갑게 문다. 살갗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털어낼 수가 없었다. 손발이 묶인 데다 몽둥이로 감시를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도 아니면 몽둥이로 허리 다리 정강이 할 것 없이 마구 때린다.
구타와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 병신, 다리병신으로 살아온 지 34년이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19살에 신구부에 잡혀가서 영문도 모르고 당한지 34년이 됐다. 나이도 어언 53세다.
며칠 동안 구속됐었나요? “153일 동안 수감돼 있었습니다. 몸 아픈 건 둘째로 치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느라 허구 한 날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습니다. 어디 사람이 살 수 있어야죠. 거기다 이명박 이래 정부는 역사를 뒤집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5.18이 반쪽이 나 있고 올해엔 세월호 참사로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추진하고 계시는 일이 있으시죠? “네. 저희가 사단법인이라서 유지가 힘듭니다. 회원들이 심시일반으로 걷어서 단체를 유지하고 있는 관계로 공익법인단체로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저 같은 경우도 순전히 무료봉사를 하고 있고요. 그뿐만 아니라 ‘님을 위한 행진곡’도 제대로 못 부르는 이런 사회가 어서 다시 광명을 기대하는 것이고요.”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