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주 씨랑 나흘 째 점심이다. 잘 먹었다. 하도 잘 먹어서 포만감과 만족감이 저녁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바람에 저녁식사 약속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약속장소에 가서 맛있게 열심히 저녁을 먹을 자신도 없고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갈 생각이 일어나지를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더구나 식사약속까지 겸한 약속이라면 현재의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내키질 않은 약속은 양해를 구하고 연기하는게 맞다는 단안을 내렸다.
오후 2시 쯤 현주 씨랑 동대문 4번 출구 쪽을 걷고 있었다. 거기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됐다. 흡족하게 먹은 점심이었다. 값은 6천원, 뷔페식으로. 반찬도 맛있고 자유스럽고도 편안한 기분이었다. 현주 씨와 나는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껏 먹었다.
현주 씨는 며칠 전에 “점심 안 먹고 가세요? 같이 먹어요.”하고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을 들은 즉시 선뜻 동의를 하고 마주 앉았다. 어차피 먹어야 할 점심이라면 제 때 먹는 것이 제일 좋다는, 밥에 대한 평소 지론을 상기하며 기꺼이 응했던 것이다.
"그래요. 먹어요."
우리는 10.27일까지 같이 교육을 받은 입장이다. 별일이 없는 한 한주에 5일 동안 한 달 조금 넘게 날마다 그렇게 될 것 같다.
월요일엔 ‘소나무길 된장예술’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에서 된장정식을 먹었다. 값은1.1000원, 이튿날엔 맥도널드에서 3500원 짜리 점심용 햄버거, 수요일엔 신선설농탕, 오늘 동대문에서 한식뷔페식 때 내가 먹은 반찬은 브로콜리, 가지나물, 호박나물, 샐러드와 묵 두 조각, 잡채 약간에 새송이버섯조림과 볶음밥 약간과 머우가 들어간 된장국에 조기 한 마리다.
아무리 그래도 얼마나 여러 번 찾게 될지는 자신하지 못한다. 교통편과 우리들의 귀가 동선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동대문에 오게 될지(...).
인간은 참 야릇한 동물이다. 미각을 만족하고 포만감을 채우거나 만족한 후에는 흐뭇하고도 편안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흐르니 말이다. 무념무상, 걱정 근심 등 조금의 부정적인 감정이 없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가 번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만은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안쉬울 것 없는 상태로서 그저 무념무상일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해탈과 영적인 체험을 해서만이 무념무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먹고 난 후에 찾아오는 순간에도 무념무상은 찾아온다. 이런 행복도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부정할 수 있니? 그 행복과 그 만족감과 그 포만감이 짧든 길든 그 나름대로 완전한 것이라 생각한다. 찰나가 모여서 순간이 되고 순간이 모여 머릿속에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머리에 인식된 이미지와 생각들이 장기기억의 범주로 자릴 잡으면 그들은 덩어리가 된다. 덩어리는 곧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다.
그런데 나는 왜 먹는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일까? 맛과 식사에 관한 만족 같은 느낌이나 감정은 추상의 영역에 속한다. 늘 원하고 누구나 추구하지만 늘 만족할 수 없고 누구나 다 만족을 맛볼 순 없는 것이라서다.
식사에서의 만족감은 드물고도 어렵게 찾아올 확률이 높다. 참 이상도 하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동물이 만족도는 높지 않다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감정은 현실이다. 하지만 오늘 점심을 만족하게 먹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나의 태도의 기저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하는 행위는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힘들고도 어렵고도 도달하기 힘들기만 하다. 시지포스의 신화 그 자체다. 어제의 식사에 만족할수록 늘 그 수준을 추구하면서 목슴이 끝날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늘 반복해서 계속할 수밖에 없기에 더 그렇다.
무슨 말을 썼는지 나중에 다시 읽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