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정동영은 “호남정치 복원하라!”

-천정 양인은 전남북 지지자들의 신망 얻는 것이 큰 자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요즘 생각이 많을 것이다. 새정련을 탈당하여 국민모임에 합류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정 전장관이 합류하기로 한 ‘국민모임’은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을 지향하고, 이런 가치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개인에게 문호를 개방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2.4일 국민모임과 정동영 전 장관측은 첫 공식 모임 갖고 4월 재보선에서 3곳 모두 독자후보를 낸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국민모임 신당 후보의 3대 기준으로는 1)서민과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인물 2) 야권교체에 기여하고 ‘의사당 귀족’이 되지 않을 인물 3)전문성과 정채능력이 검증된 인물을 내세울 것이라고 공헌했다.

 

그렇다면 지금 왜 신당인가다.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당을 장악한 친노세력들은 단 하루도 보수 거대여당인 새누리당에 맞서 선명하고도 결기 있는 의정활동을 펼치지 못했었다. 지난 6.4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공천파동, 최근엔 두 번의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결성되어 매달렸으나 국민의 눈높이에 턱없이 실망스런 결과를 안긴 세월호 침몰사건에 관한 특별법제정문제, 연말 세금정산 문제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추어내는 일이 없었기에 국민의 인내는 바닥이 나버렸다.

 

이런 기류를 타고 새정련을 대체할 수 있는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기치를 ‘국민모임’에서 내걸었다. 이에 종편과 종편에 출연하는 삼류 논객들은 살판났다는 듯이 정동영과 국민모임을 두고 온갖 언사를 동원하여 짓까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을 비롯한 친노들은 DY가 나오기 전엔 그 위세와 세력을 몰랐기에 그랬는지 신당에 대해 경계심을 보이는 채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이제 문제인은 새정련의 대표가 됨으로서 당권을 거머쥐고 대권후보 자리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건더기와 국물을 손에 쥔 것이 많아 보이는 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정동영은 도대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가졌단 말인가. 정동영은 이 부분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편 문재인과 친노 세력들이 정동영과 천정배에게서 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도 생각해야 한다. 정동영과 천정배가 전남북을 꽉 잡고 있다고 가정할 때 친노 문재인은 전남북과 서울 경기에 흩어져있는 호남 표가 필요해서라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말해보자. 정동영과 천정배가 그들이 탐내는 것을 가지지 못한다면 정과 천 양인은 무자비한 ‘국물의 추억 족속들’인 친노와 문재인 일파들로부터 더더욱 냉대를 받을 것이다.

 

둘 다 자기 한 몸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맘만 먹으면 가능할 터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정치생명줄을 연장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인가? 호남정치를 복원하고, 호남의 입지를 살아생전 당대에서 세우지 못한다면 그 무슨 대장부의 사명을 완수했다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깊이 생각해야할 일이다.

 

지금 정동영과 천정배 양인 중에서 천정배 씨에게서 요구되는 것은 새정련과의 완전한 결별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가 호언하고 있는 호남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편 정동영에게서 요구되는 것은 좀 더 담대하고도 대인배 다운 행보이다.

 

천정배 씨마저 새정련을 나오고 나서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를 논하기 위해 선행 돼야 할 점은 정동영은 천정배를 향해서 삼고초려 아니라 십고초려도 불사해야 한다. 천정배 씨를 향한 낮은 자세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명심 또 명심할 일은 전남북 지지자들에게서 확실한 신망을 얻는 일이다. 그때라야 둘은 힘을 얻고 이 나라 정치계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천정배 정동영 양인 앞에는 ‘호남정치’의 복원이라는 준엄한 사명이 있다.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2/22 01:25 2015/02/22 01:25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8434pjr/trackback/256

따뜻한 연대, 진도 팽목항에서의 ‘스님 밥 차’

-진도에서 먹은 밥 세끼의 추억 “대동(大同)세상 알게 해줘”

 

지난 2월 14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다. 팽목항에 간 날이라서가 아니다. 그곳은 남을 깔아뭉개고 죽여야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따뜻한 밥 세끼가 있었고 차와 음료수와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는 따뜻한 대동세계가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도로 출발한 것은 금요일 7시였다. 지인 네 명과 함께 모두 5명이 출발하기 위해 모인 장소는 3호선 금호역 8번 출구였다. 애초 잠실역 너구리 상 앞에 모이기로 했으나 차주(車主)의 집이 금호동이었기 때문에 출발장소를 변경한 것이다.

7인 승 스타렉스에 올라타고 전남 목포를 향해서 달렸다. 가는 도중에 두 번 쉬긴 했으나 교대하는 사람 없이 파록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차주(車主)가 운전을 도맡았다.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대단한 체력으로 쉼 없이 혼자 전 코스를 운전한 파록님은 술 담배도 하지 않은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사람으로서 마치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모범장병처럼 운전대 아래 부분을 꼭 쥐고 시종일관 같은 자세로 달렸다.

12시에 목포에 도착한 일행은 찜질방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남자 네 사람은 다른 일행과 만나서 한잔 꺾으러 가고 먼저 찜질방으로 올라간 나는 더운 물에 잠시 몸을 담근 후 여성전용실로 가서 몸을 뉘었다. 이튿날 5시 알람을 맞춰 논 탓에 늦지 않게 일어났다. 애초엔 5시에 출발할 거라는 말을 들은 터였지만 6시 반이 되서야 진도를 향해서 출발을 했다. 일행이 진도군청 앞에 도착한 것은 7시 조금 못 됐을 때다. 

새벽기운을 가르며 도착한 눈앞에는 일찌감치 모여든 인파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바닥에 내려서니 한기가 몰려들었다. 바람까지 불어 녹록치 않은 아침이었다. 새벽녘의 한기는 밤이 아직도 그 끝자락을 거두지 않고 있었던 때문인 것 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가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밥 차가 보였다. 발길은 본능처럼 김이 피어오르는 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가마솥에서 국이 끓고 있었고 체격이 건장한 스님 한분이 커다란 국자를 들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스님은 연신 국을 퍼 담아서 줄을 선 사람들에게 건네고, 그 옆에서는 배식봉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밥과 반찬을 담아 손에 들려주고 있었다. 열을 지어 밥을 건네받는 중에 반찬접시 쪽으로 시선이 꽂혔다. 아니 이 새벽에? 노랗고 빨갛고 하얀 접시위에 놓인 가지 수는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그랬다. 반찬의 종류가 꽤나 푸짐했다. 난장에서 먹는 아침 한 끼에 정말이지 웬 떡이냐 싶었다. 김치, 버섯고추조림, 콩나물, 무말랭이, 그렇다면 받아든 이 떡을 어디서 먹을까. 옹색한 자세로 먹기는 싫고, 두리번 거리다보니 군데군데 하얀 식탁이 놓여있었다. 탁자위에는 살짝 깔린 살얼음이 눈에 띄었다. 안에서는 어서 밥 달라고 재촉을 한다. 행동개시 빨리 하란다. 서둘러서 자릴 잡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바로 이 맛이야!

국에 만 밥을 입으로 가져가기 바쁘다. 밥맛이 그만이다. 제대로 된 김치 맛이 똑 쏘며 혀 끝에 감겨온다. 소위 음식을 팔아 생계를 도모하고자 하는 요식업자들도 여차하면 중국제 김치를 사용하는 세상에 여기 김치는 정말 순수하고 맛있다. 어느 집 도가지에서 갓 나온 김치인지 솜씨 좋은 대가 집 김치 맛에 손색이 없다. 콩나물에 버섯고추조림에 김무침에 장아찌까지 네 다섯 가지는 족히 된다. 솜씨 좋은 가정식 백반 집을 만난 것처럼 이 새벽에 잘도 먹는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 맛에 수많은 촛불들은 민중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려고 모이고 또 모이나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번 더 밥을 가지러 가니 미역에 홍합이 가득 든 국을 준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다시 탁자로 와서 마저 먹었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이번엔 다른 것들이 보였다. 끓는 물통을 세워놓고 차를 배급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진도 울금 차(茶)였다. 먹을까 말까? 국물 있는 밥을 넉넉히 먹었는데 차까지 마시면 소변이 자주 마려울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내밀었다. 진도까지 와서 진도에서 주는 뜨끈한 차 하잔 마시지 않으면 누구 손해 게? 내 손해다.

빨주노초파남보, 문가 눈길을 끌고 있다. 다가가니 한 부부가 수제 사탕을 만들어 왔단다. 종이컵을 내밀면서 먹을 만큼만 담으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부부가 시키는 대로 종이컵에 사탕을 담았다. 이런 친절 오래간만이야! 그 자리를 떠나자 어느 새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후식으로 한입씩 먹으라고 사탕을 권하고 있었다. 진도에 오니 가진 것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대동정신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 오니 사람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건네주는 사랑의 레이저가 한가득 파도를 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옆에서 인터뷰 하는 소리가 들렸다. “19박 20일 동안 걷는 동안에 지나가는 사람이 차안에서 저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걸으면 누가 쳐다봅니까?”라고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개도 안 보고 소도 안 쳐다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봅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같이 못 걸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더군요.”

점심이 됐다. 12시가 가까워오자 배식이 시작됐다. 배추국과 김치와 버섯고추조림이 나왔다, 이번 시간엔 김치에 손이 많이 갔다. 세끼 밥 외에는 간식을 즐기지 않는 나. 밥이 입맛에 맞으니 맛있게 먹기만 하면 그저 좋았다. “김치 이거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진도 농협에서 담은 김칩니다.” “참 맛있네요. 제가 아는 최고의 김치는 배추 몸통이 아삭거리면서도 간이 잘 배어 있는 김치입니다. 색깔도 곱네요. 최고의 맛이에요.” 김치 맛있는 걸 실증이라도 해보이듯이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밥 상자는 연신 쌓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때를 맞춰서 밥 봉사를 잘도 하는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밥 잘 먹고 하는 일엔 신이 난다. 목적지를 향해서 걷는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쉰 것 까지 두 번 쉬고 마지막 구간에 와서 다시 한 번 걸음을 멈췄다. “이 고개를 넘으면 팽목항이다.”는 소리가 들렸다.

4시가 넘자 예정대로 팽목항에 다다를 모양이다. 이쯤해서 고백해야겠다. 오늘 진도군청에서 팽목항까지의 도보행진 구간은 27Km다. “27키로를 다 걸었냐고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고관절에 이상이 있어서 도중에서 전남금속노조 차량에 올라탔다. 그러다가 팽목항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 와서야 차에서 내려 도보대열에 합류를 했다. 그나마 염치불구하고 견인차에 몸을 싫은 덕분에 행렬에서 낙오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자위해본다.

4시 조금 넘은 시간의 팽목항,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유족들의 숙소가 있는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애초엔 행사가 다 끝나고 배식을 할 예정이었으나 식이 늦어질지도 모르고,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니 도착하는 족족 식사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식사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다시 줄을 섰다. 이번엔 어느 단체가 나와서 밥을 준다는 것일까. 배식이 이루어지는 곳을 가보니 이번에도 ‘사랑 실은 스님 짜장’ 밥 차 팀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남원의 선원사 주지 운천 스님이에요.” 세상에, 저렇게 고마운 스님이 어디서 뚝 떨어진 걸까. 불교연합팀이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스님 여러 분들이 눈에 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엔 떡국이었다. 떡국은 어떻게 끓여낼 건지....., 가마솥에서 나오는 펄펄 끓는 떡국을 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그 상태를 꼭 지켜보리라고 맘먹었다. 그러나 그릇에 이미 담겨있는 대접에 국물을 부어주는 식이었다. 거기다가 점심 때 아낙네들이 함지박에서 씻고 있던 봄 동을 겉절이한 것을 떡국에 얹어주었다. 부드럽고도 간이 맞았다. 2천 명 정도의 떡국을 끓이는 방법은 갓 뽑아낸 떡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5시 반이 되자 도보순례단의 활동보고가 시작됐다. 방파제를 중심으로 준비된 객석은 1800좌석이락 했다. 좌석은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도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아서 도보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의 숫자는 적어도 2천 명은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추가로 몰려드는 사람까지 합하면 추산인원이 얼마가 될지 몰랐다.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6시에 귀성하자.”할 것 같았다. 문자가 떴다. 6시에 분향소 쪽으로 모이라고. 밥을 먹지 않은 동료가 있었기 때문에 배식하는 줄에 서있었다. 밥도 있다며 밥을 건넨다. 떠나기 전에 먹어두라는 것이었다. 뭐 좋지. 먹으라는데 평소 과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식탐하는 사람도 아닌데 뭘, 아삭아삭 맛있는 김치에 약간의 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신기했다.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세끼 밥을, 아니 네 끼나 되는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 이 같은 밥 차를 띄워 수천 명을 먹고 먹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희망이 들꽃처럼 피는 세상 그 소망을 일궈내려는 민중들의 의지 때문이다. 대동정신을 아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스님 밥 차 덕분이다. 맛있는 김치를 제공해준 진도군민 손맛 그만이다.‘사랑 실은 스님 짜장’ 따뜻한 밥 세끼 고마워요.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2/21 11:02 2015/02/21 11:02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8434pjr/trackback/255

진취적인 자기개발과 창발(創發) 성으로 앞서 나간 공직생활 32년

-기초단체의원 당선은 자발적인 지지자들이 준 선물의 결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월의 빠르기는 쏜살과 같다. 어떤 수단으로든 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선용하게 된다.

시간이란 얼핏 생각하면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 같지만 갖가지 이유에 따라서 다르고, 활용 능력 면에서도 천태만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높은 학력과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했으면서도 취직은커녕 정작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뜻을 이루지 못해서 갖가지 안타까운 늪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비해서 화려한 스펙 하나 없이도 공무원 시험에 두 번씩이나 합격하고, 30년 이상 공직에 머물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명예롭게 복무한 사람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지역민들의 부름을 받아서 기초단체의원으로까지 진출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노원구 의회 김용우 구의원이다.

김용우 의원을 만난 것은 지난 월요일이었다. “최근까지 공직에 있다가 구의원이 된 사람으로서 특출 난 점이 많다.”는 평이 뒤따르는 인물이었다. 그럴수록 필자는 김 의원에 대한 평가가 근무의 품질을 두고 하는 말인지 오랜 기간 출근부에 도장 잘 찍은 햇수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우 이분 여느 공무원들과 차별 점은 무엇일까.’ “구의회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노원구청에서 어르신 복지과장으로 재직했고요. 그 전에는 서울시청에서 건설본부와 시정개발담당관실, 전산전자계산부서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습니다. 2000년도에 노원구로 자원하여 옮기에 됐습니다. 집사람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였지요. 밤늦게까지 근무가 이어지는 때가 많아서 근무처가 집과 가까운 곳이라면 학업에 열중해야할 아이들에게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서울생활, 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입지를 세우다

부산에서 학교에 다니던 어릴 적부터 공부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던 김 의원이었다. 이런 김용우에게 “너라면 혼자 힘으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거다”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따라서 검정고시로 방향을 틀게 된다. 김 의원은 고입과 대입검정고시를 거쳐서 방통대에 입학을 했다. 전공은 행정학이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도 무척 특이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은발과 함께 조화를 이뤄서 도시풍의 세련된 인상을 준다. 오랜 시간 단단하게 체화된 성실한 노력과 실력은 우수한 공무원으로 성장하는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즉 지식정보와 같은 앞선 학문의 습득에 부지런하게 대응한 결과였고, 독서와 음악 감상 취미는 부드럽고 유연한 인격 형성에 선 기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직하고도 정직했기에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이 남달라서 현대판 청백리로 손색이 없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공직자의 자부심은 실력, 청렴, 강직한 원칙에서!

그는 말했다. “제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식욕구라 할까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 부지런한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공직생활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작구청으로 발령이 났을 때였어요. 8주간의 전산교육과정이 있을 때 지체 없이 신청했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2달 동안 신바람 나게 전산교육을 받았습니다.” 전산교육을 받고나자마자 시(市)에서는 7명의 전산요원을 선발하더라는 것이다. 그길로 시정개발 담당관실에서 근무하는 요원이 되어 사무자동화에 성과를 내는 주역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무자동화와의 인연은 2009년도 국정에 적용된 ‘민원제도의 혁명-일꾼시스템(구술자 전자민원시스템)을 창안하고 구축하는 성과를 이룬다. 사람들이 주민센터에 와서 전입신고를 할 때 공란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것을 보며 이 시스템을 구상하게 됐다. 민원 담당직원이 자기 모터에서 행안부에 구축된 주민 망을 불러와서 필요한 정보를 채워 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구술전자민원양식은 판란드 헬싱키에서 GCD(세계각국의 시장,구청장 모임)에서 ‘콜럼부스의 달걀과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린(Green) 아이템으로 선정됐고, 행안부 민원편의 제공사례에 대한 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천 물난리 때도 큰 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직책과 관련하여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사항이 더 있다면 아울러서 말씀해주십시오.

“건설 본부 관리과에 있을 때였습니다. 서울시서 보유하고 있던 ‘각종 중장비를 팔고 니스해서 쓰라’는 지시가 내렸는데 팔기는 쉽지만 재구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싶었지요.” 필요할 때 제때 빌릴 수 있을지,. 급한 사정을 알고 값을 제멋대로 값을 올리지나 않을지. 김 의원은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매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득실을 따진 보고서를 제시하여 중장비 매각에 관한 부당성을 관철시켜냈다.

그해 여름 전국은 온통 물난리로 곤욕을 치렀다. 특히 경기도 연천시(市)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물 폭탄을 맞아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대책 없이 유실되는 상황이 분초 단위로 속보를 타고 전해지는 것을 들으면서 서울시에서는 보유하고 있던 중장비를 즉각 지원할 수 있었다.

서울시에서 노원구로 이관해야 하는 땅을 찾아온 일도 있었다. “내 재산이 아니니까.”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손 놓고 눈 감았더라면 영락없이 날아가고 말 땅을 말이다. 당시 시가로 104억 원짜리 땅인데 환수해온 그 부지에는 지금 월계아파트와 롯데캐슬아파트 그리고 월계 2동 어린이집이 들어서 있다. 뿐만이 아니다. 노원구청에서 일자리경제과 팀장으로 있을 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활임금도입을 적용하는 일을 했다. 근로자에게 인간다움 삶을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적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관내 26개 기관에서 일하는 406명의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에게 135만7천원을 이상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했다.

2012년도에는 서울시가 공모 ‘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한 처우개선 책’을 위한 사업에 응모하여 ‘노동복지센터’를 유치하게 됐다. 노동복지센터는 현재 마들역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아르바이트생, 아파트경비원, 여성근로자 등 취약계층근로를 대상으로 법률교육과 인문학강좌와 부당처우개선에 대한 구제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감정가가 10억 원 넘는 재산을 8억에 매각하라는 압력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김 의원은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며 헐값에 매각하라는 요구를 물리쳤다. 업무지식에 밝고 복무관이 투철한 청백리의 힘이 불의(不義) 앞에서 얼마나 큰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리스타트 김용우, 청백리 행정가에서 비전 제시하는 기초의원으로!

그나저나 공무원 때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어떤 준비과정을 거쳐서 의원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집행 부서였다면 지금은 감시자와 견인차 역할로 바뀌었다."며 기초의원이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 아니라 대안제시를 하는 입장이라고 정의했다.

구정회의록을 보면 창동 차량기지 개발에 관해서 미래산업 지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학이 7개나 되는 노원구만의 특성을 잘 살려서 만약에 도봉면허시험장과 창동 차량기지가 외곽지대로 순조롭게 이전된다면 서울의 도심지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활용해야 하며 국책사업으로서 광역개발을 하여 문화와 예술까지 유기적으로 결합한 첨단사업 군락지를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안 제시다.

김용우 의원은 여가가 날 때면 탁구를 치면서 이웃과 소통도 하고 건강을 돌본다. 그를 닮아서인지 자녀들도 김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독립심 강한 아이로 자라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이처럼 김용우 의원이 가정이든 공직이든 남다른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건강과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서 본청에서 노원구로 옮겨온 전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사에 합리적이고도 진취적인 면모에서 나온 결단의 결과였다.

김용우 의원에게 보다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이제 자신의 표만 의식하는 일개 구의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국익을 위한 발전모델을 고민하며 제시하는 첨단 형 입안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다.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2/20 15:48 2015/02/20 15:48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8434pjr/trackback/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