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花童)의 추억과 행동하는 양심
<현지르포-⑤>인간의 구원과 ‘하의도 음식 연포탕’

[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아름다움이 지니고 있는 선(善) 기능은 대단한 것이다. 사람이든 땅이든 그 어떤 상징물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미추(美醜)에 관한 기준은 우아미, 인공미, 자연미, 골격미, 관능미 등 실로 다양한 관점에서 논할 수 있는 영역이다. 주관과 객관, 때로는 구상과 추상이 교차하고 시대와 사람에 따라서 선호하는 유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러더라도 인간은 유사 이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속성에서 단 한 치도 비켜난 적이 없다. 그러면서 아름다움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바로 인간의 삶과 인생에 기폭제가 되고 때로는 창조와 발전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연화부수(蓮花浮水)의 땅 하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은 미적인 측면이 강한 별칭을 갖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지형이 물위에 떠있는 연꽃 형상이라 해서 생긴 연화부수(蓮花浮水), 어감도 좋고 발음하기에도 꽤나 부드러운 이름이다. 그러니 어떤 분야에서든 아름다운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저마다의 가치 상승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 어느 절집에 가더라도 쉽사리 마주할 수 있는 문양이다. 석가탄일에 내걸린 화려한 연등 행진이 아닐지라도 창살무늬며 단청 등 불교와 유관한 많은 용품에서 연꽃무늬는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이 중 제일의 압권은 대웅전에서 석가모니부처가 커다란 연꽃을 깔고 앉아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불상이 아닌가 싶다.

다른 종교를 보자. 천주교에도 상징 꽃이 있다. 가톨릭에서는 미사를 드릴 때 제단을 온갖 예쁜 꽃으로 장식하는데 특히 예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 축일에는 장미꽃을 온통 사용하여 전례를 진행한다. 성모를 아름답고 복된 여인이라 해서 장미의 계절 5월을 성모의 달로 정하고 장미꽃을 성모의 꽃으로 찬탄한다. 한편 예수의 양아버지인 성(聖) 요셉을 상징하는 꽃은 백합이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밴 마리아를 내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내로 맞아들여 성가족을 이룬 공로와 그의 고결한 인품을 찬양하는 뜻으로 백합을 성 요셉의 상징 꽃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연꽃은 어떤 이유에서 불가의 꽃으로 쓰이는 것일까. 연꽃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 속에 몸을 담고 있지만 맑고 청정한 꽃을 피워내는 속성으로 인해 탐욕에 물들지 않고 고결함을 추구하는 나타낸다. 또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 속성으로 인해 득도를 상징한다. 득도는 성불이다. 이어 연꽃은 세속을 초월한 경지를 함유한다. 그것은 곧 구도자의 고상한 기품과 덕목에 비유될 수 있어서이다.


여객터미널의 인상


하의도로 화제를 돌려본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은 7시 10분에 뜰 예정이다. 모두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싸늘한 바람 속에서 바라본 항구의 모습은 오롯이 어둠과 불빛으로 대변됐다. 물결에 비친 가로등은 다채롭게 흔들리며 항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틈을 가르며 우린 발걸음을 서둘렀다.

여객터미널의 첫인상은 한가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개찰을 하고 들어서자 딴 세상이 열려 있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여객선들이 저마다 손짓을 하며 소리를 높이고, 이를 좇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항구는 그렇게 아침부터 바쁜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1025개의 섬 중 72(76개라는 설도 있음)개의 유인도와 무인도 935개소로 이뤄진 신안군, 각 행선지로 떠나는 배들이 너나없이 출발을 다투고 있는 모습이었다. 새삼스럽게 목포는 ‘섬들의 수도’요 신안은 ‘섬들의 고향’이라는 지역민들의 표현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목포를 출발한 쾌속선 엔젤호는 1시간 만에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줬다.

대통령의 섬 하의도 오전 8시, 일행은 곧장 후광리 97번지로 달려갔다. 방문 목적에 부합하는 최우선 목적지였다. 신안이 초행길인 우리 두 사람이나 신안군 출신인 문 선생이나 모두 하의도는 처음이다. 우리가 미리 합의를 본 일정은 대통령의 생가 방문 외에는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 나머지 일정은 덤으로, 홀가분하게 보내도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린 ‘하의도 농민기념관’에 이어 ‘하의초등학교’ 등을 찾았다.

화동(花童)의 추억

하의농민기념관을 떠나 하의초등학교에 다다랐을 때다. 문 선생은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자라도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건넨 기억을 말해줬다. 67년 제 7대 국회의원 선거였던가 보다.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공화당 후보를 뽑아만 준다면 목포가 뒤집어질 만큼 발전시켜주겠다는 공약을 퍼부었다. 떠오르는 젊은 정치인 김대중 한 사람을 누르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각을 통째로 옮겨와 목포에서 내각회의까지 주제하며 올인 한 박정희였다. 김대중으로서는 져서는 안 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선거였다.

김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건넨 당시의 꼬마는 자라서 그의 지지자가 됐다. 그가 문철권 씨다. “우리 동네는 그 당시 접안시설이 돼 있지 않았다. 타고 들어온 배를 놔두고 종선으로 갈아타고 들어와야 했다.” 작은 배로 갈아타고 들어오던 김 대통령을 기다렸다가 달려가 꽃다발을 전한 장면이 슬로비디오처럼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다섯 살 꼬마는 자라 지금 50대 후반의 어른이 됐다.

그 기억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었다가 이제야 되살아난 것일까. 어린 화동(花童)의 가슴에 안겨있던 꽃무더기들이 한 토막의 이야기로 피어나고 있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린 시절의 추억담에서 파생된 기억의 파편을 줍기에 한창이다. 김대중에 대한 촌노의 발심(發心)은 손자의 가슴에 꽃다발을 품어 전하도록 하였다. 지금처럼 화원이나 꽃집이 흔한 세상도 아니던 시절, 총 가구 수라야 200여 세대 밖에 안 되던 작은 섬 자라도는 더구나 그랬다. 하지만 노인은 기어코 김대중을 꽃으로 맞았다.

그 모든 것이 합을 이뤄 선을 이루는 결과를 냈다. 촌노의 발심과 수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이 모여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5번의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와 55번의 가택연금과 10년간의 망명생활 중에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김대중도 대단하지만 그를 저버리지 않은 지지자들도 장하다. 그는 견뎠고 지지자들은 그가 부활할 수 있도록 수혈을 계속했다. 해해연년 피고지고피고지고 또 피고 지는 꽃처럼 그의 꿈이 자신들의 염원이 다시 피어나도록 50년 가까이 그 일을 계속했다.

문 선생님의 할아버지께서는 ‘행동하는 양심’ 족이었나 보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말을 했다. 문 선생은 “아~ 내가 그 일 때문에 대통령님 지지가 돼 부렀소.”하고 대답한다.  

연포탕과 고향의 맛

식당에 앉았다. 비교적 이른 점심이었다. 메뉴를 고르며 든 생각, 여러 끼니를 비싼 생선 요리만 먹었다싶었다. 한 끼쯤 된장찌개도 괜찮겠지 하고 있는데 “하의도에 왔으면 연포탕 정도는 먹고 가야 하지 않나요?”하는 문 선생의 말이 들려왔다. 연포탕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문 선생의 기세가 좌중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아 예~ 전 좋습니다.” 베로니카 씨가 재빨리 응수를 했다. “좋은 거면 저도 뭐 괜찮습니다.” 재청하듯이 나도 맞장구를 쳤다. 점심 메뉴는 문 선생의 주장대로 결정되었다.

낙지 대가리를 연포라 했다. 하지만 연포만으로는 조리를 하지 않는단다. 낙지를 주재료로 해서 맑은 국물이 있게 하는 낙지요리를 연포탕이라고 했다. 음식이 나오자 “바로 이 맛입니다. 아~ 개운하다.” 문 선생이 국물을 떠먹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찾은 하의도인데다 원하는 음식까지 앞에 놓고 보니 기분 나이스인가 봤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찍겠다고 말한다.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니 폼깨나 잡는다. 여기서 살짝 폭로(?) 할 게 있다. 문 선생은 셀카광이다. 수시로 핸드폰을 꺼내들고 셀카를 찍는 모습이 아주아주 빈번하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진 찍기를 엔간히도 권해 싼다.

들어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목포로 나갈 때는 좌석식 쾌속선이 아닌 온돌식 완행을 이용하기로 했다. 문 선생이 “지금은 아침밥 못 먹은 것을 보충하는 시간이다. 점심은 아직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의미는 뭘까. 조금 있으니 “하의도 바다 선상에서 신나게 먹을 라면이다. ㅎㅎ”라고 하기에 “라면요?” 되물으면서 원 없이 웃었다. 연포탕 값은 문 선생이 냈다. 1인 당 1만5천, 세 사람 분 4만5천 원이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7/12/27 23:31 2017/12/27 23:31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8434pjr/trackback/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