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선택, 의정부역 가승현 사장의 구두수선점
-가장들이여 1인 유망직종을 찾아라
의정부역이다. 1호선 중에서 집 앞을 지나가는 노선을 순서대로 꼽아보면 의정부→ 양주→ 소요산 행이다. 그나저나 집을 지나 경기도까지 간 것은 나로서는 아주 오래간만이다.
경민대에서 열리는 미션컵 전국태권도대회 취재 때문이다. 의정부역에서 경민대 까지는 일행 한분의 차에 편승해 가기로 했다.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역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 규모에 비해서 거창하게 높이 솟아있는 딱딱한 건물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세련된 선율에 고개를 들어본다. 그게 어딜까? 아무래도 구두수선 부스인 것 같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귀가 호사하는구나’ 생각하고 “음악을 튼 분이 사장님이세요?” 말을 붙이며 박스 안을 들여다봤다. 고맙다. 친절하게도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순간 궁금한 점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 분은 어떻게 이 직업에 종사하게 됐는지, 수입은 얼마이며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 거야? 그런데 하는 일에 만족은 하고 있을까. 하루 동안 부스에서 머무는 시간은 또 얼마 일까?
웃으며 자리를 권하는 아저씨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내부를 둘러봤다. 쾌적하고도 정돈된 인상이 다. 시원해서 좋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 건데 ‘저 사장님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겠구나.’ 등등 짧은 순간에 다양한 느낌이 와서 꽂힌다.
취재를 하다 보면 삶의 현장에서 혹은 일터에서 자신의 직업을 귀하게 여기며 합리적인 관리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가끔 씩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늘 장. 지오노가 지은 <나무를 심은 사람>과 함께 그 글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엘제아르 부피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늙은 양치기 말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주인공 엘자아르 부피에, 그의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새로운 숲으로 탄생하고, 그로부터 수자원이 회복되어 희망과 행복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가승현 사장, 이분의 말에 의하면 10년 정도의 직장생활 끝에 퇴직하고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올해 6년 째다.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어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1년에 1~2권의 책을 읽을 똥 말똥 했는데 지금은 연 4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근처의 도서관과 책 대여점에서 빌려다 보던 것을 지금은 사서 본다. 좋은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즐겨 찾아가는 곳은 주로 노원역 근처의 중고서점이다.
“노원역에도 중고 서점이 있어요? 거기가 어디 쯤 돼요?”
“알라딘이고요 2번 출구 쪽으로 나가면 바로 보여요”.
가 사장님의 하루 근무시간은 아침 9시에서 오후 8시까지, 수입은 봉급생활 때처럼 일정하진 않아도 월 200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슬하에 2남을 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구도수선 기술이 의외로 어렵지 않나요?” “크게 어려운 것은 없고요. 기술에 자신 없거나 까다로운 것은 다른 곳에 가서 상담해보시라 그렇게 하죠.”
창문에 취급하고 있는 일이 적시돼 있었다. 구두수선, 열쇠맞춤, 도장, 상품권, 이 네 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생업을 삼으면서 CBS FM을 듣는다. 좋은 음악 속에서 틈틈이 독서삼매경에 빠져드는 기분,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는 시간이다.
가승현 사장의 성씨는 무척 희성(稀姓)이다. “희성인데 그게 우리나라 성입니까?”하고 질문 하나를 또 던졌다. 가 사장님은 중국 산동성이 본향이며 자신은 그 18대 후손이라고 했다. 전에 중국과의 무역이 서해안에서 많이 이루어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고, 그쪽에 가면 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산단다. 참고로 자신은 태안 출신이라고 했다.
가 사장님의 영업장은 의정부역사 바로 밑에 있는 봉고차만한 부스다. 각종 열쇠와 도장 재료며 구두 수선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까지 잘 갖춰져 있다. 여기에 냉방시설에 성능 좋은 오디오에, 미니 서가(書家)가 갖춰져 있다. 알고 보면 알토란같은 1인 직종이 많다. 가승현 사장의 구두수선점도 그 중 하나다.
한국의 가장들이여 블루오션에 해당하는 1인 직종을 찾아 촉각과 더듬이를 유능하게 작동시키길 바란다. 그리하여 직장 걱정 없는 세상을 살며 행복한 가정을 일구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