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도 ‘김대중 평화공원’...스토리텔링의 보고
<현지르포-③>‘김대중 평화정신’과 ‘하의도 역사’
DJ의 섬 하의도, 목포에서 뱃길로 57.9km라 한다. 돛대.삿대 하나인들 변변했을 리 없었던 오래전이었을 게다. 성능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배와 바람에 의지하던 풍선(風船)으로 물살을 가르던 시절엔 너 댓 시간이나 족히 걸렸다는 하의도였다.
그렇지만 DJ가 태어난 1924년부터 따져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속도와 더불어 오늘 날의 해로교통사정은 가히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한 생태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목포에서 쾌속선(엔젤호)으로 달리면 1시간 10분 정도요, 일반 차도선(뉴 조양페리)로 바다를 건넌다 해도 2시간 30분이면 너끈히 닿을 수 있는 현실이다.
목포 이주와 하의도 생가
세상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처연하고도 장엄한 장면 몇 개가 겹쳐온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DJ는 어땠을까. 손때 묻은 가재도구를 싣고,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서 뭍을 향해 가는 DJ모친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똑똑하고 영특한 아들의 싹수를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과 사랑하는 아들의 학업을 책임져야할 어머니로서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으리라. “‘대중’이를 위해서라면 ‘뼈마디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결심 하나는 단단했지만 말이다.
모친은 용감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마침내 큰 꿈을 이룬다. 천로역정이었으나 제 15대 대통령에 오른다. 대한민국 최초로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경제난국을 극복했는가 하면, 재임시절 내내 남북의 평화공존시대를 열었다. 그 공로로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밀려드는 상념을 뒤로 하며 DJ의 집터에 들어섰다. 그 집이 소옥이든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든 획일적인 인상을 주는 곳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탄생지 안팎에는 대통령의 목포상고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정치여정을 바라볼 수 있는 사진들이 맞아주었다. 일행은 안채로 들어가 옷매무세를 가다듬었다. 영정사진 앞에서 향을 사르고 열을 맞춰 절을 올렸다. 유난히 숙연한 표정들이다. “좀 웃어요!” 말을 던지며 지인들을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눈물이 솟네요. 생애 처음으로 찾아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후광리에서 대통령님의 정취를 듬뿍 느끼고 갑니다.” “남도 출신이지만 하의도에는 처음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대통령님의 재직 기간이 제일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방명록에 적힌 내용이 제각각이다. 베로니카 씨와 문 선생이 생가 지킴이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혼자 언덕바지로 향했다.
수탈의 표적이 된 간척지
언덕뒤편에는 논.밭이 널려 있었다. 하의도는 강수량이 많은 곳이라 했다. 섬치고는 농수(農水) 걱정이 별로 없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수탈지가 되는 운명을 거친다. 선조는 정실부인에게서 난 맏딸 정명공주를 홍씨 문중으로 시집보내면서 농지기로 하의3도의 농토 24결을 하사하고 세미(稅米)를 받게 하였다. 후손 4대까지 만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민들이 자체 개간하여 일군 땅까지 합하여 총164결(약 49만9000평)을 수탈지로 삼았던 것, 하의주민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국가와 홍씨 가문에 시달렸다. 이른바 이중과세에 해당하는 일토양세(一土兩稅)였다.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농지반환쟁의 역사가 360년간이나 계속된다. 해결점을 찾았을 때가 1956년이었다. 정부는 하의도 땅을 유상몰수*유상분배의 원칙을 세우고 농민들에게 넘긴다. 간단치 않은 역사였다. 하의도 농민들의 쟁의는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고, 일제 수탈기간을 거쳐 해방을 맞고도 11년이 지나서야 종결을 본다.
하의3도에는 흔히 말해서 두 종류의 밭과 논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곡식을 경작하는 밭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금밭이다. 김대중의 생가 앞은 소금밭이었다. 갯벌로 둘러싸인 섬 속의 섬이라 말하는 곳, 그 옛날, 아주 작은 새끼 섬 하나가 있었는데 이를 없애 염전을 일군 장소가 집 앞이다. 하의도 주민들은 갯벌을 드러난 곳이면 어김없이 달려가 간척지를 만들었다. 쌀은 온갖 물산 중에서도 천하가 알아주는 으뜸물산으로 꼽혔다. 그러기에 “오직 쌀!” 쌀을 낼 수 있는 땅을 소유한 자라야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간척지에 목을 맨 이유다. 피와 땀과 눈물 없이는 소출을 허락하지 않는 야박한 곳 간척지 말이다.
유감스러운 건물 ‘유스호스텔’
그러니 간척지 위에 세워진 김대중의 생가 터를 두고 “그 삶이 바다를 메워서 길을 내듯 험했다”며 생가 주변의 평범함과 한가로움을 약간 비틀어 "대통령께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혼신의 노력으로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다던,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 집필가요 언론인인 김택근 씨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말이라 싶다.
올해는 김 대통령 서거 8년째다. 하의도는 DJ의 선양사업지로 부상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2009년도에 도비와 지방세 85억여 원을 들여서 ‘노벨평화공원’을 조성하기로 발표하다.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생가 뒤편에 축구장 6개 면적을 확보하고 기념탑과 공원, 노벨평화관을 짓기로 한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약속했던 노벨평화관은 간 데 없고 그 자리에 박준영 전 지사의 지시로 유스호스텔이 세워지는 것으로 끝난다. DJ 서거 8년이 지나도록 개장도 못한 건물이 됐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혈세를 낭비한 면에서는 울어야겠지만 역설적이긴 하지만 본 기자가 바라본 관점에서는 유스호스텔을 개장하지 못한 점은 다행이라 싶다. 건물이 들어앉은 장소는 인체로 치면 생가의 뒷목덜미에 해당하는 곳이고, 좀 과장해서 말하면 뜬금없기 이를 데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유적지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노벨평화공원’이라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허울 좋은 시멘트건물 하나가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 스토리와 세계의 정원
꽃과 김대중, DJ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꽃을 가꾼 분이다. 1,5평의 독방에서도, 2.3천명의 경찰들이 집 주위를 에워싸며 겁박을 일삼을 때에도 정원을 돌보며 지냈다. 정적들이 목숨을 노릴 때나, 교도소에 갇혔을 때나, 가택연금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도 꽃과 나무를 통해서 위안을 얻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다독였다.
그랬다. 그의 일생은 늘 자유를 억압당하고,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DJ는 남들이 허투루 여기는 자투리 시간에도 ‘정의와 평화와 통일’에의 비전을 구상했으며, 비좁은 공간에서도 이름 없는 꽃들과 대화를 나누며 희망을 선물한 사람이었다. 이는 김대중이 김대중을 치유하는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향해서 건네는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였다. 아무도 김대중의 머릿속 재산은 어쩌지 못한 결과다.
이런 김대중 대통령이 죽어서나마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서는 생명의 위험을 5번이나 겪고, 6년간의 옥살이에, 55번이나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도달한 그의 인간승리의 역사만큼이나 찬연하게 빛나는 정원, 춘,하,추,동 철따라 피고지는 귀물다운 꽃들이 가득한 그만의 정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정원 몇을 소개한다. 캐나다의 ‘부차드공원’은 시멘트 공장에 석회석을 공급하던 채굴장이었다. 브라질의 ‘이뇨칭 공원과 야외갤러리’는 폐 광산을 활용하여 조성한 공간이다. 이집트의 ‘아즈하르 공원’은 난개발과 폐기물 매립지로 얼룩진 곳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우주적 사색의 공간’도 사람이 가꾼 독특한 정원이다. 세상은 지금 개발로 인한 자연의 상처를 치유하여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려 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디제이 생가 주변은 ‘유스호스텔’이라는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 뜬금없는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람은 오물이 가득하고 해충이 우글거리는 곳을 자랑하지 않는다. 올바른 인간이라면 더럽고 음습하며 악취가 진동하는 흉측한 곳을 내세우진 않는다. 석회석 채굴장이었던 부차드 공원과 폐 광산이었던 이뇨칭 야외미술관이, 이집트의 카이로가 특히나 폐기물 매립지였던 이즈하르공원을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힐링 공간이라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내나라 내 땅에서 자라고 있는 꽃과 식물들이 “이만큼 예쁘고, 이만큼 아름답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김대중에 헌정하는 ‘김대중 평화공원’
DJ의 후예들은 안목을 키우자. 하의도를 넘어서 전국을 아우르는 인식의 폭을 넓히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앞을 내다보자. DJ의 생가가 ‘척박한 간척지 위에 자릴 잡았네 마네’만 되 내지 말고 하의도를 다시 보고. 김대중을 제대로 알아보자
어디 DJ가 탄생지 뒤편에 유스호스텔을 지어달라던 사람이었던가? 아니다. 치워버려야 한다. 그 자리에 ‘김대중 평화공원’을 조성하자. ‘노벨평화공원’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노벨은 빼고 그냥 ‘김대중 평화공원’이라고 하면 된다. 대통령을 찾아오는 사람이나 그를 반기는 DJ나 서로 마주보며 꽃 웃음 한 번이나마 크게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자.
역발상을 해보자. 지구상에, 온 우주 안에 DJ처럼 사면팔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 섬에 태어난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DJ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되는 사람이다. 오직 DJ만이 그처럼 슬프도록 처절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탄생했다. 측은지심이 들 정도로 척박하고 외딴 볼모지에 자란 대통령, 그럴수록 스토리가 넘친다. 그러니 DJ만큼 눈물 날 정도로 서러운 오지에서 갯바람 흩날리는 가운데서 태어난 사람이 또 어디에 있는지 헤아려 보자. 대한민국은 물론 세상 세상 어디에도 9개소의 유인도와 49개소의 무인도로 둘러싸인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없을 거다. 재밌는 이야기는 현대 판 ‘권력’이라고 한다. 이처럼 DJ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미래를 위한 당부
사족 한 가지를 덧붙인다. 평창 올림픽 플라자는 개.폐막식이 끝나면 최소 4개 층이 헐린다고 한다. 1163억원이 공중에 나라가는 턱이다. 인천아시아올림픽에서도 익히 보지 않았나. 수천 억 원대를 들여 지은 경기장들이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연간 수십억 씩 돈 잡아먹는 하마가 되고 있는 사실 말이다.
85억 원의 세금이 아깝긴 하다. 그렇지만 몇 번 쓰고 허물어버릴 경기장 하나 짓는데도 수천억 씩 허비하는 것에 비하면 85억 원은 조족지혈이라 할 정도로 작은 돈이라 생각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서다. ‘하의도 해양테마파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금껏 개장 한 번도 못해 본 유스호스텔에 대한 미련일랑 정말 버려야 한다. 비워두는 날이 더 많을 것이 뻔한 곳인데 어설프게 개장을 하려했다간 수도세, 전기세, 가스 값, 인건비 등 유지관리비가 더 들어 간다. 그러니 유스호스텔을 아깝다 생각지 말고 과감하게 허물어 버려야 한다.
예컨대 ‘김대중 평화공원’을 조성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빛날 수 있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하의도를 찾는 사람들과 세계인들에게 보여달라. ’360년 하의도의 토지반환투쟁 역사’와 함께 김대중의 스토리를 올바르게 펼쳐야 한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