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전군가도 벚꽃 길
성서에서 그랬던가.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말고 먹고 살만큼만 주십시오.’ 과욕 부리지 말고 형편껏 살라는 말인 것 같아 가끔씩 금과옥조처럼 떠올리는 말이다. 이 말에 꽂히는 것으로 보아 짐작하겠지만 장소, 공간, 환경에 관련한 나의 상상력은 상당히 소박한 편이다. 공간에 대한 범위도 그렇다. 하지만 추억이 깃든 멋진 장소 몇몇은 당장에라도 끄집어내어 소개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지난날을 추억하며 상념에 잠기다보면 어떤 때는 축지법을 쓰는 사람처럼 순간이동을 하면서 추억에 잠긴다. 그럴 때마다 마을 한가운데로 철로가 놓인 기차 길에 서있기도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다 보면 동생이 늘 말하던 ‘째보선창’ 주변을 거닐 기도 한다. 하지만 미소를 활짝 짓게 만드는 곳으로 전군도로의 벚꽃 길만한 곳이 있으랴. 이곳이 내 고향 군산이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 최초로 건설된 신작로가 있다. 이름이 전군도로(전주.군산)인데 1907년에서 1908년에 완공된 국내 첫 도로다. 곡창지대인 김제만경평야에서 나오는 쌀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손쉽게 가져가기 위해 건설된 현대식 도로였다. 1909년 기준으로 김제.만경.대야.옥구 등에서 가져가는 쌀의 반출양이 전국의 32.4%나 되었다고 하니 그 수탈의 강도가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전군도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한 것은 1975년이었다. 이때 제일교포들이 벚꽃묘목을 기증하여 벚꽃 길로 조성되기 시작한다. 가로수라고는 기껏해야 플라타나스나 미루나무 간혹 가다 은행나무가 고작이었던 시대에 46.4Km나 되는 도로를 꽃나무로 채웠던 것이다. 실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국내 최초로 관광하는 꽃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헌데 이후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가 너도나도 벚꽃을 심기 시작했다. 도시의 특징은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모방으로 일관하는 곳이 많았던 것이다. 문제는 급하게 하느라 그랬는지 멀 대처럼 위로만 뻗는 종자가 대부분이었다. 자연히 가로수로서 안정감이 덜 하고 색감(色感) 또한 하얀색에 가까운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보이고 있어 멋과 낭만에서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들에 비해서 전군도로의 벚꽃은 수준 높은 꽃길이다. 나무 높이가 그리 크지 않아 나무의 몸통이 실하여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또한 개화기에 보여주는 꽃모양도 확연한 분홍색이 많아 정말 멋진 자태를 보여준다. 전군도로에서의 벚꽃 중에는 줄기가 수양버들처럼 늘어져 부드러운 자태를 보여주는 것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알맞은 높이에서 아름드리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생각해보라 흐드러지게 핀 꽃무리를 장장 46.4Km나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어떤 기분인지,
마을 가운데 자리를 잡은 철길과 째보선창, 전군도로 벚꽃 길(...) 이에 더해 군산은 철새들의 군락이고, 100년을 훌쩍 넘는 일본 식 가옥이 도시 한가운데 있는 곳이다. 군산은 정말 시간여행을 하면서 추억을 쌓기에 알맞은 도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