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잡설>친노 태동... 누가 그들의 못자리였는가?-⑤
-정동영을 죽여야 우리 차례가 온다
[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잡초는 자칫 농사꾼들에게 불청객이다. 해당 식물들이 먹고 자라야 할 자양분을 사정없이 빨아들여 고사시키는 특징 때문이다. 잡초의 이런 속성 때문에 성실한 농부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잡초를 제때 뽑아낸다.
필자는 줄곧 오늘 날의 야당에 김대중의 민주당은 없다는 전제를 깔아왔다. 친노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는 민주당의 구성원들이 무능해서일 것이다. 성실한 농부의 정신을 가진 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권 창출에 헌신했던 측근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고령이었듯 대부분이 은퇴를 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당에 남은 후배들은 우직한 충성심과 뛰어난 열정이 있어야 했다. 더해서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라도 가졌었더라면 좋았을 터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이룬 것에 대해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었으며 전기 작가인 김삼웅 작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상 정적(政敵)에 주살(誅殺)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정권교체를 이룬 유일한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정권재창출까지 한 분이었다.”고 덧붙인다.
대저 운동선수들은 정해진 룰 안에서 승리를 다투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모습에서는 상처와 부상과 땀범벅 된 유니폼을 연상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관중들은 경기를 즐기며 대리만족을 하다가 부담없이 자리를 뜨면 된다. 관전자들은 대게 운동장에서 직접 뛴 선수들처럼 상처나 부상 그리고 슬럼프 등 그 어떤 데미지는 걱정 없는 사람들이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손에 흙 묻히지 않고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끼어든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특성이 있는데, 이런 부류들에게서는 왠지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할 짓 다 하면서 관망하고 있다가 뭔가 될 만하면 뛰어들어서 과실을 따먹으니 상처 입을 일도 없고 투자금 때문에 쪼들리지도 않는다. 팔짱끼고 있다가 기회다 싶으면 잽싸게 뛰어들기에 고생도 덜 하고 기회비용도 들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천신만고 끝에 손에 넣은 것을 뒤늦게 발을 걸친 자들은 수월하게 차지하기만 한다. 누구 말마따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들이 가져간다.’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얘기다. 김대중의 민주당 멸망 사를 언급하려면 필히 호남정치의 몰락과 전북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임실,진안,장수,무주에 관련된 부분을 빼놓지 말아야 하고, 그 중에서도 임실을 빼놓을 수 없다. 임실은 선출되는 군수마다 고소고발로 인해 3명이나 수감되고 재보궐 선거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때문에 치유불능 상태인 지자체선거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라 할 만 하다. 오죽했으면 다큐멘타리로 제작되어 전국에 방송되기까지 했을까.
임실선거와 언론보도
억울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다수지만, 그중에 중앙일보와 뉴시스 보도를 그대로 옮겨본다. (임실선거, 정세균 결자해지론 대두 2014.05.06)
“일찍이 임실은 군수의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군수가 되면 모두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95년 민선 자치 도입 이후 4명 군수가 취임했고 4명 모두 각종 사건과 비리로 임기 중 중도 하차했다. 4명 중도 하차 군수 중 무려 3명이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다. 5번의 공식 군수 선거 이외에 군수 보궐선거만 3번을 치른 전대미문의 악기록을 남긴 곳이 바로 전북 임실이다.
현재도 군수직은 공석이다. 지난해 10월 당시 강완묵 군수가 선거 자금 문제로 3년간 재판을 받아오다 끝내 유죄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금도 비리 문제로 조사 중이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공천 즉 당선’이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곳. 따라서 이런 사태에 대해 사실 민주당,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측의 책임이 가장 큰 곳이다. 이렇게 되자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를 맡았다가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는 정세균 책임론과 결자해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낙마한 강완묵 전군수는 정세균 고문이 임실군 지역 국회의원 시절 두 번을 공천해 만든 사람이다. 정 고문의 고등학교(전주 신흥고) 직계 후배이기도 하다. 정 고문은 별다른 사회 경력이 없이 농사만 짓던 고등학교 후배를 군수로 만들기 위해 보좌진을 전면 투입했었다.
당초 2007년에 있었던 군수 보궐선거에 정 고문은 강모 보좌관을 앞세워 강 전군수를 공천했다. 보궐선거에서 이 강 전군수가 낙선했으나 그 다음 2010년 공식 군수 선거에 다시 내세웠다. 이에 앞서 정 고문이 임실 지역구 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군수를 지냈던 김진억 전군수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정 고문이 2년 전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 임실을 맡았던 시절, 각종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 고문은 서울로 지역구를 옮기면서 임실을 자신의 대학교(고려대) 후보인 박민수 국회의원에게 물려줬다. 박 의원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기 위해 정 고문은 친동생을 투입했었다.
일련의 군수 사고가 터지는 상황에서 정 고문은 지역 유권자 및 전북 도민을 상대로 단 한마디의 사과나 유감 표시가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였다. 공천은 당이 하고 사고 책임은 개인으로 몰았다. 이에 따라 임실군내에서는 군수 사태에 대해 지금이라도 정 고문이 책임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민선6기 선거를 앞두고도 정 고문의 전직 보좌관이 지역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김대중의 민주당....‘멸당(滅黨)이유’ 찾아내야
2010년도에 실시된 지방선거 당시 정세균은 당대표로서 공천을 총괄했다. 그런 그의 공천이 선기능으로 작용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임실지역은 그토록 쑥대밭이 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꽃처럼 만발’해도 시원찮을 우리들의 고향은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다. 군(郡) 행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걸핏하면 재판정에 드나들고 보니 경제는 낙후되고 사람들은 철창으로 직행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엉뚱한 곳으로 힘이 새나갔다. 군민들은 열등한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임실은 낙후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웅변으로 말해주는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왜 호남만, 왜 전북만, 왜 임실만 영혼 없는 사악한 자들의 착취대상이 되고 권력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지 물어보게 된다. 따져 묻는 사람이 없어서 인가. 호남사람들이 물러터져서인가.
당하더라도 알고나 당하자. 망했더라도 진단이라도 해보자.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왜 왜?” 알고 있어야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외양간을 고쳐야 예나 지금이나 농촌의 값비싼 재산인 소를 또다시 잃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2010년도 지방선거는 친노들의 세력 확장과 상당부분 맞물린다. 단언커데 이는 친노들의 기사회생이 됐으며 김대중의 민주당이 희석되는 단초가 됐다고 보아진다. 정동영이 사라질 때 최정상에 선 사람과 정동영이 추락했을 때 대권후보를 차지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정동영 추락과 전북의 맹주자리와 2012년도 대선후보
친노.친문들은 김대중의 민주당을 무력화 시키고, 100년 정당을 표방하며 열우당을 창당했지만 3년 9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그러니 집도 당도 없던 처지였다. 하지만 민주당을 차지할 발판을 이내 마련한다. 친노들은 그처럼 날개를 단다.
정세균 대표 때 민주당의 민선5기 후보들의 면면이다. 친노 한명숙을 서울시장 후보로, 역시 친노 이광재를 강원지사, 역시 친노 안희정이 충남지사로 공천된다. 경남지사에는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이 무소속으로 출마를 한다. 특히 “대구에 가서 뼈를 묻겠다.”던 유시민이 뒤늦게 선거판에 뛰어들어 경기지사 후보가 된다. 민주당에서는 이종걸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겨루고 있었지만 이들을 제치고 유시민이 경기지사 후보가 된다. 민주당 내에서 힘께나 쓰는 사람들이 동조해주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싶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부천)을 비롯, 김성환(노원), 김영배(성북), 차성수(금천) 당선자 등 상당수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진입했다.
호남에서 자라 호남의 것으로 배불리 먹으며 호남인들 덕분에 정치 거물로 자란 정치인들이 정작 키우고 보살펴야 할 호남인들에게는 무관심하다니... 서로 상생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커나가야 할 동향인들에게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자들이 친노들에게는 못자리가 되고 모판이 돼준 이런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정세균은 당 외곽에 있는 친노의 복당에 대해 “아무리 늦어도 지방선거 전에는 힘을 모아야 할 것이고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동영 의원의 복당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과 상반되는 태도였다(2009년 7월8일 한겨례 21 [768호] 최성진 기자) 라는 기사도 그 중 하나다. 이 내용은 동향인 정동영의 복당에는 당헌당규를 들이대며 짜게 굴던 것 하고는 상반되는 태도로서 친노들에게 우호적인 점이었던 것 하고는 비교거리가 될 수 있겠다.
같은 맥락에서 보도된 기사는 또 있다. ‘친노 우선 통합론’을 우선적으로 밝히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친노가 들어오면 당에 또 분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통합할 때 친노 세력은 배제해야 한다”(한겨레 2009년 9월 4일 이유주현 기자)
정통적인 김대중 지지자들은 점점 당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김대중의 후예들이 당을 나간 그 자리에 채워진 사람들은 누구인가. ⑥에서 계속
*글쓴이/박정례 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