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적인 ‘노원 사랑’과 뛰어난 시정 안목이 재선(再選)의 밑거름

                                       - 노원구 김광수 의원 시의원에 연거 퍼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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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시의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동안 대면 기회는 많았지만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살가운 인사 한 마디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선량하면서도 샤프한 인상이다. 그러면서도 서민적인가 하면 영민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런 김광수 의원을 지척에 두고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3년 세월이 그냥 지나고 말았다. 사족 한 마디 덧붙이자면 “잘 나가는 시의원인데 나까지 다가가 굳이 아는 체를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심정이 마음 한구석에 깔려있었던 게다. 사실 카메라 메고 동분서주 하다 보면 그 날의 취재 포커스 외엔 도무지 시선을 분산시킬 여유가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2선 시의원 김광수 더 큰 꿈을 위해 날개를 활짝 펴다

그런데 드디어 만났다. 2015년 청양의 해를 맞아 양처럼 순해 보이지만 지역민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남다르고, 올바른 시정(市政)을 펼치기 위해서는 늘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핵심을 파고드는 의원으로 정평이 나있는 노원 제 5선거구 출신인 바로 그 김광수 시의원말이다. 지난 일요일에 이어서 월요일 낮 서울시의원회관으로 찾아가서 다시 한 번 만남을 가졌다. 한 번은 지역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시의원으로서의 그의 비전과 정치관을 듣는 자리였다.

“시의원에 재선되니 초선일 때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묻자 “일이 너무 많이 밀려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민원엔 지역민원과 서울시를 상대로 하는 민원이 있기 마련인데 민주당의 청년국장을 시작으로 해서 구의원을 거쳐서 시의원으로서는 재선의원이고 보니 ‘김광수’라는 이름 석 자는 지역민들에게 어느덧 너무도 친숙한 이름이 돼버린 때문이다.

지역민들의 일이라면 직접 찾아가 경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터라서 때로는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업무량이 많지만 “이게 다 김광수를 믿음직스럽게 생각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고맙고도 즐겁기만 하다.”는 마음뿐이라고 한다. “기념식장에 초대되어 상장을 수여하는 식의 폼 나는 1회성 행사에는 관심이 없고 생활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라는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스럽게 민원이 해결되면 주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여기서 새로운 힘을 얻는 의원이다.

 

40년 묵은 지역숙원사업을 해결하며 쌓은 헌신적인 노원 사랑

구의원에서 곧바로 시의원이 되고 또 재선의원이 된 사람이니 만큼 기억에 남는 지역현안 이 많았을 거다. “제가 82년부터 노원구에 살기 시작했는데요.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당고개역 쪽에 있는 주택들이 산하고 맞물려있어서 자기 집 앞마당처럼 사용하면서 생활 쓰레기를 투척하는 거죠. 그렇게 한 연한이 40년 동안이나 계속되다 보니 구도 시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을 25억이라는 예산과 봉사로 해결한 겁니다.”

수락산과 불암산 둘레 길 조성도 완결했다. 시의회에 등원하고 보니 수락산역에서 당고개 공원까지 7Km 구간만 조성하기로 반 토막 난 채 잡혀있었다. 총 둘레를 환산해보면 12km인데 그렇게 된 이유를 물으니 난코스라서 그랬다는 대답이었다. 김광수 의원은 그 즉시 전 구간 탐사에 들어가는 하는 한편 환경수자원위원으로 분과를 옮겨서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서울시 직원과 환경수자원위원과 노원구청직원들이 함께 현장실사를 나가는 등 사전준비를 통하여 설득을 시작했다. 이런 노력 끝에 총 23억 8천만 원의 시(市) 예산을 끌어와 수락산과 불암산 자락을 연계하는 총 12Km 전역에 둘레 길을 완성한 것이다.

 

어렵게 이룬 숙원사업의 관리와 성공적인 단일사업들

어렵게 이룬 숙원사업이었던지라 무엇보다도 후속관리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김광수 의원은 지체없이 ‘수암사랑나눔이’라는 환경봉사대를 꾸렸다. 벌써 3년 째 접어든 ‘수암사랑나눔이’는 처음에 8명으로 발족하여 지금은 초등생에서 고령의 어르신까지 구성인원 160여명에 이르는 비영리단체로 성장했다. 그로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지속적인 환경관리를 해오고 있다. 김광수 의원이 다른 의원들과의 차별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나랏돈으로 어렵게 이룬 사업이니 만치 환경지킴이의 역할은 해당 지역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하자는 각오다.

그에게는 노원구를 넘어서 서울시 전역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아름답고 깨끗한 친환경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하천 변에 쌓인 토사물 정비하기, 마을 진입로 가꾸기까지 환경에 관련된 사업이라면 갖가지 아이디어와 방법을 동원하여 손길을 뻗친다. 지금까지 200회 이상 봉사를 계속한 덕에 전국 지방의회 친환경 최우수의원 상을 수상하고 그가 이끄는 ‘수암사랑나눔이’는 서울시가 주는 환경대상을 2회 째 수상을 했다.

이밖에 그가 해결한 단일사업을 보자. 상계 5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골목 입구에 주택이 잘못 들어서서 20년 째 통행 길을 막고 있는데 구내 연초보고 때마다 단골메뉴로 올라오는 민원이다. 드디어 보상과 철거를 시행하여 길을 내고 나머지 땅엔 미니공원을 조성했다. 상계역 주변의 간판정리도 동네 골목길 정비사업도 상계 2동의 주민 센터와 경로당을 동시에 신축한 일도 상계역 북단 당현천을 복원한일도 지번을 부여받지 못해서 재산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던 건영아파트와 성림아파트 지역에 지번을 부여해서 등기를 완료하여 해당 주민들의 숙원을 풀어낸 일도 김광수 의원이 들어서서 해결한 민원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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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불가분한 지역 민원과 김 의원만의 지속적인 봉사

“노원구 전역에서도 상계 2,3,4,5 동은 자연주책이 제일 많은 곳입니다.” 김 의원은 그래서 공공시설로서의 경로당 짓기와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을 보살피는 일에서 관심을 거두지 못한다. “상계 3.4동엔 아직도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450여 가구나 됩니다. 이들은 대게가 고령자에다 독거 인에요. 원하는 것이 김치와 쌀인 경우를 봐서도 생활이 얼마나 힘든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고령 독거노인들일 수록 건강문제 또한 심각하다. 해서 김광수 의원이 하는 봉사 중에는 길게는 12년, 6년, 3년 식으로 장기적인 것이 많은데, 동절기마다 보건소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서 독감예방주사를 마쳐드리는 일도 그중 하나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3~4일 동안 차량을 대놓고 독감예방주사를 맞혀 드리기 위해 보건소로 모셔가는 분이 한 해 평균 300여명이다.

 

초등학교 운영위원장에서 기초의원을 거쳐서 재선 시의원이 되기까지

돈 벌기에만 열심이었던 젊은 사업가였다.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부모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급식 실 만드는 문제로 소집된 학부모회의였던가 보았다. 운영위원장은 대게 고학년 학부모가 맡는 것이 상식 아닌가. 하지만 돈을 걷어야 하는 문제와 결부되는 일이다 보니 누구 하나 맡으려 하질 않았다. “하나 같이 1학년 학부모인 절더러 급식추진운영위원장을 맡아달라는 거예요.” 4번이나 거듭되는 요청에 강제로 떠맡다시피 급식추진운영위원장이 되었다. 회장이 돈이 많아서 거액을 내놓거나 일이 될 때까지 노력봉사를 하며 헌신할 수밖에 도리가 없어 보였다.

김광수 의원은 결국 해냈다. 7천5백만 원을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교육청의 지원금 7500만원과 합해 급식 실을 수월하게 완공하였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운영회장을 내리 6년간이나 맡았다. 학교에서 부여하는 갖가지 직책과 함께 지역발전을 위해서 원 없이 힘을 쏟았다.

“저런 사람이 구의원으로 가야해!” 상향식 공천이라더니 그야말로 아래로부터 떠밀리다시피 된 구의원이었다, 지역 일에 헌신하는 모습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더니 각 정당에서조차 서로 청년위원장으로 데려가려고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 의원의 나이 42세 때였다. 성실한 가장이요 자상한 아빠의 힘은 사화에서도 그처럼 빛났다. 맡은 일마다 특유의 노력과 영민함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기에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은 인간관계는 그렇게 정치계에서나 사회 각처에서 러브콜을 보내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일 잘하는 김광수 의원 ‘당당한 행보로 더 크게’ 달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당시엔 민주당의 인기가 형편없어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나선 후보들은 모조리 떨어질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김광수 의원은 민주당 간판으로서 당선됐고, 여당이 싹쓸이 하다시피 한 구의회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구정활동을 펼쳤다. 이런 김 의원을 주민들은 또다시 “광역의원으로 가야할 사람이다.”며 응원을 해줬다.

노원구 인근에는 명산이 많다. 대학교도 7개나 된다. 그럼에도 발전을 저해하는 갖가지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대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 문제도 그렇고 “산이 좋다!”며 모여드는 곳이지만 환경문제는 심각할 종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 모습을 아침저녁으로 지켜보는 해당 시의원의 마음은 오죽하랴.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고’ 내 주변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랑이 더 많은 사람만이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김광수 의원은 도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치유하기 위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인식한 첫 번째 문제점은 생활쓰레기다. 서울시의 경우 4대문 안은 비교적 깨끗하지만 4대문을 벗어나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김 의원은 이를 위해서 ‘재활용 정거장’이라는 실천운동을 생각해냈다. 집에 묵혀두고 있는 물건들을 일주일에 한 번 씩 가지고 나와서 공동으로 분류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관할지역에서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현수막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나라처럼 현수막을 지저분하게 내거는 나라는 없다. 각 지자체에서부터 홍보성 공공현수막을 자제해야 한다. 다음은 각종 통신케이블이다. 난마처럼 얼키고설킨 전신줄과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온갖 짐들을 어서 빨리 정비해야 한다.

쾌적한 도시가 답이다. 땅 한 평에 최소 800만원이 드는 수평적 녹지공간만 고집할 게 아니라 수직적인 녹지공간의 조성에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회색콘크리트 건물에 푸른 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넝쿨식물에 대한 연구노력이 더 많아져야겠다. 비워둔 옥상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하늘정원 꾸미기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 좋은 방안이다. 그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환경수자원위원으로서 열정과 전문성을 가지고 좋은 노원구를 넘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서울시를 만들기 위해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실력가가 되어 가열 차게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에필로그, 큰 걸음을 위하여 더 크고 더 넓은 날개를 달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더니 그를 뽑아준 지역민들의 응원이야 말로 그에겐 더없는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성원과 힘은 또 머지않아 그에게 더 크고 더 넓은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주말엔 수락산 자락으로 달려가 봉사에 한창 바쁜 그와 함께 환경지킴이가 되어 보자. 자연 사랑의 대열에 합류해서 양팔 벌려 당신을 환영하는 대자연에 안겨보자.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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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5 20:56 2015/02/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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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 남북경협인들 “민족음식 예술문화 축제‘로 시작한다.

             -재도약 위해 선두에 나선 남북경협경제인연합 동방영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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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데이 선임기자 박정례]= 다부진 체격에 원만한 인상이다. 남북경협경제인연합의 동방영만 회장을 본 첫 느낌이다. 상대를 향하여 말을 던지는 족족 거침이 없고 사업가다운 경륜이 묻어났다. 마주 앉은 상대가 누구든 남북경협에 관한한 경험과 지식 면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심장에서 방금 꺼낸 것처럼 따끈따끈한 ‘희망’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다.

동방영만 회장에게서 남북경협 중단에 관한 그간의 사정을 듣고 있다 보니 그의 소망은 온통 5.24조치 해제에 관해 초점이 맞춰있고, 그가 바라는 것은 북에 묶여 있는 물건과 설비 걱정이다. 예전처럼 기업 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 열망은 “더 이상 남북경협의 중단상태를 방치하다가는 어렵게 다져온 신뢰와 경제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손실이 누적되어 영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고착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으로 넘친다. 이제라도 천안함 사태로 인해 취해진 5.24조치가 우리 정부의 대승적인 결단으로 풀렸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경제교류의 물꼬가 터진다면 분단의 편견을 넘고 단절로 인해 생긴 손실을 메꾸기 위해 원 없이 몸 바쳐 노력해볼 양이란다.

 

남북경협경제인연합회 그리고 동방영만 상임회장

북한 평양 내륙지방에 직접 투자를 한 기업들은 1030여 업체나 된다. 이들 기업들은 4년 7개월 동안 중단된 남북경협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이 고사 직전이다. 작년 3월까지 어림잡아 334개 업체가 줄 도산했고 그에 따른 실업자만 8만 명에 이르렀다. 남북경제인연합(이하 남경련)은 그동안은 각개 약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오다가 5.24조치가 있고부터 자구책의 일환으로서 북한 내륙에 투자를 한 기업가들이 뭉쳐 결성한 단체다. 이에 동방영만 회장은 북한 평양투자기업들의 권익을 위해 최선봉에 서서 상임회장으로 뛰고 있다.

때마침 을미년 새해를 맞아 남북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동방 회장을 만나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본 기자가 동방영만 남경련 상임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수요일 낮이었다. 대방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바람이 유난히 매서운 바깥 날씨와는 달리 남창(南窓)을 향해 쏟아지는 자연 광으로 실내공기는 따뜻하고도 밝았다.

참고로 북한에 진출한 사업 군(群)을 보면 첫째는 금강산관광 사업, 둘째는 북한 내륙에 투자를 한 기업군, 셋째는 개성공단으로 나눌 수 있다. 개성공단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중단 되었다가 166일 만에 재가동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불과 5개월 반 동안 중단됐던 개성공단의 피해도 적지 않게 불거지는 판인데 만 5년이 되도록 가동이 중단된 내륙 투자 기업체들의 고충은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북한 내륙투자기업들의 진출과 초창기 분위기

동방영만 회장의 경우만 하더라도 2003년부터 시작한 남북 위탁가공 교역업체인 스칼레아에서 의류수출완제품과 시설투자들이 생으로 묶이게 됐다. 정부의 말 한마디로 그야말로 선적을 하루 앞둔 의류완제품만 15만점이 순식간에 반입금지를 당한 것이다.

북한 내륙지방에 투자한 기업가라고 들었는데요. 평양에서 사업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다른 거 없어요. 사업가가 돈 벌려고 한 것 말고 다른 것 있어요?” 듣고 보니 명답이다. 사업가가 “돈을 벌기위해서”라는 말 빼고 달리 더 무슨 말을 하고 싶겠는가. 동방 회장은 북한에 진출하기 전에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이다. 그러던 중에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것을 보며 중국 심양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진출한 케이스다.

먼저 호기심 반 도전 정신 반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됐다. 그들과의 교류가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도 처음엔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가서 보니 그들이 사는 곳도 우리네 시골 풍경하고 똑같았고 무엇보다 말이 통하는 한민족이었다. 같이 웃고 떠들면서 부둥켜안고 통일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도 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높은 사람들이 맘에 안 든다고 욕하는 것’도 북이나 남이나 똑같았다. “기존의 공장들을 둘러보고 조건이 괜찮다 싶은 곳이 눈에 띄어 설비투자를 하고 들어간 것이다.” 그러고서부터 평양 내륙 지방에 편물기계와 의류제조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공급하고 니트 제품을 비롯한 각종 의류를 연 100만장 씩 만들었다.

동방 회장은 사회에 첫발을 회사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타고난 사업가 체질이었던지 30대부터 사업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국내의 대기업과 아웃도어 업체 등에 납품을 하는 임가공업자로서 연 매출 100억 정도는 너끈히 달성하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사장이 됐다. 이런 배경위에서 북한 업체와 연결되는 순간 중국 쪽 사업을 접는 대신에 의류 위탁가공업체를 북한 내륙으로 이전하여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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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기업가들, 정치는 정치인들이

현 시점에서 남북한 경협 중단에서 시행착오랄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무엇인가요.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하루 빨리 정경분리 원칙이 확립돼야 합니다. 남북관계는 대만과 중국, 동서독과도 다릅니다. 우린 서로 싸운 전력이 있단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상호신뢰회복이 중요한 이유지요. 민간경제협력만이 민족 간 동질성 회복과 쌍방을 인정하고 믿고 평화통일에 지름길로 가는 단계가 되는 것이죠.” 처음엔 “진출하기만 바빴지 보험을 든다든지 리스크관리엔 눈을 뜨지 못했다.”며 정부시책 따르기에 바빴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미흡했던 점을 지적하는 동방 회장의 얼굴엔 순간 안타까움이 번졌다.

누구도 경협 중단이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5.24조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쪽은 남한과 남한 기업가들뿐이다. 북이 그동안 교류 중단으로 1을 손해 봤다면 남한은 그 10배다. 기업 환경도 변했다. “북한에 첫발을 내딛은 우리 선발업체들은 그야말로 개척정신의 화신이었다.”고. 그런데 5년 전에 시간당 1달로 주던 임금을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유럽인들은 3달러를 지급하며 북한 내 위탁가공업의 70%를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과 북한으로서는 다른 투자처와 비교해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앉아 죽을 순 없다. 북에 두고 온 내 물건은 잘 있는지 기름 치고 닦고 조이면 기계는 아직 쓸 만한지 어서 달려가서 ‘뜨거운 심장에서 금방 건저올린 희망’처럼 튼실한 재도약을 성취하고 싶을 뿐이다. 놀면 뭐하냐. 내 물건과 내가 해놓은 설비가 5년 동안 잠자고 있기에 절박한 심정에서 터져 나오는 열정의 불꽃을 한데 모아 남북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시작을 안했다면 몰라도 이왕에 칼을 빼들었으니 끝을 봐야할 사업이다. 그래서 남북경협인들은 사력을 다해 달리고 싶은 거다.

 

남북 간 축제와 교류는 민간인들끼리 손잡아야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한이 함께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에 대해서 말해 달라. “‘남북 민족음식 예술문화 대축제’다. 우리 남북경총에서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북측에서 보내온 의향서를 통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동방회장의 말을 종합하자면 북한 측은 락원무역총회사, 우리 측은 남북경협경제인연합이 주체가 되어 3월에 서울에서 음식문화 축제를 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남북 요리사 100명씩 모두 200명 이상이 모여 민족음식 축제를 벌일 계획이다. 축제 기간엔 북한 음식 상설 전시관, 북한 특산물 홍보관을 운영하며 북한 음식 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에 곁들여서 북한 만수대공연단을 초청하여 남북예술인의 합창과 합동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북측에서 참가단체로 거론되는 곳은 옥류관, 평양 대동강 음식점, 고려식당, 조선민족음식연구원 등이다. 일이 무르익으면 우리 측에서도 적절한 절차를 걸쳐서 참가단체를 결정하고 협의해 나갈 일만 남는다.

“너무 일찍 터뜨려서 소리만 요란한 것은 원치 않는다.”는 동방 회장의 말이 유난히 귀에 꽂힌다. 워낙 변수가 많은 것이 남북 관계라서 그런가 보다. 이일을 추진하는 책임자들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을 명심할 일이다.

모든 것이 남북경협이 잘 되길 바라기 때문에 하는 일인데요. 이와 병행해서 경협인들에게 제일 갈급한 것은 무엇일까요. “5.24조치로 경협이 중단 된지 만 5년이 되가는 시점입니다. 5.24조치가 풀리는 것이 제일 큰 관건이지요.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5년 전 기업환경하고 지금은 너무 달라요. 정리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5.24조치가 있고 나서 저희 기업체들은 맨 먼저 매출감소가 일어났어요. 매출이 없으니 세금도 못 냈을 거 아닙니까? 세금을 못 내니 사업자등록이 직권말소 됐습니다. 사업자 등록이 없는 사람들은 은행대출도 못 받아요. 그 다음은 압류가 들어오고 압류 다음엔 경매로 넘어갑니다. 이런 순서를 걸치면서 도산한 기업이 오늘 날 344개 업체가 됩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5.24조치 해제와 더불어서 ‘5.24조치로 인한 피해보상법’의 통과가 선행돼야 합니다.”

 

다시 터닝 포인트를 향하여

사적인 얘기도 좀 해주셔요. 건강은 어떻게 챙기고 계십니까? 그저 잘 먹고 일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면서도 10여 년째 살짝 찐 토마토를 아침마다 한잔씩 갈아 마시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일 얘기다. “여기 사무실은 출입할 때 꼭 사인을 하고 들어온다. 출입기록을 보고 908호 동방 회장은 쉬는 걸 못 봤다.”고 소문이 났다면서 웃는다.

“회장님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습니까?”고 묻자 동방 회장은 왠지 답을 아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국회에 계류 중인 ‘5.24 피해보상법이도 통과 되고 5.24조치가 해제되는 시점 그 자체가 동방 회장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여기다 경륜과 신중함, 오랜 사업 경험과 원만한 소통능력에 타인을 아우르는 포용력까지 갖춘 전 전후 기업가로서의 동방 회장 같은 사람이라면 남북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뛰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재도약과 국운 융성을 위해서 일익을 담당하는 남북경협경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동방 회장의 ‘스킬레아’를 비롯한 남북 경협인들의 재도약과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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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3 17:33 2015/02/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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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어!

 

늦게 일어났지만 아침에 목욕을 다녀왔다. 절반의 성공이다. 목욕준비를 해서 대중탕에 가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기에. 지난번엔 도우미 아줌마에게 등을 밀었는데 어찌나 세게 밀던지 목뼈에서 튀어나온 부분과 왼쪽 어깨에 상처가 날 정도였다. 그 상처가 여러 날 어찌나 화끈거리던지 등을 밀기 위한 돈은 가져갔지만 망설이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아주머지가 날 보더니 “등 밀어드려요?” 하더니 밀어주셨다. 고맙다. 때 비누까지 발라서 밀어줬는데 ‘것도 백화점에서 샀다’고 자랑을 했다.

아침 든든히 먹고서 갔는데 점심엔 어제 남긴 밥과 컵 짜파게티와 커피랑 먹어서 점심을 때웠다. 감사하다.

다음 주 나갈 인터뷰를 대충 잡아줘서 고맙다.

합정역 3번 출구 서교빌딩 지하에 더 잘 센터에서 하는 교육협동조합 지역장들에 대한 교육에 다녀왔다. 최 원장에게 부탁했던 다이어리를 받았다. 고마웠다.

주 선생으로부터 다음 주 월요일 참석하게 될 3분을 소개받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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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6 23:03 2015/02/0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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